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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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1:7-12
시편 51:7-12
우리가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놓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많은 경우 그 당시의 상황이나 어쩔 수 없던 환경을 그 이유로 들곤 합니다. 성경의 인물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항상 온전한 모습만을 보여줬던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보다도 더 파렴치한 모습들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악한 일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통일 왕국의 대왕 다윗이었습니다. 누구도 그를 재판에 회부할 수 없었고, 누구도 그의 행동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절대왕권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오늘 시편 51편에서 온 마음을 다해 회개하며 하나님께 슬픔의 노래, 고백의 노래를 올리고 있습니다.
특별히 다윗의 고백들을 보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핑계가 없습니다. 환경도, 사람도, 심지어 자신의 연약도 핑계삼지 않습니다. 오늘 이 다윗의 시편을 함께 살펴보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다시 나아가야 할지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관계의 틀어짐은 죄로 인함입니다.
관계의 틀어짐은 죄로 인함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이지만,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놓치는 원인은 다른 무엇도 아닌 우리의 죄로 인함이라는 것 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몸부림은 바로 그부분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죄를 씻는 제사를 드릴 때의 모습입니다. 우슬초에 피를 묻혀 뿌리고 바르는 행위를 통해 사함을 얻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현 상태가 우슬초 정결예식을 통해서 새롭게 씻겨져야 할 상황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왕으로써 이렇게까지 자신을 확 낮추고 하나님 앞에 진솔함과 두려움 그리고 떨림으로 나아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윗은 이미 자기보다 앞서 세워졌던 사울 왕의 전례를 너무나도 가까이서 너무나도 자세하게 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득죄하고도 회개하지 않는 인생이 얼마나 비참하게 무너지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현 상황에 대한 혁신이 필요했습니다. 자신의 존재 안으로부터 완전히 새로워지는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첫 시작을 하나님께 자신의 죄악됨을 고백하는 회개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우리 삶이 하나님 앞에 자꾸만 가리워지는 것 같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악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고 싶어도 내가 죄의 문제를 내어놓고 거기서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나와 다시 관계를 맺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거룩 자체이시기에 죄와 함께 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이런 하나님 앞에 자신을 먼저 정결케 해주시라고 기도합니다.
정직한 영
정직한 영
특별히 회개의 자리로 나아간 다윗이 이렇게 간구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대부분 감정적이거나 도덕적으로 정직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어는 조금 다른 의미를 전합니다.
‘루아흐 나콘(רוּחַ נָכוֹן)'
루아흐는 영이고, 나콘은 굳건히 서다, 확고히 정직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합쳐서 해석하면 믿음직한 영혼, 견고한 영혼, 확고한 영혼을 주시라고 간구하는 내용이 됩니다.
왜 이런 간구를 할까요?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깨트린 것이 자신의 죄악 때문이라면, 그 죄악이 자신을 집어삼킨 이유가 자신의 영혼이 흔들리고 휩쓸려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끔 상담하며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감정은 하나님을 만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동시에 감정은 하나님을 놓치는 결정적 요소가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의 말에, 주변 상황에, 나의 욕심에, 악한 영의 계략에 내 영혼이 하나님과의 의리를 지키지 못하고, 신뢰를 지키지 못하고 휩쓸리고, 흔들려버려서 내가 죄를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밤 우리도 같은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하나님 나로 견고한 영혼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견고한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신앙이란 감정이 변하더라도 자신이 한때 진리로 받아들였던 것을 붙드는 능력이다. 감정은 날씨처럼 변하지만, 우리의 영혼은 변함없는 하나님의 진리 위에 견고하게 서 있어야 한다." > — 출처: C.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Mere Christianity)』
행동을 고치는 일에는 발빠른 우리인데, 정작 이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려놓는 일에는 너무나 무심한 우리입니다. 아니 심지어 어느 때에는 마음까지도 돌려놓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다윗이 이렇게까지 간구하는데에는 앞서 말한 사울왕의 인생이 반면교사의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지 않으면, 내 영혼이 건강한 상태로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하나님께 버려진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다윗에게 기름부음을 받고도 버려진 사울왕의 인생은 실재였고 현실이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당하지 않기 위해 최선의 회개를 드려야 했습니다.
