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받을 때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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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기도의 문을 열 때7 (20220731 주일오전)
Hosea 5:14–15 NKRV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I. 본문해설

지난 주에 여러분은 사사기에 관해서 설교를 들었습니다. 삼손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님게 부
글직은 때 하나님이 생수의 샘은 내시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호세아서는 그후
에 약 30년 후의 역사를 다투고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주전 약 70년정부터 주전 약 72년성가
지 그리고 그 후에도 조금 더 선지자로 활동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책 두 권을
꼽으라면 저는 시편과 호세아를 품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호세아는 구약성경 중에서도 가장 애설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자기와의 관계를 설명
하실 때 아버지와자식의 비유를 드시기도 하시고 왕과 백성의 비유를 도입하기도 허셨습니다.
그런데 호세아서는 놀랍게도 남편과 아내의 유비률 가지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
에서 북별합니다. 호세아 선지자 하면 그의 결혼생활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 결혼생활을 소재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관계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언약 관계를 다룬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다음과 같은 뜻입니다. 호세아서는 ]4장밖에 안 되고 이야기가 단순하기 때문에 읽기 쉬
율 것 같은데 사실 읽을 때마다 어렵게 느껴지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두 얼굴로 계속
번갈아가며 나타나시는 데서 오는 혼란입니다. 한 얼굴은 이스라엘을 향해 진노하시는 모습이고 이스
라엘을 쓸어버리시고 죽여 버리시는 무서운 모습입니다. 그리고 또 한 얼굴은 이스라엘을 너무 사랑하
셔서 눈물 홀리시고 차마 그들을 농지 못하시는 보습입니다. 이것이 호세아서에서 어느 부분까지는 A
얼굴, 그다음부터 B얼굴이 나와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 하나님의 두 얼굴이 그 장 속에서도
여러 번 반복하면서 마치 빛줄 두 개가 함께 엮이면서 끝까지 가듯이 14장까지 계속됩니다.
이런데서 읽는 사람들은 혼란을 느낍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우리를 혼내신다는 것인가? 사랑한다는
것인가? 사랑하신다고 해놓고 왜 파별을 경고하시나? 과널을 선언하시고 안 버리시겠다고 회복해 주
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 과멸된 다음에 회복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런 것들이 호세아를 읽으면서 느
끼는 어려움일 것입니다. 오늘 이 설교를 듣고 나면 호세아를 읽고 싶은 마음이 박 생길 것입니다. 아
벤 집에 가서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렇게 안개가싹 걷힐 때 그 책을 딱 붙들고 부지
런히 읽어야 됩니다. 전 지난주에 (호세아서를) 세 번 읽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성경 한 권이 마음속에
싹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기도의 분유 열 때7 (220731 주인오전
호세아가 위동하던 이때는 북왕국의 여로보암 2세라는 왕이 다스리고 있던 해였습니다. 오래간만에
영명한 군주가 등극했고 북왕국을 전성시대로 이끌었습니다. 이 사람이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했
으니까 정권이 얼마나 안정적이었고 나라가 부강했으며 또 강한 인력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
.다. 영토는 최대한으로 화장되었고, 국방은 본튼했으며, 경제적으로 평장허 부상한 나라가 되어 있었습
니다. 바로 그 번영하는 말기부터 시작의 해서 결국 마지막에 이 나라가 망한 때까지 북왕국의 선지자
.로 예언 하동을 하게 됩니다. 비용 나라는 강하고 왕성해쳤지만, 경제적으로는 강국이 되었지만, 이스
라엘은 사사기에서 보는 것 같은 시대로 되틀아갔습니다. 좋교적으로 타라했고, 도덕적으로 부패하여,
결국은 파병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여로보암 2세가 죽고 아들 스가랴가 왕위에 을
랐지만 6개월 만에 찰롬이라는 사람의 반역으로 실해당하고 여로보암 왕가는 끝이 납니다.
