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물 위를 걸어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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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너도 물 위를 걸어 오너라

본문: 마태복음 14장 22–33절

찬송: 456장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말씀의 문을 열며

이솝 우화 가운데 해와 바람이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람과 햇살이 지나가는 나그네의 외투를 누구 먼저 벗기는지 내기를 했습니다. 바람은 모든 것을 날려버릴 듯 무시무시한 강풍을 몰아쳐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 했습니다. 그러나 거센 강풍이 불어올수록 나그네는 오히려 외투 옷깃을 더 단단히 여미고 주저앉았습니다. 결국 강풍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은은하고 따스하게 내리쬔 봄 햇살은 햇볕을 따스하게 비춰주었습니다. 햇볕이 따스하게 스며들자, 나그네는 그 온기에 스스로 경계심을 풀고 아무런 저항 없이 외투를 벗어 던졌습니다.
이 우화는 강함과 부드러움의 힘을 이야기하지만, 신앙의 관점에서는 새로운 지혜를 줍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 닥쳐오는 직접적인 고난과 시련, 즉 인생의 거센 강풍은 우리를 두렵게 만들지만, 역설적으로 우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절박하게 찾고 말씀의 옷깃을 단단히 여미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영혼을 가장 무섭게 무너뜨리는 것은 거센 박해나 고난이 아닙니다. 소리 없이 스며드는 세속적 풍요와 안락함, 그리고 신앙적 나태라는 은밀한 햇살입니다. 따스한 햇살에 취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적인 무장과 헌신의 외투를 스스로 벗어 던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우리는 저마다 인생의 중요한 계절과 순간들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지금 삶을 뒤흔드는 거센 바람 앞에서 두려워하고 있거나, 인생의 깊고 고독한 밤 사경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거친 바다 한가운데서 역풍과 사투를 벌이던 제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거센 풍랑을 지나는 우리가 어떤 믿음의 자세로 주님을 바라보고 따라야 하는지를 명확히 가르쳐 줍니다.

한 밤 중의 소동과 제자들의 한계

오늘 본문은 오병이어의 기적 사건 바로 직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2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배에 타도록 ‘재촉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재촉하다’라는 말은 ‘강하게 떠밀어 보내다’라는 강력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그 영광스러운 현장에서 제자들을 급히 떠밀어 보내신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한 무리들이 예수님을 세속적이고 정치적인 왕으로 삼으려고 열광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러한 세상적 성공주의와 열광주의의 유혹에 물들지 않도록 그들을 격리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세상의 환호를 뒤로하신 채 홀로 산에 올라가 하나님과의 깊은 기도의 자리로 물러나셨습니다. 참된 신앙은 세상의 박수갈채에 도취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때로는 고독한 바다로 나아가는 결단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바다로 나아간 제자들에게 찾아온 것은 평안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이 탄 배는 육지에서 멀리 떠나 배를 거스르는 역풍으로 인해 물결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밤 사경’은 칠흑 같은 어둠이 만반에 깔린 새벽 3시부터 6시 사이를 가리킵니다. 제자들은 긴 밤 내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거친 파도와 사투를 벌이며 체력과 열정이 완전히 고갈되어 있었습니다.
구약과 유대인들의 신앙 전통에서 ‘바다’는 단순히 파도가 출렁이는 거대한 물이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악과 혼돈, 그리고 사망의 권세를 상징합니다. 오늘 본문 속 제자들의 모습은 박해와 세상의 모욕 속에서 흔들리는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오늘 우리 역시 인생이라는 바다 한가운데서 체력과 소망이 고갈된 채 홀로 노를 젓는 듯한 한계 상황을 마주합니다. 주님의 명령대로 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센 바람이 불어와 우리 인생의 배를 뒤흔들 때, 우리는 깊은 영적 고립감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기계시와 위로

바로 그 깊은 밤, 절망과 사투의 한복판에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십니다. 예수께서 성난 파도 ‘위에’ 서서 걸어오시는 모습은, 구약 욥기와 시편에 기록된 바와 같이 혼돈과 흑암의 권세를 발아래 짓밟으시고 만물을 다스리시고 보살피시는 창조주의 전능하신 손길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러나 피곤과 공포에 사로잡힌 제자들은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다!”라고 비명을 지르며 두려워했습니다. 거친 환경에 눈이 가려지면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구원자 예수님마저도 두려움의 대상으로 오해하게 됩니다. 공포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떨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주님은 즉시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마 14:27)
주님이 말씀하신 “나다”라는 선언은, 출애굽기 3장 14절 에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밝히셨던 하나님의 거룩한 자기계시의 음성입니다. 주님은 단순히 “나 예수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로 만물을 창조하고 바다를 다스리는 여호와 하나님이다”라는 하나님되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살아있는 계시의 말씀이 선포될 때, 무서운 풍랑의 현장은 순식간에 창조주의 은혜가 임하는 거룩한 현장으로 바뀌게 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하고도 거친 풍랑과 파도에 무너진 제자들의 모습은과 너무나 닮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엘리야 선지자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기적을 맛보고 바알 선지자 450명을 꺾는 대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직후, 이세벨 왕비의 살해 협박 한마디에 완전히 무너져 광야 로뎀나무 아래로 도망쳤습니다. 엘리야는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오직 나만 남았나이다”라며 깊은 절망과 영적 탈진을 토로했습니다.
제자들과 엘리야의 모습은 우리에게, 과거에 경험했던 은혜의 기억이나 신앙의 연륜이 오늘의 두려움을 자동으로 해결해주지 못함을 성경이 깨우쳐줍니다.
하나님은 절망에 빠진 엘리야에게 크고 강한 바람이나 지진, 불길 속에서 나타나지 않으시고, ‘고요하고 세미한 음성’ 가운데 인격적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도 주님은 공포에 질린 제자들에게 친히 찾아오셔서 “안심하라 나다!”라는 살아있는 말씀의 음성으로 임재하셨습니다. 험난한 세상에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우리의 경험이나 결심이나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오직 우리 삶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말씀입니다.

