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주어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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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 죽음

전도서 3:1–11 NKRV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여러분은 시간이 정말 빠르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어느 순간에는 “빨리 방학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방학이 시작되고 나면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새 학년이 시작된 것이 얼마 전 같은데 어느새 한 학기가 지나가 있고, 작년에 찍었던 사진을 보면 “벌써 이렇게 됐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는데, 우리는 그 시간을 붙잡을 수가 없다. 어제의 시간을 다시 가져올 수도 없고, 지나간 순간을 다시 살아갈 수도 없다. 우리는 매일 조금씩 나이를 먹고 있고,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의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나이 든다’는 것을 별로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내가 아직 어리니까 나이 드는 것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나이 든다는 것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오늘을 살았다는 것은 어제보다 하루가 더 지나갔다는 뜻이고, 한 해를 살았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에서 한 해가 지나갔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도 끝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태어났고, 살아가고 있으며,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현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이야기를 불편해하고 가능하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특히 젊을수록 죽음은 나와 아주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성경은 죽음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도서는 우리에게 죽음을 포함한 인생의 모든 때를 정면으로 바라보라고 말한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전도서 3장 1–11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 얻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다. 우리의 인생에는 수많은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모든 때를 지나 우리는 결국 마지막 때를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이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인생이 내 마음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때를 살아가는 것임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삶을 어둡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늘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는 사실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전도서 3장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지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여준다. 전도서 3장 2절부터 보면 서로 반대되는 여러 가지 삶의 모습이 나온다.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으며, 얻을 때가 있으면 잃을 때가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말씀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우리 모두가 이 말씀에 해당될 것이다. 그렇다면 전도서를 기록한 지혜자는 왜 이렇게 서로 반대되는 삶의 모습들을 하나하나 나열하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살다 보면 좋은 때도 있고 나쁜 때도 있으니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모든 일이 이미 정해져 있으니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숙명론이나 운명론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지혜자는 이렇게 다양한 인생의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먼저 1절에서 중요한 전제를 제시한다.
전도서 3:1 NKRV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기한’과 ‘때’이다. 우리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그에 맞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한다. 내가 원해서 일어나는 일도 있지만,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 일어나는 일도 있다. 기쁜 일이 생기기도 하고 슬픈 일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계획한 대로 일이 잘 풀릴 때도 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날 때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이렇게 생각한다. “그냥 운이 없었던 것 같아.”,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된 걸까?”,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어.”, “그냥 팔자려니 해야지.” 특히 우리 주변에서도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저 운명이나 우연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전도서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인생은 그런 것이 아니다. 전도서의 지혜자는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바라보면서 그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이야기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수많은 희로애락, 즉 기쁨과 슬픔, 만남과 헤어짐, 얻음과 잃음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이 무작위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시간과 사건을 아시며, 그분의 섭리 가운데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신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삶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로마서 14장 7–8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로마서 14:7–8 NKRV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공부하고, 내가 원하는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성경은 조금 다르게 이야기한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고 말씀한다. 내가 살아가는 것 같지만, 성경은 우리의 삶을 단순히 ‘나를 위한 삶’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시간과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순간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으며,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목적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읽은 전도서 본문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네 가지 중요한 관찰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관찰은 이 본문이 ‘시’라는 사실이다. 전도서는 대부분 우리가 읽는 것처럼 설명하는 글로 되어 있지만, 오늘 본문인 3장 1–8절은 조금 특별하다. 이 부분은 시의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지혜자는 갑자기 시를 썼을까? 단순히 예쁘게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본문의 내용을 우리가 더 잘 느끼고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때’라는 말이 계속 반복된다는 것이다. 2절부터 8절까지 계속해서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라는 표현이 반복된다. 같은 표현이 계속 나오니까 마치 일정한 박자가 있는 노래를 듣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번 생각해 보자.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고.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고.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고. 이렇게 읽다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마치 시계가 “째깍, 째깍” 하고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전도서의 지혜자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인생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의 일이 계속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되는 일들이 서로 마주 보면서 반복된다. 태어남과 죽음, 울음과 웃음, 얻음과 잃음이 서로 짝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이 본문을 조금 재미있게 표현하면, 우리의 인생이 하나의 리듬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때가 있고, 때가 있고. 이것을 위한 때가 있고, 저것을 위한 때가 있고. 기쁠 때가 있고, 슬플 때가 있고. 얻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다. 마치 우리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처럼, 인생에도 계속해서 서로 다른 때가 찾아온다. 숨을 들이마시기만 할 수도 없고 내쉬기만 할 수도 있듯이, 우리의 인생에도 기쁨만 계속될 수 없고 슬픔만 계속될 수도 없다. 그래서 전도서 3장의 이 시는 단순히 “인생에는 여러 가지 일이 있다”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지혜자는 ‘때’라는 말을 반복하고, 서로 반대되는 일들을 짝지어 놓으면서 우리의 인생 자체를 하나의 시처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를 가만히 바라보면 한 가지 재미있는 특징이 더 보인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만, 결국 또 다른 때를 만나고 다시 반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시계의 바늘이 계속 움직이지만 하루가 지나면 다시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째깍, 째깍.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고.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고. 얻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다. 이것이 바로 전도서 3장 1–8절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인생의 리듬이다.
