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의 모습에서 나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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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사기 13:1-5, 16:28-31
사사시대를 닮은 오늘 이 시대!
사사기를 묵상하면서 느낀 점은 오늘 이 시대가 사사기와 많이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특히, 오늘날 느낌과 감정주의와 즉흥적이고 시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참 비슷합니다. (예를들어, 인스타 릴스 넘기다가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자극적인 영상은 차단하지 않으면 알고리즘으로 인해 더 자극적인 영상이 뜨게 된다, 사람을 사귈 때도 너무 빨리 깊은 관계를 맺어버리는 경향도 비슷합니다)
-쾌락주의에 빠진 이 시대는 (알콜문화가 심각합니다, 뒷 일은 망각한채 당장 기분을 위해, 스트레스 해소 한다는 명목으로 마신다, 한 잔이 두 잔, 두 잔이 세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취하게 된다, 이런 날이 지속되다보면 어느새 절제력은 떨어지고 술은 습관이 되고, 중독으로 넘어간다)
술취함은 어두운 문화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자연스럽게 음란한 생각과 행위로 연결되기 쉽다. 때로는 폭력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런 시대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현상에 쉽게 동화되기 쉽다. 한 두 번 허용하다보면, 무엇을 절제해야할지 분별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오늘 말씀은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애초 하나님의 명령과 달리, 가나안 정복이 계획과 달리 불발되자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로운 가나안 땅에서 타협하며 살아간다. 가나안의 문화에 젖어들게 된다. 가나안의 언어, 교육, 우상신까지 받아들이게 되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점점 상실했다. 이 시대를 사사시대라 하는데, 지금으로부터 3200년 전,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무너지는 삶을 기록한 책이 사사기입니다.
이 때는 왕정 시대가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탁락하여 이웃 나라에게 고통을 당하면 그 때 그 때, 지도자가 일어나 나라를 지키고 백성들을 다스렸는데, 그들이 바로 사사이다. 삼손도 사사들 중에 한 명이다. 삼손은 마노아의 아들로 태어났다. 임신하지 못한 마노아의 아내에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삼손이 태어날 것을 예언하셨고, 아기가 태어나면 하나님께 드려진 자로 평생 살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다른 사사와 달리 삼손은 자발적으로 사사가 된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 부터 하나님께서 그를 사사로, 그리고 나실인으로 택하시고 부르신 것이다. 나실인은 특정한 행동을 금하는 특별한 약속을 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드린 사람들입니다. 마치 친구와 특별한 약속을 하는 것처럼, 나실인들은 하나님과 특별한 약속을 했어요.
이 약속에는 세 가지 규칙이 있었습니다. 첫째, 포도주나 포도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거나 마시지 않기, 둘째,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기, 셋째, 죽은 사람을 피하기 입니다. 이 규칙들을 지키는 동안 나실인들은 하나님을 위해 특별히 구별된 사람이 되는 거예요. 나실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평생 나실인으로 살았던 사람은 삼손, 사무엘, 세례 요한 세 명뿐 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30일부터 때로는 평생, 자신이 정한 기간 동안만 이 약속을 지켰습니다. 약속 기간이 끝나면 나실인은 머리를 밀고 머리카락을 태운 후 제사장이 제물을 바침으로써 약속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태어날 때 부터, 나실인으로 드려진 삼손은, 수동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다보니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나실인이었지만 그의 신앙은 기준도 없고 진정성도 없었고, 신전의식도 없었다.
+혼탁한 시대를 살았던 삼손, 시대 탓만 할 수 없어요. (그 역시 즉흥적, 쾌락적, 시각적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사사기 14:1 “1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성경에서 내려간다는 표현은 지리적 표현을 넘어 영적으로 흐려지고, 하나님과 멀어짐을 의미합니다. 요나도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욥바로 내려갔다고 성경은 표현하죠. 삼손은 한 여자를 보고 욕망 때문에 내려갑니다. 삼손은 다른 사사들 보다 매우 쾌락적이고 즉흥적이고 시각적인 사람입니다. 여자를 보고 욕망을 참지 못했습니다.
사사기 14:2 “2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사사기 16:1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창녀를 만나 아무렇지 않게 그의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나실인의 정결과 거룩은 찾아보기 힘들다.
