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경험하는 예배
Notes
Transcript
Handout
셀 세미나(전주 온고을 교회)
셀 세미나(전주 온고을 교회)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세상은 공동체로부터 시작해서 공동체로 마무리한다.
창조는 하나님 공동체에서 아담 공동체로, 종말은 개인의 구원을 넘어 공동체의 전면적 회복으로
창조는 공동체로 거하시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은 아담 공동체로 완성된다.
종말은 개인 구원을 넘어 공동체의 전면적 회복을 지향하며 계시록은 마무리 된다.
이필찬 교수의 주해와 설교 시리즈 (서울: 에스카톤, 2022), 947쪽–950쪽.
그레고리 K. 빌와/과데이비드 H. 캠벨, 그레고리 빌 요한계시록 주석, trans 김귀탁 (서울: 복 있는 사람, 2015), 822쪽.
Christopher T. Holmes, Unspoiled Endings: Reclaiming the Book of Revelation from Misuse and Neglect (Minneapolis, MN: Fortress Press, 2024), 78쪽.
성경을 공동체라는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삼위일체의 완전한 교제, 그 교제에 참여하도록 부르심, 성경이 공동체 속에서 형성, 전인적 건강의 회복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완전한 교제 속에 거하시며
자신의 형상으로 만든 사람들을 그 교제에 참여하도록 부르셨고,
성경의 정경은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 속에서 형성되고 확인되었으며,
구원은 하나님 창조의 전체 몸의 건강(신체/사회/정서/영)에 대한 전인적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F. Scott Spencer, Luke, ed Joel B. Green, The Two Horizons New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9), 15쪽.
삼위일체는 예배 공동체
삼위일체 내에서 성부가 성자를 높이고, 성자가 성부를 높이며, 성령이 둘을 축하하는 사랑의 관계에서 창조가 흘러나며,
삼위일체가 함께 우주를 만들어 그것을 아름다움, 신비, 영광으로 채운다.
Mike Cosper, Rhythms of Grace: How the Church’s Worship Tells the Story of the Gospel(Wheaton, IL: Crossway, 2013), 30쪽–31쪽.
사도 바울은 인간의 구속은 성부, 성자, 성령의 결합된 활동으로,
(1)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하며 사랑이 그것을 시작하고,
(2) 그것은 성자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역사적으로 이루어지며, 고 주장한다.
(3) 그것은 성령의 능력을 통해 신자들의 삶 속에서 실현된다
Jonathan Gibson, “The Glorious, Indivisible, Trinitarian Work of God in Christ: Definite Atonement in Paul’s Theology of Salvation”, in From Heaven He Came and Sought Her: Definite Atonement in Historical, Biblical, Theological, and Pastoral Perspective, ed David Gibson와/과Jonathan Gibson (Wheaton, IL: Crossway, 2013), 364쪽–365쪽.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아담 공동체는 에배 공동이다.
하나됨의 형상, 하나됨의 복
삼위일체 하나님은 아담 공동체를 하나 됨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시고, 하나 됨의 복을 쫓아 살게 하셨다.
예배 공동체로의 초대
그것은 곧 예배 공동체로의 초대이다.
공동체의 형상을 따라, 공동체의 번영과 축복을 위해 살아가는 자로 부름받았다는 뜻이다.
죄와 불순종: 예배 공동체의 상실
하지만, 불순종의 죄로 인해 더 이상 형상과 복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구원을 상실한 공동체는 상처 주고, 받으며 일그러져 버렸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예배는, 예배 공동체로의 회복
오늘 하나님을 경험하는 예배로의 초대에
기쁨으로 응하시는 이곳에 참석한 온고을 제자 교회 성도 공동체이기를 축원함!
[본론]
1. 초대
1. 초대
1) 감격으로의 초대
1) 감격으로의 초대
창조는 감격이다 : ‘토브’ (טוב)
하나님의 창조 사역 곳곳에 하나님의 감격이 묻어 있다.
창세기 1장에서는 ‘좋았더라!’라고 하는 ‘토브’ (טוב)가 7번이나 반복해서 나온다.
: 좋다(출 3:8; 욥13:9), 아름답다(민 24:5; 아 4:10), 선하다(26:29; 잠 18:5), 충실하다(시 112:5; 전 5:4), 기쁘다(삼상 25:36)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우리를 창조의 감격으로 초대하신다.
