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고 담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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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Introduction): 은혜의 산을 내려와 세상의 가나안 앞에 선 우리

사랑하는 서울지구동팀 C맨 여러분, 그리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무거운 책임감과 거룩한 떨림으로 이 자리에 선 대표단과 순장, 순원 여러분.
우리가 그토록 사모하며 뜨겁게 눈물 흘렸던 순캠프의 마지막 밤, 이제 우리는 각자의 삶의 현장으로 파송받는 거룩한 예배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캠프 기간 동안 소리 높여 찬양했고, 순모임을 통해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뜨겁게 삶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짙은 임재 안에서 "이제는 내가 내 뜻대로 살지 않고 오직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두 주먹을 쥐고 결단했던 그 은혜의 감격이 지금 우리 심장 가운데 생생하게 고동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세상을 다 이길 것만 같은 영적 충만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제 냉정하게 우리가 마주해야 할 내일의 현실을 돌아봅시다. 이 파송예배의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우리 앞에는 어떤 현실이 기다리고 있습니까? 당장 다음 주부터 시작될 치열한 경쟁의 학기와 숨 막히는 학업의 부담, 보이지 않는 미래와 우리를 짓누르는 취업과 진로의 거대한 벽이 버티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 믿는 청년들을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취급하고 조롱하며, 달콤한 쾌락으로 유혹하는 캠퍼스의 세속적인 문화가 입을 벌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은혜받은 산 위에서의 찬란했던 축제는 이제 끝이 났고, 우리는 거칠고 척박한 삶의 현장, 즉 수많은 전투가 기다리는 '세상의 가나안'으로 내려가야만 합니다.
어쩌면 이 파송의 문 앞에서 우리 마음에 스며드는 것은 영적 자신감이나 환희보다는, "내가 과연 저 살벌한 세상에서, 저 냉랭한 캠퍼스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순장으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일 것입니다. 특히 새롭게 대표단으로, 임원으로, 리더로 서야 하는 지체들은 내가 감당해야 할 중압감과 나 자신의 철저한 한계 때문에 도망치고 싶은 막막함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여호수아 1장의 말씀은, 바로 이 파송의 문 앞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우리와 똑같은 심정을 가졌던 한 청년, 여호수아의 이야기입니다.
신명기 마지막 부분인 33장에 보면 모세가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을 위해 축복합니다. 각 지파 별로 축복의 말씀과 함께 이스라엘을 축복합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이렇게 강력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죽고, 그 오합지졸 같은 거대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이라는 미지의 적들과 싸워야 했던 여호수아. 성경은 그가 느꼈던 극심한 불안과 불면의 밤을 숨기지 않고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떨고 있는 그에게 세 번에 걸쳐 "강하고 담대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성경에서 숫자 '3'은 완전수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세 번이나 반복하여 격려하셨다는 것은, 당시 여호수아가 느꼈던 두려움이 인간의 위로나 결심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만큼 완전하고 깊은 절망적 불안이었음을 의미합니다.
오늘 이 마지막 파송예배를 드리시며 두려움에 갇힌 여호수아를 찾아오셔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찾아오셔서 우리를 위해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가 두려워 할 수 밖에 없었던 세가지 두려움을 함께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셨는지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2. 본론 (Body): 우리를 짓누르는 세 가지 두려움과 하나님의 신학적 해답

첫째, 멘토의 부재와 고립의 두려움 — "구속사의 연속성과 God is able" (수 1:1~2, 5)
여호수아가 가졌던 첫 번째 두려움은 자신을 이끌어주던 절대적인 영적 멘토와 스승의 부재, 그로 인한 철저한 고립감이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모세는 단순한 전임 리더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홍해를 가르고, 반석에서 물을 내게 했으며,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던 출애굽의 전설적인 영웅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지주였으며, 민족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두 손을 높이 들고 하늘 문을 열어 중보해 주던 거대한 거목이요, 든든한 기도의 방패였습니다. 그런데 그 절대적인 존재였던 모세가,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 느보산 비스가산 꼭대기에서 차갑게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이제 기댈 수 있는 멘토는 사라졌고, 그 무거운 민족의 운명을 고스란히 여호수아 혼자 짊어져야 했습니다. "나는 모세처럼 홍해를 가를 능력도 없고, 모세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이 거대한 백성을 이끈단 말인가?" 어딜 가나 위대한 모세와 비교당할 수밖에 없는 지도자의 자리에서, 여호수아는 뼛속까지 스며드는 고립감과 자격지심에 시달렸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절망에 빠진 여호수아에게 나타나 가장 먼저 충격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다. 그러니 이제 너는 일어나라." (수 1:2)
여기에는 매우 놀라운 신학적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여호수아서 1장 1절은 히브리어 원문으로 '웨이히(wayhi)'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한글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원문은 "그리고(And) 이런 일이 있었다"로 시작됩니다.
