사라질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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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alm 16:1–3 NKRV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찬송가 52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Isaiah 21:1–17 NKRV
1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적병이 광야에서, 두려운 땅에서 네겝 회오리바람 같이 몰려왔도다 2 혹독한 묵시가 내게 보였도다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엘람이여 올라가고 메대여 에워싸라 그의 모든 탄식을 내가 그치게 하였노라 하시도다 3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해산이 임박한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이 나를 엄습하였으므로 내가 괴로워서 듣지 못하며 놀라서 보지 못하도다 4 내 마음이 어지럽고 두려움이 나를 놀라게 하며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 5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 파수꾼을 세우고 먹고 마시도다 너희 고관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 6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가서 파수꾼을 세우고 그가 보는 것을 보고하게 하되 7 마병대가 쌍쌍이 오는 것과 나귀 떼와 낙타 떼를 보거든 귀 기울여 자세히 들으라 하셨더니 8 파수꾼이 사자 같이 부르짖기를 주여 내가 낮에 늘 망대에 서 있었고 밤이 새도록 파수하는 곳에 있었더니 9 보소서 마병대가 쌍쌍이 오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시되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하시도다 10 내가 짓밟은 너여, 내가 타작한 너여,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 들은 대로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11 두마에 관한 경고라 사람이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12 파수꾼이 이르되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네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하더라 13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라 드단 대상들이여 너희가 아라비아 수풀에서 유숙하리라 14 데마 땅의 주민들아 물을 가져다가 목마른 자에게 주고 떡을 가지고 도피하는 자를 영접하라 15 그들이 칼날을 피하며 뺀 칼과 당긴 활과 전쟁의 어려움에서 도망하였음이니라 16 주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기한 같이 일 년 내에 게달의 영광이 다 쇠멸하리니 17 게달 자손 중 활 가진 용사의 남은 수가 적으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사야 21장에는 세 나라를 향한 경고가 차례로 등장합니다. 1절부터 10절까지는 바벨론, 11절과 12절은 두마 곧 에돔, 13절부터 17절까지는 아라비아를 향한 말씀입니다.
세 나라는 서로 다른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벨론은 강력한 제국의 권세를 자랑했고, 에돔은 험준한 산악 지형과 생존 능력을 자랑했습니다. 아라비아의 게달은 무역에서 얻은 부와 뛰어난 활 솜씨를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 모든 영광이 사라질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일 년 내에 게달의 영광이 다 쇠멸하리니”
이 말씀은 게달에게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바벨론의 영광도, 에돔의 영광도, 아라비아의 영광도 모두 사라집니다. 사람의 눈에는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무엇을 자랑하고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기 원합니다.

