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찾아오시는 은혜 - 나인성 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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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 사도신경(천천히)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96장 예수님은 누구신
하나님의 말씀 누가복음7:11-17 교독
Luke 7:11–17 NKRV
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도입 (2분)
안녕하세요 목사님 휴가 기간 동안 제가 대신 새벽예배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1년 만에 이 자리에서 뵙는데, 시간이 참 빠른 것 같고, 또 사랑하고 존경하는 성도님들과 이렇게 말씀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부터 나흘간은 성경 속 과부들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성경에는 참 과부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고아와 과부를 내버려두지 않으시기에, 약자들을 돌보시는 모습도 맞지만, 유독 고아도 아닌 과부가 많이 등장합니다.
특히 구약이나 신약이나 아들이 죽거나, 생명의 위기에 처한 절망 속의 과부들을 찾아오셔서 그들을 살리시는 장면이 많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과부를 살리는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이유 그리스도의 신부인 이스라엘의 상태가 과부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본인들의 믿음 없음과 연약함과 죄악 때문에 신랑되시는 하나님을 버려 스스로 과부가 된 것이죠. 하지만 이렇게 절망스럽고 믿음이 없고, 죽은 것 같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직접 찾아오시고,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과부들의 이야기를 통해 영적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오늘부터 하나님께서 저희도 어떻게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는지 과부들의 이야기를 통해 공감하고 나눠보겠습니다.
소제목1. 죽음 앞에 선 과부 (5분)
먼저 오늘 본문에서는 나인성 과부와 그의 죽은 아들이 등장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예수님께서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시는 장면이 주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장면의 주인공이자, 진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자는 나인성 과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시대 당시 여성은 남성에게 귀속된 존재였기 때문에, 남자를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편도 없고, 아들도 없다면, 그 여성은 생계과 존재 자체가 끊기게 되어 사실상 죽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예수님의 초점을 보면 누가 주인공인지 명확해 집니다.
13절에 예수님께서 ‘과부를’ 보십니다.
그리고 과부에게 ‘울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죽은 아들을 살리신 다음 15절에서 그 아들을 과부에게 돌려 ‘주십니다’.
즉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죽은 과부를 살리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은 시종일관 과부와 그 아들을 살리시기 위해 작정하시고 행하셨지만, 과부는 정작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요청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희가 구하기도 전에,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저희를 사랑하시고, 택정하셔서 구원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저희가 신앙생활 하면서, 또 세월이 갈수록 오래되고 깊은 절망 속에서 ‘이런 것까지 기도해도 되나... 혹은 오랫동안 기도했어도 가망이 없어서 포기해버려’ 꺼내놓지 못하는 기도제목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의 고백이 완벽하지 못해도,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는 깊은 절망이 있더라도 괜찮습니다. 주님이 친히 저희를 먼저 찾아와주셨습니다.
이 새벽에 마음의 깊은 소원을 가지고 나아와 기도하는 이 자리 자체가 그 증거입니다. 저희 발로 나아왔지만, 주님이 저희를 불러주셨기에 여기에 있는 것이며, 주님이 찾아와주셨기에 이 기도가 의미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과부는 그저 죽은 아들의 옆에서 울고 있었을 뿐입니다. 여기 계신 성도님들도 자녀와 손주들의 신앙을 붙들고, 몸으로 마음으로 울고계실 수 있습니다. 주님이 그 자녀를, 그리고 그 부모를 보고 함께 울고 계실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요청하지 않더라도, 눈물로 나온 이 자리가 이미 기도이며, 하나님은 저희의 필요를 이미 알고 계십니다.
소제목2. 불쌍히 여기사 (5-6분)
다시 13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과부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원어의 뜻은 “내장이 끊어지는 아픔”이라는 뜻입니다. 과부의 아들을 향한 그 절망의 눈물을 보시며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과 슬픔으로 공감하십니다.
그리고 ‘울지 말라’ 말씀하십니다. 마치 팔복에서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라는 말씀처럼 울음을 웃음으로 바꾸시는 복음의 말씀인 것같습니다.
