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사랑을 말했다 (8) - 여수룬 2026 0809 사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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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언덕을 평지로 바꾸시는 하나님
언덕을 평지로 바꾸시는 하나님
(자전거. 평지, 한강자전거길, 언덕길. 팔당-구리, 언덕 있음. 나도 해낼 수 있다. 나도 했다. 가파른 그 오르막을 정복해낸 기쁨, 자신감. 그런데 현재로서는 도저히 안되는 구간도 있음. 남산 실패.)
인생도 살다 보면 때때로 가파른 언덕과 같은 시련을 만납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순간들,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어버린 듯한 때가 있습니다. 성경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러했습니다. 그들의 여정 가운데 평탄하게 승리를 맛 본 순간도 있었지만, 결코 모든 순간이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굴곡과 시련으로 가득했습니다. (PPT01)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을 특별한 이름으로 부르셨습니다. 바로 '여수룬'입니다.
이사야 44:2 (개역개정)
2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이 구절에서 만날 수 있는 '여수룬'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이름이 아닙니다. 성경에 단 네 번만 등장하는 이 특별한 단어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여수룬은 무엇이며,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렇게 부르셨을까요?
곧음과 평탄함의 이름
곧음과 평탄함의 이름
(PPT02) 여수룬이 대체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너무 조금 등장하다 보니 저나 여러분 모두에게 생소한 단어일 것입니다. 이 단어는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애정 어린 별칭으로, 성경 전체에서 네 군데(신명기 32:15, 33:5, 33:26, 이사야 44:2)에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희귀함만큼이나 특별한 의미를 품고 있는 이름이지요.
성경 문화배경 사전 여수룬
여수룬(Jeshurun) 히브리어 ‘여수룬’(יְשֻׁרוּן, 예슈룬)은 ‘온전하고 의로운 자’, ‘올바른 자’, ‘곧은 사람’, ‘고결한 자’라는 뜻으로, ①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의 대상이자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 있는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애칭(
(PPT03) 이 단어의 어원은 히브리어 '야샤르(יָשַׁר)'에서 유래했습니다. 야샤르는 '곧다', '바르다', '직선적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여기서 파생된 '정의로운', '공의로운', '정직한' 등의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야샤르에서 파생된 '미쇼르(מִישׁוֹר)'라는 단어는 주로 '평평한 곳'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여수룬은 언덕과 대조되는 '평지'의 개념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PPT04) 히브리 문화에서 이 단어는 단순히 지형적 특성을 넘어 영적, 도덕적 차원의 의미를 가집니다. 야샤르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고 정직하게 행하는 사람을 의미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원문의 뉘앙스는 내 인생이 아무리 굴곡진 형태의 길이라도 '하나님의 길을 따라 곧게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이 단어를 연구하면서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왜냐하면 이 단어 하나에 하나님의 소망과 기대가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한 별칭의 의미
아이러니한 별칭의 의미
(PPT05)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의 별칭으로 '여수룬'이라고 부를 때, 그 어원이 '곧은', '평평한'의 의미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과 여정은 전혀 곧거나 평평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PPT06) 당장 문자 그대로 지리적으로 보더라도, 가나안 땅, 지금의 이스라엘 땅은 평지가 많지 않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을 '산의 신'이라고 표현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중앙 산지와 갈릴리의 고원, 그리고 험악한 광야 지형까지... 그들이 사는 땅 자체가 야샤르한 곳이 별로 없었습니다.
(PPT07) 그들의 역사는 또 어떠했을까요? 결코 평탄한 역사가 아니었습니다. 애굽의 노예 생활부터 시작해 침략과 수탈의 아픔, 나라를 잃은 슬픔까지 경험했습니다. 개인적 차원으로 좁혀 보더라도 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야샤르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수많은 환난 속에서 도망자의 삶을 살았고, 요셉은 형제들에게 팔려 노예가 되었으며, 예수님마저도 이 땅에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셔서 언덕 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 않나요? 때로는 너무나 험난해서 한 발짝도 내딛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순간들 말입니다.
(PPT0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여수룬으로 불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아이러니한 별칭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어떤 마음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만드는 평탄함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만드는 평탄함
신명기 33:29 (개역개정)
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PPT09)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는 여전히 행복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땅이 평평하지 못하고 세상의 조건이 말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눈이 그들과 함께 하셔서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은혜로 그 땅을 적시고 소산을 내게 하셨습니다.
(PPT10) 그들의 삶이 평탄하지 못하고 형통하지 못한 것처럼 보여도, 결국엔 승리하고 결국엔 천국 소망을 외칠 수 있는 이유는, 절대 좌절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진리가 사라지고 구원의 길이 없어진 것처럼 보일 때, 십자가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과 여수룬
우리의 삶과 여수룬
(PPT11) 그런 의미에서 우리 예수 믿는 자들의 평탄함은, 평안함은, 행복은 세상의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축복의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앞에서 우리가 뭘 더 해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우리의 인생이 평탄한가 아닌가의 기준이 '주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가', '주가 내 안에, 내가 주 안에 거하는가'에 달려 있다라면, 이 사실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인생을 여수룬처럼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 여전히 우리의 삶이 골짜기의 음침한 그늘 같을지라도 우리가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제 삶의 가장 어둡고 힘든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저와 함께 계셨다는 것을요. 그래서 삶의 어떤 순간에도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주님을 붙잡는 일인 줄로 믿습니다.
롯데월드, 롤러코스터. 우리 인생도 롤러코스터 타는 것 같음. 그런데 롤러코스터에는 안전바가 있음. 이것만 붙들면 열차가 360도를 회전해도 떨어지지 않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도착하게 됨. 우리가 할 일은 그 안전바를 믿고 그 놀이기구의 재미를 누리면 되는 것임.
(PPT12) 여러분의 삶은 어떠신가요? 지금 여러분의 상황이 얼마나 험난하든, 주님의 동행하심이 우리의 모든 언덕을 평지로 만들어 주실 것을 기대하십시오. 우리가 굽은 길을 걸어가고 삶의 거친 순간들을 지날 때에도, 주가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다면 우리 인생은 평탄한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여수룬의 비밀입니다. 스가랴4장7절 상반절.
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
'주가 내 안에, 내가 주 안에' 이 진리를 누리는 여수룬의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삶에 있는 모든 언덕이 평지로 바뀌는 놀라운 경험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수룬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