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앞에 드린 기도

개인기도의 문을 열 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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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기도의 문을 열 때4 (20260809 주일오전)
다니엘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녹취자: 조복령

I. 본문해설

다니엘서는 특별한 책입니다. 그는 앞에 나오는 책들은 대부분 유다와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책들이고, 또 언약 백성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창세기에는 인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후로 점점 좁혀들어가며 이런 식으로 구약 성경이 전개가 됩니다. 물론 성경책 속에는 종종 이방 나라에 관한 예언이 나옵니다. 매우 짧고 단편적인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서는 이스라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멸망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1부와 2부로 이루어집니다. 1부는 1장부터 7장까지 다니엘과 세 친구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8장부터 12장까지는 제국의 흥망 성서를 다룹니다. 바벨론과 바벨론 이후에 일어나게 될 나라, 즉 바벨론, 바벨론 이후에 페르시아, 페르시아 이후에 마게도니아 왕국으로 일컬어진 그리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로마의 역사, 이 나라들이 어떻게 서로 망하게 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이렇게 중요하고 하고 하니 하나님이 단지 조그마한 나라 이스라엘 왕이실 뿐만 아니라 온 세계 나라들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우주적 전망과 역사관을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이 다니엘서와 친근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합니다. 친근했던 이유는 찬송가에도 나옵니다. 옛날 용맹스러웠던 다니엘의 경험과 다니엘이 사자 굴 속에 던졌던 이야기, 그리고 다니엘의 새 친구와 불 속에서 살아난 이야기 그리고 다니엘과 새 친구가 왕의 음식을 거절하고 채소와 물만 먹었는데 피부가 곱고 아름다웠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은 주일 학교 때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나오는 많은 환상을 토대로 한 많은 이야기의 전개들은 우리들을 당혹하게 합니다. 다니엘서는 구약의 요한계시록이고, 요한계시록은 신약의 다니엘서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책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다니엘서에 대한 해석 없이는 계시록을 해석할 수 없고, 계시록의 빛을 통해서 또한 다니엘이 바르게 해석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세계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통치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지구상에 200여의 나라가 있지만 이 나라 중 원래 있었던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모두 망하고 세워지고 세워지고 또 망하는 역사를 되풀이했던 것입니다. 다니엘서는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면 멸망시킨 역사 이후에 제국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왕이 하나님 앞에 교만해질 때 하나님이 어떻게 그 왕과 제국들을 부숴버리시고 다시 만드신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모든 인류가 그분의 통치 아래 복종해야 할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든 사회주의든 어떤 정치 제도든 간에 나라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복종하지 않고 교만한 정치 체제는 반드시 하나님이 끝장 낼 것이며, 반드시 망하게 되리라는 것을 하나님이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서를 잘 읽으면 우리의 마음이 굉장히 광활해집니다. 세계의 역사 전체를 우리 앞에 펼쳐 보여주시는 가운데 우리가 상천하지의 하나님 한 분밖에 인류 역사를 다스리는 분이 없다는 겸손한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 나라는 바로 바벨론이었습니다. 거기서 느부갓네살과 벨사살이라는 왕을 섬깁니다. 그리고 바벨론은 역사의 뒷장으로 사라지면서 메데라는 나라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 메데의 기혼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는데 아마도 야베서 자손인 마데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카스피해와 그 서남쪽으로 이어지는 지역에 걸쳐서 메데라는 나라가 서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메데라는 나라가 아시라아의 통치에 있었는데 아시리아가 약해진 틈을 타서 독립운동을 일으켜 나라를 재건하게 됩니다. 그러나 메데라는 나라는 곧 약해지고 이어서 나타난 바사라는 나라에 의해 통합되게 되는데, 바사라는 나라가 바로 여러분이 잘하는 역사 속의 페르시아라는 나라입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제국을 이루었고, 사실상 문화적으로 메데와 바사는 거의 같이 흡수되어 버렸기 때문에 우리들이 흔히 메데, 바사라고 함께 부를 정도로 하나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잠시 잠깐 잊었던 매데 시대에 바로 다리오라는 왕이 있었는데 바로 그때 다니엘이 생기게 되고 이어서 페르시아의 고레스라는 위대한 임금이 나타나게 됩니다. 역사 속에서 배운 키루스라는 왕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나라를 엄청나게 확장하고 나라의 통합을 이루게 됩니다. 다니엘은 이처럼 나라가 세 번 바뀌는 가운데 바벨론과 메데와 페르시아의 네 왕을 섬기게 되었으니 그가 얼마나 영특하고 유능한 사람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다리오 왕 시대 때 있었던 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3명의 총리가 있었고 다니엘이 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이상한 법률 하나가 반포됩니다. 왕위에 30일 동안 어떤 신에게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진다는 금령이 반포됩니다. 