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자를 구원하심

개인기도의 문을 열 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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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기도의 문을 열 때5 (20260816 주일오전)
다니엘 6:19–23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가서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 다니엘이 왕에게 아뢰되 왕이여 원하건대 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녹취자: 조복령

I. 본문해설

꽃이 피는 나무의 영광은 그 나무에 꽃이 활짝 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꽃이 지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 이것이 한 나무의 보람입니다. 기도를 많이 해도 그 모든 기도의 꽃은 응답입니다. 응답이 없는 기도는 꽃 없는 나무와 같습니다. 응답이 있는 기도는 꽃이 활짝 핀 화초와 같습니다. 응답이 있고, 그 응답에 꽃이 지고 나서야 아름다운 열매가 맺게 되는 것이니, 이로써 하나님 앞에 우리는 하늘 백성으로서의 부유한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목숨을 걸고 왕의 어명을 거역하고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위층에 올라가서 평소에 하던 대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난 창을 열고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죽음의 위협도 그의 기도에 창문을 닫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의 변함없는 이 믿음의 태도는 그를 참수하고자 했던 정적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좋은 기회였고 예상하던 바였습니다. 그들은 즉시 다리오 왕에게 직접 고발을 하였습니다. 왕이 총애하는 총리 다니엘이 자기 신께 기도를 드리고 있사옵나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왕도 고칠 수 없는 법에 사인을 했으니 이제 더 이상 변개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말미암아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하려고 마음을 쓰며 힘을 다했다고 했습니다. 주석가들은 이것이 아마 율사들을 불러다가 어떻게 법률적으로 다니엘을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를 문의한 것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결국 해결의 길이 없었습니다. 다리오 왕은 꼬박 밤을 새웠고, 아무 음식도, 아무 오락도 그만 상태에서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이것을 보면 사실 왕은 이 법령을 세우는 일에 그리 큰 관심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니엘이 이 법을 어겼다는 것에 대해서 분노하거나 괴로워하는 것이 추호도 나오지 않고 오직 다니엘의 안위만을 염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왕도 꼬박 밤을 새웠고, 이튿날 새벽에 왕은 급히 달려간 곳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신하 다니엘이 갇혀 있는 바로 사자 굴이였습니다. 거기서 일어나는 사건을 우리가 읽은 본문이 다루고 있습니다.

II. 기도하는 자를 구원하심.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바는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구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A. 기도하는 자의 삶