사사기 16:4 “4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이처럼, 삼손은 즉흥적, 쾌락적, 시각적인 사람이었습니니다. 오늘날 시각적, 즉흥적, 쾌락적인 문화와 너무 많이 닮았습니다. 혼전 동거, 혼전 순결을 말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당하는 시대입니다. 동성애, 문신, 술 마시는 것에 대해 말하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 취급 받는 시대이다. 여러분 할 수 있다면 금주하십시요. 금주가 힘들면, 절제하십시요. 성경은 술에 대해 결코 긍정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끊어야 하고, 절제해야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 시대 그리스도스의 삶의 기준이 있긴 한 것인가요? 방금 말씀드린 이런 기준이 삶에 작동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예수 믿는다고 말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신앙의 기준도 없이 신앙의 지조도 없이, 신앙의 마지노선도 없이 교회만 나오니,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를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닐까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교회 나오기 힘들어하는 이유들 중에 하나가 바로 덕이 안되는 교회와 자칭 기독교인들 때문입니다.
+삼손의 모습 속에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고집스러움, 막무가네 행동, 떼쓰면 이기고, 우기면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의 모습들과 삼손의 모습은 너무나 많이 닮아 있습니다.
사사기 14:3 “3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
부모의 말류에도 꼭 이 여자여야 합니다. 이 여자가 어떤 생각과 어떤 사상과 어떤 정신을 갖고 있는지는 상관 없습니다. 자기 눈에 예뻐 보이면 됩니다. 어제는 장성했으니 자기 스스로 나실인 답게 살아야했던 삼손이 아닌가요? 그러나 성경이 보여주는 삼손은 고집불통 아들, 불순종을 밥먹듯이 하는 자식, 이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닙니다.
사사기 13:13–14 “13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을 그가 다 삼가서 (그 아이가 지켜야 하고) 14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고 내가 그에게 명령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 하니라(마노아의 아내가 지켜야 한다)”
비록 아이라 할지라도 삼손이 지켜야 할 것이 있고, 비록 부모라 할지라도 부모가 지켜야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최소한 지켜야 했던 기준이었을 겁니다. 예수 믿는 자에게 주일예배를 지키고 온전히 드리는 것,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말씀 읽고, 기도하는 것, 성도라면 당연히 놓치지 말아야 기본입니다. 정직과 진실함, 예수 믿는 자라면 몸에 베어야한다. 만약 믿는 사람들 중에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가짜입니다. 그런 사람은 멀리하셔야 합니다. 삼손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좀 더 생각해봅시다. 삼손이 살았던 시대는 어떤 시대였나요? 분별력을 상실한 시대, 과격한 시대, 폭력이 일상이 된 시대였습니다.
사사기 14:4 “4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이 구절을 보면, 삼손의 부모(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분별력 상실한 상태로 보입니다.
사사기 14:9 “9 손으로 그 꿀을 떠서 걸어가며 먹고 그의 부모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그것을 드려서 먹게 하였으나 그 꿀을 사자의 몸에서 떠왔다고는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죽은 사자의 몸에 생긴 꿀을 떠 먹고, 부모에게 주면서 어디에서 갖고 왔는지 말하지 않았다.
사사기 14:15 “15 일곱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삼손의 아내에게 이르되 너는 네 남편을 꾀어 그 수수께끼를 우리에게 알려 달라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을 불사르리라 너희가 우리의 소유를 빼앗고자 하여 우리를 청한 것이 아니냐 그렇지 아니하냐 하니”
사사기 15:6 “6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되 누가 이 일을 행하였느냐 하니 사람들이 대답하되 딤나 사람의 사위 삼손이니 장인이 삼손의 아내를 빼앗아 그의 친구에게 준 까닭이라 하였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 여인과 그의 아버지를 불사르니라”
그 때 당시 블레셋 사람들의 과격함, 폭력성, 잔인함이 극에 달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사기 15:12 “12 그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결박하여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려고 내려왔노라 하니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치지 아니하겠다고 내게 맹세하라 하매” 심지어 유다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유다 사람, 3천명.… 사사로 세워진 삼손을 인정하지 못할 뿐드러, 그를 유인하고 회유하여 블레셋에 넘겨주는 매국노 같은 짓을 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지도자도 무너졌고, 백성들도 무너 졌습니다. 그러니 나라는 어떠했겠습니다. 구별된 지도자의 영적 상태가 이정도라면, 당시 일반 시민들의 영적, 도덕 수준은 안 봐도 뻔합니다. 최악이었던 겁니다.
