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9장 10-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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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 밖에 남겨진 사람
사사기 19:10–21 NKRV
10 그 사람이 다시 밤을 지내고자 하지 아니하여 일어나서 떠나 여부스 맞은편에 이르렀으니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안장 지운 나귀 두 마리와 첩이 그와 함께 하였더라 11 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이 갔을 때에 해가 지려 하는지라 종이 주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의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십시다 하니 12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돌이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이방 사람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아가리라 하고 13 또 그 종에게 이르되 우리가 기브아나 라마 중 한 곳에 가서 거기서 유숙하자 하고 14 모두 앞으로 나아가더니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가까이 이르러 해가 진지라 15 기브아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아 들어가서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자가 없었더라 16 저녁 때에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거류하는 자요 그 곳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이더라 17 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넓은 거리에 나그네가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 하니 18 그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 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19 우리에게는 나귀들에게 먹일 짚과 여물이 있고 나와 당신의 여종과 당신의 종인 우리들과 함께 한 청년에게 먹을 양식과 포도주가 있어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나이다 하는지라 20 그 노인이 이르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니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 하고 21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도입]
1939년 5월, 937명의 유대인 난민을 태운 배 한 척이 독일 함부르크 항을 떠났습니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새 삶을 찾아 떠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쿠바는 입항을 거부했고, 미국은 플로리다 앞바다까지 다가온 이 배를 돌려보냈고, 캐나다마저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배는 다시 유럽으로 돌아갔고, 그 배에 타고 있던 많은 사람이 훗날 홀로코스트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역사는 이 배를 "떠도는 배"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배가 갈 곳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을 맞아줄 문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똑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갈 곳을 찾던 나그네가, 자기 동족의 성읍 한복판에서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합니다.
[본문 해석]
레위인은 첩과 함께 베들레헴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종이 이방인의 성 여부스, 곧 훗날 예루살렘이 되는 곳에 묵자고 권했지만, 레위인은 거절합니다. "이방인의 성보다는 동족의 성이 안전하다"는 생각으로 그는 베냐민 지파의 성읍 기브아를 향해 걸음을 재촉합니다.
그런데 정작 기브아에 도착하자, 반전이 일어납니다. 1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었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는 자가 없더라." 동족의 땅, 언약 백성의 성읍인데도, 아무도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나그네를 성문 앞 광장에서 맞아들이는 것은 그 시대의 기본 도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도리가 사라진 것입니다. 사사기의 저자는 이 장면을 창세기 19장 소돔 성의 이야기와 매우 비슷한 구조로 그려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사는 성읍이 소돔처럼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때 뜻밖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16절은 그를 "에브라임 산지 사람이요 기브아에 거류하는 자"라고 소개합니다. 기브아 원주민이 아니라, 그 땅에 몸 붙여 사는 나그네였습니다. 정작 그 땅의 주인들은 나그네를 저버렸는데, 그 땅의 또 다른 나그네가 나그네를 집으로 데려간 것입니다. 사사기 17장부터 21장은 계속해서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고 말합니다. 기준이 사라진 자리, 사람이 자기 소견을 왕으로 삼는 자리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이 바로 이웃을 향한 환대였습니다.
[핵심 메시지]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하나입니다. "내 소견이 왕이 되는 순간, 우리는 나그네를 향한 문을 가장 먼저 닫습니다." 이것은 3천 년 전 기브아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잊어버릴 때, 우리 각자의 삶과 가정과 교회 공동체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적용]
이 메시지를 오늘 우리 삶에 두 가지로 적용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 곁의 이주민과 나그네들을 돌아보는 교회가 됩시다. 얼마 전 국민일보에는 조선소 옆에 있는 백 년 된 한 교회가 열두 개 언어로 예배를 드리며 이주노동자들을 품는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언어도, 얼굴도, 문화도 낯선 이들을 향해 그 교회는 문을 열었습니다. 오늘 우리 일터와 동네에도 광장에 앉아 있는 나그네가 있습니다. 우리는 기브아처럼 문을 닫는 공동체가 되겠습니까, 아니면 에브라임 노인처럼 먼저 손을 내미는 공동체가 되겠습니까.
둘째, 고립되어 가는 청년과 청소년들을 돌아보는 교회가 됩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은둔·고립 청년이 오십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이들 대부분은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을 뿐, 실제로는 우리 동네, 우리 교회 인근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도 그를 집으로 영접하지 아니하므로" 광장에 홀로 앉아 있던 레위인의 모습이, 오늘 방 안에 홀로 있는 우리 자녀와 이웃의 모습과 겹쳐 보입니다. 먼저 찾아가 말을 걸고, 먼저 밥 한 끼를 청하는 작은 환대가 필요합니다.
[결론]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오늘 누군가에게… 기브아였습니까, 아니면 에브라임 노인이었습니까. 히브리서 13장은 예수님이 성문 밖에서 고난받으셨다고 말합니다. 우리 죄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 자신이 성문 밖으로, 진영 밖으로 내쫓기는 나그네가 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우리가 원래 "외인과 나그네"였으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문 밖에 남겨져야 마땅했던 자리에, 예수님이 대신 서 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받은 우리이기에, 이제 우리가 문을 열 차례입니다. 오늘 우리 곁의 나그네에게, 그 문을 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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