첫째는 무엇이 기도를 능력 있게 하는가 다시 말해서 기도하는 자의 삶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왕이 다니엘을 찾아가서 한 첫 번째 엄명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왕은 슬피 울며 소리를 지르면서 다니엘에게 물었습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내가 항상 섬기는 내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 이것은 평소에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이 아무리 예의를 갖추고 마음을 다하여 자기를 섬긴다 하더라도 다리의 왕은 항상 다니엘이 진심으로 섬기는 분은 자신이 아니라 또 다른 분이 계시다고 믿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을 생각할 때마다 그는 그의 경배를 받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포로로 끌려와 나무 나라에서 종살이하는 처지에 있었고, 그 위에 하나님이 높여주셔서 그 나라의 총리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관계하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에게 주었던 인상이었습니다. 다리오 왕 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 그분을 섬기고 있는 다니엘 다니엘을 붙들어 주시는 거룩한 하나님이 생각났던 것입니다. 더욱이 다리오 왕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종 다니엘이라 불렀습니다. 몸으로는 의관을 갖추고 자기를 섬기고 있었고, 그 큰 나라 메데 제국의 국무총리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의 정체는 하나님의 종이었음을 다리오 왕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신하는 오직 다리오 왕을 신처럼 여기고 다리오 왕의 종을 자처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몸으로는 다리오 왕을 섬기고 있었으나 그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위해 모든 어렵고 힘들고 귀찮은 일도 맞지 않아서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엎드려 봉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종, 이것이 바로 다리오 왕의 눈에 비친 다니엘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그는 아름다운 관복을 입고 어마어마한 궁궐에서 엄청난 권세를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의 공격을 받으고 다리오 왕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리오 왕의 눈에 다니엘은 항상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항상 섬기는 내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다 하니라. 이것이 바로 다리오 왕 마음에 있었던 다니엘의 그림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치를 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돈을 버는 장사꾼일 수도 있습니다. 큰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 회사의 직원일 수도 있고, 그 회사를 깨끗하게 하는 미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닙니다. 신앙적인 정체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자존심의 문제인 것입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생각나게 해 주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낮은 지위에 있어도 그는 아주 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비록 월급을 받고 회사에 다니고,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물건을 팔아 이익을 얻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여러분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종임을 잊지 마십시오. 무엇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이것이 여러분의 본분인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또 무엇으로 섬기고 무엇으로 생업을 삼고 살든지 간에 여러분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가슴에 새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정체성이 다니엘의 마음에 선명하게 새겨졌기 때문에 왕의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았지만, 아무것도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 정해진 시간에 예루살렘을 향해 난 창문을 열고 기도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관된 삶이 어디에서 나왔겠습니까? 결국 우리의 삶은 이유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죄인이 죄를 지어도 욕망이라는 이유가 있는 것이고, 거룩한 사람이 선하게 살아도 거기에는 은혜라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은혜가, 주님의 크신 은총이 그의 마음을 붙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싶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을 섬기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 은혜의 통로가 어떻게 오는 것입니까?
여러분 가뭄에 말라 죽어가던 돼지의 수많은 식물들이 비가 오면 모두 소리 치듯이 살아납니다. 계곡에는 힘차게 물이 흐르고 들어가던 플립들은 싱싱하게 돋아나 모두 자기가 여기 있노라고 함성을 지른 것 같이 생명의 기운이 약동합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결국 생명의 힘입니다. 그리고 물이 바로 그렇게 생명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적절하게 내리는 비와 모든 햇빛이 식물들을 싱싱하게 살아나게 하듯이, 우리 하나님 자녀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에 단비와 은혜의 햇빛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드리는 기도의 시간 없이 여러분의 영혼이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끊임없이 일어나는 범죄, 그리고 끔찍한 살인 사건들, 잔혹한 범죄들에 대한 소식이 쉬지 않고 우리에게 들려옵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면 상식까지 마음속에서 지게 되면 결국 우리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 로서 일관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과의 그 언약을 파괴하지 아니하고, 주님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불러주신 그대로 변함없이 어디에 있든지,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며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결국은 하나님을 섬기고야 마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생활 없이 일관된 기도 생활 없이 일관된 거룩한 삶이 가능합니까?
여러분의 결심이 약하여 늘 넘어지고 단호하게 결심을 해도 그 결심을 지탱할 힘이 없는 자신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결국 기도의 샘이 마르고 나면 은혜도 그치고 하나님의 말씀도 사라져 나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없기는 여러분 같은 평신도나 목회자나 거룩한 성자나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도의 샘을 찾았습니다. 거기에서 은혜의 샘물을 마시고 새 힘을 얻었습니다. 삼손이 블레셋과 싸우다가 결국은 지쳐서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샘이 터져 나오게 하시고 그 물을 먹게 먹고 다시 원기를 얻어 블레셋을 물질렀던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의 기도의 삶을 터지게 하십니다. 그 은혜의 물에서 한번 샘물을 마셔보십시오. 지금 여러분 앞에 감당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모든 현실이 가볍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러한 현실에 가슴 아파하며 주저앉아 있나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죽음의 위협으로도 다니엘의 기도의 문을 닫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열려진 기도의 문으로 메데 나라를 이기고, 다리오 왕을 이기고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십시오. 다시 말하오니 기도하십시오.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십시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과 같이 그분의 은혜를 간절히 찾는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구원하시는 하나님