2) 친밀함으로의 초대
2) 친밀함으로의 초대
하나님은 친히 자신의 손으로 인간을 빚으시고, 또한 친히 자신의 생기를 불어 넣었다.
모든 창조물 중에 유일하게 아담만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으로 지음받았다.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예배는 손으로 직접 빚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시도록 친밀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초대이다.
3) 회복으로의 초대
3) 회복으로의 초대
에덴의 유일한 결핍: 아담의 독처
에덴의 유일한 결핍은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결핍을 그냥 두고 보실 수 없어서, 그를 위해 돕는 베필을 지으셨다.
창세기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예배는 모든 결핍에서 회복시키는 초대이다.
4) 일상으로의 초대
4) 일상으로의 초대
창조를 완성하신 하나님은 아담에게 제일 먼저 하신 일은 ‘일’을 주심이다.
창세기 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하나님의 관심은 교회라는 공간에 국한된 일요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다. 매일이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거룩으로 가득차기를 말이다. 예배는 삶으로의 초대이다.
2. 거절
2. 거절
하지만, 아담은 하나님의 초대를 거부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어버렸다.
아담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초대를 다양한 방법으로 거절한다.
1) 감격의 거절 : 전통과 예전으로
1) 감격의 거절 : 전통과 예전으로
한국교회는 100여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훌륭한 전통과 예전으로 세계사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영광을 이루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전통과 예전은 감격과 은혜를 가로막는 울타리가 되었다.
하나님의 임재보다 그동안 해 오던 예배의 방법과 형태가 더 중요했다.
ex) 안산동산교회에서 사역할 때 전통과 예전을 바꾸려다가 엄청나게 많이 욕먹었다. 무대 위에 있던 드럼을 50cm 정도 높이되는 단 위에 올렸다가 사임할 뻔 했다. 소통이 안 됐다는 것 때문이다. 정말 이건 전통을 바꾼 것도, 예전을 지키지 않은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한국 교회의 예배는 전통과 예전으로 가득하다.
성령님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2) 친밀함의 거절 : 권위와 거룩으로
2) 친밀함의 거절 : 권위와 거룩으로
당연히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있을리 만무하다. 친밀할 수 없다.
크리스탠덤(Christendom)과 하이라키(Hierarchy)
종교개혁이 일어났지만, 여전히 크리스탠덤(Christendom. 기독교가 지배하는 국가나 사회)은 무너지지 않았다. 교회는 군대 조직과 더불어 하이라키(Hierarchy. 계층) 시스템이 가장 강력한 보수집단이 되었다.
임재의 계단식 순서
심지어 하나님의 임재도 권위를 지켜야 한다. 질서를 따라 온다.
담임목사 - 사역자 - 장로 - 권사 - 집사 순으로 말이다.
거룩의 왜곡된 되물림
거룩의 내용이 아니라, 거룩의 형식만 되물림 된다. 한국교회의 거룩은 중세의 거룩과 너무나도 닮았다.
ex) 예전에, 성경을 뛰어 넘거나, 강대상에 올라가거나, 주일날 먹을 것을 사먹으면
거룩하지 못하다고 엄청 혼났다.
왜곡된 거룩의 굴레
물론, 이전에 비해, 신앙 생활이 약간 자유로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거룩의 굴레에 묶여 있다.
3) 회복의 거절 : 매너리즘과 익숙함으로
3) 회복의 거절 : 매너리즘과 익숙함으로
임재의 가장 큰 적은 매너리즘과 익숙함이다.
한국교회의 예배는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믿음 좋은 성도는 1년에 예배를 500번 이상 드린다.
하지만, 그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에 사로잡혀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임재보다 버스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나, ‘~있을찌어다!’라는 축도의 마무리가 더 강력하다.
그 소리를 들으면 임재가 딱 멈추어 버리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익숙한 매너리즘의 예배가 악습으로 굳어져 버렸다..
4) 일상의 풍성함을 거절 : 이원론과 자본주의로
4) 일상의 풍성함을 거절 : 이원론과 자본주의로
“교회는 선이고, 세상은 악이다! 선을 행하기 원한다면 교회에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한국교회에 만연한 이원론이다.
목사나 선교사, 교회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은 거룩하고 나머지는 다 세속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상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일요일 교회 안에만 거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일요일 교회에 안에만 거하신다. 목사님의 설교와 찬양 가운데 말이다.
