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
시편과 함께 걷는 인생길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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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오늘부터 8주 정도를 “시편과 함께 걷는 인생길”이라는 주제로 시리즈 설교를 해보려고 합니다. 마침 맥체인 성경읽기표도 그 기간 동안 매일 시편을 한 두 편씩 읽게 됩니다. 이번 기회에 시편을 좀 더 가까이 하시며, 고난한 인생길, 또는 소풍 같은 인생길에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로와 안식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초대교회 교부 중에 한 사람인 “몹수에스티아의 데오도르”는 시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시편만큼은 이 노래들을 마음에 새긴 자들에 의해 집에서, 거리에서, 시장에서 불리고 있으며, 이들이 시편을 낭송할 때마다 하나님의 음율이 그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소생시키는 것을 느낀다”
물론, 당시만해도 인쇄된 성경을 갖는다거나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노래 형식의 시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으므로, 일상에서 늘 가까이 불러졌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지 시편이 노래의 형식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많이 불린 것만은 아닙니다.
다른 초대 교부 중에 하나인 아타나시우스는 시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지만, 시편은 우리를 위하여 말하기 때문이다.”
시편은 우리가 겪는 고난과 성공에 대한 감정을 다룹니다. 그것은 역사서나 교리서가 아닙니다. 시편은 역사와 교리를 담고는 있으나, 그것이 시라는 문학적 형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의 감정까지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은 전인적입니다. 우리의 이성과 감정을 모두 아우르고, 우리의 삶의 굴곡을 모두 다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편은 우리들의 일상의 삶과 가장 가까이 있는 성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인간으로서 느끼는 슬픔, 낙망,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나타나고 기쁨, 감사, 찬양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도 나타나게 됩니다.
감정은 그 자체가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감정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감정은 다스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감정 그대로를 표출합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은 감정을 삼키고 다스릴 줄 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감정이 삶을 집어 삼키지 않도록 다스리는 것이 어른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으로는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을 묵상해보면, 그러한 감정을 하나님께서 다스려 달라는 간구를 올려드리기도 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약속을 들려주심으로 우리가 감정에 빠지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시는 것이지요.
시편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의 아픔과 상처가 치유받고, 기쁨과 찬양이 더욱 풍성해 지시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시편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어쩌면 당연하게 시편 1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시편 1편은 보통 지혜서라고 분류합니다. 이 시편 1편은 앞으로 읽어내려갈 시편들의 저자와 독자의 정체성을 밝히는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 1편 1절은 “복 있는 사람은”이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시편 1편 1절은 “복 있는 사람은”이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 문구를 성경 전체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인간의 복은 하나님에게서 시작되었으며, 하나님과 건강한 관계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참으로 복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성경이 말하는 복의 충만함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죄와 저주 아래 놓인 인간의 근본적인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복을 물질적이고 경험적인 좋은 것들로 이해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오복도 건강과 장수, 풍요와 평안 등 유한한 인간이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소중한 것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결코 무의미하거나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이것들 역시 하나님께서 창조 세계 안에서 허락하시는 선한 선물이며, 우리는 감사함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복의 의미를 이 땅에서 경험하는 좋은 일들에만 한정하지 않습니다. 오복이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귀한 것들이라 하더라도, 결국에는 모두 지나가고 사라질 것들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그것들은 과거의 영광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복은 분명 의미가 있지만, 그것만으로 인간의 가장 깊은 필요를 채울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사는 존재라는 사실을 믿을 때, 복의 참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원을 살아갈 우리에게 이 땅에서 얻는 복은 잠시 누리는 선물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이러한 현실의 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근원적이고 영원한 복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복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좋은 것들을 풍성히 누리면서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다면, 아직 성경이 말하는 복의 충만함에 이른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세상 사람들이 복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많이 누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거하는 사람은 복에서 제외된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복은 귀하고 감사한 선물이지만 궁극적인 복은 아닙니다. 그 모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함께하며,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참된 복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1편이 선언한 “복있는 사람”이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1편이 선언한 “복있는 사람”이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1절 이후에 나오는 모든 것을 이루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를 삼아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음으로써 모든 죄가 씻겨지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린 자들이 바로 “복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들이 참으로 복있는 사람들이십니다.
시편 1편에 나오는 모든 것을 행하는 자가 복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이들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오늘 시편 1편을 펴서 읽는 것이지요. 그렇게 복있는 사람, 하나님 편에 있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삶의 특징이 시편 1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유명해서 잘 아시는 예화가 있습니다. 위조지폐를 구별하는 방법은 진짜지폐를 계속 만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다보면 위조지폐를 만졌을 때 차이를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가방이나 시계도 마찬가지겠지요. 진품과 위조품을 알기 위해서는 진품을 잘 알아야 합니다. 진품을 모르는데 어떻게 위조품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는 복있는 사람인데, 그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그분의 뜻을 아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 도지 않겠습니까?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니까 복있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복있는 사람이므로 율법을 즐거워하고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면 하나님의 뜻과 지혜가 임하여 악인의 꾀와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복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악인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율법 아래 뿌리가 박히면 태풍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려 날아가 버리는 것이지요. 주변의 작은 상황의 변화에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랬다 저랬다하는 자들입니다. 변덕스러운 자들이고 인내하지 못하는 자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 사람은 결국에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있는 여러분들은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흔들리지 않는 용기와 평강으로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