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교회, 그리고 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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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봉독
성경 봉독
고난 당한 자가 마음이 상하여 그의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로하는 기도
1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하게 하소서
2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3 내 날이 연기 같이 소멸하며 내 뼈가 숯 같이 탔음이니이다
4 내가 음식 먹기도 잊었으므로 내 마음이 풀 같이 시들고 말라 버렸사오며
5 나의 탄식 소리로 말미암아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
6 나는 광야의 올빼미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7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8 내 원수들이 종일 나를 비방하며 내게 대항하여 미칠 듯이 날뛰는 자들이 나를 가리켜 맹세하나이다
9 나는 재를 양식 같이 먹으며 나는 눈물 섞인 물을 마셨나이다
10 주의 분노와 진노로 말미암음이라 주께서 나를 들어서 던지셨나이다
11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시들어짐 같으니이다
12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에 대한 기억은 대대에 이르리이다
13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라 정한 기한이 다가옴이니이다
14 주의 종들이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하며 그의 티끌도 은혜를 받나이다
15 이에 뭇 나라가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며 이 땅의 모든 왕들이 주의 영광을 경외하리니
16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의 영광 중에 나타나셨음이라
17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그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아니하셨도다
18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
19 여호와께서 그의 높은 성소에서 굽어보시며 하늘에서 땅을 살펴 보셨으니
20 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
21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22 그 때에 민족들과 나라들이 함께 모여 여호와를 섬기리로다
서론: 침묵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길을 잃은 기도
서론: 침묵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길을 잃은 기도
우리는 지금까지 주의 은혜로 살아왔습니다. 마음이 상하여 근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여러 상황들로 인해 괴로워 울부짖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로의 말씀을 더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언제나 우리를 도우시고 위로하시고 만나주셨던 하나님이 더 이상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 주시지도, 여러분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지도, 여러분을 만나주시지도 않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언젠가는 들어주시겠지' 하며 막연하게 버티시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은 이제 나를 떠나셨구나' 하며 좌절하고 포기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침묵을 만난 우리의 기도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또한 내 문제에만 몰입되어 애간장을 태우던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아야 진정한 회복을 경험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오늘 시편 102편을 기록한 시인 역시 우리와 똑같은, 어쩌면 더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본문의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를 잃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있던 시기입니다. 그들이 누렸던 자유는 짓밟히게 되었고, 기쁨으로 예배하던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져 돌무더기와 먼지만 남은 절망의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목이 터져라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지만,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하늘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오늘 이 저녁, 고난 당하여 마음이 상한 이 시인의 기도를 통해, 꽉 막힌 나의 고난을 풀어갈 진짜 열쇠를발견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1: 내 고통의 진짜 이유를 직시하십시오 (나의 문제에 매몰된 신앙)
본론 1: 내 고통의 진짜 이유를 직시하십시오 (나의 문제에 매몰된 신앙)
말씀에 들어가기 앞서, 오늘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1절부터 11절까지를 눈으로 쭉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한 번 쭉 살펴 보시니, 시인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시인은 정말 처절하게 울부짖고 있습니다. 4절을 보니 입맞도 뚝 떨어졌고, 5절을 보니, 살이 뼈에 붙을 정도로 몸이 마르게 되었습니다. 또 밤을 지새우는 외로운 참새처럼 철저히 고립되어 있는 것이 시인의 상황입니다(7절).
우리의 인생도 이럴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재정적인 위기가 찾아와서 우리의 마음을 힘겹게 하기도 하고, 육체의 질병으로 인해 우리의 가슴이 철렁이기도 합니다. 또 가까웠던 관계가 깨어져서, 광야의 올빼미처럼 홀로 공허와 어둠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찾아온 고난은 이토록 우리를 참 힘겹게 합니다.
성도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고난 앞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나의 고통에 너무 깊이 매몰되어, 내 시선이 오직 '내 문제'에만 갇혀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고통이 찾아오면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당장 이 문제 좀 해결해 주세요. 이 고통만 없애주시면 제가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몸속에 심각한 염증이 생겨서 열이 펄펄 끓고 온몸이 찢어질 듯 아픕니다. 그런데 병원에 가서 "내가 왜 아픈지는 묻지 않을 테니, 당장 안 아프게 진통제만 놔주세요!"라고 매달릴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겠죠. 진통제를 맞으면 당장 몇 시간은 고통을 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인 염증을 치료하지 않으면, 결국 고통은 다시 발생하고 나의 생명은 또 다시 위협받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가 이와 같을 때가 많습니다. 내 삶이 무너진 근본적인 원인은 보지 못한 채,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급급하게 진통제만 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기도의 실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시인이 11절까지 그토록 식음을 전폐하며 간절히 하나님을 부르짖었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내 몸이 아프고 내 상황이 힘들어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시인의 고통에는 더 깊고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본문 3절을 다시 한 번 보시길 바랍니다.