그럼, 직장과 사업장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이 주인인 거다.
그러니 아주 당연히 삶의 풍성함은 거절되었거나 단절 된 상태 일 수 밖에 없다..
특별히, 자본주의의 달콤함에 유혹되었다고 판단 될 때는, 스스로 더더욱 하나님의 임재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다. 안타깝지만 말이다.
3. 은혜
3. 은혜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놀라운 소식 곧, 복음은 이렇게 말한다.
2000년전 갈보리산 위의 십자가는 모든 거절과 단절을 해결하셨다는 거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에 오르실 때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
하나님 나라 : 예배 공동체의 회복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것은 무너진 예배의 회복, 왜곡된 예배 공동체의 회복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전인격적 회복이 일어난 새로운 피조물, 새 존재가 되었다.
더 이상 거절과 단절의 종노릇하지 않아도 되고,
우리는 새 생명을 얻은 자로 풍성한 삶을 살아내도록 부름 받았다.
다시 은혜로 부름 받았다.
1) 감격의 은혜 : 하나님의 형상임을 발견함으로
1) 감격의 은혜 : 하나님의 형상임을 발견함으로
하나남은 죄로 인해 예배를 상실한 포로된 백성을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원하신다.
모세는 홍해를 건너 신광야에 이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창세기 말씀을 대언한다.
더 이상 포로가 아니라, 구원이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임을 깨달으라는 메시지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노예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선포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더 이상 자본주의와 세상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임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감격의 은혜로의 초대이다.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종의 예배, 아들의 예배
하나님의 아들로 딸로서의 초대말이다. 더 이상 종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다.
DEI CHURCH(하나님의 교회)
예배는 하나님의 형상 Imago Dei로의 회복이다. 그게, 데이처치의 첫번째 의미이다.
데이처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자들이 하나님의 앞서일하심을 믿는 교회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다. 안산홍이 이 멋진 말을 빼앗아갔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다. 그것은 안산홍이 아니라 우리의 외침이어야 한다.
예수의 십자가는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켰다. 우리 모두가 말이다.
목사나 선교사, 중직자들 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베드로전서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새로운 종교 개혁적 외침이 필요하다.
2) 친밀함의 은혜 : 셀 공동체의 하나됨으로
2) 친밀함의 은혜 : 셀 공동체의 하나됨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이들의 하나된 곳이 셀이다.
그곳엣는 서로, 피차, 함께 사랑하는 일이 일어난다.
하나 되기 위해 기도하지 말고, 하나되어 기도하라 -에디레오-
인도네시아 아바러브 교회 에디레오 목사는 “하나되기 위해 기도하지 말고, 하나 되어 기도하라!”고 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었다. 이미 하나 되었다.
셀은 하나 되는 곳이 아니라, 하나 임을 발견하는 곳이다.
셀 공동체는 새롭게 하나 되어야 할 곳이 아니라, 이미 하나 되었음 발견하는 현장이다.
그럴 때, 이런 일이 일어난다.
야고보서 5: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하나되어 기도할 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기적을 발견하는 장소이다.
하나되어 기도할 때 복음의 능력이 새 생명에게 흘러감을 발견하는 재 창조의 장소이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을 통해 죄에서 자유를 얻고, 치유와 소망과 비전이 넘쳐남을 발견하는 장소이다.
오늘도 우리가 하나되어 기도할 때 셀 가운데 그 은혜의 역사가 넘쳐나기를 소망한다.
3) 회복의 은혜 : 강권적으로 역사하시는 대그룹 예배의 임재로
3) 회복의 은혜 : 강권적으로 역사하시는 대그룹 예배의 임재로
하나된 셀의 역사는 주일 예배에 고스란이 스며든다.
하나됨의 은혜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교회를 찾아오는 것은 설교 때문이다.
하지만, 설교로 성도의 성장과 존재적 변화는 아주 간혹 일어난다.(사실, 그것도 기적이기는 하다)
성도의 성장과 존재의 변화는 하나됨을 경험할 때이다.
교회 공동체와 하나될 때 함께 믿음의 여정을 걸어갈 수 있다.
주일 대예배는 그 은혜를 흘려 보내는 통로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드러내는 현장이기도 하다.
공동체가 함께 구원의 감격을 고백하고 선포할 때,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게 된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땅에서 우리의 신을 벗고, 그분의 부르심에 반응하게 되는 현장이 된다.