마지막 두 번째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다니엘의 이 간절한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다니엘은 자기가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구원해 주실 것을 믿었지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창문을 닫아줄 수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같은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다니엘의 새 친구였습니다. 치열하게 타오르는 풀무불 속에 던져질 처지가 되어 있을 때 다니엘의 새 친구는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왕에게 절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이 풀무불 속에 던지셔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 하나님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저럴 수 없습니다. 신앙의 정절을 지켰던 사람들의 믿음처럼 다니엘 또한 동일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열려진 기도의 창문을 닫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변함없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많은 것을 주실 때 좋아하는 것은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우리의 믿음은 입증되지 않습니다. 두 가지로 입증됩니다. 좋은 것을 많이 주실 때 변절하지 않는 것으로 입증이 됩니다. 또 무엇인가 필요할 때 그것을 주지 않으시는 처지에서 굳게 참아내는 믿음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합니다. 경배합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인정받는 것입니다.
왕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다니엘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다리오 왕을 비록 하나님처럼 섬기지는 않았으나 그는 하나님 안에서 다리오 왕을 섬겼습니다. 그가 얼마나 유능한 사람이었으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과 벨사살을 섬겼고, 그 나라를 망하게 하고 세워진 메데 나라가 되었는데, 그 왕이 여전히 다니엘을 총애하는 것을 보면 다니엘이 얼마나 유능한 사람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이 신앙을 강조하는데도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멸시를 당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나쁘다고만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이 말씀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유능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회사에 쓸모 있는 사람, 비록 나와는 생각이 달라도 일에 관한 한, 나를 내칠 수 없는 사람, 사업에 관한 한, 내 이야기를 듣지 않고는 결코 이득을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디에 가든지 여러분은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없으면 반드시 큰 표가 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거기가 가정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어디든지 간에 여러분이 거기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곳이 되도록 이바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리오 왕이 다니엘과 피가 섞였습니까? 살이 섞였습니까? 다리오 왕과 다니엘이 인척 관계였습니까? 다니엘의 아버지나 형제들이 다리오의 외가와 무슨 혈연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근본도 없는 끌려온 이스라엘의 포로 중 한 사람이었고, 내치면 어디에도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왕들이 다니엘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만큼 유능하고, 그만큼 정직하고, 그만큼 진심으로 왕국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여러분 모두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결국 다니엘은 이 아름다운 특성을 사용하셔서 다리오 왕의 마음을 움직여 그를 살려내게 하셨습니다. 다리오 왕의 목소리가 이른 새벽에 사자 굴 앞에서 울려 퍼졌을 때 다니엘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왕이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라는 것을 느끼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소망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소리를 질러 왕에게 말했습니다. 왕이여 만수무강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렇게 다리오 왕을 안심시킨 후 자기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해석해 주었습니다. 이는 나의 무지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 또 왕이요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그제서야 그는 진심을 털어놓습니다.
결국 이 해석이 담긴 고백을 보면서 다니엘 마음의 구조를 읽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제일 먼저 나의 무죄함이 하나님 앞에 명백합니다. 그는 다리오 왕을 섬겼지만, 다리오 왕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부분이 라틴어로 번역된 성경에 그 유명한 코람데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일체의 죄가 없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주님 앞에서 내게 모든 일이 일어나기를 원하니라. 세상에 머물든지, 떠나든지 건강하든지 만들든지 나는 당신의 눈앞에 있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의 영을, 당신의 영혼을 돕는 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 신앙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녀의 가장 큰 행복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얼굴을 베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최대의 축복은 하나님이 그를 향하여 얼굴을 드사 그의 얼굴 빛을 비추는 것이 신자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간절한 기도의 생활에서 경험합니다.
가슴이 아픈 일이 일어납니다.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간절히 매달리고 눈물로 부르짖습니다. 뜻을 세우고 하나님 앞에 맹렬하게 부르짖으며 그분 앞에 마음을 쏟아놓을 때는 오직 그 기도 제목이 이루어지기를 너무나 간절히 바라서입니다. 그 기도 제목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사는 것이 사는 것 같지 않게 괴로울 것이기에 그 기도의 제목이 이루어지도록 금식을 하며 목숨을 걸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결국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그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행복은 기도의 응답 때문에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가까이 계신 하나님이 나를 버려두지 않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어둡고 캄캄한 그곳, 가시밭길에
