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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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3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2 그 날에 너희는 아름다운 포도원을 두고 노래를 부를지어다
3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이를 해치지 못하게 하리로다
4 나는 포도원에 대하여 노함이 없나니 찔레와 가시가 나를 대적하여 싸운다 하자 내가 그것을 밟고 모아 불사르리라
5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와 화친할 것이니라
6 후일에는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그들이 그 결실로 지면을 채우리로다
7 주께서 그 백성을 치셨던들 그 백성을 친 자들을 치심과 같았겠으며 백성이 죽임을 당하였던들 백성을 죽인 자가 죽임을 당함과 같았겠느냐
8 주께서 백성을 적당하게 견책하사 쫓아내실 때에 동풍 부는 날에 폭풍으로 그들을 옮기셨느니라
9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의 죄 없이함을 받을 결과는 이로 말미암나니 곧 그가 제단의 모든 돌을 부서진 횟돌 같게 하며 아세라와 태양상이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는 것이라
10 대저 견고한 성읍은 적막하고 거처가 황무하며 버림 받아 광야와 같은즉 송아지가 거기에서 먹고 거기에 누우며 그 나무 가지를 먹어 없이하리라
11 가지가 마르면 꺾이나니 여인들이 와서 그것을 불사를 것이라 백성이 지각이 없으므로 그들을 지으신 이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며 그들을 조성하신 이가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시리라
12 너희 이스라엘 자손들아 그 날에 여호와께서 창일하는 하수에서부터 애굽 시내에까지 과실을 떠는 것 같이 너희를 하나하나 모으시리라
13 그 날에 큰 나팔을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멸망하는 자들과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들이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예배하리라
앞단락1절에서 악의 세력을 (리워야단)심판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는 무엇을 하십니까? 자기 백성을 포도원처럼 돌보시고, 징계를 통하여 정결하게 하시며, 마침내 세상에 흩어진 백성을 다시 불러 모으십니다.
화초난 집에서 화분에 나무를 키우시는 분들은 아실겁니다. 때가되면 잎에 하얀 벌레가 먹습니다. 약을치고 잎을 닦아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건강해 집니다. 어느날 집에서 화초를 다듬다 눈물을 쏟은 적이 있습니다. 잎에 하얀 벌레들이 너무 먹어서 몇몇 가지는 절단해서 버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날도 벌레먹은 가지를 전정가위로 절단 하려다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나도 이렇게 벌레먹은 가지였는데 하나님이 잘라 버리지 않으시고 정결하게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셨구나~~ 이런 생각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흐름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심판 가운데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징계하시지만 멸하지는 않으십니다. 오히려 징계를 통해 우상을 제거하시고, 열매 맺게 하시며, 마침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불러 모으십니다.
1.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아름다운 포도원으로 회복 시키십니다
1.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아름다운 포도원으로 회복 시키십니다
2절입니다. “그 날에 너희는 아름다운 포도원을 두고 노래를 부를지어다.”
여기에서 포도원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이사야 5장에도 포도원의 비유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름진 산에 땅을 파고 돌을 제거하시며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으셨습니다. 망대도 세우시고 포도주 틀도 만드셨습니다. 좋은 포도가 맺히기를 기다리셨지만, 포도원은 들포도를 맺었습니다.
이사야 5장의 포도원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도 불의와 죄악을 맺은 실패한 포도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의를 바라셨지만 포학이 있었고, 공의를 바라셨지만 억울한 자들의 부르짖음만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포도원의 담을 헐고 황폐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심판받던 포도원이 “아름다운 포도원”으로 회복됩니다. 실패의 노래가 구원의 노래로 바뀝니다. 그 변화는 포도나무가 스스로 좋아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포도원을 가꾸시는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3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이를 해치지 못하게 하리로다.”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직접 포도원지기가 되십니다. 때마다 물을 주시고 밤낮으로 지키시며 아무도 해치지 못하도록 보호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이 여기까지 유지된 것은 우리가 강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밤낮으로 지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붙들고 살아온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포도원을 지킨 것이 아니라 포도원지기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셨습니다.
살다 보면 믿음이 흔들리는 때가 있습니다. 질병이 찾아오고, 자녀 문제로 마음이 무너지며,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교회를 섬기다가 지치기도 하고, 사람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잊지 않았다. 나는 때마다 너에게 물을 주고 있다. 나는 밤낮으로 너를 지키고 있다.”