그 후부터 이스라엘이 별방한 때까지 약 30년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에 스가라클 포함해서 다섯 명
의 왕들이 교체가 됩니다. 그중에 한 왕도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된 적은 없고, 숙고 죽이는 내란 상
태에서 왕들이 서로 자리를 다투며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호세아 선지사하고 이름
이 똑같은 호세아라는 왕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 사람이 바로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을 본 왕이었습
니다. 구 강국은 애굽이었고, 신흥 강국은 있수르였습니다. 여러분이 학교에서 배운 앗시리아라는 나라
였습니다. 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호세아는 결국 앗수르에게 별망당하고 팔았는데 이때가 주전
722년이었고 이후로부터 약 180년 후에 남왕국 유다도 별방의 길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 책은 비교적 구성이 단순합니다. 1부부터 3부로 되어 있습니다. 1부는 1장부터 3장까지인데, 호
세아 선지자의 개인적인 결혼생활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4장부터 13장까지는 이스라엘의 조
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14장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용서하고 구원
하시는 영적인 번영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갈라져 있습니
다. 첫차는 선지자의 이 결혼생활은 실제가 아니라 가상 내지는 환상 속에서 주어진 풍경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선지자는 거룩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음란한 여자를 만나서
가정을 이를 수가 없고 만약에 그랬더라면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선지자
의 부르심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 결
혼생활은 저를 포함한 많은 학자들은 이것은 역사적인 실제의 이야기라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간단하게 설명을 하면 이것을 가상이요 환상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구약에 나오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가볍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뒤냐 하면 행
동예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시는 소위 선지자들의 예언 활동이라는 것
이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불러주시면 그거률 그대로 가서 복
사해서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두 번에는 뭐냐 하면 하나님이 일정한 메시지를 감동으로 주시면 선지자
들은 구약의 율법을 기준으로 그 시대상을 과혜치면서 소위 설교를 하게 됩니다. 이것이 예언의 두번
제 유형입니다. 그런데 예언의 세 번재 유형이 있습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행동예언입니다. 혹은 행위
예언이라고도 합니다. 사람들이 말로 듣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연상하면서 논리적으로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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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기도의 분유 일 때7 ( 20120731 수인오선
외야 월니다. 그런데 행동에언은 그냥 보고만 있어도 눈에 높어유니다. 그리고 저 행동의 의미가 들고
있는 것보다 더 강력하게 마음에 다가와서 행동 너니에 있는 어떤 하나님의 메시지를 생각나게 만들
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행동예언입니다. 선지사뷰은 이 세 가지를 뛰어서 예언 하동을 하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가 행동으로 예언하는 짓은 이사야나 에스집, 이런 사람에게서도 흔히 있는
1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행동에언으로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무있인가를 보여주고 싶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가상적이고 휘상적인 이야기냐, 아니번 실제적인 이야기나에 대해서 관심이 많을 것
입니다. 그런데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가 원상이냐 역사적인 신재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
니라 이거는 보두 소재일 뿐이고 그것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으셨던 본체가 있으셨습니다. 그것이 바
로 하나님과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웠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호세아의 가정생왔이제 손의
손톱을 가리킨다면 호세아의 결혼생환만 가지고 실재냐 환상이냐를 집요하게 따지고 드는 것은 밤허
늘일 가리키고 있는 제 손의 손법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의 의도는 뭐냐 하면 저기 있는 달을 보
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많이 논쟁한 필요가 없고 가리키는 달과 같은 그 본체의 이야기가 무
엇이냐 하는 것을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거목한 사랍이니 고벤과 결혼하라고 했을 매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창녀였
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도 음란한 여자를 취하여 장가를 플라 했는데 결혼하기 전부터 음란하게
살아온 여자냐, 음란하기는 했지만 아직 포텐(xlam)이 터지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을 했고, 결혼한 디
운에 포텐 (potent)이 터져서 음란한 행동을 하게 되었느나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좀 온건한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읍란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행위로는 나타나지않
은 여자였기 때문에 결혼을 할 수 있었고 그랬다면 그 후에 음란한 행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결혼 자
