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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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alm 13 NKRV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5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6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찬송가: 405장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Isaiah 24:1–13 NKRV
1 보라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폐하게 하시며 지면을 뒤집어엎으시고 그 주민을 흩으시리니 2 백성과 제사장이 같을 것이며 종과 상전이 같을 것이며 여종과 여주인이 같을 것이며 사는 자와 파는 자가 같을 것이며 빌려 주는 자와 빌리는 자가 같을 것이며 이자를 받는 자와 이자를 내는 자가 같을 것이라 3 땅이 온전히 공허하게 되고 온전히 황무하게 되리라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셨느니라 4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세계가 쇠약하고 쇠잔하며 세상 백성 중에 높은 자가 쇠약하며 5 땅이 또한 그 주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6 그러므로 저주가 땅을 삼켰고 그 중에 사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 땅의 주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도다 7 새 포도즙이 슬퍼하고 포도나무가 쇠잔하며 마음이 즐겁던 자가 다 탄식하며 8 소고 치는 기쁨이 그치고 즐거워하는 자의 소리가 끊어지고 수금 타는 기쁨이 그쳤으며 9 노래하면서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고 독주는 그 마시는 자에게 쓰게 될 것이라 10 약탈을 당한 성읍이 허물어지고 집마다 닫혀서 들어가는 자가 없으며 11 포도주가 없으므로 거리에서 부르짖으며 모든 즐거움이 사라졌으며 땅의 기쁨이 소멸되었도다 12 성읍이 황무하고 성문이 파괴되었느니라 13 세계 민족 중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 곧 감람나무를 흔듦 같고 포도를 거둔 후에 그 남은 것을 주움 같을 것이니라
주님이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은 참으로 황량한 장면을 보여 줍니다. 땅은 공허해지고, 사람들은 흩어지며, 포도주는 마르고, 노래는 그치고, 성읍의 문은 부서집니다. 웃음소리도, 악기 소리도, 잔치를 즐기는 소리도 사라집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오늘 본문은 “즐거움이 사라진 땅”을 보여 줍니다. (슬픔의 시간)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즐거움이 사라진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경제가 어려워졌기 때문만도 아니고,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간은 세상의 많은 것을 가지고도 결국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은 처음에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마지막에는 공허와 혼돈에 이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없는 삶의 허무함을 깨닫고, 참된 기쁨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을 떠난 땅은 공허 해집니다

1절입니다.
“보라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폐하게 하시며 지면을 뒤집어엎으시고 그 주민을 흩으시리니”
사야 24장부터 27장까지는 흔히 ‘이사야의 묵시록’이라고 불립니다. 앞선 13장부터 23장까지는 바벨론, 앗수르, 모압, 애굽, 두로 등 특정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러나 24장에 이르면 심판의 범위가 온 땅으로 확대됩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어느 민족도, 어느 계층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2절은 그것을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백성과 제사장이 같을 것이며 종과 상전이 같을 것이며 여종과 여주인이 같을 것이며 사는 자와 파는 자가 같을 것이며 빌려 주는 자와 빌리는 자가 같을 것이며 이자를 받는 자와 이자를 내는 자가 같을 것이라.”