이 '그리고'라는 짧은 접속사 하나가 주는 메시지는 강렬합니다. 여호수아서는 모세의 죽음으로 끝난 신명기 34장의 역사적 단절과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사가 단 1초의 멈춤도 없이 쉼 없이 이어지고 있음을 선포하는 '연속성'의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는 유한하여 병들고 늙고 마침내 죽어 무대에서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 모세를 부르시고 능력을 주시며 출애굽의 구원을 시작하셨던 역사의 진짜 주권자이신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구속사의 무대에서 사람은 바뀌지만, 그 역사를 이끄시는 진짜 주인은 바뀌지 않기에 하나님의 일은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네가 모세보다 더 뛰어난 스펙을 가져라"라고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5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수 1:5)
위대한 것은 모세가 아니었습니다. 모세와 함께하셨던 하나님이 위대하셨던 것입니다. God is able! 하나님은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어떤 부분을 보고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탁월함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전능함(Ability)을 믿고 일어서라고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C맨 여러분, 우리도 캠퍼스로 돌아가면 나를 위해 밤새 기도해 주던 간사님도, 밥 사주며 나를 챙겨주던 선배 순장님도 늘 내 곁에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텅 빈 동아리방에서 혼자 복음의 깃발을 들고 순을 세워야 할 때, 가슴이 턱 막히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정도로 외로울 수 있습니다. 나보다 더 뛰어나고 멋진 사람들이 많은데 왜 내가? 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저도 캠퍼스에서 동기장, 대표단 총무, 캠퍼스 대표, 지구 총순장을 역임하면서 항상 드는 생각은 나보다 잘하고 헌신적이고 잘난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왜 내가 라는 생각 가운데 있었습니다. 새롭게 세워진 대표단 여러분도 이전 대표단 선배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한없이 작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의지하는 것은 사람의 리더십이나 능력이 아닙니다. 그들을 세우시고 그들을 나를 통해 놀라운 부흥을 주셨던 전능하신 하나님, 그 위대하신 하나님이 동일하게 "지금 너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홀로 캠퍼스에 파송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할 수 없어도,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하십니다(God is able!). 이 위대한 구속사의 릴레이 바통을 쥐고 당당히 일어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공동체의 완악함과 리더십의 중압감 — "시종에서 여호와의 종으로, God is willing" (수 1:1, 16~18)
여호수아가 가졌던 두 번째 두려움은 자신이 이끌어야 할 공동체의 완악함과, 그들을 감당해야 하는 리더십의 압도적인 중압감이었습니다.
여호수아 1:2 NKRV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여호수아는 40년 동안 모세의 곁을 그림자처럼 지키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체를 아주 가까이서 목격했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완악하고 목이 곧은 백성이었습니다.
출애굽기와 신명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목이 곧은 백성”이라며 4번에 걸쳐서 계속 이야기를 하십니다.