우리에게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는 시간에도 하나님은 뿌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마른 계절에도 뿌리가 살아 있으면 다시 싹이 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심긴 성도는 잠시 흔들릴 수는 있어도 뿌리째 뽑히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끝까지 보존하시기 때문입니다.
4절과 5절에서 하나님은 가시와 찔레가 포도원을 해치려 한다면 그것들을 불사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놀라운 초청도 주십니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와 화친할 것이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에게도 화해의 길이 열려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공격을 피하는 것은 그 적보다 강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는 길은 하나님보다 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붙들고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입니다.
이 화목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로마서 5:1–2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대적하던 가시와 찔레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진노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가 하나님의 포도원에 심긴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내가 나를 지키는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포도원지기이신 하나님의 보호 아래 머무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징계를 통하여 자기 백성을 정결하게 하십니다
2. 하나님은 징계를 통하여 자기 백성을 정결하게 하십니다
6절입니다. “후일에는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그들이 그 결실로 지면을 채우리로다.”
하나님께서 포도원을 지키시는 목적은 포도나무가 겨우 살아남는 데 있지 않습니다. 뿌리를 내리고, 싹을 내고, 꽃을 피워 그 열매로 온 땅을 채우게 하는 데 있습니다. (인색하신 하나님으로 오해함)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복의 통로로 삼아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만을 위해 선택된 백성이 아니라, 온 세상에 하나님의 복을 전하기 위해 부름받은 백성이었습니다.
이 약속은 궁극적으로 참된 이스라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땅끝까지 전파됨으로 포도원의 열매가 온 지면을 채우게 됩니다. 오늘 우리도 그 열매로 구원받았으며, 다시 복음의 열매를 맺도록 세상에 보냄받았습니다.
그런데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가지를 잘라 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7절부터 9절까지는 하나님의 징계를 설명합니다. (집 마당에 백일홍-마음이 약해서 잘라내지 못한다면 성장하지 못한다.)
7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치시되 원수들을 치신 것처럼 치셨는지를 묻습니다. 대답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심판 하시듯 자기 백성을 완전히 멸하지 않으셨습니다.
8절은 말합니다. “주께서 백성을 적당하게 견책하사 쫓아내실 때에 동풍 부는 날에 폭풍으로 그들을 옮기셨느니라.”
하나님의 백성도 죄를 지으면 징계를 받습니다. 선택받았다는 사실이 죄를 가볍게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십니다. 그러나 성도에게 주시는 징계는 멸망을 위한 형벌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훈련입니다. (교회가 건강하기 위해서 권징의 기능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누구도 권징이 있는 교회를 다니려고 하지 않는다-사적복수로 하는 것이 아니다. 우상의 제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징계하시는 목적은 9절에 나타납니다.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의 죄 없이함을 받을 결과는 이로 말미암나니 곧 그가 제단의 모든 돌을 부서진 횟돌 같게 하며 아세라와 태양상이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는 것이라.”
징계의 목적은 우상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섬겼지만 삶으로는 아세라와 태양상을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라는 아픈 징계를 통하여 그들의 우상을 부수셨습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상을 제거하는 행위 자체가 죄를 속하는 공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죄를 속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 속죄의 궁극적인 근거는 그리스도의 희생입니다. 우상이 무너지는 것은 속죄의 대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와 정결하게 하시는 은혜가 맺은 열매입니다.
우리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재산과 건강, 자녀의 성공과 사람의 인정, 경험과 지위가 우리 마음의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가 의지하던 것을 흔드십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것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십니다.
징계를 받을 때 우리는 흔히 “왜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허락하셨습니까?”라고 묻습니다. 물론 모든 고난이 특정한 죄에 대한 직접적인 징계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고난받는 사람을 쉽게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성도는 고난을 통하여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주님, 이 일을 통하여 제 안에서 무엇을 깨뜨리고 계십니까? 제가 주님보다 더 의지한 것은 무엇입니까? 제 삶에서 제거해야 할 우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손에 있는 전정가위는 아프지만 나무를 죽이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한 사랑의 도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프게 하시는 데서 기쁨을 얻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고 거룩한 열매를 맺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반면 10절과 11절에는 하나님을 끝까지 거부한 성읍의 모습이 나옵니다. 견고하던 성읍은 황폐해지고 마른 가지는 꺾여 불살라집니다.
11절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백성이 지각이 없으므로 그들을 지으신 이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며 그들을 조성하신 이가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도 깨닫지 못하고, 회개의 부르심을 거절한다면 마지막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때는 원망만 할 때가 아니라 말씀 앞에서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올 때입니다.