세상에서는 사람의 신분과 소유가 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권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다르고, 돈을 빌려 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의 처지가 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그 모든 구별이 사라집니다. 제사장이라고 피할 수 없고, 부자라고 안전하지 않으며, 권력자라고 숨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지켜 줄 울타리를 끊임없이 만듭니다. (바벨탑)돈을 쌓고, 지위를 얻고, 관계를 넓히며, 건강을 관리합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기 시작하면 우상이 됩니다. 우리는 돈이 있으면 안전할 것이라 생각하고, 건강하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며,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땅을 뒤집어엎으시면 인간이 붙들고 있던 모든 안전장치는 무너집니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은 잠시 질서가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질서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창조주를 떠난 피조물은 결국 자신이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위해 살고, 어디로 가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1절의 “공허하게 하신다”는 표현은 창세기 1장 2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께서는 혼돈과 공허 가운데 질서를 세우시고 생명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을 거부하면 창조의 질서는 다시 혼돈과 공허를 향해 무너집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단순히 종교 하나를 포기하는 일이 아닙니다. 생명의 근원을 떠나고, 삶의 기준을 잃어버리며, 존재의 목적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2. 즐거움이 사라진 이유는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4절과 5절입니다.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세계가 쇠약하고 쇠잔하며 세상 백성 중에 높은 자가 쇠약하며 땅이 또한 그 주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본문은 땅이 쇠잔한 이유를 자연환경이나 정치적 혼란에서만 찾지 않습니다. 그 근본 원인을 영적인 데서 찾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하나님의 질서를 어기며,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에 땅이 더럽혀졌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정의를 행하고 약한 사람을 보호하며, 정직하게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을 억압하기 위한 규칙이 아닙니다. 인간다운 삶을 지켜 주기 위한 생명의 질서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질서를 속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없이도 행복할 수 있고, 자신이 선과 악을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죄의 본질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원하면서도 그 선물을 주신 하나님은 원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원하지만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거부합니다. 정의를 외치지만 정의의 기준이신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행복을 찾지만 참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은 찾지 않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자유가 아니라 혼돈입니다. 풍요가 아니라 공허입니다. 즐거움이 아니라 깊은 권태와 허무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과거보다 훨씬 많은 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먹을 것도 많고, 볼 것도 많고, 즐길 것도 많습니다. 손에 든 휴대전화 하나만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영상과 음악과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이 그만큼 기뻐졌습니까? 오히려 불안과 우울, 외로움과 중독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즐길 것은 많아졌지만 참된 즐거움은 줄어들었습니다. 연결 수단은 많아졌지만 깊은 관계는 약해졌습니다. 선택지는 많아졌지만 삶의 방향은 더욱 불분명해졌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6절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저주가 땅을 삼켰고 그 중에 사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
죄는 단순히 개인의 마음속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죄는 관계를 무너뜨리고, 공동체를 오염 시키며, 결국 땅 전체를 병들게 합니다. 탐욕은 이웃을 경쟁자로 만들고, 거짓은 신뢰를 파괴하며, 음란은 사람을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소비의 대상으로 만들고, 교만은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착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결코 중립적인 상태에 머물 수 없습니다. 생명의 근원에서 멀어지면 반드시 쇠잔하게 됩니다. 나무가 뿌리에서 잘리면 잠시 잎이 푸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마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떠난 삶도 당장은 잘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영혼은 점점 말라 갑니다.
3. 하나님 없는 즐거움은 결국 슬픔으로 바뀝니다
7절부터는 땅에서 즐거움이 사라지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새 포도즙이 슬퍼하고 포도나무가 쇠잔하며 마음이 즐겁던 자가 다 탄식하며 소고 치는 기쁨이 그치고 즐거워하는 자의 소리가 끊어지고 수금 타는 기쁨이 그쳤으며 노래하면서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고 독주는 그 마시는 자에게 쓰게 될 것이라.”
고대 사회에서 포도주와 악기와 노래는 잔치와 기쁨을 상징합니다. 포도 수확은 공동체 전체가 함께 즐기는 축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포도나무가 쇠잔하고, 소고 소리가 멈추며, 수금 타는 기쁨이 그칩니다. 포도주를 마셔도 더 이상 달지 않고 쓰게 느껴집니다.
이것은 기쁨의 재료가 완전히 없어진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기뻐할 수 있는 마음 자체가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맛이 없고, 같은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많은 사람 가운데 있어도 외롭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쁨의 근원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이 얻으려는 즐거움은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합니다. 처음에는 작은 것으로도 만족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돈, 더 큰 성공, 더 강한 쾌락, 더 많은 인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채워도 마음은 만족하지 못합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이 차지하실 자리를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의 허무를 잊으려고 계속 바쁘게 살아갑니다. 일을 멈추면 불안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합니다. 혼자 있으면 공허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화면을 바라봅니다. 마음속 깊은 질문을 피하기 위해 더 많은 즐거움을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즐거움은 허무를 치료하지 못하고 잠시 마취할 뿐입니다.
10절은 이러한 세상을 “약탈을 당한 성읍”이라고 부릅니다.