이 금령은 왕이 사인하면 왕도 번복할 수 없는 특별한 명령이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겠습니까? 승승장구하며 잘 나가고 있던 이방인 다니엘을 시기하는 사람들의 모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총리들과 다른 관리들이 협작하여 다리오 왕을 설득해서 이런 법을 만들게 하고 하게 했습니다. 이는 다니엘이 어떤 틈을 찾기 위하여 다니엘의 허물을 샅샅이 뒤졌으나 어떤 점에 있어서 든지 다니엘은 결코 흠이나 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애하는 사람이라는 특징을 파악하고는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지 않을 수 없는 법을 만들고, 그때 다니엘이 신앙을 불곡해 지킨다면 왕의 명령을 거역하게 될 것이라는 함정을 파놓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30일 동안 왕 이외에 아무 신에게도 기도할 수 없게 만드는 금령 정책이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파란만장한 긴 세월을 바벨론과 메데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이 건져주셨고 살려주셨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에게 있어서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위기의 때를 맞이하게 됩니다. 자신은 신앙을 지키면 죽임을 당해야 하고, 죽임을 면하기 위해서는 신앙을 포기해야 하는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바로 그때 다니엘이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하고 하나님 앞에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II. 위기 앞에 드린 기도

위기 앞에 드린 기도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읽은 우리가 읽은 10절에서 나는 여러분에게 세 가지 교훈을 찾을 수 있다고 제안하는 바입니다.

A. 기도의 장소

첫째는 기도의 장소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다니엘에 조서의 왕의 도장이 찍힌 줄 알면서도 자기 집에 돌아와서는 윗방에 올라가 기도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에게 위기가 찾아왔지만 그에게는 기도하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바로 윗방이었습니다. 이것은 다락방이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는 다락방은 대개 종교적인 행사를 위해 사용되던 방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열왕기하 4장 10절에서도 분명하고, 또한 사도행전 10장 9절에서도 분명합니다. 여러분은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성도들이 모여서 간절히 기도할 때 오순절에 성령님이 강림하신 사건을 기억하시고 것입니다. 그 장소도 바로 이 윗방, 곧 다락방이었습니다. 다니엘은 기도하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물론 기도했었지만 관청에서 기도했을 가능성은 매우 적습니다. 바쁜 국사에 아침부터 매달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으로는 하나님 찬양하고 마음속으로는 기도했을지 모르지만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기도하는 장소가 따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네 집 바로 윗방 다락방이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오랜 세월 동안 마음을 쏟으며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 장소는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한 장소였고, 감격으로 응답받은 장소였습니다.
종종 사람들은 묻습니다. 당신은 기도하는 장소가 어디입니까? 그 사람은 말합니다. 저희 하나님은 안 계신 곳이 없으시잖아요. 저는 아무 데서나 늘 기도합니다. 그 사람 둘 중 하나입니다. 매우매우 탁월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든지 아니면 거의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든지 둘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기도의 틀이 필요합니다. 시간과 공간의 틀이 필요한데 바로 이 공간의 틀이 장소입니다. 여러분에게 기도하는 장소는 어디입니까? 사랑하는 연인들끼리는 있지 않는 장소가 있기 마련입니다. 항상 거기서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추억이 담겨 있는 장소 없이 연인이라고 할 수 없어 있을 것입니다. 헤어져도 생각이 나는 그 장소, 그리고 사임이 있고 교제가 있었던 장소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 장소는 어디입니까? 장소가 없다며 여러분의 기도 생활이 일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뜨내기 기도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되면 하고 안 되면 말고, 그리고 할 수 있으면 하고 하기 힘들면 그만두는 그런 기도 생활이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기도에 정해진 장소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한 곳에 정착해 계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와 갈릴리 지방으로 두루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고 병든 자를 고치고 말씀을 가르치신 생애를 사셨습니다. 그런 바쁜 섬김의 생애를 사셨던 예수님이시지만 아무 데서는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어디서든지 항상 한적한 곳을 찾으셨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없고 하나님 홀로 독대할 수 있는 곳을 찾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빈들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나아가 마음을 쏟으며 천국의 이슬로 당신의 마음을 적시고, 아버지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을 쏟아 모으며 기도하셨습니다. 때로는 눈물과 통곡으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은 산에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아무도 방해받지 않는 곳에서 장소를 정하여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 기도하셨습니다.