체가 성립될 수 없는 도덕적인 모순을 가진 결혼은 아니지 않았겠느냐 이렇게 완화된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고벨(1기)이라는 이름이 원래 '가발(1p)'이라는 동사에서 왔습니다
그 무손 뜻이냐 하면 갈 때까지 가다 그런 뜻입니다. 찹 제밌습니다. 끝장을 보다, 갈 때까지 가
다, '끝에 이르다 이런 뜻을 가진 동사에서 고벨이라는 여자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저클 포현
해서 많은 학자들의 견해는 고민이 정숙한 여자처럼 살았는데 결혼하고 나서 포텐이 터져서 움란하게
되었다기 보다는 이미 고멜이라는 여자의 이룹이 음란한 여자로 널리 알려진 상태에서 이 여사를 선
택됐을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이 여자의 이야기가 설계라는 것을 두 가지만 들자면 이 여자가 구체적으로 다블라입의 탈 고벤이
라고 나옵니다. 대불라임이 사람 이륨일 수도 있고 장소일 수도 있습니다. 학자들은 장소일 가능성이
받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디블라임이라는 동네 휴은 지역에서
이런 뜻입니다. 여러분은 경전하게 산기 대란에 전혀 모르지만 법의 아주 널리 알려진 음란한 여사였다
와락 해게 속에서는 .나가는 술
점의 명단이 있고 그 나가는 습김마서는 소위 에이스라는 모든 자들이 함게 습을 마시고 싶어
하는 여자품의 명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매춘의 세계에도 그런 명단이 있어서 그런 여사에게
는 6개일 1년 치석 예약이 빌리고 진국에서 그 도시를 향하여 매출을 하기 위해 모여든다는 이야기를
개인기도의 분유 의 때7 (32073 주입오전
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 걸 현상하시면 아주 쉬용 것입니다. 고넬이 바로 그런 여자였습니다
결국 이 여자와 길혼유 하게 뉘니다. 결혼의 하게 됐는데 첫 번계로 아뉴유 남았는데 이름을 이스
르엘이라고 지으라고 하나님이 아예 가르쳐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의 이름입
니다. '이스르엘', 원래 허브리어로 '이즈프웨(9
)'입니다. 이즈르엘은 '휴어버린다', 그런 뜻입니
.다. 모으는 거는 '은총'의 창정이고, 휴어버리는 것은 '심판'의 상정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가르쳐서
'과로노마시아(제대x지 i)'라고 하는데, 비슷한 말 투 개품 가지고 발재간유 하는 기법입니다. 그래
서 "이스라엘'유 '이즈르엘'로 바꾸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어명게 생각하시는지 그 감정을 보여주
시는 것입니다. 이어서 딸유 낭는데 '로부하마( 5 구7기' 라고 이류을 지었습니다. '하마(지5기)'는
'공출허 역김음 받는 자'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딸을 났는데 '당흡히 여김을 받지 못한 여사애 이런
식으로 이름이 지어진 것입니다. 그다음에 아뷰율 났는데 이류이 로압비(제 와)로 지정이 되었습니
다. '로(뉴)는 '아니다' 이고 '갈비(의장)'는 '네 백성'입니다. 하나님이 애정으로 가득 차서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실 때 쓰턴 호칭이 '안미'입니다. "내 백성들아, 너희는 내 백성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 "너희는 더 이상 내 자식이 아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호세아가 견문을 했는데, 구체적으로 디블라임의 딸이라는 사람하고 전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또 호세아가 자기 아내를 뭔가 팔려갔는지 어겠는지 값을 주고 찾아오는 광경이 나타납니다.그
게 뭐냐 하면 온 열다첫 개와 그다음에 보리를 주고 찾아오는데, 그 가격을 다 합산하면 삼십 세겔이
되곡 그게 그 당시 노예의 몸값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수치까지 제시하는 것을 보면 이
것을 환상이라고 보기보다는 역사적인 실재의 사건이라고 보는 것이 더 사실에 부합하지 않나, 이렇게
생각을 허는 것입니다. 어졌든 도대체 이 여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 궁금한 것입니다. 그런데
고대의 학자들도 유력한 견해률 내놓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서 복허 20세기 중반 이후에 들어서서 옛
날 가나안의 문자들이 많이 발굴이 되기 시작하면서 베일에 싸였던 역사들이 많이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중앙에 있었던 소위 애기허는 바알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하나님은 난편이고 이스라엘은 아내입니다. 난편은 한없이 사랑이 많고 아내는 정숙
하게 남편을 사랑하며 합께 연합회는 가운데 살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바람이 납니다 그
런데 바람피운 상대가 누구냐가 문제가 됩니다. 그가 바로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깨뜨린
외간남자입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 바로 바알로 형상화되는 것입니다. 바알이라는 말의 원래 뜻은 주
인' 혹은 '임자', '주'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복수로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 결국 이 종교가
다신교리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바알이 어디서부터 왔는가, 유래되었는가는 학자들에
따라 견해가 다릅니다. 아주 다양한 견헤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 견해가 있는데 하나는 바
알이 페니키아에서 와서 가나안 본토에 정착하게 된 토속화된 신이라고 보는 견해입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견해는 그게 아니라 이비 아모리 속속들이 섭기던 토착신이었고 그 토종신이 이스라엘이 가
나안을 정복한 후에 결국 오히려 더 번성하게 영향력을 화대해 가서 바알이 되었다, 이렇게 보는 것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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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그런데 무엇이는지 우리가 학증합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확실하 하나는 .이 신이 농경 사회와 빌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친에는 불이 흐르고 있고, 대에는 항상 룰이 가득하고, 서수지에는 언제나 물이 담겨 있어서 농사직는
이제 물이 부족한 나라에 분류되기는 하지만 한 50년 전만 해도 물 걱정은 전혀 안 했습니다. 항상하
데 어려움이 없는 나라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지역이 강수량이 아주 적습니다. 자연
적으로 늘 물이 흐르는 하천 같은 없습니다. 소위 지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와디(waci)가 방습니다.