조금만 목이 마르면 모세를 원망했고, 고기가 없으면 애굽의 노예 시절이 좋았다며 한탄했으며, 리더가 보이지 않는 틈을 타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 숭배했던 자들이었습니다. 백성들의 반역과 불평 때문에 가슴을 치며 피눈물을 흘리던 모세의 그 고통과 외로움을 여호수아는 생생히 지켜보았습니다.
오죽하면 모세가 신명기 31:27 “내가 너희의 반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 내가 살아서 너희와 함께 있어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 자신과 함께 있어도 하나님을 거역하였는데 자신이 죽은 이후에도 그럴 것을 걱정하였습니다.
그러니 여호수아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위대한 모세의 지도력 앞에서도 돌을 들고 덤벼들던 백성들인데, 감히 내 말을 들어줄까? 내 이 연약하고 부족한 리더십으로 이 피곤한 사람들을 데리고 전쟁을 치를 수 있을까?" 리더의 자리는 참으로 외롭고 무섭습니다. 흔들려서도 안 되고, 자신의 연약함을 함부로 들켜서도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여호수아를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우리 서울지구동팀의 대표순장님들, 그리고 캠퍼스를 책임지는 모든 순장님들의 마음도 이와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열심히 캠퍼스채플을 준비해도 여러가지 이야기로 함께 하지 않는 순원들과 나만 일하고 나머지 순장들은 뺀질된다고 생각하는 상광, 정성껏 준비한 순모임에 순원이 잠수를 타고, 사랑으로 품으려 해도 세상의 유혹으로 자꾸만 튕겨 나가는 지체들을 볼 때마다, 밤잠을 설치며 "내가 과연 리더의 자격이 있는가? 내가 이 공동체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책하며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곤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절망하는 여호수아를 향해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보십시오. 여호수아 1장 1절에서 성경은 모세를 가리켜 "여호와의 종(에베드 야훼)"이라는 최고의 극찬으로 부르는 반면, 여호수아는 단지 "모세의 수종자(메샤렛)"라고 부릅니다. '메샤렛'은 섬기는 사람, 시중드는 사람, 보좌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여호수아는 결코 1인자의 재목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모세의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이 '수종자' 여호수아가 두려움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백성들을 이끌기 시작했을 때,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를 무너뜨리며 평생을 바쳐 헌신했을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여호수아서의 가장 마지막 장, 그의 장례식을 치르는 24장 29절에 이르러 성경은 마침내 그를 이렇게 칭합니다.
여호수아 24:29 NKRV
이 일 후에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 God is willing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완성된 '여호와의 종'을 부르지 않으십니다. 부족하고 서투른 '수종자'를 부르셔서, 당신의 사랑과 은혜로 빚어 가기를 기뻐하십니다(God is willing!). 하나님은 기꺼이 여러분을 위대한 믿음의 리더로 만들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첫날 오셔서 말씀을 전해주신 안종택간사님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저랑 같은 지구였고 제가 대학교 1학년 2학기를 맞이할 때 총순장님으로 임명받아서 사역하시는 것을 지켜 보았습니다. 엄청 카리스마 있으셨고 너무 사역적으로 모세와 같아 보였습니다. 그 이후 정말 멋진 분들이 총순장을 역임하셨고 너무나 사역들을 잘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 제가 2007년 총순장으로 임명받았습니다. 그 앞에 있던 순장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과연 할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 빠졌고 안종택간사님을 만나 물어보았습니다. “간사님 제가 어떻게 하면 간사님같은 카리스마로 사역을 잘 할 수 있을까요?” 그때 뭐라고 이야기 하셨냐면 “형배 순장. 나는 나고 형배 순장은 형배순장이야. 형배순장이 잘 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실꺼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나의 모습이 자격 미달처럼 보입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호수아가 믿음으로 일어섰을 때, 그 완악했던 요단 동편의 세 지파가 찾아와 뜻밖의 충성 서약을 합니다.