여러분의 기도 장소는 어딥니까? 하나님의 기도 응답에 추억이 서려진 곳 그곳을 생각하면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자신이 생각나고 하나님이 응답해 주셨던 아름다운 추억이 생각나서 지금 여러분에게 소망을 주는 그거 그곳에 가면 주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인상을 주는 장소가 어디입니까? 믿음의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하나님 앞에 단을 쌓는 장소를 가지고 있었고, 기도하는 장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베드로에서 주님을 만난 것처럼, 그리고 거기서 주님을 다시 찾았던 것처럼 여러분에게 그 기도의 장소는 있습니까? 거기가 어디입니까? 만약에 없다면 오늘 이 설교를 들으시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내게도 기도할 장소를 주십시오. 주님과의 기도의 추억, 응답의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그런 장소를 나에게 주십시오. 그것이 교회면 너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일 수 없다면 여러분의 골방일 수도 있고 뒷방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취방일 수도 있고 혹은 아침 일찍 출근한 여러분의 사무실일 수도 있습니다. 헛간일 수도 있습니다. 어디든지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정해진 장소를 가지십시오. 나는 여기서 항상 주님을 만나리라 이런 결심을 하는 여러분이 된다면 다니엘처럼 인생의 위기도 능히 극복하고 이길 수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장소를 찾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기도의 습관

두 번째는 기도의 습관입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기도하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위기의 때에 갑자기 기도를 시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은 말합니다. 평안하게 살다가 하나님을 거스르고 불순종했는데, 위기를 만났을 때 목숨을 걸고 간절히 기도했고,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서 내 인생은 바뀌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겐 항상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나도 언젠가 인생의 위기를 만나면 하나님 앞에 목숨을 걸고 기도할 것이고, 거기서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실 것이고, 나도 반드시 응답받고 승리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목회를 해보면 인생의 위기를 만난 모든 성도들이 바로 그 위기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로 하나님을 찾는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소수의 사람들만 그렇게 합니다. 그럼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 불행에 떠밀려간 것입니다. 불행의 흙탕물에 떠내려간 것입니다. 그중에 어떤 사람은 믿음을 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위기를 만날 때마다 눈물로 기도하고 목숨을 걸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건 평소 안 하던 것을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평소 안 하던 것을 할 때는 백의 결단과 용기와 힘이 있어야 합니다. 평소 하던 것은 그것의 절반만 힘이 들어도 능히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바빠도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질하지 않고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아무리 피곤해도 밤에 씻지 않고 잠자리에 드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마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아침에 일어나면 당연히 양치질하고 밤에는 깨끗이 씻고 잠자리에 듭니다.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우리 몸에 배인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나쁜 습관은 우리를 급속하게 망치지만 좋은 습관은 우리를 굳건히 붙들어주는 틀이 됩니다. 그래서 좋은 습관을 지니는 것은 아주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매일매일 단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고는 몸이 근질거려서 살 수 없다는 지체들도 있습니다. 굉장히 좋은 습관입니다. 저는 하루에 최소 5 6킬로 정도를 걷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불편합니다. 걷는 그 시간이 너무 좋습니다. 아무도 말도 걸지 않고 혼자 어두운 밤길을 타박타박 걸으면서 여러 가지 사유에 잠기고 혹은 좋은 강의를 듣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묵상합니다. 그 시간은 아무도 뺏을 수 없는 너무 좋은 시간입니다. 그것이 처음에는 저도 너무 힘들었는데 이젠 습관이 되었습니다. 너무 좋습니다. 그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그게 습관입니다.