이어서 14절에서 관에 손을 대십니다. 시체를 접촉하는 것은 구약의 정결법에 어긋나는 부정한 행동임에도 예수님은 사랑으 직접 손을 대십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일어나라”는 말씀에 죽은 아들이 살아나게 됩니다. 단순히 불쌍히 여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죽음을 이기는 권세를 보여주십니다.
이를 보는 사람들은 16절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고 고백하고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과부와 같이 죽어가는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것이며, 자기 백성을 지키시겠다는 언약을 실현하시는 것입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정한 시체를 만지시 살리시는 예수님께서, 몸이 불편할지라도, 믿음이 연약할지라도, 소망이 보이지 않아도, 심지어 죄의 부정함이 저희에게 있을지라도 예수님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살아나라” 말씀하십니다. 우리 스스로가 부정하다고 느껴 주저될 때도, 주님은 그 경계를 넘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이며, 우리가 연약한 중에도 담대하게 주님 앞에 나아갈 근거가 됩니다.
적용 및 마무리 (3분)
오늘 말씀 속에서 과부는 주님께 살려달라 요청하지도 않았지만, 하나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기 백성을 돌보시기로 약속하셨고, 그 약속대로 찾아오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오늘 이 새벽, 오래되어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기도들 앞에서, 삶의 막막한 문제와 특히 자녀분들과 다음 세대의 기도제목들 앞에서, 혹여나 나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런가? 내가 믿음이 부족하고, 정성이 부족하고, 부정해서 그런가 싶다면, 오늘 말씀 앞에 이러한 생각을 버립시다.
우리 주님은 구하기도 전에 저희를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하물며 주님께 구하기 위해 이렇게 새벽을 기도로 여는 주의 거룩한 성도들의 기도가 땅에 떨어질 리가 없습니다.
오늘 이 새벽 이미 찾아오신 주님을 의지하여, 나를 위해, 가족과 자녀들을 위해, 교회와 나라를 위해, 주님께서 구원하시고 살려주시고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하기를 바라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
나인성 과부를 먼저 찾으시고 불쌍히 여기셨듯이, 오늘 이 새벽 부족한 저희를 주님께서 먼저 찾아와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오래되어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기도제목들 앞에서 스스로의 부정함이라 여겨 낙심하고 포기했던 모습을 용서하여 주시고, 그 경계를 넘어 찾아오시는 생명의 주님을 다시금 붙잡게 하여 주시옵소서.
더욱이 성도님들의 가정을 위해 기도합니다. 특별히 자녀와 손주들의 신앙을 붙들고 눈물로 기도하시는 모든 부모의 마음을 주님께서 아시오니, 그 눈물을 결코 외면치 마시고 나인성 과부에게 하셨던 것처럼 그 자녀들을 살려주시고 다시 세워주시옵소서.
또한 몸이 연약하고 거동이 불편하신 성도님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친히 손대어 주사, 질병과 아픔 가운데서도 일어나 걷는 은혜를 부어 주시고, 이 새벽 자리로 나오지 못하신 분들의 마음까지도 주님께서 찾아가 만나주시옵소서.
담임목사님의 휴가 기간을 지켜 주시옵소서. 몸과 마음에 참된 안식과 새 힘을 더하시고, 강건한 모습으로 돌아오셔서 맡으신 사명을 다시 기쁨으로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익산중앙교회의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합니다. 청년들과 아이들을 보내주시고, 자라나게 하신 이유는 오직 성도님들의 눈물의 새벽 기도 때문이라 믿습니다. 이 기도 속에서 아이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믿음의 다음 세대로 굳게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혼란한 시대 속에서도 이 땅의 교회들이 소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돌보심을 증거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새벽, 간절한 마음으로 엎드린 모든 성도님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저희를 먼저 찾아오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시고, 그 은혜를 힘입어 승리하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를 찾아오시고 살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천천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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