화디(wat)를 무수천이라고 합니다. 장마철에는 숱이 흐르지만 장마가 끝나고 나면 아예 건천이 되어
버려서 그냥 계곡처럼 되어버린 그런 친일 와디라고 합니다. 이런 천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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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 자연적으로 흐르는 물을 늘 허용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농사에 있어서 풍년과 제때에
비가 내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관계에 있었고 이 가나안 지역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치명적으로 중요
한 생존의 조건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옛날에 가난하던 시절에 천수답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위냐 하면 산을 깎아서 계단
식으로 논을 조그방게 만들어 놓고 거기에다 벼를 심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벼를 심을
때부터 제떼 비가 와야지만 벼률 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모내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다
움에는 어떻게 합니까? 그냥 하늘에 맡기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제때에 비가 내려주면 추수클 하는 거
고 비가 안 오면 그냥 누런 휴덩어리로 그냥 끝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처지가 그때 천수답으로
경작을 하던 우리의 처지와 유사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비는 제때 안 큽니다. 이스라엘 백성
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보니까 엄청난 농경문화가 발달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국가의 부였습니다. 그러니까 강가에서 많은 평야률 가지고 엄청나게 많은 곡물을 생산하는 나라가부
강한 나라였고 그 곡식이 모자라는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약소국이었습니다. 그거를 가지고
온 백성이 먹고 살고 남는 것은 무역을 통해서 온갖 재화와 바꾸면서 그것을 가지고 산업을 일으키고
소비생활을 중진하며 문명을 건설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4대 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발달한 평야를 가
지고 있습니다. 기름진 곳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광야에 비하면 것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지만 그러나 말하자면 강우 조건이 맞아야
됐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번영한 그런 문명을 이루기까지 그 배경에는 농경문화가 있었고 농경문화 뒤
에는 풍년을 가져다주는 풍요의 다신인 바알 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1910년대 50년대 이후에 구약학과
고고학이 발달하면서 어마어마한 문헌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고 당시 바알 종교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
었는지에 대한 선체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1800년대의 학자들이 접하지 못했던 놀라운 자료들을 접
하게 됩니다. 그러한 학술적인 결과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바율 종교는 매순과 관련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개 높은 곳에 산당을 짓습니다. 바알 신을 섭기기 위한 발하자면 성전을 짓는 짓
입니다. 그건 가니안 원주민 때부터 하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니인에 들어오고 보니까 업청난 농정문화가 발달했는데 거기서 일종의
사대사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걸 싸 쓸어버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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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의 연관을 보두 끊어버리고 거기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
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그것을 사대사상율 가지고 흡모하면서 여호와 하나님
이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셨지만 그러나 이 땅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바알의 구역이었으니 군이 바
인에게 립보이면서 우리들이 농사를 방치면서까지 그렇게 대처한 편요가 있겠느냐 생각하면서 소위
애기허는 종교적인 훈합주의를 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도 섭기고 바알도 섭기면서 두 신으로
부터 보두 분유 받고자 하는 야방율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송배가 심해지고 왕과 지도자뷰까지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면서 이스라엘 백
성들이 자진하여 그런 성천음 건축해서 바일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이른 비가 내립니다.
이른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고 땅을 일급니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씨앗을 뿌림니다. 그리고 늦은 비
가 네리면 그 비틀 맞고 결실이 하며 마지막에 추수기로 집어들게 됩니다. 당연히 그 사이에는 렛빛이
날 때 일조량이 풍부해서 과일과 보는 곡물을 충분히 익어가게 만들어야 될 것이니까 비가 오고 렛빛
이 나고 했빛이 나고 비가 오는 사이클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이클을 바알이 주반한다고 믿
였던 것입니다. 때가 됐는데 비가 안 옵니다. 그러면 우리는 기우제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산당에 가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는데 고고학석인 자료률 보면 많은 작은 방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바알을 섭기는 제사
속에 한 제의적인 순서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성행위입니다. 그 작은 방에 들어가서 남녀가 성
관계률 갖는 것입니다. 그러한 성관계률 하는 그 광경이 바알에게 자극이 되어서 농사예 이롭게끔 이
사이클을 조절하여 내리지 않는 비를 내리게 하고 부족한 햇빛을 풍부하게 비치게 한다는 교리품 가
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교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무나 신나는 교리였습니다. 왜냐하면
가서 농사를 위한 제사도 드리고 거기 가면 사회적으로 합법적으로 하나님이 합법화하신 건 아니지
만 자기들끼리 서로 이해해 주는 성적 타락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면서 바알 종교는 동경
문화와 합께 번성하게 되고, 결코 이스라엘에서 사라지질 않습니다. 심지어 헤스기야 같은 훈릉한 임
금, 요시야 같은 임금이 있을 때조차도 그 이방의 신당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왕국이 분열된
다음에 결국 끝까지 뿌리 깊게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살아남는 것입니다.