45년 만에 제가 치과를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보고 내가 45년 만에 치과에 왔다고 하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모든 치아가 아주 건강하고 조금 이상이 있어도 별거 아니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목사님 같으면 우리 치과 의사들은 굶어 죽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건치가 되었겠습니까? 저는 하루에 10번 내지 15번 가글을 합니다. 가글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저녁 먹고 나서 잠잘 때까지 적으면 3번, 많으면 4번 가글을 합니다. 낮에는 한 10번 정도 가글을 하는 셈입니다. 가글을 하지 않으면 입속에 세균이 있는 것 같고 텁텁해서 정신이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날 때는 당연히 기본적으로 가글을 해서 냄새가 안 나게 해야 하고, 책을 읽을 때도 가거를 해야지만 정신이 집중이 되고 음악을 들을 때도 가거를 하고 난 다음이 너무 좋습니다. 커피만 마시면 반드시 가거를 합니다. 가글을 그렇게 좋아해서 제가 온 교회에 가글을 다 설치했습니다. 가글을 설치한 이유는 하나입니다. 맑은 정신으로 설교를 들으라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마우스 워시를 하고 정신이 집중된 가운데 설교를 듣는 것입니다. 이런 습관이 건치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니엘은 기도의 습관이 있었습니다. 왕의 조서에 도장이 찍혔지만 그것보다도 더 강력하게 다니엘의 마음을 휘어잡은 힘이 있었으니 습관의 힘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할 시간이야 왕의 조세에 어인이 찍혔던 말았던 어차피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니 나는 하던 습관대로 하리라. 그리고 올라갔습니다.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다고 합니다. 베라코트라는 유대인의 문헌 제4장 1절에 의하면 세 번이 이른 아침, 오후, 그리고 했을 때라고 적힙니다. 이 유대인들의 관습이 그대로 전해져서 신약 시대에도 유대인들이 하루에 세 번씩 성전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그때 시간은 오전 9시 12시 3시였습니다. 아마 다니엘이 이른 아침과 오후 해질 때 기도했다면 첫 번째 기도는 출근하기 전에 드리는 기도였을 것이고, 세 번째 기도는 퇴근 후 드리는 기도였을 테니 그는 점심 때 집에 왔음이 틀림없습니다. 집에 와서 점심 때 다락에 올라가 마음을 쏟으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다니엘을 붙들어 주었던 기도의 습관이었습니다.
평소에 기도를 많이 하여 영적인 전투를 연습하는 사람들이 위기의 때에, 영적인 전쟁의 때에 훌륭하고 능력 있게 싸워서 이기는 것입니다. 좋은 운동 선수는 늘 운동을 하면서 오늘 오후에 시합이 있어도 바로 시합장에 나갈 수 있도록 몸과 마음과 기술을 단련하는 사람이 훌륭한 운동 선수입니다. 좋은 군대는 무엇입니까? 좋은 군대는 언제든지 전쟁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군대입니다. 오늘 전쟁이 벌어져도 우리는 이길 수 있다는 마음으로 완전하게 준비된 군대가 좋은 군대입니다. 적군이 쳐들어올 때 준비할 시간을 두고 통보한 후에 쳐들어옵니까? 어느 날 갑자기 강도처럼 쳐들어오는 것이 적군이고, 그렇게 일어난 것이 전쟁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전쟁을 연습하지 않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 대가를 한순간에 치르게 됩니다. 몇백 년의 문명을 가꾸고 수많은 나라의 재산을 일구었다고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나라를 지킬 힘이 없으면 초토화되고, 군대가 능력이 없으면 모두 적군에게 내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오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 요세푸스의 사기를, 요세푸스의 사기를 인용하면서 그는 당시 로마의 전성기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로마가 강대국일 당시 로마의 군대는 강력했어 로마의 군인들에게 전쟁은 피 흘리는 훈련이었고, 훈련은 피 흘리지 않는 전쟁이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기도의 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아직도 태만하십니까? 제가 여러분을 생각하면서 눈물이 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정말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으면서 힘든 인생을 영위해 나가면서 그것을 이길 자원을 손에 가지고 있지 않다고 알았어 잊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상당히 많은 사람은 지난 주간에도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매일매일 정해진 분량의 성경을 읽는 성도들이 여러분 중 얼마나 되겠습니까? 한 절반 출시부 75% 정도 됩니까? 나머지 29% 사람은 전혀 하나님의 말씀과 가까이하지 않는 상태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지난 한 주간 동안 단 한 장도 성경을 읽지 않았습니다. 뉴스를 보고 웹툰을 보고 네이버의 뉴스를 뒤적이는 시간 중 10분의 1만큼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여러분 중 절반 이상입니다.
