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in One

가창교회 중고등부 설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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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지난 번에 갑작스러운 시험(?)으로 사도신경 적기 한 거 기억하시죠? 우리는 오늘부터 3주 동안 (슬라이드1) 사도신경에 대해서 배우려고 합니다. 사도신경을 다른 말로 우리가 어떻게 표현할까요? 사도신경으로 OOOO 하겠습니다. 라고 우리가 표현하기도 하는데. 사도신경은 우리가 믿는 분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예배를 시작할 때 사도신경을 통해 신앙을 고백하여 예배를 시작합니다. 특히 예전에 따른 전통예배일수록 그 비율이 훨씬 높죠?
저는 개인적으로 굳이 사도신경으로 예배를 시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더더욱 사도신경의 단어들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우는 것도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도신경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찬양이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을 충분히 고백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 번역본이 계속 개정되면서 신앙고백의 단어들도 바뀌기 때문입니다. 장로교 통합측 교회는 이렇게 시작합니다.(슬라이드1-1)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도신경을 통해서 무엇을 고백하고, 어떤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가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신경을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배우는 것은 우리의 신앙에 엄청나게 큰 유익이 됩니다. 왜냐하면 사도신경이라는 것이 기록된 목적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든 신조, 고백, 다짐들은 목적을 가집니다. 선생님들, 저희가 어릴 때 암송(?)했던 국기에 대한 경례와, 지금 아이들이 말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가 다른 것을 알고 있으신가요? 먼저 집사님들이 혹시 외워보실 수 있으실까요?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다음으로 학생들이 한 번 외워보겠습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차이를 아시겠나요? (슬라이드2) 1972년의 고백은 국가와 민족을 향한 개인의 전인격적인 헌신을 강조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헌법을 선포한 그 해에 이렇게 개정이 되었거든요. 그러다가 2007년도에 노무현 대통령이 이 맹세를 개정했습니다. 이제는 국가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시대가 아니라, 자유와 정의라는 헌법적인 가치가 맹세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떤 맹세나 신조, 고백과 같은 것들은 그 공동체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추구하는 가치가 바뀌거나, 수정이 필요한 경우에는 공식적인 맹세문과 신조도 변화하게 되는 것이죠.

사도신경

사도신경은 그러면 누가 만들었을까요? 우리는 이름만 보고서 ‘아, 열두 사도가, 또는 유다 빼고 바울을 포함한 사도들이 함께 이 신앙고백을 만들었나보다.’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니에요. (슬라이드3) 사도신경은 ‘사도 시대의 가르침을 담고 있지만, 사도들이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고백은 교회들이, ‘우리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 올바른 가르침을 제공하며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다듬어져 오늘날의 형태가 되었습니다. 그 말은 이 고백은 최소한 1600년 이상의 시간 동안 교회들에게서 인정되어 온 신앙고백이라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리나라 번역본으로요. (슬라이드4)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사도신경이 가장 먼저 말해주는 우리의 신앙고백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삼위일체를 배우려고 합니다. 약간 말장난 같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삼위일체가 아닌 것을 배우지 않도록 하려고 합니다.