고펠이 그러면 이 이야기와 무슨 상관이 있느나? 많은 학사들은 추추하기를 고멘이 일방적으로 화
류계에서 몸을 과는 여자가 아니라 유명한 신전 창녀였을 짓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성전에 일정기
간 거주하면서 제사 드리러 온 찹배객들을 맞이하여 대가를 받고 몸을 팔아주는 신전 창녀들 중에 한
사람이었는데,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은 여자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 음란한 여자 고벤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정도로 이름난 여자가 되었고 그래서
결국 선지자와 이 여자를 결혼시키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행동 매시지입니다. 그래서 저렇게 타라하
고 창녀인데도 짝이 있다. 마찬가지로 너희 이스라엘이 이렇게 정조클 버리고 절레처럼 되어 버텼지만
너희에게는 있어서는 안 되는 남편이 있다. 이것을 호세아의 결혼을 통해서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치지 말아야 한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그짓은 워냐 하면 이 고법음 호세
개인기도의 분유 일 매7 (020731 수입오선
아 번지지는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사랑한 정도가 그냥 하나님이 아내로 주셨기 때문에, 버리시 발라
고 하셨기 때문에 데리고 있는 사이였다면 호세아의 매시시를 제대로 전단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서 어떻게 됐나면 이 여자가 결훈 생활을 파타니고 요란하게 다른 남자와 놀아나는데도 호세아의 속
에는 이 여자를 향한 사랑이 꺼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계속 더 가엽고 .불쌍하고 마음속에서 불
타오르는 것입니다. 호세아의 아내가 1장 2장 3장에 등장하는데, 이것도 1장 2장은 같은 아내이고 3장
은 또 다른 아내가 아베가 그렇다면 호세아는 두 빈 장가든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런데
이거는 1, 2 3장의 여지가 동일한 사람이는지, 3장의 여사가 다른 사람이든지 걸본은 똑감습니다. 하
1,
나님이 호세아 선지자에게 자키 아내가 그렇게 부정하고 타락했는데도 불구하고 꺼지지 않는 불타는
1
진실한 사랑을 주신 것인데 이사랑은 펫속까지 타들어가는 사랑이었습니다.
이 사랑의 정헌유 통해서 이스라엘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가 배우는 짓입니다. 그게 뷔냐 하
면 자기도 이스라엘이 싫습니다. 거록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고 도덕적으로 타락
허는 이 더러운 이스라엘이 싫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를 진심으로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자기가 그
더러운 여자를 펫속까지 타들어가는 사랑의 경험으로 사망하면서 주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을 이
십전십으로 느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메시지에는 뜨거운 불불는 사랑과 함께 그 심장을 같아내는
말하자면 절절한 애정이 함께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너무너무 사
랑하셔서 그거를 선지자에게 보여주시니까 선지자는 자기 심장을 꺼내서 믹서에다 같아서 발간 잉크
률 만들어서 그걸 손으로 찍어서 이스라엘을 향해 돌아오라고 글씨를 쓰는 것에 비유한 수 있다는 에
기입니다. 이 정도면 심정이 전달이 됩니까? 그렇게 하나님이 피를 토하는 것 같은 사랑의 고백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그 마음을 선지사가 자기 아내를 향해 똑같이 이심전심으로 는
끼게 하기 위해서 이 비극적인 결혼 생활을 통해 행동예언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종교적인 제의와 합께 그런 성적인 행위가 있었다는 암시가 놀랍게도 성경에 나옵니다.
사사기 2장 17절에 보면 어떤 말씀이 나오냐 하면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을 했다"라고 나음니다.
신들을 따라갔다는 것은 그냥 일반적인 이야기도 되지만 섭겼다는 이야기고 결국 거기에 아주 자연스
러운 결과처럽 음행이 따라읍니다. 이것이 어떤 사람이 해석하는 것처럼 그냥 우상을 섬긴 건 넘긴 게
고 여기서 음행이라고 하는 것은 육체적인 음행과는 상관이 없는 종교적인 간음이라고 해석한 수 있
겠지만 그러나 앞에 해석이 휠씬 자연스럽습니다. 더 기한을 토하는 구절은 아모스 2장 7절에 나오는
데 뭐라고 나오냐면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사에게 다녀서"라고 나옵니다. 그계 뒤냐면 한 여자
를 놓고 아버지도 관계를 갖고 아들도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이거는 정상적인 곁혼에서는 상상합수
없는 일입니다. 이건 튀냐 하면 결국 신전에서 이루어지는 매춘에서 아버지나 아들이나 거기에 들어가
고 나면 그 다음에 그건 무슨 명패를 붙이고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거는 익명으로 이루어지는 것
입니다. 그러면 아버지도 남자고 아들도 남자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들어가서 술집에 가서 제일 예쁘
고 성격 좋은 사람을 꿈라서 그 여자하고 술을 박고 싶을 것입니다. 신전에서 이런 일들이 이무어쳤대
는 것을 압시한다고 주석가들은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건국 펫속까지 타들어가는 사랑으로 그 여사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걸
개인기도의 분유 일 때7 (220731 주위오선
해서 이 선지자는 자기의 가정을 초월해서 이스라엘 빈족유 향해 졌어지는 마음을 누를 수가 없는 주
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마유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유 사방하시는구나. 바로 하나님이 이런 마음으
로 타락하고 도덕적인 부패의 김을 걸어가고 돌이길 수 없는 우상 승부의 죄에 빠졌지만 그래도 이스
라엘음 이렇게 있지 못하고 사랑하시는구나. 이린 것의 적절히 '끼는 데서 이 호세아서는 다튼 어때
한 예언서도 가질 수 없는 과의적인 호소력유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온품을 셋어서 그