다윗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쓰실 이들에게 기름부어 세우셨다면, 우리 시대에는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그분의 제자로 살기로 자원하는 심령에게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분명코 예수님은 우리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 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아침 마가다락방에 성령 하나님께서 임재하심으로 영원히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그러나 이것이 내 모든 삶의 모습에 대한 자동적인 면죄부가 되는것은 아닙니다. 만약 나는 성령 체험도 했고, 교회 공동체 안에 있으니 모든 죄에 대한 면죄부를 소유했고, 구원에 반드시 이를 것이라고 믿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소위 ‘구원파적인 믿음’, ‘이단적인 믿음’입니다.
오늘 다윗처럼 결단하여 돌이키려 하지 않고, 내가 계속 죄 가운데 머무르고, 내 습관, 가치관을 하나님 말씀에 날마다 맞추어가려는 노력이 없다면 나는 성령을 근심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이게 반복되면 성령과 인격적이고 유기적인 관계는 깨어집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히브리서 기자는 명확하게 선포합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견고하지 못한 영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왜냐하면 견고하지 못한 영혼의 행동을 하나님은 이렇게 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예수님은 이렇게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기 원한다면 지금 내가 있는 삶의 자리에서 완전한 혁신을 경험해야 합니다. 내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완벽하게 뒤집어지는 혁신을 경험해야 합니다. 내가 받았던 은혜가 크면 클수록, 내가 체험했던 역사가 강하면 강할수록 하나님께 나는 더 큰 악인으로 기억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분이 베푸신 은혜를 누구보다도 많이 경험하고 잘 알고 있음에도 내 영혼을 견고하게 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대로, 세상이 원하는대로 그때그때 마음대로 살아 나를 구원하신 은혜, 나를 위해 쏟으신 피의 값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종교적 회개는 '내가 죄를 지어서 벌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것'이지만, 복음적 회개는 '내가 지은 죄로 인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사실에 슬퍼하는 것'이다." > — 출처: 팀 켈러, 『탕부 하나님 (The Prodigal God)』 (두란노)
특별히 이 정직한 영은 어떻게 회복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다윗은 창조해주시라고 말합니다. 이 창조가 바로 창세기 1:1을 시작하는 창조인 히브리어 ‘바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새롭게 하지 못합니다. 내 수양이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새롭게 창조해주시길 소망합니다.
"다윗은 마음을 '수리해 달라'거나 '개조해 달라'고 구하지 않았습니다. 낡고 부패한 본성은 고쳐 쓸 수 없기에, 오직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창조(Bara)'를 간구한 것입니다. 은혜는 옛 사람을 패치워크(덧댐)하는 것이 아니라, 새 생명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 — 출처: 찰스 스펄전, 『다윗의 보물창고 (The Treasury of David)』, 시편 51편 강해
내 안에 모든 것은 악하고 악할 뿐임을 고백하는 자만이 이 새창조를 경험하게 됩니다. 나는 전적으로 타락했습니다. 칼뱅의 이 외침을 우리가 가벼이 여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회복되어야 할 것
회복되어야 할 것
그렇다면 내 영혼이 견고하게 다시 세워지고,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구원의 즐거움이 회복됩니다. 다른 것 다 없어도 구원받은 그 즐거움 만으로도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길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구원받은 성도이기에 다른 것 다 없어도 행복하십니까? 율법적인 행함도 사라집니다. 어거지로 행하는 부담감도 사라집니다. 그러니 자원하는 심령이 됩니다. 더 하고 싶습니다. 더 드리고 싶습니다. 더 섬기고 싶습니다. 더 심고 싶습니다. 시키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하고싶어집니다. 드디어 ‘사랑’이 회복된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은 왕으로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사는 것보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맺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이 버린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는 어떻습니까? 내 안에 정직한 마음을 창조해 주시라는 다윗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 되어서, 하나님 앞에서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자원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