그 강력한 부르심으로 무너진 삶과 인생이 회복되고, 성령의 강력한 역사에 사로잡히는 오순절 다락방이다.
4) 일상의 은혜 : 신앙과 삶의 균형으로
4) 일상의 은혜 : 신앙과 삶의 균형으로
하나님은 월요일에도, 화요일에도 계신다.
예배당 안에도, 가정에도, 직장에도 거하신다. 그곳에서 친히 임재하신다.
Everyday Church(날마다 교회)
그것이 데이처치의 두 번째 뜻이기도 하다.
Everyday 월화수목금토일 하나님의 일하심을 분별하는 교회말이다.
일요일 하루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신앙이 아니라, 매일을 주일로 보내는 삶의 은혜 말이다.
4. 누림
4. 누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예배에 대한 이론이 아니다. 누림이다! 경험이다!
오늘도 우리는 셀을 경험하기 위해 이곳에 모여있다. 내가 직접 경험해야만 알 수 있다.
1) 감격을 누려라!
1) 감격을 누려라!
하나님의 임재는 감격이다.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심도 감격이지만, 그 사건은 단회적이다.
매일 매주 우리가운데 임재하심은, 매일 매주 찾아오시는 성육신의 재생산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재발견이 일어나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감격을 놓칠 수 없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성육신 앞에 감격하지 않을 육체가 어디있겠는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예배는 성육신 하신 예수를 직접 만나는 것이다.
그 예수를 누려라! 그 예수로 감격하라! 나를 나 보다 더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2) 친밀함을 누려라!
2) 친밀함을 누려라!
성육신 하신 예수로 인해 그를 머리로 모시는 모든 셀 공동체는 하나 되었다.
아픔과 상처, 분노와 절망이 셀 공동체 안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죄책과 자책이 용기와 소망이 되어, 다시금 살 소망을 얻게 된다.
연약함과 죄를 가슴에 묻지 않고, 십자가 공동체 곧 셀 공동체 앞에 묻는 것이다.
가슴에 묻으면 병이 되지만, 십자가 앞에 묻으면 치유가 된다.
서로 사랑하는 셀 공동체를 맛보라! 성도로 살길 잘했다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맛을 흘려 보내기 위해 애를 쓰는 셀 맛집이 될 것이다.
복음이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신앙, 생명이 흘러가는 재 생산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는 친밀함과 위로를 경험하는 최고의 상담소가 될 것이다.
3) 회복을 누려라!
3) 회복을 누려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는 회복이다. 회복 그 자체이다.
가끔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항상 일어나는 것이다.
매너리즘과 익숙함의 탈을 벗어버리고, 성령의 파도를 타라!
병든 육체의 회복을 누려라! 귀신이 떠나가고 모든 질병의 치유를 누려라!
깨어진 정서의 회복을 누려라! 마음의 상처, 아픔, 고통 절망이 끊어지기를 소망하라!
무너진 사회성의 회복을 누려라! 깨어진 관계, 부족한 지혜, 멈추어진 열정, 재능의 회복이다.
영적 회복을 누려라! 첫사랑의 감격의 회복을 소망하라! 하나님만 사랑하는 존재로 회복하라!
셀 공동체를 온전히 누려라! 서로 사랑함으로 죄를 고백할 수 있는 공동체 말이다.
강권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에 사로 잡혀라! 영적 기적을 경험하라.
대그룹 예배, 곧 주일 예배때마다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맛보는 것이다.
다시 복음으로, 다시 성경으로, 다시 예배로 회복하는 것이다.
4) 일상을 누려라!
4) 일상을 누려라!
월요일을 기다리는 성도가 되라! 출근이 기다려지고, 일터가 기다려지는 성도 말이다.
그곳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기적과 역사가 기다려지는 성도로 삶을 살아내라!
하나님의 임재가 넘쳐나는 삶이 되는 거다 .
여러분의 삶은 그 자체로 거룩하고 경건하고, 경이롭고, 감격적이다.(뭐, 또 어떤 말들이 있을지 여러분 스스로 붙여보라! 모든 다 옳다. 감동이다~)
[결론]
하나님을 경험하는 예배는 지금도 나와 데이처치 공동체 가운데서 현재 진행형이다.