사사시대를 보면서 나는 이정도는 아니야, 우리는 이정도는 아니잖아, 말하면서 안도하지 마십시오. 사실 우리가 사는 이 도시와 이 지역과 심지어 저와 여러분들의 영적 상태도 많이 다르진 않을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사사 삼손에게 필요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돈?, 권력?, 체력?, 학벌이나 커리어? 아니었습니다. 삼손을 삼손 되게 한 것은 다름아닌 성령의 내리심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성령충만이었습니다. 삼손이 강력한 힘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들을 무찌를 수 있었던 것은 나실인으로 자신을 드린 헌신에서 나왔고, 자신의 신체적 능력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진찌 힘의 근원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능력이었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성령의 내리심으로 표현하고 있는데요.
사사기 13:25 “25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사사기 14:6 “6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사사기 14:19 “19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 곳 사람 삼십 명을 쳐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심히 노하여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올라갔고”
사사기 15:14 “14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를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오늘날 우리 시대는 물질주의적 기반이 너무나도 팽배해 있기 때문에 물질적인 세계를 초월한 다른 영적 세계에 대해 크게 의심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많은 뛰어난 과학자들은 우리 인간이 시공의 세계에 제한되어 있는 존재가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의심을 잘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통속 과학(일반적인, 비전문적인 과학)의 영향을 받아서 비물질적 세계를 무시하는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3차원, 4차원만 따져봐도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사는 것은 어린석은 것임을 알 수 있다.(그림)
사람들은 통속 과학의 사상에 너무 깊이 물들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묵상에 대해 생각해 보면, 묵상을 하나님과 사람의 만남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조종으로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깊은 묵상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고 피상적인 데 머문다. 우리는 오늘날 이 시대의 편견을 극복하고, 뛰어난 과학자들처럼, 물질 세계를 초월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말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지적 정직성을 갖고 영적 세계를 연구하고 탐구해야 합니다. 삼손에 임한 성령은 실재였습니다. 그 능력으로 삼손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구원 받았다는 증표입니다.
에베소서 4:30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인치셨다… 도장을 찍었다는 표현이다. 성령은 구원의 보증으로 주어졌다. 성령은 예수님을 영접할 때 받는 것입니다. 단, 성령을 받을 때 체험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성령세례]는 단일 시제이고, 성령 충만은 [반복시제]이다.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믿고 모시면, 성령께서 내 안에서 들어오셔서, 떠나지 않고 안에 머물러 계십니다. 이것을 성령의 내주하심이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내 마음대로 살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죄를 지으면 근심하십니다, 슬퍼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함이 필요합니다.
에베소서 5:18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무슨 말입니까? 너희는 반복해서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겁니다. 받으라는 현재진행시제입니다.
술취하는 것이 성령충만과 아주 비슷하기 때문에 성경은 술취하지 말고 성령충만을 받으라 하신다.
술 취함의 특징은 조절하지 못한다. 술 취하면 술에 이끌리듯, 성령님에 취하면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다.
술취하면 노래한다. 성령 충만하면 찬양한다. 술 취하면 말이 많아진다. 말 실수한다. 성령 충만하면 전할 말이 많아진다.
성령 충만은 특별한 체험이 아니라 하나님 자녀에게는 당연한 삶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당연한 삶을 귀하게 여지 못하고 계속 내 마음대로 살려고 하면? 하나님 자녀로서 삶을 귀하게 여지 않고 막 살면? 능력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애인이 연락 자주 하지 않고 무관심하면 사랑이 식는다. 신앙은 관계다. 친밀할 수록 더 능력이 나타납니다.
삼손이 어지러운 삶을 살았지만, 그럼에도 힘과 능력을 발휘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성령의 능력을 힘 입었기 때문입니다. 삼손이 그랬다면, 우리는 더 성령의 충만이 필요한 자들이 아닙니까?. 우리에게도 성령의 임재가 필요합니다. 성령의 일하심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날마다 구하시고, 기대하시면 좋겠습니다.