삼위일체

자, 내가 삼위일체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 말씀해보십시오. 잘 들어보세요. 삼위일체에 대한 가장 정확한 정의입니다. (슬라이드5) “하나님의 신격에 세 위격이 계시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시다. 이 삼위는 한 하나님이시다. 본체는 하나요, 권능과 영광은 동등하시다.” 조금 더 요약해볼까요? “하나님은 한 분이면서 세 분이시고, 세 분이면서 한 분이시다.” 이해가 되십니까 여러분? 저도 이해가 안 돼요. 제가 언젠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바다의 물을 내가 측량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다. 내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 내가 측량할 수 있는 신이라면 나는 믿지 않겠다. 삼위일체는 이해와 납득의 영역이 아니라 신앙의 영역이기 때문에, 우리는 ‘믿는 것’ 외에는 이 진리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아까 말했던 것처럼 삼위일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가 아닌 것을 배우지 않도록 하겠다고 한 것이에요.
지금부터 제가 하는 설명이 맞는 말인지 틀린 말인지 판단해보세요. (슬라이드6) 1) 하나님은 각각의 존재가, 다른 세 하나님으로 계신다. 어떻습니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따로 계시면서 각자의 할 일을 하신다는 설명입니다. 굳이 예를 들자면, 사과 껍질과 사과 과육과 사과 씨가 있지만, 통칭하면 사과인 것처럼 하나님이 그런 분이다는 것이죠. 이것이 맞다면 우리는 유일신이 아니라 다신교를 믿는 것입니다.(슬라이드7) 이것을 ‘삼신론’이라고 합니다. 자, 다음입니다.
(슬라이드8) 2) 성부 하나님께서, 인간 예수에게 신성을 부여하여서 성자가 되셨다. 인간 요셉과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아기 예수에게, 성부께서 신성을 부여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설명은 어떤가요? 만약 우리가 이 설명을 삼위일체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사도 요한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부정하게 됩니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의 1장에서 명확하게 말씀합니다. (슬라이드9)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시다. 그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바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충만한 은혜와 진리이다.” 그렇다면 이 설명도 틀린 것이 됩니다.(슬라이드10) 이것을 ‘양자론’이라고 합니다.
(슬라이드11) 3)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다만 상황과 사역에 따라 역할이 바뀌신다. 이건 어떻습니까? 예를 들면, 저는 예수전도단에서는 간사로, 여기서는 전도사로, 가정에서는 남편과 아빠의 역할을 감당하잖아요. 하나님이 마치 이런 식으로 사역에 따라 역할을 바꾸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이 온도라는 상황에 따라 얼음과 수증기로 변화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런 분이라는 설명입니다. 좀 그럴듯해 보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것도 틀린 설명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슬라이드12)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한꺼번에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만약 한 존재가 상황에 따라 여러 모양으로 여러 역할로 바뀌는 것이라면 오늘 본문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 되겠죠.(슬라이드13) 이것을 ‘양태론’이라고 합니다.

삼위일체 신앙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여러분 저는 삼위일체 신앙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 중, 딱 하나만 강조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슬라이드14) ‘이성’이라는 틀 안에 하나님을 가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능한 존재를 이성이라는 틀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이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헬라 철학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플라톤이 대략 주전 420년 정도 사람이니까, ‘인간의 지성으로 신을 규정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시도는 이미 2500년에 가까운 유구한 역사를 지닌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시도 중 많은 것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하게 만들거나, 하나님을 제한해서 이해하도록 하거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지금 뇌를 빼고 맹목적인 신앙을 가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충분히 우리의 이성과 지성, 논리를 사용해서 하나님의 성품과 그 행하신 일들을 알아가되, “마치 그것이 하나님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지 말아라는 것입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주후 1세기 유대와 헬라 문화 안으로 육신을 입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당시 공용어였던 아람어와 헬라어를 사용하셔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그 말은 성자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말과 행동으로 그분을 나타내보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가 예수에 대해서 지성적으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첫째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입니다. 하나님은 세 분이시다. 그리고 한 분이시다. 세 위격의 권위와 영광은 동일하시다. 삼위일체 신앙은 말 그대로 신앙입니다. 이해의 범주가 아닌 것입니다. 둘째로,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우리의 지성으로 다 담아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삼신론, 양자론, 양태론이 그럴듯한 설명으로 하나님을 이성의 범주로 넣으려고 했지만 그 모든 것은 잘못된 가르침이었습니다. 우리는 천체망원경으로 광활한 우주를 다 관찰할 수 없듯이, 하나님을 우리의 지성에 가둘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무한한 존재 앞에서 유한한 우리는 그저 엎드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더 아는 것에 목말라 하십시오. 우리의 지성을 사용해서 하나님을 배우되, 우리가 머리로 다 깨달을 수 없는 그 광대하심을, 하나님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계시하여 주시도록 겸손하게 구하십시오. 지성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지성을 맹신하지 않는 것. 절대자 앞에 겸손함으로 무릎 꿇는 것. 그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의 시작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매주 사도신경으로 예배를 시작할 때마다, 이러한 마음으로 예배 가운데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겸손한 마음을 주십시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여길 수 있는 마음을 주십시오. 나의 눈, 나의 생각, 나의 감정, 나의 사고에 하나님을 가두지 않게 하시고, 내가 머리로 다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을 나의 삶의 왕으로 인정하고 섬길 수 있는 신앙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매주마다 드리는 우리의 신앙고백이, 암송했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나오는 고백이 아니라, 나의 마음의 가장 진실된 고백으로 주께 드려지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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