1. 한밤중에 무너지는 바벨론의 영광

1절은 바벨론을 향한 경고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적병이 광야에서, 두려운 땅에서 네겝 회오리바람 같이 몰려왔도다.”
“해변 광야”라는 표현은 다소 낯설지만, 9절을 보면 이것이 바벨론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바벨론은 유프라테스강 유역에 자리하고 있었고, 남쪽에는 넓은 습지와 수로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물이 풍부한 땅이지만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면 황량한 광야와 같이 될 것이기 때문에 “해변 광야”라고 부른 것입니다.
바벨론은 이사야 시대에 앗수르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키던 세력이었습니다. 특히 므로닥발라단은 바벨론을 중심으로 반앗수르 연합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훗날 그가 히스기야에게 사절단을 보낸 사건이 이사야 39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앗수르의 위협을 받던 유다의 입장에서 바벨론은 매력적인 동맹국으로 보였습니다.
“앗수르를 막으려면 바벨론과 손을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바벨론의 군사력과 외교력을 이용하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다가 의지하려는 바벨론도 곧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붙들 수 있는 또 다른 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절에서 이사야는 말합니다.
“혹독한 묵시가 내게 보였도다 속이는 자는 속이고 약탈하는 자는 약탈하도다 엘람이여 올라가고 메대여 에워싸라.”
이것은 가볍게 들을 수 있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이사야는 이를 “혹독한 묵시”라고 부릅니다. 배신과 약탈이 반복되고, 거대한 군대가 바벨론을 포위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람과 메대에게 바벨론을 공격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엘람은 오늘날 이란 남서부 지역에 있었고, 메대는 이란 북서부 지역에서 성장하던 세력이었습니다.
이 예언의 구체적인 역사적 성취를 어느 사건에 연결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나뉩니다. 일부는 주전 689년 앗수르 왕 산헤립에 의한 바벨론 파괴를 가까운 역사적 배경으로 봅니다. 그러나 본문이 엘람과 메대를 공격 세력으로 지목한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는 주전 539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와 메대·페르시아 연합 세력에 의한 바벨론 함락을 바라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바벨론은 주전 539년 고레스에게 점령되었습니다. 대영박물관의 고레스 원통 자료
정확히 어느 사건을 일차적 성취로 보든지 본문이 선포하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바벨론은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벨론을 의지하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바벨론의 마지막을 보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현재의 힘만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힘이 사라진 이후까지 보고 계십니다.
3절과 4절에서 이사야는 이 환상을 보고 큰 고통을 느낍니다.
“이러므로 나의 요통이 심하여 산기가 임박한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이 내게 임했으므로… 내 마음이 어지럽고 두려움이 나를 놀라게 하며 희망의 서광이 변하여 내게 떨림이 되도다.”
이사야는 바벨론의 멸망을 보면서 즐거워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나라가 망한다는 소식에 통쾌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몸을 구부릴 정도로 고통스러워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바르게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멸망을 즐기지 않습니다. 죄를 미워하지만 심판받는 영혼을 불쌍히 여깁니다. 참된 선지자는 심판을 차갑게 전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울면서 전합니다.
5절에서는 매우 대조적인 장면이 나타납니다.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 파수꾼을 세우고 먹고 마시도다 너희 고관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
바벨론의 지도자들은 식탁을 차리고 먹고 마시며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파수꾼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명령이 떨어집니다.
“고관들아, 일어나라. 방패에 기름을 바르라.”
고대의 방패는 가죽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마르거나 갈라지지 않도록 기름을 발라야 했습니다. 방패에 기름을 바르라는 것은 즉시 전쟁을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잔치가 순식간에 전쟁으로 바뀝니다. 웃음소리가 비명으로 바뀌고, 포도주 잔을 들고 있던 손이 방패를 들어야 합니다. 다니엘 5장에 나오는 벨사살의 잔치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입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했지만, 심판은 이미 성문 앞에 와 있었습니다.
사람이 가장 방심하는 순간이 언제입니까?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통장에 돈이 있고, 건강에 문제가 없고, 사업이 잘되고, 자녀가 안정되어 있을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말합니다.
“이 정도면 안전하다.”
그러나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잠시 맡기신 것입니다. 오늘 있다고 내일도 반드시 있는 것이 아닙니다.
6절부터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파수꾼을 세우라고 명령하십니다. 파수꾼은 말 탄 자들과 나귀 탄 자들과 낙타 탄 자들이 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낮에도 밤에도 계속 경계하며 기다립니다.
마침내 한 사람이 와서 외칩니다.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 신들의 조각한 형상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함락되었다”는 말이 두 번 반복됩니다. 그만큼 확실하게 무너진다는 뜻입니다. 아직 현실에서는 바벨론이 건재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는 이미 함락되었습니다.
바벨론의 성벽만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벨론이 섬기던 신들의 형상도 땅에 떨어집니다. 고대의 전쟁은 신들의 전쟁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어떤 나라가 승리하면 그 나라의 신이 더 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이 무너질 때, 바벨론의 신들은 자신들의 백성을 구하지 못합니다. 우상은 사람이 붙들고 있을 때만 서 있을 뿐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우상이 사람을 붙들어 주는 일은 없습니다.
10절에서 이사야는 고통받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하여 말합니다.
“내가 짓밟은 너여, 내가 타작한 너여,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 들은 대로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유다 백성은 거대한 제국들 사이에서 타작마당의 곡식처럼 짓밟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짓밟는 바벨론이 영원하지 않다.”
“너희를 압제하는 제국의 영광도 곧 사라진다.”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세상이 얼마나 강한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마지막을 어떻게 말씀하셨는가입니다.
2. 아침이 와도 다시 밤이 오는 두마의 현실
11절과 12절은 두마를 향한 짧고도 수수께끼 같은 말씀입니다.
“두마에 관한 경고라 사람이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두마가 정확히 어느 지역인지를 두고도 몇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두마는 북아라비아의 오아시스 성읍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세일”이 언급되기 때문에 대체로 에돔과 관련된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세일은 에돔 사람들이 살던 산악 지대입니다.
“두마”라는 단어에는 ‘침묵’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에돔이 심판을 받아 침묵의 땅이 될 것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세일에서 누군가 파수꾼에게 다급하게 묻습니다.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긴 밤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질문이 두 번 반복되는 것은 그들의 절박함을 보여 줍니다. 앗수르의 압제라는 밤이 너무 길었습니다. 전쟁과 불안이 계속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아침이 언제 올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파수꾼이 대답합니다.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아침은 옵니다. 고난이 잠시 끝나고 형편이 나아지는 때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침 뒤에 다시 밤이 옵니다.
앗수르의 압제가 끝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았지만, 앗수르 다음에는 바벨론이 등장합니다. 한 제국이 물러가면 또 다른 제국이 나타납니다. 한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문제가 찾아옵니다.
에돔 사람들이 기다렸던 것은 영원한 아침이 아니라 잠시 찾아오는 정치적 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주는 아침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 아침 뒤에는 다시 밤이 찾아옵니다.
파수꾼은 이어서 말합니다.
“너희가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이 말씀은 “더 알고 싶으면 다시 와서 물으라”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라”는 말에는 하나님께로 돌이키라는 회개의 요청도 담겨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밤이 언제 끝납니까?”라고 묻는 데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이 고난이 언제 끝납니까?”
“우리 형편이 언제 좋아집니까?”
“언제 건강이 회복되고, 언제 문제가 해결됩니까?”
물론 우리는 그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이 밤을 통하여 나는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있는가?”
형편이 좋아지는 것만이 아침은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진정한 아침입니다.