도대체 세상을 이길 힘을 어디서 충전을 받겠습니까? 여러분 어디서 이 세상을 이기고 자기들을 이기고 마귀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공급받으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기도의 습관이 경건의 습관이 몸에 배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전투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에 다니엘과 같은 위기가 오면 과연 여러분이 이렇게 탄력성 있게 극복할 수 있는 영적인 순발력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이런 무기력한 기도 생활과 게으른 말씀 생활, 그리고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담지 않는 여러분의 안일한 신앙생활을 통해서 여러분이 정말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소유할 수 있는지 한번 자신에게 물어보기를 바랍니다. 습관이라고는 그저 이 세상과 함께 먹고 마시고 예쁜 것을 보며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것이 습관이 되고 길들여져 있을 뿐, 거룩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아는 달콤한 맛에 길들여지지 않았을 때 여러분은 경건의 습관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오늘 다니엘을 보십시오. 왕의 조서에 도장이 찍혔습니다. 이제 기도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압니다. 이 사람이 평소에 기도할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도장 찍힌 그 조소를 기억하면서 두려워 떨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평소에 하던 기도의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무섭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뀐 환경에서도 전혀 바뀌지 않는 기도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위대한 습관을 갖기를 바랍니다. 경건의 습관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 마음을 쏟으며 하나님 앞에 하루에 세 번씩 기도드리던 다니엘의 기도 습관을 여러분이 소유하고, 여러분 인생의 위기를 다니엘처럼 이기고 극복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 기도의 태도

마지막 세 번째는 기도의 태도입니다.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1.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제일 먼저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창문이 닫혀 있었더라면 안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안에서 기도를 하든 무엇을 하든 성경을 읽던 알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창문을 열었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난 창문이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그것은 나는 이처럼 강력한 신앙이 있다라는 자기 과시가 아니었습니다. 난 죽음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자만함을 보여주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다니엘의 행동은 요한 칼빈이 지적한 바와 같이 내적 신앙의 한결같음에 대한 외적인 표현이었으니 순전한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왕의 조서에 어인이 찍힌 지켰다는 이유 하나로 평소와는 다르게 기도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난 창문을 열었습니다.
여기에는 다니엘의 연약함도 묻어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우리 혼자 스스로 기도에 불러일으키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는 외부로부터 불을 붙여주는 자극이 필요합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예루살렘은 어떤 곳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왕권이 행사되는 중심지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엔 하나님의 언약이 깃들여 있었고,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율법으로 말미암아 모든 나라가 살 것이라는 언약이 주어진 성소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바로 거기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언약을 맺으셨고, 그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당신의 왕권을 행사해 나가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기억 속에 마지막 남은 예루살렘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이런 하나님과의 약속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약속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이라는 말은 원래 평화의 도시라는 뜻, 바로 그 평화의 도성의 평화가 깨졌습니다. 바벨론의 군대가 쳐들어왔고, 그 말발굽 아래 예루살렘은 초토화되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예루살렘이 예루살렘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 때문에 어떤 이방인에게도 멸망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학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버리시기로 작정했고,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을 무너뜨리시고 예루살렘을 파괴시키면서 보이지 않는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세우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마음속에 예루살렘은 잊을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재건시킬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기도할 때마다 예루살렘으로 향해 난 창문을 열고 자신의 마음에 소망의 불을 붙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불을 붙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신앙의 불을 붙이고 현실을 암담해도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소망을 갖겠다는 결단을 하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그 시간이 바로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여는 순간이었습니다. 연약한 마음에 예루살렘의 열정에 불을 붙이고 예루살렘의 영광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예루살렘은 어디입니까? 연약해진 여러분 기도의 마음에 불을 붙일 창문은 어디로나 있습니까? 그 창문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 한번 다니엘을 생각해 보십시오. 망한 도성 예루살렘을 생각하면서 포로생활로 암담한 시절을 이겼고, 그렇게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의 마음에 기도의 불이 붙여졌습니다. 여러분 예루살렘 성전은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십니다. 예수님을 향한 창문을 여십시오. 그분의 십자가 사랑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불이 붙여지게 하십시오. 그 기도의 불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며 신앙으로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경건한 기도의 습관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시시때때로 주 앞에마음을 쏟으면 매달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무릎을 꿇고