피로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돌아오라고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풀어야 한 매우 중요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개 아까 발씀드린 짓처럼 왜
하나님의 투 얼굴이 이 통일한 성경 속에서 나타나는가7 이짓은 호세아서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님니
다. 보는 선지서는 심지어는 역사서 보두 다 1부와 2부로 나뉘어쳤습니다. 1부는 튀냐 하면 하나님의
십관입니다. 최틀 지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가 없는 무서운 신판입니다. 그리고 2부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결국 버리지 않고 싸매시고 치료하시는 하나님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두
하나님의 얼굴이 보든 선지서 속에 ]부와 2부로 등장을 하게 다니다. 호세아서에서는 이것이 1부 2부
로 나뉘어 졌지만 그러나 이 보습이 계속해서 언풍 언뜻 두 얼굴이 나타났다. 다른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지면 또 다른 얼굴이 나타나는 방식으로 교체되면서 읽힘니다. 이런 지식이 없는 제로 호세아서로
읽으면 도대체 위라고 전론율 내려야 되는지, 도대체 어평게 하라는 것인지에 대해서 혼란이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호세아의 가정 이야기를 다루면서 무슨 말씀을 하시냐 하면 -융란한 여자에 가서 장가
를 들어라." 그러면서 전국은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고 아주 대장하게 선인음 하시면서 해나년
이 이런 이야기를 또 불쑥하십니다. 그러나; 이건 앞에 이야키률 뒤집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혜아릴 수도 없고 실 수도 없을 것이며 ..(호 1:0 ) 녀
회 형제에게는 암미(내 백성)이라 하고 너회 자매에게는 루하마(공율허 여김을 받는 자)라 하라 (호
21) 앞에 이야기를 뒤집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두 나라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유다가
통일될 것을 팔씀하시는 것입니다. 선지자가 이 말씀을 받았을 때는 납북통일에 대한 비전을 가졌을
것 같습니다. 남왕국과 북왕국이 솔로몬 이후에 나라가 젯어집니다. 결국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역사를
보면 안 합쳐집니다. 합쳐지는 게 아니라 먼저 북왕국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당하고 이어서 180년 경
도 후에 남왕국 유다가 별방당하는 것으로 그냥 끝이 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없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뛰어난 왕이 나오고 이스라엘 자손의 수는 바다의 모래같이 될 거라고 하는 비전
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건 결국 뭐냐 하면 육적 왕국으로서의 두 왕국이 아니라 이 나라가 역사
속에서 모두 사라지고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오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나라
를 초월해서 모여서 그들이 하나님 앞에 한 백성이 될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그런 구속의 비전이
결국 첫 장에 나오고 그것이 마지박 장에도 나오면서 두 개가 수비쌍관식(1다뱃5()의 관계를 가지
고 두 비전을 함께 보여주면서 그 중간 2장부터 13장 사이에 스토리를 풀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문학
적인 구조로 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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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기도의 분유 인 때7 (202207:31 수인오선
그러면 하나님의 이 두 얼굴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이나? 이거에 대한 의문을 표며 호
세아서가 아주 단순 명료하게 다가오면서 아주 진한 감동을 여러분에게 주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설교
가 꿈나고 집에 돌아가면 성경윤 비친 듯이 퍼고 서을 것입니다. 아벤 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
번에 읽어버리십시오 그냥 빠르게 감기로 .성장 읽기 블어놓으면 읽는데 1시간도 안 걸립니다. 30)여분
뷔에 안 걸립니다. 한번에 읽으면 성경이 화 하고 마움에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그다음에 한 장씩
한 장씩 곱립으면서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엄칭나 감동으로 다가오면서 이 이 호세아 속에 나타나 있는
여러분이 예전에는 전혀불수 없었던 매시지를 읽으면서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게 될짓입니다.
그래서 이제 말씀드립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그 두 얼굴에 대한 대답은 뷔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관계를 맺으시는데 그 방식이 언약입니다. 인약인데 원래 지브리 사람들의 발을
따르자면 언악은 그냥 일방적으로 주는 것입니다. 그게 언악이 아니라 계악입니다. 계약을 하시는데
두 개의 계약 전통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함께 흐류니다. 하나가 사라지고 그다음께 오는 것이 아니
라 두 개가 함께 계속 흐류니다. 첫 번재 언약의 정봉이 아브라함 언약입니다. 아브라함은 원래 별난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믿음의 조상? 믿음하고 아무 상관이 없이 칼대아 우르에서 그냥 이방신을 성기
벼 우상을 만들며 살던 집안의 사랍이었습니다. 왜 그 사람을 택하셨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
나님이 아브라합을 개인적으로 부르십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 속에 살고 있는 그 사람을 떼어내어서
부릅니다. 자기 앞에 세우시면서 하나님이 그와 언약을 맺으십니다. 계약을 맺으십니다.