"내 날이 연기 같이 소멸하며 내 뼈가 숯 같이 탔음이니이다"
시인의 코끝에는 지금 매캐한 연기 냄새가 맴돌고 있습니다. 시인의 눈앞에는 까맣게 타버린 숯덩이들이 아른거립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바벨론 군대에 의해 짓밟히고 불타버린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던 그 영광스러운 예배당이 잿더미가 되던 날, 시인의 모든 신앙의 추억과 삶의 기반도 함께 불타버렸습니다. 즉, 시인이 밤을 새우며 재를 양식처럼 먹고 눈물을 마셨던(9절) 진짜 이유는, 단지 내 개인의 삶이 힘들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내 삶의 중심이었던 예배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임재가 머물던 교회가 잿더미가 되어버린, 그 참상을 보며 애통해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삶의 모든 고난을 끝내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당장 내 눈앞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진통제' 같은 기도를 넘어, 불타버린 나의 예배와 교회의 회복을 향해 애통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본론 2: 잿더미에서 눈을 들어 무너진 시온(교회)을 품으라
본론 2: 잿더미에서 눈을 들어 무너진 시온(교회)을 품으라
그러나 이 다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우리는 아주 솔직한 의문을 마주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마음속으로 이렇게 묻고 싶으실 것입니다. "아니 전도사님, 지금 내 가정이 흔들리고, 내 건강이 무너지고, 내 재정이 바닥나서 고통스러운데... 왜 내 삶을 고쳐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갑자기 무너진 시온과 교회를 회복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까?"
과거 바벨론에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불탔다는 것은, 그들의 삶이 무너진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교회와 삶이 구분된 것이 아니라 하나였던 것이었죠.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다릅니다. 내 삶은 내 삶이고, 교회는 교회라고 철저히 분리해서 생각합니다. 내가 겪는 고통은 개인적인 문제이지, 교회나 예배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적인 원리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나무를 한 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나뭇가지 하나가 시들어가고 병들었습니다. 그 가지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잎사귀를 닦아주고 가지에 약을 발라주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뿌리가 박힌 토양'을 살리는 것입니다. 토양이 병들고 뿌리가 썩어가는데, 나뭇가지 혼자 푸르스름 하겠습니까? 겉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할지라도, 그 나무는 곧 썩어, 생명을 잃게 될 것입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르고, 우리를 그의 '지체, 곧 가지'라고 부릅니다. 즉, 교회와 예배는 가지된 우리가 생명수를 공급받도록 도와주는 영적인 토양이라는 것입니다.
내 삶의 건강, 재정, 관계라는 가지들이 시들어간다면, 우리는 당장 내 잎사귀를 푸르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내 영혼의 뿌리가 내린 '예배의 자리, 교회의 영적 상태'가 무너져 있는 것에 있습니다. 시온, 곧 예배와 교회가 무너져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은혜의 공급이 끊어졌는데, 그 지체인 내 개인의 삶이 멀쩡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 삶의 진정한 회복은, 곧 무너진 나의 예배와 교회가 회복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본문의 시인은 이 깊은 영적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11절까지의 자기 연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12절부터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저 무너진 시온을 다시 세워 주시기를 기대하며 확신하기 시작합니다(13절).
특히 14절을 보시길 바랍니다. 시인이 시온의 회복을 위해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주의 종들이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하며 그의 티끌도 은혜를 받나이다"
지금 예루살렘 성전은 화려한 건물이 아닙니다. 다 불타버려서 돌무더기가 되었고, 굴러다니는 티끌, 곧 먼지가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패배자들의 잔해이고 조롱일 뿐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그 '돌들'과 '티끌'조차도 즐거워하며 은혜를 받는다고 고백합니다. 비록 지금 우리의 교회가 세상이 보기에 연약해 보이고, 우리의 예배가 무너져 흩날리는 재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던 그 교회를 포기하지 않고, 가슴에 품고 눈물로 끌어안으며,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실 것을 기대하고 확신하는 것이 바로 시인이 하고 있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성도가 회복해야 할 기도입니다. "내 문제부터 해결해 주세요"가 아니라, 무너진 예배의 처소를 바라보며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과연 이 기도를 어떻게 들으실까요? 17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그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아니하셨도다"
여기서 '빈궁한 자'는 가난한 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잿더미 같은 고난 속에서도, 자기 삶을 구걸하기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교회'를 걱정하며 부르짖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의 기도를 결코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내 고통의 한복판에서 시선을 들어 교회를 품고 기도할 때, 주님은 무너진 시온을 회복시키실 뿐만 아니라, 빈궁한 자의 삶까지도 완벽하게 다시 세워 주실 것입니다.
