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2026 0816 빌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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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서론
서론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빌립보서 2장 5절부터 11절까지입니다. 제목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입니다.
여러분, 혹시 결혼정보회사 등급표라는 것을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이 등급표는 사실 결혼정보회사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자료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수년째 인터넷 커뮤니티를 떠돌아다니면서 계속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등급은 보통 1등급부터 10등급까지 나뉜다고 합니다. 중소기업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부터 판사 같은 전문직까지, 그 폭이 상당히 넓게 퍼져 있습니다.
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평가하는 기준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남자를 평가할 때는 직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다음이 학벌이고, 그다음이 집안과 재산과 외모 순서로 이어집니다. 반대로 여자를 평가할 때는 외모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다음이 직업이고, 그다음이 집안과 학벌과 재산 순서입니다.
물론 이게 공식 자료냐고 물으신다면, 아니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등급표가 왜 이렇게 오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지 궁금했습니다. 어쩌면 우리 마음 어딘가에, 이 기준을 진짜로 믿고 있는 부분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지금 옆에 계신 두세 분과 잠깐 조를 이뤄 보시겠습니까. 방금 말씀드린 기준을 가지고, 지금 내 상태라면 몇 등급쯤 될 것 같은지 스스로 한번 매겨 보십시오. 그리고 그 이유를 옆 분과 짧게 나눠 보십시오.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시간이 아니라, 나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2-3분 정도 시간을 드리고, 몇 분에게 자연스럽게 소감을 물어봐도 좋습니다.)
자, 몇 등급 나오셨습니까. 아마 그렇게 높은 등급은 안 나오셨을 겁니다. 사실 당연한 결과입니다. 우리는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청년들입니다. 아직 자리 잡은 직업도 없고, 쌓아놓은 재산도 없는 게 지극히 정상입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우리 대부분은 낮은 등급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번 진지하게 여쭤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왜 이런 등급표 앞에서 이렇게까지 신경이 쓰일까요. 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기준이 나를 설명해 준다고 믿게 되었을까요.
배경 소개
배경 소개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은 빌립보서 2장입니다. 이 편지를 쓴 바울은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자기 인생에서 가장 낮은 자리, 가장 초라한 자리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세상의 등급표로 따진다면 바울은 그 순간 최하위 등급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바울이 편지를 보내는 빌립보 교회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2장 1절부터 4절까지 보시면, 성도들 사이에 다툼과 허영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서로 자기 일만 돌아보는 분위기가 있었다고도 말합니다. 빌2:1-4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실제로 이 편지 뒷부분인 4장에는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두 지체가 서로 뜻이 맞지 않아 갈등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 우리끼리 은근히 비교하고 경쟁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문제를 두고 '서로 겸손하십시오'라는 도덕적 훈계 한마디로 끝내지 않습니다. 대신 한 분을 보여줍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빌립보서 2:5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다툼과 비교의 해답은 노력이 아니라, 한 마음을 품는 데 있다는 선언입니다.
주제 제시
주제 제시
오늘 본문은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승리의 공식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등급표는 가진 것을 최대한 드러내야 높은 점수를 받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공식은 정반대입니다. 오늘 그 공식이 무엇인지, 두 가지로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본문 전체를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빌립보서 2:5-11 (개역개정)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대지 1. 움켜쥐지 않으신 예수 (6-8절)
대지 1. 움켜쥐지 않으신 예수 (6-8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6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를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라고 말합니다. 쉽게 풀면, 절대 놓지 않으려고 움켜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히려 7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8절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죽기까지, 그것도 당시 가장 치욕스러운 처형 방식이었던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세상의 공식은 이렇습니다. 가진 것을 절대 놓지 않아야 이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장 놓기 어려운 것,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그 자리를 가장 먼저 내려놓으셨습니다.
혹시 이런 장면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실력이 확실한 참가자가 있습니다. 이번 무대만 서면 다음 라운드는 사실상 확정입니다. 그런데 그 참가자가 마지막 순간에 자기 무대 시간을 팀원에게 양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움직입니다. 자기가 가진 확실한 우위를 스스로 내려놓는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조별 과제나 회사 프로젝트를 할 때, 발표 기회는 누구나 원하는 자리입니다. 발표를 잘하면 눈에 띄고 인정도 받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를 실력이 부족한 후배에게 넘겨주고, 자기는 뒤에서 자료를 준비하고 돕는 선택을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스타트업 대표가 창업 초기에 자기 지분을 팀원들에게 나눠준 이야기입니다. 법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분명히 자기 몫인데, 그것을 스스로 내려놓았습니다.