삼손의 정체성, 나실인!
삼손의 삶을 통해 깨닫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갈 때,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살 수 있습니다. 정체성을 잃지 않을 때 성령의 지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삼손이 결정적으로 힘과 능력을 상실 했던 때가 언제냐 하면, 나실인의 정체성을 상실했을 때 였습니다. 소렉 골짜기에 사는 들릴라를 사랑해서 미리카락의 비밀을 누설했다. 결국 머리카락을 밀린다.
*사사기 16:19 “19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사사기 16:20 “20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는 삼손의 힘이 단순한 신체적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정체성을 망각하면, 능력이 사라진다. +나실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나실인이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것은 여호와께 대한 헌신과 가나안의 부패한 문명을 거부하며 살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이 세상의 방식과 문화에 동화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속에서 살지만,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의 방식대로 살겠다는 새로운 정체성이라 믿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살아계신 인격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인 답지 못할 때 슬퍼하시고, 근심하십니다. 반면, 우리가 하나님 자녀답게 살아갈 때 기뻐 춤추십니다. 물고기는 물에서 놀 때 제일 생기가 있습니다. 제일 행복합니다. 물밖으로 나오면 힘을 쓰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인 답게 살 때 제일 멋있고 제일 행복한 것이라 믿습니다.
일병 휴가, 전도사 사역을 마치고 제약회사에서 일할 때… 세상적으로 볼 때 아무 문제 없었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특히, 사역자)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살아갈 때 제일 나 답지 못했습니다. 정체성을 잃고 살아갈 때 제일 영적으로 둔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정체성을 회복할 것인가? 어떻게 성령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살 것인가? 우리에게 기도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 성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 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기도할 때 강력한 능력이 나타날 것이다. 이것이 엔학고레! 영성이다. 삼손이 나귀턱뼈로 블레셋을 칠 때 목이 너무 말라,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기도에 응답하셔서 물을 주시는데, 그 샘을 [엔학고레]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엔학고레 영성을 다시 회복합시다. 부르짖으면 주십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 묵상입니다.
혼란스러운 우리 삶 한 가운데에서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사사기 16:22 “22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삼손의 삶을 보면 그냥 우리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맨날, 넘어지고, 화내고, 복수하고, 그러다가 다시 성령 충만했다가 다시 넘어지는 모습, 진짜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 신뢰하기 힘든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
사사기 14:4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삼손의 어리석은 선택들이 “여호와께로 부터” 나온 것이라는 14장 4절의 표현은, 하나님이 인간의 악한 선택을 하도록 만드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사람들의 악한 선택을 사용해서 크신 우주적 계획을 이루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불완전하고 미숙한 삶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가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즉, 하나님의 주권이 저와 여러분들의 자유의지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자신의 목적 안으로 통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 교회를 통해 일하신 하나님을 일하심을 생각하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홍석준, 원영준, 옆집 가정… 청소년들(찬이, 민석, 종찬, 서준, 지섭) 잊으신 것 같고, 안계신 것 같다가도 잊을만 하면 나를 기억하시고 다가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위로하신다. 그렇게 깨끗하지도 않고 정리된 삶도 아닌데… 부끄러울 때가 더 많은 내 삶인데… 삶 속으로 찾아오셔서 함께 해주십니다. 말씀해주십니다. 여러분, 이게 은혜입니다. 이게 가능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무조건적 사랑 때문입니다.
삼손의 모습이나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이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삼손의 모습 속에서 나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우리를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를 씻어주시고, 용서해주니… 평생 나실인처럼 이 시대를 살아갈 명분이 우리에게 있다고 봅니다. 삼손은 억지로 마지 못해 나실인으로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저와 여러분들은 기꺼이, 즐거이, 자원하여, 기쁘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이 시대를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들에게 지금도 성령을 내려주십니다. 그 능력으로 유혹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인스타,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를 통해 공격하는 쾌락주의를 경계하고 피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케 하셔서 나의 지혜를 넘어, 나의 한계를 넘어 일하시는 주님을 날마다 경험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용기를 내어 다시 일어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잊지 않으셨습니다. 가까이 계십니다. 여전히 지켜보고 계십니다. 부족한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 지금도 일하시는 주님을 믿고 이번 새로운 한 주를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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