길 잃은 양 한 마리 떨고 있을 때,
어디선가 들리는 주님의 음성,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
뭔가 기도를 할 때는 응답을 받기 위해 기도했는데 응답이 되고 나면 주신 물질 때문에 감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여전히 사랑하시는구나. 나를 홀로 버려두시지 않으셨구나. 언제나 내 곁에 계셔서 나를 지켜주시는 분이시구나 이런 사실을 깨달으며 우리는 그분의 품 안에서 하나님의 용안을 뵈옵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 그리고 하나님 앞에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달으면서 인생의 자존감이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 기쁨은 주신 물질과는 상관이 없이 말할 수도 없는 감격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누군가 정성껏 준비해서 보낸 선물을 받을 때도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동기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나에게 아첨하기 위해서 보내는 것이구나 기쁨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 진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될 때 그것은 선물이 주는 기쁨이 아니라 관계가 주는 기쁨입니다. 그런 관계의 기쁨으로 돌아오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를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당신의 품 안에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구원해 주셨습니다.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해 주셨고, 사자들과 함께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막 달려오다가 하나님의 천사가 기합을 넣었더니 사자가 석상처럼 딱 굳어진 채로 하룻밤을 보냈겠습니까? 아마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맹수에 의해서 죄수를 차단하는 방법은 고대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바벨론뿐만 아니라 메데뿐만 아니라 나중에 로마에서도 그리스도인을 처형할 때 짐승의 먹이로 주었습니다. 사람은 먹기 싫어도 음식을 끼적거리지만 짐승은 배부르면 숟가락을 놓습니다. 그렇다고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딱 놓습니다. 과식하는 동물이 거의 없습니다.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뜻이냐 하면 사람을 던져줘도 사자가 배가 고프지 않으면 절대 사람을 해치지 않습니다. 위협을 가하지 않는 한 물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합니까? 고대에서 짐승의 밥으로 주는 형벌에 처할 때는 사자를 며칠씩 굶깁니다. 그래서 배가 고파서 죽을 정도로 만들어 놓고 먹이를 던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증명이 됩니까? 그 뒤에 보면 다니엘을 건져낸 후에 왕은 명령을 해서 결국 다니엘을 해치려던 사람들과 가족들을 던져버립니다. 그런데 그 굴이 옆으로 수평으로 난 굴이 아니라 밑으로 파진 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밑에 사자들을 모아놓고 위에서 사람을 던진 것입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그 사자들이 점프해서 공중에서 받아서 뼈까지 씹어 아작을 내버렸습니다. 오늘 성경의 기록입니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했겠습니까? 하나님이 놀라운 감동을 사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영상 하나를 봤는데 영상 하나를 봤는데 너무 웃겨서 혼자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태어날 때부터 개하고 사자 새끼하고 함께 낳았습니다. 얘네들이 측근 줄 압니다.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사자는 6개월만 되면 한 80-90kg 나갑니다. 그런데 걔는 6개월 돼봐야 안 그렇습니다. 주먹만한 주먹만한 게 돌아다니는데 이 개가 생각하기를 자기가 사자와 동급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막 소리를 지르며 쫓아다닙니다. 그런데 이 사자들은 이미 꽤 큰 사자가 됐는데 막 도망을 다닙니다. 애 때문에 귀찮아서 죽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사자가 앉았습니다. 그런데 걔가 얼마나 심수를 부리는지 계속 가서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턱주가리를 물어버렸습니다. 물고 막 잡아당기는 것입니다. 끌고 가는 것입니다. 사자가 살려달라고 예언을 하면서 손을 흔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어쩌면 그런 방식으로 사자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셨을 것입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사자와 다니엘이 기분 좋게 서로 경계하지 않는 평화로운 상태에서 아마 다니엘은 사자 앞발을 베고 누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하룻밤을 지낸 것입니다. 누가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 왕이 다니엘을 끌어올려 보니 아무 데도 상한 곳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거기에 하나를 사족처럼 붙입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이것에 기초해서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다니엘을 건져준 것은 하나님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사용해서 사자의 굴 속에서 안전하게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 믿음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었겠습니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 믿음이 변함없이 유지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순교를 각오해야 하는 왕의 어명이 떨어졌는데도 항상 열어놓을 수 있었던 기도의 창문 이것이 준 힘이었습니다. 이것이 준 신비한 능력이었습니다. 결국 믿음은 기도고 기도는 믿음입니다. 열렬하게 기도하던 시기가 믿음이 충만한 시기요. 믿음으로 살던 시기는 눈물의 기도가 있던 시기였습니다. 기도가 거의 없는 시기는 믿음으로 살지 않는 시기요. 믿음으로 살지 않을 때는 눈물이 말라버린 기도의 시기입니다.여러분이 기도하는 자리는 곰팡이가 쓸고 거무줄이 처지고 지들이 기어다니는 골방이 되어버린 때가 믿음 없이 살던 때입니다. 다니엘은 그 고난 속에서도 이러한 믿음으로 사는 일관된 삶을 보여주었으니 그가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III. 적용과 결론

그러므로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사십시오. 여러분이 어떤 처지에 놓였든지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십시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믿음을 주시고 믿음이 있는 자를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만 붙들고 그만 매어 달리며 그에게만 사랑을 쏟으며 주 앞에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난관과 시련이 놀라운 기도 응답의 환기로 바뀌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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