여호수아 1:17–18 NKRV
우리는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
백성들이 변했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높이시자, 그 완악했던 무리가 순종하는 동역자로 바뀐 것입니다. 여러분, 리더십은 내 화려한 스펙이나 완벽한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받고 찢기더라도 묵묵히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 걸음에서 진정한 영적 권위가 흘러나옵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기꺼이(willing) 여러분의 캠퍼스에 돕는 동역자들을 붙여 주시고, 여러분을 마침내 명예로운 '여호와의 종'으로 완성해 가실 것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막강한 대적과 현실의 장벽 — "율법의 하가(묵상)와 사칼(형통)의 무기" (수 1:3~4, 7~8)
여호수아를 절망케 했던 세 번째 실질적인 이유는 저 요단강 너머에 버티고 있는 가나안 족속들의 막강한 군사력과 거대한 현실의 장벽이었습니다.
여호수아 1:3–4 NKRV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신학적으로 폼 나게 "약속의 땅이다! 주님이 주셨다!" 외칠 수는 있었지만, 당장 내일 피 튀기는 전쟁터의 최전선에서 칼과 방패를 들어야 하는 군사 사령관의 눈에 가나안은 불가능 그 자체였습니다. 당시 가나안 일곱 족속은 하늘에 닿을 듯한 견고한 요새를 구축했고, 무시무시한 살상 무기인 '철병거'로 무장한 최첨단 철기 문명 국가였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40년 동안 모래바람만 맞으며 떠돌던 유목민이요, 변변한 칼 한 자루 없는 청동기 수준의 오합지졸이었습니다. 데이터와 전력으로 분석하면 이 전쟁은 백전백패, 몰살당할 수밖에 없는 자살 행위였습니다.
우리가 캠퍼스로 돌아가 마주할 현실도 정확히 이와 같습니다. 세상은 살벌합니다. 학벌, 화려한 스펙, 인턴십, 빵빵한 집안의 자본과 인맥이라는 무적의 '철병거'로 무장하고 우리를 비웃으며 버티고 서 있습니다. 그 거대한 세상의 시스템 앞에서, 우리는 기껏해야 아침에 일어나 큐티(QT) 한 장 하고, 모여서 기타 치며 찬양하고, 영혼 구원하겠다고 밥 사주며 순모임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청동기 칼조차 없는 멍청하고 초라한 모습입니다. "내가 지금 캠퍼스에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이러다 취업도 못 하고 인생 도태되는 것은 아닐까?" 뼛속 시린 현실의 두려움이 매일 밤 우리를 덮쳐옵니다.
그런데 이 철저히 불리하고 거대한 장벽 앞에서, 군대 장관이신 하나님이 내리신 전술 명령은 우리의 상식과 이성을 완전히 뒤엎습니다. 칼을 갈거나 특공대 훈련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단 하나의 절대 무기를 손에 쥐어주십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수 1:8)
이 가나안 정복 전쟁은 세상의 영토 확장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는 '거룩한 전쟁(Holy War)'이었습니다. 이 전쟁의 진짜 총사령관은 여호수아가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God is able!). 전쟁의 주관자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승리의 조건은 군사력이나 스펙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성'과 '말씀에 대한 지독한 순종'뿐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8절의 단어들을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묵상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하가(הגה)'는 고상하게 눈을 감고 명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읊조리다.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다. 소리를 내어 되뇌다. 라는 음성언어로 끊임 없이 이야기 한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입술에 달고 끊임없이 소리 내어 읊조리는 매우 역동적이고 전투적인 행동입니다.
적들의 철병거 굴러오는 소리, "너는 망할 거야, 넌 스펙이 없어, 넌 뒤처지고 있어!"라는 세상의 조롱과 두려움의 소리가 내 고막을 찢을 듯이 들려올 때, 그 소리에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 그보다 훨씬 더 크고 강력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내 영혼에 때려 박으며 입술로 선포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가'의 묵상입니다.