두 번째 관찰은 ‘평행 구조’이다. 조금 어려운 말처럼 들리지만, 쉽게 말하면 비슷한 문장이나 서로 반대되는 내용을 나란히 놓는 방식이다. 히브리어로 기록된 성경의 시에는 이런 평행 구조가 아주 많이 사용된다. 오늘 본문도 잘 보면 이런 구조가 계속 반복된다.
날 때가 있고 / 죽을 때가 있고
울 때가 있고 / 웃을 때가 있고
찾을 때가 있고 / 잃을 때가 있고
사랑할 때가 있고 / 미워할 때가 있고
전쟁할 때가 있고 / 평화할 때가 있다
어떤가? 한쪽에 있는 내용과 반대되는 내용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이것이 바로 평행 구조이다. 이 구조를 통해 지혜자는 우리의 인생을 한쪽 방향으로만 보여주지 않는다. 인생에는 서로 반대되는 모습들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항상 웃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항상 울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항상 얻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항상 잃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본문의 첫 번째와 마지막을 보면 ‘날 때’와 ‘죽을 때’가 나온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수많은 일들이 놓여 있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지혜자는 출생과 죽음이라는 두 끝 사이에 있는 우리의 인생 전체를 이 짧은 시 안에 담아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울음, 슬픔, 미움, 전쟁, 죽음과 같은 것들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만드신 아름다운 세상의 모습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세상에는 죽음이 없었다. 그러나 인간의 죄가 세상에 들어오면서 죽음과 고통이 찾아왔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서 3장의 이 시를 단순히 “인생에는 원래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어”라고 읽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죄로 인해 깨어진 세상의 모습을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 살아가면서 웃기도 하지만 울기도 한다. 사랑하기도 하지만 미워하기도 한다. 평화를 경험하기도 하지만 전쟁과 갈등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 모든 사람은 죽음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전도서 3장의 이 시는 단순히 인생을 예쁘게 표현한 시가 아니다. 죄로 인해 깨어진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시이다. 그런데 성경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성경의 마지막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약속을 주신다. 요한계시록 21장 3–4절이다.
요한계시록 21:3–4 NKRV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전도서 3장에서는 죽음이 있고, 울음이 있고, 슬픔이 있다. 하지만 성경의 마지막에서는 하나님께서 죽음도, 눈물도, 아픔도 사라지는 날을 약속하신다. 그러므로 전도서 3장의 평행 구조를 읽을 때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바라보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결국 회복하실 세상의 모습까지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세 번째로 본문을 읽을 때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문에는 정말 많은 행동이 등장한다. 심고, 뽑고, 울고, 웃고, 헐고, 세우고, 돌을 던지고, 돌을 거두고, 안고, 멀리하고, 찾고, 잃고, 지키고, 버리고, 찢고, 꿰매고, 잠잠하고, 말하고, 전쟁하고, 평화한다.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이 없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 본문을 조금 재미있게 표현하면 ‘바쁜 시’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가고, 수업을 듣고, 친구를 만나고, 공부하고, 운동하고, 집에 돌아와서 숙제를 하고, 휴대폰을 보고, 다시 잠을 잔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면 또 똑같이 살아간다. 어른들의 삶도 다르지 않다. 일하고, 사람을 만나고, 돈을 벌고, 무언가를 계획하고, 가족을 돌보고, 수많은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우리의 인생은 정말 바쁘다. 그런데 전도서의 지혜자는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9절에서 질문한다.
전도서 3:9 NKRV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혜자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모든 일에는 각각의 ‘때’가 있다. 씨를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거둘 때가 있다. 무언가를 허물어야 할 때가 있고, 다시 세워야 할 때가 있다. 슬퍼해야 할 때가 있고, 기뻐해야 할 때가 있다. 말해야 할 때가 있고, 잠잠해야 할 때가 있다.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다. 그러니까 전도서 3장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무조건 이것을 해야 한다”는 행동 목록이 아니다. 오히려 같은 행동이라도 언제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친구가 힘들어하고 있을 때는 말을 많이 하기보다 조용히 곁에 있어 주어야 할 때가 있을 수 있다. 반대로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말을 해 주어야 할 때도 있다. 공부할 때가 있고 놀 때가 있다. 친구들과 함께할 때가 있고 혼자 있어야 할 때가 있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가 있고 끝내야 할 때가 있다. 문제는 우리가 항상 원하는 때에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우리 인생에서 우리가 결정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태어나는 때와 죽는 때이다. 우리는 언제 태어날지를 스스로 결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 죽을지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그 두 시간 사이에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전도서 3장의 14쌍은 우리 인생 전체를 아주 넓게 보여준다.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서 우리는 심기도 하고 뽑기도 한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하고 끝내기도 한다.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한다. 말하기도 하고 침묵하기도 한다. 정말 바쁘게 살아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만이 아니다. 그 일에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시간표대로 인생을 살아가고 싶어 한다. “지금 당장 이것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왜 아직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지?”, “왜 나는 다른 사람보다 늦는 것 같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도서는 우리의 시간표보다 더 큰 하나님의 시간표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도서 3장 1절은 이렇게 말한다.