여전히 우여곡적을 건너가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예배 공동체는 진행 중이다.
3년 전의 일이다. 안산동산교회에서부터 2023년 7월까지 하나님을 경험하는 예배를 강의해 왔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예배를 강의할 정도이니, 데이처치 예배가 얼마나 뜨겁겠는가! 할렐루야!
13명의 성도와 함께 개척해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예배를 드렸더니, 3년이 지나고 70여명이 예배하는 뜨거운 공동체가 되었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치명적 과정을 지나면서, 여러모로 지쳐 갔을 그 때 였다.
우연히 연결된 외국인 찬양 인도자가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고, 함께 예배 할 수 있었다.
(참고로, 그 때까지 나는 교회에서 찬양인도를 거의 하지 않았다.)
주일 예배를 함께 하기 위해서 10시에 방문하게 되었을 때,
그가 ‘조지’라는 흑인 예배 인도자였다는 사실과, 2023년 에즈버리 부흥 운동이 일어날 때 찬양을 인도했다는 사실이었다.
하나님이 시대 가운데 쓰시는 인도자와 함께 찬양을 인도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되었지만, 큰 고민도 있었다.
그는 한국어를, 저는 영어를 1도 못한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함께 소통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하나님이 영어와 한국어 둘 다 있는 찬양을 선곡해서 부르면 되겠다는 지혜를 주셔서 해결했다.
하지만, 진짜 큰 두려움은 내면에 있었다.
데이처치는 낮은 문턱의 교회로 비신앙인이나 초신자, 불신자에게 적합한 교회이다.
까페에 가듯이 커피를 한 잔 들고 편안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곳 말이다.
그들에게 강력한 영적 집회를 한 다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다른 곳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찬양 인도를 한다는 것이 왠지 쑥쓰러웠다.
마치, 그동안 꽁꽁 숨겨 두었던 무언가를 들추어 내듯이 말이다.
이런 저런 고민이 가득한 아침 10시 조지가 문을 열고 공간쉼플에 들어왔다.
짧은 인사를 마치고, 갑자기 나를 조용한 공간에 불렀다. 기도를 해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이런 저런 교회 사역에 대한 것들과 두려움과 염려에 대한 이야기를 통역하는 분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다, 나를 뚤어지게 바라보는 조지와 눈이 맞았는데, 그는 이미 통역을 하기도 전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통역과 상관 없이 나에게 이렇게 말하며 기도해 주었다. “하나님이 당신의 사역을 기뻐하신다”
그 한 마디는 내 마음 깊숙한 곳에 머물러, 나를 찔렀다.
조지 안에 있는 성령이, 나에게 위로하셨다.
조지와 나는 처음 만났지만, 언어가 달라 전혀 대화도 없었지만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였다.
그날 2시간 30분 동안 예배했다.
예배가 마치고, 조지는 성도를 일일이 찾아가 기도해 주었고,
한 무신론자는 그날 기도 받고 그해 연말에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학습을 받았다. (슬프게도 지금은 데이처치를 출석하고 있지는 않는다)
공동체의 하나됨은 그 자체가 역사와 능력이다. 오늘 그 역사와 능력이 흘러가는 온고을 제자교회이기를 위해 기도한다.
몇 년 만에 셀 세미나 강의를 한다. 그것도 대구에서 말이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Day Church가 개척된지 7년이 흐렀는데, 그 동안 참 건강하게 셀 교회로 세워졌다는 거다.
13명의 성도들과 함께 시작해서 이제 40명 정도가 되었다. 눈에 보이는 셀 조직도, 어떤 셀 양육도 없어서, 우리는 아직 셀 교회라 말하기 어색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 강의를 통해 완전히 깨달았다.
Day Church는 선교적 여정을 꿈꾸는 선교적 셀 교회인 것을 말이다.
작년 7월 하나님은 데이처치에게 하나님을 경험하는 예배를 다시금 회복케 하셨다.
2023년 2월 8일 시작된 애즈베리 대학교 부흥을 아시는 분들이 있을 꺼다.
무려 멈추지 않고 2주 이상 지속된 기도 운동은 결국 미국 전역으로, 전 세계로 번져갔다.
그 때, 예배를 인도했던 ‘조지’라는 인도자가 기적적으로
Day Church에서 함께 찬양을 인도 할 기회를 하나님이 허락하셨다. 작년 7월 16일 주일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조지는 한국말을 못하고, 나는 영어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어와 한국어가 동시에 있는 찬양을 선곡해서
조지는 영어로, 나는 한국어로 찬양하기로 했다.