믿음의 모험과 시선의 분열

주님의 음성을 들은 베드로가 담대하게 대답합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마 14:28)그때 주님은 단 한 단어로 명하십니다.
“오라” (마 14:29a)
주님이 베드로를 향해 선포하신 “오라”는 음성은 단순한 허락이 아닙니다. 이것은 세상과 바다를 딛고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거룩한 통치에 제자도 믿음으로 동참하라는 복음의 강력한 초청입니다.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걷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던 근거는 자기 확신이나 대담한 성품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오라”고 선언하신 주님의 말씀 권세에 의지하여 발을 내딛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기적도 잠시였습니다. 물 위를 걸아가던 베드로가 ‘거센 바람을 보았을 때’ 무서움에 사로잡혀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31절에서 예수님은 가라앉는 베드로를 향해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라고 지적하십니다.
여기서 주님이 지적하신 ‘의심’의 본질을 우리는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심이란 지적인 회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둘로 쪼개지는 상태’, 즉 시선이 양갈래로 분열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드로의 시선이 주님의 약속된 말씀에 고정되어 있을 때는 바다를 짓밟고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선이 주님에게서 떠나 눈앞의 거센 바람으로 분열되는 순간, 그는 세속의 무게에 압도되어 깊은 물속으로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믿음의 위기는 성경 지식이 부족해서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과 눈앞의 험악한 환경 사이에서 찾아옵니다.

우리를 돌아보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지나가는 우리를 뒤흔들고 침몰시키는 바람과 햇살은 무엇입니까?
세월이 흐르면 우리에게는 하나둘 찾아오는 육신의 연약함과 질병에 대한 두려움, 은퇴와 노후에 대한 경제적 불안감이라든지, 아니면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우리를 압도합니다. 때로는 “내가 평생 가정을 위해, 교회를 위해 어떻게 헌신했는데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하는 엘리야와 같은 영적 고립감과 공허함이라는 거센 바람이 불어와 우리 마음을 둘로 쪼개어 놓기도 합니다.
반대로 더 은밀하게 우리를 무너뜨리는 안락함의 햇살이 비추일 때도 있습니다. “이제 이만하면 충분히 봉사했으니 편안히 안주하자”며 영적 긴장감을 풀게 만드는 물질주의와 세속적 안락함의 유혹입니다. 핍박의 시대에는 고난이 신앙의 옷깃을 더 단단히 여미게 만들었지만, 오늘날 풍요와 안락함이라는 햇살은 우리로 하여금 헌신과 기도의 외투를 스스로 벗어 던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환경의 풍파에 압도되거나 세속의 안락함에 취해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절망의 순간, 성도가 외쳐야 할 유일한 부르짖음이 있습니다. 베드로처럼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마 14:30b)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우리가 무력함을 인정하고 주님을 향해 부르짖을 때, 성경은 이렇게 약속합니다.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셨다!” 주님은 단 1초도 지체하지 않으시고, 풍랑 속에 빠져가는 우리 모두의 손을 붙잡아 건져 올려 주십니다.

세상을 딛고 예수와 함께 걸으라

예수께서 베드로와 함께 배에 오르시니 거센 바람이 그쳤습니다. 배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께 절하며 고백했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악과 혼돈, 질병과 사망의 바다를 발아래 짓밟으시고 완전히 승리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오늘 인생의 밤 사경을 건너가는 저와 여러분을 향해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과거의 은혜에만 안주하거나, 눈앞의 바람 소리에 두려워 떨지 말라고 하십니다. 세속이 주는 안락함의 햇살에 취해 영적 무장을 해제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창조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말씀에 우리의 모두의 온 마음과 시선을 고정되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은 오늘 말씀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도 물 위를 걸어 이리 오너라!”
풍랑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무기력한 삶을 거두고,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손을 잡고 세상을 딛고 당당히 일어서는 거룩한 제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인생의 깊은 밤과 거친 풍랑 한가운데서도 저희를 찾아오시는 주님의 은혜로운 음성을 듣습니다.
돌아보면 저희는 지난날 수많은 은혜와 기적을 입었음에도, 눈앞에 불어오는 작고 거센 바람 소리 하나에 쉽게 두려워하고 저희의 마음과 시선이 둘로 갈라졌음을 회개합니다.
주님, 저희의 흔들리는 시선과 연약한 믿음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쇠약해지는 육신의 질병과 노후의 불안, 공허함이라는 바람 앞에서 두려워 떨지 않게 하시고, 은밀히 찾아오는 안락함의 햇살에 취해 영적 무장의 외투를 벗어 던지지 않게 하옵소서.
이 시간 세상과 바람을 바라보던 흔들리는 눈길을 거두고, 바다를 짓밟고 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께만 온 마음을 고정하게 하옵소서.
“안심하라 나다, 오라!” 부르시는 주님의 생명의 음성에 담대히 응답하게 하시고, 삶의 풍파 속에서 깊이 빠져들어 갈 때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부르짖으며 주님이 즉시 내미시는 은혜의 손을 꼭 잡게 하옵소서.
풍랑에 휘둘려 무기력하게 주저앉지 않고, 만물의 주권자 되신 주님과 함께 세상을 딛고 당당히 일어서는 참된 제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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