그렇게 세상의 소리를 차단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갈 때 주어지는 축복이 바로 "형통(사칼, שכל)"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칼'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벼락부자나 편안한 꽃길(cheap success)이 아닙니다. 이 단어는 '신중하다', '지혜롭게 행동하다', '통찰력을 갖다'라는 뜻입니다. 말씀을 주야로 치열하게 '하가'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어떤 위기와 철병거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문제를 꿰뚫어 보는 하늘의 지혜와 영적 통찰력을 부어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세상의 철병거 앞에 제발 기죽지 마십시오! 우리의 진짜 무기는 세상 사람들이 휘두르는 스펙이라는 썩어질 칼이 아니라,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라는 성령의 검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심장에 품고 주야로 읊조리며(하가), 세상의 타협과 불의를 단호하게 거절하고 거룩하게 걸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단 한 번의 칼질 없이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을 무너뜨리셨던 그 기적 같은 하늘의통찰력(사칼)을 여러분의 학업과 진로, 그리고 우리 동팀의 사역 가운데 반드시 보여주실 것입니다.

3. 결론 (Conclusion): 두려움을 넘어 세상의 요단을 담대히 건너라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서울지구동팀 C맨 여러분, 이제 진정한 파송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가나안 땅 입성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단강을 건넌다'는 것은,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살든 죽든 결코 뒤로 돌이킬 수 없는 배수진의 결단이었습니다. 범람하여 소용돌이치는 요단강물이 멈추기를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강물이 여전히 무섭게 흐르고 있을 때,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믿음으로 그 물결을 밟았을 때 비로소 강물이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수 3장).
오늘 이 파송 예배를 드리는 우리에게도 이 거룩한 배수진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내 학업의 문제가 다 해결되고, 내 진로의 요단강이 멈추면 그때 가서 사역하겠다고 머뭇거리는 자는 평생 가나안 땅의 기적을 밟을 수 없습니다. 두렵지만, 여전히 세상의 강물이 거세게 흐르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내 삶의 무거운 발걸음을 먼저 캠퍼스 한복판으로 믿음으로 내디뎌야 합니다.
여호수아를 향해 거듭 위로하시던 하나님은 1장 9절에서 마침내 이렇게 강력하게 선포하십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하느니라!" (수 1:9)
이 위대한 약속은 이천 년 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연약한 제자들을 세상 속으로 파송하시며 주셨던 임마누엘의 약속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20)
여러분, 우리는 더 이상 영적 고아가 아닙니다. 고립되어 나 홀로 버려진 자들이 아닙니다. 구속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대장이 되셔서 앞서 행하시고 우리를 위해 싸우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서로 다른 모양의 십자가를 지고 이 문을 나섭니다. 어떤 분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파송을 받고, 또 어떤 분들은 오늘 밤 공동체를 책임지는 대표단으로 새롭게 취임하며 무거운 직분을 받습니다. 하지만 파송 받는 여러분도, 취임하는 대표단도 오늘 이 밤 반드시 가슴에 새겨야 할 단 하나의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대단하고 완벽해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기뻐하며 순종의 발걸음을 떼는 것입니다. God is willing! 하나님은 지금 당장 우리 서울지구동팀과 여러분의 캠퍼스를 통해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쓰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God is able!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그 위대한 일을 능히 완벽하게 성취하실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알량한 능력을 믿고 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안에서 기꺼이(willing), 그리고 능히(able) 일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세상의 요단을 건너가십시오.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십시오. 여러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증명할 위대한 믿음의 세대요, 자랑스러운 서울지구동팀의 C맨들입니다.
이 시간 파송을 받으며 세상으로 향하는 우리 모두, 그리고 새롭게 짐을 짊어지는 리더십들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선포, 여호수아 1장 9절 말씀을 우리의 심령에 새기며 다 함께 큰 목소리로, 담대하게 읽겠습니다!
(다 함께 합독)"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아멘!)
우리가 밟는 캠퍼스의 모든 땅을 넉넉히 이기게 하실 주님을 찬양하며, 믿음으로 담대히 전진하는 동팀의 모든 순장과 순원, 대표단들이 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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