언어의 장벽은 그렇게 어거지로 해결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건, 개척을 하고 7년이 지나도록 내가 찬양인도를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는 거다.
이전 동산교회 사역을 본 사람도 얼마 없고, 생수의 강이나, 셀 세미나를 다녀온 성도들도 없었다.
그래서, 도대체 얼만큼 나를 보여야 할 것인지 고민할 정도였다.
심지어, 성도들 앞에서 제대로 된(?) 찬양 인도를 하려니깐, 쑥쓰럽기까지 하더라.
그런데다, 성도들이 대부분 교회를 처음 나오거나, 오래 되지 않은 신앙인들이어서,
깊은 영적 임재를 소망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되었다.
그런데, 당일 아침 조지를 만나고 모든 문제가 해결 되었다.
10시에 만나 찬양 연습을 하기로 했는데, 먼저 조지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기로 했다.
Day Church의 성도들이 아직 교회가 낯설어 하나님의 깊은 임재를 경험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통역을 하고 있는데, 나를 바라보던 조지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하나님이 데이처치를 너무 기뻐하신다는 것이었다.
조지의 기도를 받으며, 너무나도 큰 위로와 임재, 하나님의 친밀함을 경험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그 순간, 조지와 나는 셀이었다. 임재로 하나되었다.
임재는 모든 쑥스러움과 고민을 싹 씻어내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조지와 함께 2시간 30분을 찬양하고 기도했다.
끝난 이후에도 조지와 그의 아내는 성도들을 찾아다니며 기도해 줬다.
말도 통하지 않았지만, 조지와 하나 된 셀 공동체의 은혜는 강권적인 임재로 성도들에게 임했다.
그날 함께 예배했던 두 명의 무신론자들은 작년 12월 31일 하나님을 고백했다.
올 해 두 사람 모두 세례를 받겠다고 성도들 앞에서 고백한 상태이다.
나에게도 임재로 인한 변화가 일어났다.
몇 달 뒤 새롭게 깨달은 사실은, 2017년 개척하기 전까지
15년 간의 멈추지 않고 했던 사역으로 인해 예배에 대한 탈진이 왔다는 거다.
그래서, 사실 Day Church를 개척할 때 밴드 소리가 듣기도 싫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남들은 다들 Day Church가 굉장히 화려하고 웅장한 예배와 찬양이 넘칠 것이라 기대했지만, 정작 나는 그렇지 못했다. 7년간 말이다.
그런데, 하나되어 기도한 ‘조지’와의 셀과 강권적 예배로 인해 다시 찬양하게 되었다.
다시금 한국 교회 예배의 회복을 소망하게 되었다.
매주 주일 데이처치는 워십 플렛폼으로 예배한다. 한국 교회를 회복시킬 플렛폼으로 말이다.
매주 40~50명의 Day Church 성도들은 한국 교회 예배의 회복을 꿈꾸며 예배한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예배는 오늘 이 자리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난다.
하나된 우리를 통해 감격과 친밀함과 회복과 삶의 예배가 일어날 것이다.
그것이, 십자가의 약속이고, 그것이 성령의 거하심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한다.
[강의 후 식사 식사시간에]
대구 경북 지방 셀 세미나 주원교회 이수형 목사 18년 목회한 교회.
감격과 친밀함이 와 닿았다. 하나님의 임재가 손으로 와 닿게 하셨다.
안 걸어 가 본 길을 걸어 가 봐라
처음 걸어가는 길은 익숙지 않아 불편하기도 하고, 불안할 수도 있다.
이전에 가 본 길이라면, 너무 잘 알아서 뭔가 가기 싫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
이래나 저래나 힘들기는 매 한가지다.
그래서, 새로운 길을 가는 것도, 익숙한 길을 가는 것도 다 멈추라.
누군가 예수님과 함께 해변 가를 걷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생각난다.
아이러니하게도 발자국이 2개 밖에 없더란다.
예수님의 등에 업혀 걸어가기 때문이다.
혹시, 예수님을 업고 걸어가시는 분들이 계시는 않는가! 빨리 예수님을 내려 놓으셔라.
예수님과 2인 3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 묶임을 풀어내어 자유케 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