3. 일 년 안에 사라지는 게달의 영광

13절부터는 아라비아를 향한 경고가 시작됩니다.
“아라비아에 관한 경고라 드단 대상들이여 너희가 아라비아 수풀에서 유숙하리라.”
드단 사람들은 아라비아 지역을 오가며 무역하던 대상들이었습니다. 향료와 귀중품을 싣고 사막의 무역로를 따라 이동했습니다. 이들에게 길은 곧 생계였고 부의 통로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정상적인 무역로를 다니지 못하고 수풀에 숨어 밤을 보내게 됩니다. 상인이 피난민이 된 것입니다. 물건을 가득 싣고 다니던 사람들이 가진 것을 버리고 몸을 숨겨야 합니다.
14절에서 데마 땅의 주민들이 그들에게 물과 떡을 가져다줍니다. 데마는 북아라비아의 중요한 오아시스였습니다. 사막에서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대상들에게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드단 사람들이 물과 떡을 얻어먹게 된 이유를 15절이 설명합니다.
“그들이 칼날을 피하며 뺀 칼과 당긴 활과 전쟁의 어려움에서 도망하였음이니라.”
과거에는 풍성한 물건을 거래하던 사람들이 이제 물 한 그릇과 떡 한 조각을 구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전쟁이 그들의 일상과 경제와 자랑을 한순간에 무너뜨렸습니다.
16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시간을 정확하게 정하십니다.
“주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기한 같이 일 년 내에 게달의 영광이 다 쇠멸하리니”
“품꾼의 정한 기한”이라는 말은 날짜를 대충 계산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품꾼은 계약한 날짜가 끝나기를 정확하게 셉니다. 하루라도 더 일하지 않으려 하고, 고용주 역시 기간을 분명하게 계산합니다.
그와 같이 정확히 일 년 안에 게달의 영광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게달은 이스마엘의 후손으로 알려진 북아라비아의 유력한 유목 부족이었습니다. 풍부한 가축과 무역을 자랑했고, 특히 활을 잘 쏘는 전사들로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17절은 게달 자손 가운데 활을 가진 용사들이 얼마 남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예언의 역사적 배경은 주전 8세기 후반 앗수르의 북아라비아 원정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르곤 2세의 왕실 비문에도 그가 아라비아 부족들을 공격하고 주민들을 이주시킨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사르곤 2세 왕실 비문 자료
그러나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앗수르의 강함이 아닙니다. 17절 마지막이 심판의 진정한 이유를 밝힙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게달의 영광이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국제 정세가 바뀌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앗수르의 무기가 우수했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영광에는 끝나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는 끝나는 시간이 없습니다.

맺는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사야 21장에는 세 가지 사라질 영광이 등장합니다.
바벨론의 제국적 영광이 사라집니다. 에돔이 기다리던 세상적인 아침도 다시 밤으로 바뀝니다. 게달이 자랑하던 부와 용맹도 일 년 안에 쇠멸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돈과 지위, 건강과 자녀, 경력과 경험입니까?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명성과 성공입니까? 교회 안에서도 건물과 숫자, 직분과 사역의 성과를 우리의 영광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하나님보다 더 자랑하고, 잠시 맡겨 주신 것을 영원한 것처럼 붙드는 데 있습니다.
바벨론은 말합니다.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
에돔은 말합니다. “이 밤만 지나면 안전하다.”
게달은 말합니다. “우리의 부와 활이 우리를 지켜 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바벨론은 함락될 것이다.”
“아침이 와도 다시 밤이 올 것이다.”
“게달의 영광은 일 년 안에 사라질 것이다.”
오늘 새벽 우리는 파수꾼에게 묻습니다.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복음은 우리에게 대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가장 깊은 심판의 밤을 지나셨고, 부활의 아침을 여셨습니다. 세상이 주는 아침 뒤에는 다시 밤이 오지만, 그리스도께서 여신 부활의 아침은 영원합니다.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는 다시 밤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라질 영광을 붙들지 맙시다. 무너질 바벨론을 의지하지 맙시다. 잠시 찾아오는 세상의 아침에 마음을 빼앗기지 맙시다.
우리의 영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세상의 모든 영광은 사라지지만,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사라질 것을 자랑하지 않고, 영원하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라질 세상의 영광을 붙들고 자랑했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바벨론의 힘과 게달의 부와 용맹이 모두 사라지는 것을 보며, 오직 주님의 말씀만 영원함을 믿게 하옵소서. 고난의 밤이 언제 끝날지만 묻지 말게 하시고, 그 밤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십자가의 밤을 지나 부활의 영원한 아침을 여신 예수 그리스도만 우리의 영광으로 삼으며 오늘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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