그런데 이거는 들이 서로 필 하면 준다고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맺으시는 것
입니다. 내가 그냥 일방적으로 너에게 이걸 줄게." "그런데 그 계약이 뭐냐 하면 네가 북의 근원이
되고 모든 사람이 너 때문에 복을 받게 될 것이고 너회의 자손은 하늘의 별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아
질 것이다" 그러시면서 하나님이 아브라합의 손을 이끌고 밤하늘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한편 아브라
한의 입장에서는 이런 경험은 새로운 경협이긴 하지만 그러나 듣도 보도 못한 경험은 아닙니다. 왜냐
하면 그때 많은 신들이 갈대아 우르에 있었고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은 그런 식으로 신들을 환상으로
보기도 하고 신탁을 받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합의 입장에서는 내게 처음으로 찾아오셔서 말씀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여태까지 조상과 주위의 사람들이 만났다고 하는 허접한 같대아 우르의 다른
신들과 무엇이 다른지 처음에는 알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말도 되지 않는 이상한 행동을 하십니다. 그 약속을 하신 다음에 아브라한에게
명령을 하여 집승을 쪼개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거는 뭐냐 하면 짐승을 쪼개는데 이게 그 당시
에 있었던 소위 봉신언약이라는 것입니다. 큰 땅을 왕이 차지하면 자기가 다 다스릴 수 없으니까 제후
를 입명합니다. 이 사람은 그냥 평법하게 농사짓던 사람인데 '내가 널 제후로 부르마' 그러고 불러내
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그걸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 당신 와서 장관하십시오' '저는 아무래도
비리가 많아서 못 나가겠습니다.' 이런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나 웬지 영광으로 생각하면 나오듯이 나
왔던 것입니다. 률이 같이 작성하는 게 아니라 왕이 일방석으로 작성하는 것입니다. '너는 나에게 충성
을 다하고 나를 위해서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봉사해야 된다.' '그러면 나는 너에게 이 땅에서
거두는 세금 중 일부를 너에게 주고 이 백성들을 다스리게 해주마' 증서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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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기도의 분유 업 때7 (지120731 주이오전)
들이 서로 사실은 약즈류 주고받은 것이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왕이 일방적으로 작성한 서하입니다
그거를 가지고 큰 항소물 쪼개농고 피가 질편하게 흐르는 그곳의 왕과 새로 임명되는 봉신이 함께 걸
어가는 것입니다. 그게 무손 뜻이나면 우리 들 충 하나가 서로를 배신하면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신를
이 이렇게 집승유 머리부터 꼬리까지 점단유 내듯이 우리에게 제주가 퍼부어지기를 바반다는 걸로 지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언약 체결 의식에 아브라합은 아주 익숙해셔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 가장 신
성하고 심각한 맹세의 형태가 바로 그거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집승을 쪼개농으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사이를 지나가시는 것입니다. 그건 무손 메시지냐 하면 "너로
발니않아 북을 받고 네 지손이 하늘의 법처럼 많아지겠다는 약속을 내가 한다." "내가 어기면 내가 이
렇계 저주를 받겠다." 사실 발이 안 되는 게 하나님보다 높은 누가 있어서 하나님을 서주하겠습니까2
그러니까 처음부터 이건 말이 안 됩니다. 그런데 아브라합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그런 식의 화법
이상으로 아브라한에게 호소력이 있는 화법이 없었기 배분에 소위 애기하는 "아콤모다티오
(acconmnodtalio)'라는 눈높이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알고 있는 가장 십4한 언약
체결 의식 그리고 이것은 견코 거짓이 있을 수 없을 것이라는 그 의식을 가지고 아브라합에계 화상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러면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싸 트고 강화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신은 갈대이
우르에서 나타났던 그 수많은 허접한 신들하고 다른 어떤 분이시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 언약은 아브라함과만 맺은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과 모두 맺은 언약입니다. 그 언약의
줄기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흐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우리의 조건이나 우리의 행위나 잘
한 것을 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 자신의 약속에 의해서 일방
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우리를 구원하시는 거라고 해서 우리들이 온력연
약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시종일관 은혜 때문에 지탱된다고 해서 은혜언약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결국 많아지기를 최소한 이백만에서 삼백만 명 정도 되
는 어마어마한 말하자면 민속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애굽에서 탈출해서 첫 번져 간 곳이 배
로 시내산이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께로 또 윤법율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보세 언약이 체
결이 됩니다. 그런데 이 모세 언약의 핵심은 뭐냐 하면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을 따라서 살면 하나님이
큰 복을 주셔서 가나안에 가서 이루어질 너회 나라가 강력한 나라가 되고 부강하고 그리고 부유한 나
라가 되어서 너회 나라한테 꾸러 오는 사람은 있지만 어디로 꾸러 가는 나라가 되지 않겠다. 그런데
만약에 너희들이 이 계명을 어기면 죽는다. 그리고 계약 속에 칼이 들어옵니다. 그것은 워냐 하면 그
계약을 어기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칼이 합께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제 우리들이 혼란
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낌없이 모든 것을 주시는 아브라합의 언약과 지키면 부을 받지만 안
지키면 칼로 목을 찌르리라고 하는 무서운 칼과 합께 들어오는 피 붙은 이 언약율 어명게 조화시킨
수 있느냐는 문제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에 대한 답이 뭐냐 하면 아브라합의 언약은 영원한 나라에 관련된 언약이고 보세 언약
개인기도의 분유 일 때7 (220731 수인오선
은 일시적인 세상 나라와 '관련된 언악입니다. 모세 인약은 지켜서 구원을 얻으라고 준 언약이 아니니
다. 처유서부터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언약을 '주신 이유는 지상 왕국에 한정되는 것입니다.