전도서 3:1 NKRV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우리는 하늘 아래에서 수많은 일을 하며 살아가지만, 그 모든 시간을 다스리시는 분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모든 때를 내 마음대로 조절하는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를 분별하고 그때에 맞게 살아가는 지혜이다.
넷째로, 이 시는 ‘평화’라는 말로 끝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면서 한 가지 질문을 갖게 된다. 본문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다.” 여기서 ‘평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샬롬(שָׁלוֹם)’이다. 샬롬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함과 평안, 잘 이루어진 상태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그런데 본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면 조금 이상하다.
태어남도 있고 죽음도 있다.
울음도 있고 웃음도 있다.
만남도 있고 헤어짐도 있다.
사랑도 있고 미움도 있다.
전쟁도 있고 평화도 있다.
정말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것이 이 안에 들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경험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 완전한 평안을 누리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이 시를 읽고 나면 오히려 이런 질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모든 일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어디로 이끌어 가시는 것일까?” 마치 성경을 읽다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만난 것과 같다. 사도행전 8장을 보면 에디오피아 내시가 이사야의 말씀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빌립이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읽는 것을 깨닫느냐?” 그러자 내시는 이렇게 대답한다.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우리도 전도서 3장을 읽으면서 비슷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주님,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왜 우리의 인생에는 이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까?”, “왜 태어남과 죽음이 있고, 웃음과 눈물이 있으며, 전쟁과 평화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을 때 이해하지 못해서 이렇게 요청했다.
마태복음 13:36 NKRV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그러므로 오늘 전도서 3장을 읽는 우리에게도 이런 마음이 필요하다. “하나님, 우리가 이 말씀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게 해 주세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깨닫게 해 주세요.” 우리가 전도서 3장의 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인생에는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구나”라고 읽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때와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여주시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때’를 주셨을까?”
사랑하는 꿈사땅 여러분, 오늘 우리는 전도서 3장 1–11절을 통해 우리의 인생에는 수많은 때가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 얻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다. 말할 때가 있고 잠잠할 때가 있다. 그리고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다. 우리의 인생은 이처럼 수많은 때를 지나간다. 그런데 그 모든 때를 우리가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도 선택하지 않았고, 죽을 때도 선택할 수 없다. 우리의 인생에는 우리가 결정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내 인생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왜 나는 다른 사람보다 힘든 것 같지?”, “왜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때에 이것을 이루어 주시지 않을까?” 하지만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인생이 우연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11절(상반절)을 보라.
전도서 3:11 NKRV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때를 따라”라는 말이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시간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일이 왜 필요한지도 모를 수 있다. 때로는 웃는 때보다 우는 때가 더 길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도 일하고 계신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이해하도록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11절(하반절)은 이렇게 이어진다.
전도서 3:11 NKRV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우리는 인생의 전체 그림을 볼 수 없다. 우리는 오늘만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시작과 끝을 모두 알고 계신다. 우리는 내 인생의 한 장면만 보고 있지만, 하나님은 전체 이야기를 보고 계신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모든 것을 이해한 다음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 우리가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죽음을 좋아하지 않는다. 죽음은 우리에게 두렵고 낯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이라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에게 “죽을 때가 있다”고 분명히 말한다. 그런데 그 죽음이 우리의 모든 것의 끝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전도서 3장에서는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다”고 말씀하지만, 성경의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완전한 샬롬을 약속하신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은 이렇게 말한다.
요한계시록 21:4 NKRV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지금 우리의 인생에는 죽음도 있고 눈물도 있고 아픔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영원한 현실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회복하실 날이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오늘 한 가지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때’가 있지만, 그 모든 때를 다스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여러분의 인생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라. 지금의 시간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떠나지 마라. 남들과 비교하면서 내 인생의 때를 조급하게 만들지도 마라. 하나님께서 주신 오늘의 때를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라. 공부해야 할 때에는 공부하고, 친구를 사랑해야 할 때에는 사랑하고, 눈물이 날 때에는 하나님 앞에서 울고, 기뻐할 때에는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라. 그리고 언젠가 우리에게 죽을 때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을 더 의미 있게 살아가라.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언제 끝날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안다. 우리의 때를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가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제목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때」를 하나님 없이 흘려보내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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