“약탈을 당한 성읍이 허물어지고 집마다 닫혀서 들어가는 자가 없으며.”
성읍은 원래 인간이 안전과 번영을 위해 만든 공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성읍은 혼돈의 성읍이 됩니다. 집은 있지만 안식이 없고, 거리는 있지만 만남이 없으며, 사람이 많지만 서로를 신뢰하지 못합니다. 문은 굳게 닫히고 사람들은 서로를 두려워합니다.
11절은 말합니다.
“포도주가 없으므로 거리에서 부르짖으며 모든 즐거움이 사라졌으며 땅의 기쁨이 소멸되었도다.”
“모든 즐거움이 사라졌다.” 이것이 하나님 없는 세상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그 선물은 더 이상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성공을 하나님처럼 붙들면 성공을 이룬 뒤에도 불안합니다. 자녀를 하나님처럼 의지하면 자녀의 작은 실패에도 삶 전체가 무너집니다. 건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 노화와 질병을 견딜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인정을 생명처럼 붙들면 비판 한마디에도 깊이 상처받습니다.
우상이 약속하는 즐거움은 잠시뿐 입니다. 마지막에는 우리를 더욱 목마르게 하고, 더욱 두렵게 하며, 더욱 공허하게 만듭니다.
4. 남은 열매처럼 은혜로 보존되는 백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완전한 절망으로만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13절입니다.
“세계 민족 중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 곧 감람나무를 흔듦 같고 포도를 거둔 후에 그 남은 것을 주움 같을 것이니라.”
감람나무를 흔들고 포도를 수확하고 나면 나무에는 열매가 거의 남지 않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몇 개의 열매가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남은 자를 보존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남은 자가 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의로움이나 강한 의지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렸고, 하나님의 질서를 거슬러 살아왔습니다. 심판을 피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언약의 저주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주님은 모든 즐거움이 사라진 것 같은 버림받음과 어둠을 겪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와 참된 생명과 기쁨을 누리도록 주님께서 우리의 죄와 저주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기쁨은 형편이 좋아서 생기는 기쁨이 아닙니다. 건강하기 때문에, 일이 잘되기 때문에, 자녀가 성공했기 때문에만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며,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아침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는 요즘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있습니까? 반대로 무엇을 잃을 때 나의 기쁨도 함께 사라집니까? 그것이 하나님보다 더 크게 붙들고 있는 나의 우상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즐거움을 무조건 버려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과 가족, 일과 쉼, 음악과 아름다운 자연을 감사하며 누려야 합니다. 다만 선물을 하나님처럼 섬겨서는 안 됩니다. 선물을 통하여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중심에 계실 때 우리는 세상의 것을 바르게 누릴 수 있고, 그것을 잃어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세 가지를 실천하기를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 없이 살려고 했던 우리의 교만을 회개합시다. 중요한 일을 결정하면서도 기도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뜻보다 내 욕망을 앞세웠으며, 말씀보다 세상의 기준을 따랐던 것을 자백합시다.
둘째, 우리를 붙들고 있는 헛된 즐거움을 내려놓읍시다. 돈과 성공, 건강과 자녀, 인정과 쾌락이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지 않도록 깨어 기도합시다.
셋째, 기쁨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다시 바라봅시다. 상황이 아니라 언약을 붙들고, 소유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붙들며, 세상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만족합시다.
하나님 없는 땅에서는 즐거움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돌아오는 영혼에는 기쁨이 회복됩니다. 세상은 여전히 흔들리고 우리의 형편은 어려울 수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과 소망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늘도 기쁨을 잃어버린 세상 한가운데서 “주님만이 나의 생명이시며, 나의 만족이며, 나의 영원한 기쁨이십니다”라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무리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것에서 만족과 기쁨을 찾았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즐길 것은 많지만 참된 기쁨을 잃어버리고, 많은 것을 소유하면서도 공허하게 살아온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의 우상을 내려놓고 생명과 기쁨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돌아가게 하옵소서. 심판받아야 할 우리를 위하여 언약의 저주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굳게 붙들게 하시고, 오늘 하루도 환경이 아니라 주님으로 기뻐하게 하옵소서. 기쁨을 잃어버린 세상 속에서 복음의 소망과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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