두 번째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성경에는 기도하는 많은 자세에 대해서 나옵니다. 앉아서 하는 기도가 있고 서서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엎드려서 하는 기도가 있고, 서서도 그냥 아는 기도가 있고, 손을 들고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서서 드리는 기도는 경건한 기도이고, 손을 들고 하는 기도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기도인 반면에 납작 엎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의 주권에 굴복하겠다는 복종의 의미가 담겨 있는 기도입니다. 무릎을 꿇는 기도는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왕으로 여기고 자신을 신하로 여기는 겸비함이 묻어 있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무릎을 꿇으므로 하나님 앞에 경배와 복종을 동시에 표현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은 것은 경배와 복종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잘 되고, 잘 나가는 동안에는 자기가 제 일인 줄 압니다. 만사가 자기의 뜻대로 될 것이라고 듣기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위기를 만납니다. 사업이 무너지고 가정이 깨지고, 건강에 위협이 오고, 죽음의 그림자가 들려올 때 비로소 자신은 풀리 끝에 매달려 있는 이슬 한 방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후~” 하나님이 털어보실 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사라지는 것이 자신의 존재라는 사실을 터득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을 봐야 할 시각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는 동안에만 우리가 희망이 있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쾌락과 세상, 사랑의 덜 까불며 사는 사람들 그렇게 살라고 하십시오. 어느 한 순간에 그 즐거움이 막이 내리고 젊음도 끝나고 육체의 건강도 끝납니다. 잘 나가던 인생길도 막힐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가 어느 순간 그 앞에 덜컥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될 때는 훌륭한 것 같아도 한마당의 어지러운 꿈입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다가 죽으라고 하십시오. 우리는 그렇게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 사람들에게 인생의 진실을 전하고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신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 풀린 끝에 매달린 이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겸비해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깊이 자신을 돌아보며 무릎을 꿇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참 이상합니다. 많은 세월이 지났는데도 다른 자세로는 마음이 모아지지 않습니다. 무릎을 꿇을 때 마음이 가장 편합니다. 자세는 불편한데 마음은 편합니다. 그리고 심정은 주님 앞에 쏟아집니다. 그리고 하나님 어떠한 사랑을 주셔서 여기까지 나를 이끄셨고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지를 생각하며 무릎을 꿇을 때 나의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그분의 뜻에 복종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분의 뜻을 모두 받아들일 마음에 각오를 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의 영혼은 자유를 받게 되고, 하늘을 향해 오르는 날개를 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날개를 타고 우리는 하늘 높이 날며 우리 주님과의 대화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벼랑 끝에서 날개를 다는 은혜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자유로운 기도 속에서입니다.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아래는 불퇴전의 기도 내 인생은 이제 더 이상 물러갈 수 없습니다. 앞에는 적군들이 쳐들어오고, 뒤에는 천 길 같은 낭떠러지들 뿐입니다. 하나님 이제 나에게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습니다. 내가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 나의 기도에 응답해 주옵소서. 인생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드릴 수 있는 무릎 꿇는 기도의 믿음 이것을 여러분의 여러분이 소유한다면 어떠한 인생의 위기에서도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얘기를 잔소리처럼 듣지 마십시오. 그냥 예배 시간 하나를 장식하는 설교 얘기로 듣지 마십시오. 여러분 인생의 위기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삶과 죽음 사이, 세상과 신앙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여러분의 비척거리는 발걸음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일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무릎을 꿇으십시오. 그리고 아버지 앞에 불퇴전의 각오를 가지고 매달리십시오. 응답받고 새로운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이렇게 다니엘이 기도를 했는데 마지막에 한 구절이 부록처럼 붙어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서는 이상한 책입니다. 구약의 모든 책들이 다 히브리어로 쓰여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옛날 말입니다. 그런데 현대어는 거의 같습니다. 현대어도 거의 같습니다. 어쨌든 이스라엘 사람들의 말로 쓰였습니다. 