본론 3: 회복된 시온을 통해 열방과 새 창조의 비전을 보라
본론 3: 회복된 시온을 통해 열방과 새 창조의 비전을 보라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살펴보고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빈궁한 자의 기도는 ‘내가 잘 살게 되고 우리 교회가 부흥하는 것'으로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우리의 좁은 기도를 초월합니다. 우리가 잿더미가 된 교회를 위해 눈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울타리를 넘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을 향해 흘러갑니다.
먼저 본문 15절을 보시길 바랍니다.
"이에 뭇 나라가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며 이 땅의 모든 왕들이 주의 영광을 경외하리니"
또한 22절은 "그 때에 민족들과 나라들이 함께 모여 여호와를 섬기리로다"라고 선포합니다.
여러분, 시인이 바라보고 있는 '뭇 나라와 민족들', 즉 열방은 본래 어떤 존재들입니까? 우리와 교회는 긍휼을 입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지만, 열방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지도, 경외하는 법도 모른 채 오히려 이스라엘을 조롱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결국 영원한 멸망과 심판 아래 놓일 수밖에 없는 어둠 속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는 참으로 크고 놀랍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너진 시온과 우리의 삶을 다시 세우시는 이 회복의 드라마를 통해, 심판받아 마땅한 저 열방에게까지 구원의 빛을 비추십니다. 회복된 교회의 영광을 통해, 하나님을 모르던 세상의 통치자들과 민족들이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게 하십니다.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가 선포되는 장엄한 장면입니다.
더 나아가 이 영광스러운 은혜는 본문 18절을 통해 위대한 '새 창조'의 역사로 확장됩니다.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
여기서 시인이 고백한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라는 표현을 깊이 묵상해 보길 원합니다. 성경의 첫 권인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캄캄한 흑암과 혼돈 속에서 빛과 생명을 지어내실 때 쓰셨던 단어가 바로 '창조(바라, בָּרָא)'입니다. 놀랍게도 그 위대한 창조의 단어가 오늘 본문에서 똑같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시간이 흘러 다음 세대가 태어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영원한 멸망 아래 놓여 소망이 없던 자들의 운명이 완전히 뒤바뀌는 기적을 의미합니다. 흑암 같던 열방의 인생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빛처럼 임하여, 죽음의 처지에 있던 자들이 이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영광스러운 존재, 즉 '새 창조'를 입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너진 교회를 다시 세우시는 이 사건을 통해, 태초의 그 놀라운 창조 역사를 지금 죽어가던 열방의 영혼들 속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흘린 눈물의 기도로 교회의 영적인 토양이 회복되고 다시 생명수가 흘러갈 때, 그 뿌리를 통해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에 합당한 '새 창조의 백성'들이 끊임없이 일어날 것입니다. 언약 백성인 우리도, 심판 아래 버려졌던 열방도 마침내 함께 지음 받아 한목소리로 여호와를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거대한 구원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가슴 벅찬 우리의 본질을 고백하게 됩니다. "아, 나도, 우리 교회도, 그리고 저 열방도...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창조되어, 영원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지음 받았구나!"
우리의 고난이 결코 헛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흘리는 빈궁한 자의 눈물을 통해, 온 인류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새 창조의 아침을 열어가고 계십니다.
결론: 해산의 수고를 통해 새 창조의 아침을 맞이하십시오
결론: 해산의 수고를 통해 새 창조의 아침을 맞이하십시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겪고 있는 캄캄한 고난 때문에 마치 뼈가 타들어 가는 것 같고, 밤을 지새우는 참새처럼 홀로 남겨진 것 같으십니까?
이제는 잿더미 같은 고난의 자리에 주저앉아 있지 마시고, 고개를 들어 무너진 우리의 예배와 교회를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영원하신 주님을 향해, 이 땅의 교회와 우리의 무너진 예배를 회복시켜 달라고 간절히 부르짖읍시다.