이 세 이야기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기 것이 아니어서 내려놓은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자기 것인데도 내려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예수님이 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그 자리가 원래부터 자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움켜쥐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여쭙고 싶습니다. 지금 내 삶에서 절대 놓을 수 없다고 붙들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스펙일 수도 있고, 자존심일 수도 있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고, 관계에서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놓기 어려운 것을 가장 먼저 내려놓으셨습니다.
대지 2. 하나님이 높이신 예수 (9-11절)
대지 2. 하나님이 높이신 예수 (9-11절)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9절은 '이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낮추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이셨다는 뜻입니다. 낮아짐과 높아짐은 서로 다른 두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의 인과관계로 연결된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그 결과가 10절과 11절에 나옵니다. 모든 무릎이 꿇고, 모든 입이 예수를 주라 고백하게 됩니다.
세상의 공식은 이렇습니다. 먼저 드러내야 높아집니다. 그런데 본문의 공식은 정반대입니다. 낮아진 사람을 하나님이 높이십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회사나 동아리에서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궂은일이 있습니다. 그 일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묵묵히 맡아서 하던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그 사람을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 사람이 리더가 되었습니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식당 사장님은 직원들과 함께 직접 설거지를 하고, 손님상에 음식을 나릅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신기하게 봤습니다. 그런데 그 가게가 결국 동네에서 가장 오래가는 가게가 되었습니다.
스포츠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후보 선수로 몇 년을 묵묵히 훈련만 하던 사람이 있습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한 번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결국 팀의 주장이 되고, 시즌 MVP가 되는 경우를 봅니다.
이 세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높아지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그저 낮은 자리를 지켰을 뿐입니다. 그런데 결국 가장 높은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식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있는 자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감당하고 있는 낮은 자리가 있습니까. 그 자리를 지금 하나님이 어떻게 보고 계실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결론
결론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두 가지를 살펴봤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움켜쥐지 않으셨습니다. 가장 놓기 어려운 것을 가장 먼저 내려놓으셨습니다. 둘째, 그 낮아짐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세상의 공식은 드러내야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공식은 내려놓아야 진짜로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가 정말 예수님만의 이야기로 끝날까요.
로마서 8장 17절 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빌립보서 3장 21절 은 예수님이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키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이 말씀들이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는 분명합니다. 예수님에게 일어난 낮아짐에서 높아짐으로 이어지는 그 이야기가,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반드시 일어날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높아짐은 우리가 겸손을 잘 연습해서 얻어내는 보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낮아짐을 잘 실천했기 때문에 자격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예수님과 하나 되었기 때문에, 그 약속이 거저 우리 것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는, 세상의 등급표 어디에도 내 이름이 없는 것 같다고 느끼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견디고 있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사람에게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기로 선택한 그 순간부터, 여러분은 예수님과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낮아짐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반드시 높아짐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세상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나를 향한 하나님의 결말을 더욱더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한 주, 내가 붙들고 있던 것 한 가지를 내려놓는 결단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아 보십시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궂은일을 자원해서 맡아 보십시오. 이것은 손해 보는 행동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갚으실 약속을 붙드는 행동입니다.
그것을 믿고 한 주간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드러내야 살아남는다고 믿으며 하루를 살아온 저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은 가장 높은 자리를 가지고 계셨음에도, 그것을 움켜쥐지 않으시고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낮아지신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저희도 이번 한 주, 무언가를 붙들고 있던 손을 펴고 내려놓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 있다고 느껴질 때에도, 저희를 향한 주님의 결말이 이미 정해져 있음을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과 하나 된 저희이기에, 예수님에게 일어난 그 일이 저희에게도 반드시 일어날 것을 기대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은 드러내야 이긴다고 말하지만, 주님은 낮아지는 자를 높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 하나를 붙들고 이번 한 주를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셀 나눔 질문
함께 나눠봅시다
1. 지금 내 삶에서 '절대 놓을 수 없다'고 붙들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예수님처럼 내려놓는다면, 이번 한 주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요?
2.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감당하고 있는 자리가 있습니까? 그 자리를 향한 하나님의 '높이심'을 기대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무엇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