3. 하나님은 흩어진 백성을 하나씩 찾아 모으십니다
3. 하나님은 흩어진 백성을 하나씩 찾아 모으십니다
12절과 13절은 오늘 본문의 결론이자 이사야 24장부터 이어진 심판과 구원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12절입니다. “너희 이스라엘 자손들아 그 날에 여호와께서 창일하는 하수에서부터 애굽 시내에까지 과실을 떠는 것 같이 너희를 하나하나 모으시리라.”
“창일하는 하수”는 유프라테스강을, “애굽 시내”는 약속의 땅 남쪽 경계를 가리킵니다. 북쪽 앗수르에서 남쪽 애굽에 이르기까지 흩어진 백성을 하나님께서 모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모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무리로만 보지 않으십니다. 이름 없는 군중으로 다루지 않으십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아시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 모으십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잊힌 것처럼 보이는 성도도 하나님께는 잊힌 사람이 아닙니다. 멀리 떠나 있는 자녀도, 믿음에서 멀어진 가족도, 홀로 눈물을 흘리는 성도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한 사람씩 찾아내시고, 불러내시며, 다시 예배의 자리로 모으십니다.
13절입니다. “그 날에 큰 나팔을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멸망하는 자들과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들이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를 경배하리라.”
큰 나팔 소리는 해방과 귀환의 신호입니다. 앗수르와 애굽은 각각 이스라엘의 북쪽과 남쪽을 대표하는 제국입니다. 이는 세상 곳곳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돌아와 예배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구원의 최종 목적은 단순히 편안한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를 경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를 예배자로 세우시는 데 있습니다.
이 약속은 오순절 이후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교회를 이루면서 성취되고 있습니다. 또한 마지막 날 주께서 큰 나팔 소리와 함께 다시 오실 때 완전하게 성취될 것입니다. 그날에는 동서남북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모여 어린양의 보좌 앞에서 함께 예배할 것입니다.
맺는말
맺는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포도원지기가 되어 밤낮으로 우리를 지키십니다. 우리 안에 열매가 없을 때에는 징계를 통하여 우상을 제거하고 정결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세상에 흩어진 자기 백성을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하나씩 모아 예배자로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믿음이 약해졌다고 낙심하지 맙시다. 포도원을 지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주님을 붙드는 손보다 나를 붙드시는 주님의 손이 더 강합니다.
둘째, 삶이 흔들릴 때 내 안의 우상을 살펴봅시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깨뜨리고 계시는지, 무엇을 새롭게 세우기 원하시는지 말씀 앞에서 물어야 합니다. 징계 가운데서 원망하기보다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해야 합니다.
셋째, 믿음에서 멀어진 가족과 흩어진 영혼을 포기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하나하나 모으십니다.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큰 나팔과 같은 복음의 소리를 계속 전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사야 27장은 리워야단이 죽임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흩어진 백성이 예루살렘 성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이것이 역사의 마지막입니다. 악은 심판받고, 하나님의 포도원은 회복되며, 구원받은 백성은 하나님 앞에 모여 예배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를 밤낮으로 지키시고, 징계를 통해 정결하게 하시며, 마침내 영광의 예배 자리로 인도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할 제목
함께 기도할 제목
첫째, “포도원지기이신 하나님,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우리를 밤낮으로 지키시고 때를 따라 은혜의 물을 부어 주옵소서”라고 기도합시다.
둘째, “고난과 징계를 통하여 우리 안의 우상을 깨뜨리시고, 삶의 모든 자리에서 의와 사랑과 복음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시다.
셋째, “믿음에서 멀어진 가족과 세상에 흩어진 주의 백성을 하나하나 불러 모으시고, 교회가 구원의 나팔인 복음을 충성스럽게 전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마무리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실패하고 넘어지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아름다운 포도원으로 가꾸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주님을 붙든 것이 아니라 주께서 밤낮으로 우리를 지켜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삶이 흔들릴 때 원망하지 말게 하시고, 우리 안에 숨은 우상을 발견하여 십자가 앞에 내려놓게 하옵소서. 징계를 통하여 더욱 정결하게 하시고, 우리의 삶에 복음의 풍성한 열매가 맺히게 하옵소서. 믿음에서 멀어진 가족과 흩어진 영혼들을 하나하나 찾아 불러 주시며, 마침내 모든 민족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포도원지기이신 주님의 손길을 신뢰하며 충성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