우리가 빈궁한 자의 마음으로 교회를 품고 눈물로 기도할 때, 나의 고난은 결코 단순한 아픔이나 허무한 불행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 삶의 얽힌 문제를 풀어내는 기적이 되고, 메마른 교회를 다시 살리는 생명수가 되며, 하나님을 모르는 열방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은혜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마침내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새 창조를 잉태하는 가장 위대한 '해산의 수고'로 쓰임 받을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의 이 좁고 외로운 기도의 골방이, 무너진 교회를 세우고 열방을 살리는 위대한 은혜의 진원지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기도제목
이시간 들은 말씀을 묵상하며 함께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지금껏 힘든 일이 찾아올 때마다 근본적인 원인은 돌아보지 않고, 당장 내 문제만 해결해 달라고 떼쓰며 기도하지는 않았는지 우리 모습을 돌아봅시다. 내 영혼의 뿌리인 예배와 교회가 무너져 가는데도, 오직 '내 문제'와 '나의 편안함'만 생각하며 교회의 아픔을 모른 척했던 우리의 이기적인 마음을 이 시간 철저히 회개합시다.
동시에, 이렇게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지만, 교회를 사랑하며 흘리는 우리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고 크신 은혜로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우리의 작은 기도를 통해 내 삶을 회복시켜 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까지 새롭게 빚어 주님을 찬양하게 하시는 그 놀라운 사랑에 감사합시다.
이제는 내 앞의 캄캄한 현실만 바라보던 시선을 들어, 영원하신 하나님과 무너진 교회를 온전히 바라보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간구합시다. 나의 아픔이 그저 나 혼자만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교회를 다시 세우고 생명을 살리는 귀한 수고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 삶의 가장 힘든 잿더미 위에서도 눈물로 예배의 자리를 지켜내어, 마침내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이루어가는 우리 제일영도교회 모든 성도가 되게 해달라고, 이 시간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 맞추며 다 함께 회개와 결단의 기도로 나아가시겠습니다.
(‘상한 마음의 한 예배자’ 찬양하시겠습니다.)
2. 찬양의 가사를 생각하며 다시 한 번 기도하길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지내온 130년이라는 시간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져서, 혹시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가 그저 습관처럼 '또 한 번 지나가는 예배'가 되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돌아봅시다. 고난을 만날 때면 요동치는 내 감정을 그대로 예배의 자리로 끌고 와서, '오늘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주시는지 안 주시는지'를 시험하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혹 우리의 마음 가운데 이러한 모습이 있다면, 우리의 예배는 무너진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보다 내 기분과 내 문제가 주인이 되어버린 우리의 모습을 이 시간 솔직하게 회개합시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가장 크고 중요한 목적은 당장의 고난을 피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온전한 '예배자'로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배자로 부름받은 우리'의 진짜 정체성입니다.
이 시간, 잃어버렸던 그 예배자의 자세와 정체성을 다시 한 번 회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주님, 당장 눈앞에 닥친 고난과 요동치는 내 감정에 속지 않게 하옵소서. 익숙함에 젖어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영과 진리로 드려지는 온전한 예배를 갈망하게 하옵소서. 내 문제에만 갇혀 있던 시선을 들어, 주님이 찾으시는 '상한 마음의 한 예배자'로 서게 하옵소서."
무너진 예배를 회복하고, 우리 제일영도교회가 참된 예배자들의 공동체로 온전히 세워지기를 소망하며, 이 시간 주님을 향해 다 함께 합심하여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시겠습니다.
3. 계속해서 주의 몸 된 교회와 세워주신 직분자들을 위해 기도하시겠습니다.
오늘 시편 본문 14절은 무너진 시온이 회복될 때, "주의 종들이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하며 그의 티끌도 은혜를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무너진 예배와 교회가 온전히 회복되기 위해서는, 잿더미가 된 교회의 티끌조차 가슴에 품고 눈물로 섬기도록 부름받은 '주의 종들', 즉 모든 직분자의 헌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시간 먼저 우리 교역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담임 목사님의 목양 사역 위에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이 늘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말씀을 준비하시고 선포하실 때, 그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와 기꺼이 순종하려는 믿음의 결단이 넘쳐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또한 함께 동역하는 모든 교역자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부어 주셔서, 한 신앙고백과 한마음으로 교회의 예배를 든든히 세워가는 사역자들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둘째로 장로로, 권사로, 집사로 부름받은 우리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이 거룩한 직분이 결코 무거운 짐이 아니라, 십자가의 깊은 은혜를 누리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우리 모든 직분자가 교회의 돌들과 티끌조차 사랑하는 마음으로 먼저 겸손히 섬기고 사랑으로 하나 될 때, 그 헌신을 통해 주의 몸 된 교회가 세상의 거센 풍파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든든히 세워질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더해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우리의 참된 예배가 온전히 회복되기를 소망하며, 교회를 섬기도록 세움받은 모든 직분자를 위해 이 시간 다 함께 소리 내어 기도하시겠습니다.