히브리어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에스라서의 일부와 다니엘 2장 4절부터 7장 28절까지가 전혀 다른 언어로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을 원전으로 읽으려면 2개 국어를 해야 됩니다. 그중 한 언어가 바로 아람어입니다. 아람어는 당시 외교 세계의 링구와 프랑카였습니다. 그러니까 외교에 있어서 국제 공용어가 당시 중동 지방에서 아람어였다는 것입니다. 이 아람어는 근본적으로 갈데아 사람들의 언어이고 갈대야 사람들이 바로 바벨론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바벨론 사람들의 말입니다. 그런데 바벨론 사람들에게 이 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른 언어를 쓰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학교 다닐 때 배운 함무라비 법전을 기록한 그 언어가 바로 바벨론 사람들이 사용하던 언어였습니다. 그런데 외교적인 링고와 프랑카 국제 공용어는 당시에 아람어였습니다. 현대의 링고와 프랑카는 영어와 불어입니다. 그래서 독일 사람이든지 한국 사람이든지, 일본 사람이든지 대만 사람이든지 베트남 사람이든지 외교 문서를 작성할 때는 두 언어 중 하나입니다. 불어를 사용하든가 영어를 사용하든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 언어가 바로 아람어였습니다.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다니엘서의 많은 부분 2장부터 7장에 이르는 아주 중요한 부분을 아람어로 기록하게 하셨겠습니까? 아마도 제 생각에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 글이 이스라엘에게만 읽히지 말고 모든 제국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언어의 계시를 담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감사했다라고 번역된 이 단어가 아람어로 모데라는 동사입니다. 그게 원래는 찬송했다입니다. 감사와 찬송이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확하게 번역하면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했고 자기 하나님께 찬송했더라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의문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찬송한다는 말인가 뭐가 찬송할 것이 있다는 말인가? 바벨론에서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만났고, 이제 사자굴에 던져질 운명에 처했는데 무슨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 있겠는가 이런 반문이 드는 것입니다.
인생의 위기를 만나고 다급한 위기를 만났을 때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이용해서 이 상황을 모면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계십니다. 이 상황을 통해서 우리를 연단하여 마음을 바꾸어 놓아서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 신앙의 깊이입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은 그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신앙이 없는 사람은 그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명심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위기에 처했을 때일수록 자기의 상황만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을 찬송할 조건을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결국 찬송할 이유가 없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눈을 감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품에 대해서 잊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 찬송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아주 놀라운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아주 아름다운 찬송들이 모두 교회의 역사에서 고난의 때에 탄생했습니다. 핍박과 전쟁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무서운 상황 속에서 아름다운 찬송의 멜로디와 가사들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유산으로 전해집니다. 여러분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 앞에 그 위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과 함께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이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할 마음이 생겨날 것입니다. 다니엘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되찾아야 할 신앙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III. 적용과 결론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 수많은 사연을 주시고 우리의 인생에 많은 역경도 주십니다. 믿는 사람에게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와 당신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제껏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았는지를 돌아보게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어떠한 태도로 주님을 대면하면서 살아왔는지를 생각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다니엘은 인생의 일생일대의 위기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기도의 장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탁월한 기도의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도에 탁월한 태도가 있었으니 예루살렘을 향한 소망을 가지고 물러서지 않는 간절함으로 하나님 앞에 불퇴전의 용기를 가지고 매달리는 끈질김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고난으로 가득 찬 그때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다니엘로 하여금 어두운 시대를 횃불처럼 자신으로 로 밝히게 만들어 주었고, 희망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소망을 던져주었던 근거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죄 짓고 세상에 넘어지고 육신에 지쳐 살면서 희망이 없는 그런 삶을 반복해서 살지 마십시오. 개나 줘 버리십시오. 그리고 환골탈태하십시오. 그리고 이전에 쓰레기 같은 삶을 버리고 하나님을 향해 담대하게 사는 영적 군사가 되십시오. 기도의 장소를 정하십시오. 기도의 습관을 기르십시오. 그리고 열렬한 기도의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십시오. 주님은 반드시 여러분의 시련 속에서도 여러분을 만나주실 것이고 여러분은 거기서 하나님을 찬송할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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