4. 우리 교회의 다음 세대인 교육부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합시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모든 교육부서가 여름 사역을 무사히 잘 마치고, 다시 일상의 예배 자리로 잘 나아가게 하심에 감사합시다. 하지만 성도 여러분, 여름 사역을 마쳤다고 해서 올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을 다 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진짜 영적 훈련의 시작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는 극심한 이기주의와 무한 경쟁주의가 팽배해 있습니다. 그 거센 세상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며, 계속해서 세상의 헛된 성공만을 향해 질주하도록 강요받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 아이들은 교회보다 내 인생을 더 아름답고 꿀리지 않게 만드는 것을 더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우리가 이 시간 간절히 구해야 할 것은, 우리 다음 세대 아이들이 세상의 썩어질 것에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고 허비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눈앞의 유한한 현실에 좌절하여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본문의 시인처럼 '영원한 소망이신 하나님'만을 온전히 바라보는 아이들로 자라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나 혼자 잘 살기 위해 노력했던 이기주의를 버리고, 무너진 '주의 교회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빈궁한 자들’이 되게 해달라고 간구합시다.
세상 속에서의 삶과 교회를 향한 예배가 온전히 일치되는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리하여 장차 우리 교회를 든든히 세워갈 새 창조의 백성들로 자라나게 해달라고,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해 이 시간 다 함께 합심하여 기도하시겠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함께 찬양하시겠습니다.)
5. 계속해서 영육 간에 어려움을 겪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오늘 시편 102편의 시인처럼, 질병의 고통과 삶의 무거운 짐 속에서 뼈가 숯같이 타들어 가고 마음이 풀같이 시들어버린 지체들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는 질병 앞에서도, 삶의 작은 위기 앞에서도 흩날리는 먼지처럼 쓰러질 수밖에 없는 참으로 유한하고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방금 부른 찬양의 가사처럼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 힘을 받아 살게 하신 것'이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짓누르는 고난이 아무리 깊고 막막할지라도, 천지는 다 변하여도 홀로 영존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참된 소망이 되어주십니다. 이 시간 아파하는 지체들을 가슴에 품고 간절히 기도합시다.
"주님, 비록 육신과 마음은 무너져 내릴지라도, 우리의 고난보다 크시고 영원하신 하나님만이 저들의 진정한 피난처요 '영원한 거처'가 되어 주시옵소서. 사랑 없는 거리나 험한 산길을 헤매는 것 같은 막막한 고통 속에서도,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주신 그 크신 은혜를 기억하게 하옵소서. 이제는 주님의 손을 굳게 잡고, 나의 영원한 거처가 되시는 아버지의 품 안에서 참된 회복을 누리며 다시 찬송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되시는 주님께서 병든 지체들을 어루만져 주시기를 간구하며, 이 시간 간절한 마음으로 다 함께 합심하여 기도하시겠습니다.
6. 마지막으로 열방에 흩어져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시는 선교사님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먼저 선교사님들의 영육을 보호해주시고 그들에게 새 힘을 더하여 주시길 기도합시다. 낯선 땅에서 겪는 질병과 재정적 어려움, 그리고 수많은 영적 공격으로부터 선교사님과 그 가정을 지켜주시길 기도합시다. 고된 사역 속에서도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날마다 깊이 경험하게 하시고, 지치지 않는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해 주시길 기도합시다.
또한 복음의 문을 열어주시고 그 곳에 풍성한 열매가 맺히길 기도합시다.
선교사님들이 밟고 기도하는 땅마다 우상과 어둠의 권세가 다 무너지게 하시고, 십자가의 복음이 선포될 때마다 닫혀 있던 영혼들의 마음 문이 열리고, 참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생명의 땅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선교사님과 그의 가정을 위하여, 그리고 복음의 씨앗이 심겨진 선교지의 복음화를 위하여 함께 기도하신 이후에
각자 가져오신 제목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