I
그래서 그 약속을 잘 지키고 온 나라가 심계명을 따라서 산면 하나님이 번영하게 하셔서 북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짓을 행위 계약이라고 발하는 짓입니다. 그렇게 잘 사는데 만약에 그 계명을 어기
고 불순총하게 되면, 우상을 숭배하게 되면 하나님이 나라를 과열로 이끄시는 거고, 성경에 나오는 이
'
스라엘의 별망의 역사는 이 보세의 언약이 시퍼범게 삶아 있다는 것율 보여주시는 것이고 하나님이
휘두르시는 칼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금 운 세계에 나라가 20)여 나라가 있는데 나라마다 각각 형편을 다릅니다. 아주 피나게 독재를
어는 나라도 있고 인권이 거의 유린되는 나라도 있고, 아니면 성적으로 너무 타락한 나라도 있고,여
러 가지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화실한 거 하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나라만이 아니라 세상
나라도 너무나 타락하고 방가지면 하나님이 그 나라를 정리하십니다. 그래서 산산이 흡어버리시는 것
입니다. 그래서 부강한 나라들은 자신의 부강한을 빈고 너무 교만하면 안 다니다. 악이 차면 하나님0
통치자를 죽이시는가 나라를 박살내서 흔적도 안 납기시고 사라지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역사의 부도
률 넘기면 어마어마한 나라들이 왜 그렇게 몇백 년 만에 민지처럼 사라지는가 하는 것들에 대한 설명
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면에서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해 있어서 세상과는 상관이 없
지만 육적으로는 세상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사회가 건강하고 하나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정의
뽑고 인정이 많은 나라가 되는 데에 이바지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지만 여러분이 여기에 있어서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고 자손들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그렇게 보면 문제가 플립니다. 어떻게 풀립니까? 하나님의 불볼는 사
랑, 그렇게 끊임없이 당신을 버리고 도망가도 펫속까지 타들어가기까지 사랑하는 그 사랑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웃지 않고 기억하시기 배분에 사랑하는 것이고 그 사람은 전코 말로도 풀 수
없고 모래로도 끝 수 없습니다.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들은 이미 모제의 언약을 과기
해 버렸기 때문에 수많은 고난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무었과 똑같으냐면 우리가 한
번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면 이 구원은 취소원 수 없습니다. 그건 영원한 구원입니다. 그런데 만약
에 여러분이 구원은 받았는데 여러분이 하나님보다는 세상을 사랑하여 영적으로 우상승배에 복지고
도덕적으로 타락해서 부페에 흐르게 되면 그럼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살아있는 동안에 여러분의 실
이 매우 매우 고달프고 괴로운 날들이 연속원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 중에 어떤 분들이 이렇게 문고 싶을 것입니다. '목사님은 안 그런 것 같은데요%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가정도 파탄시키고, 폭력을 행하고, 불의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직원들을 해고하고
심지어 폭력을 행하고, 뇌품을 바치고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는데 아주 명명거리고 가난하지도
않고 권력자들과 줄이 담으면서 송송장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경상도 사투리로 하고 싶은
발이 있습니다. "지들려,." 기다려보라, 이것입니다. 그러면 종말을 보게 될 것입니다. 결국은 풍비박신
이 되고 박살이 나서 망하게 필 것입니다. 그러면 또 이병게 말한 것입니다. '목사님은 안 그렇습니다.
"제가 이는 어폰 사람은 그렇게 산있는데 결국은 끝까지 방하지 않고 그 재산을 자손들까지 누리게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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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입기도의 권유 의 47 (322073 수입오전
었습니다. 비명에 죽지 않았습니까? 비밀에 죽었습니다. 돈육 잔뜩 모아통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돈
음 모았는데 자기는 비명이 축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누리는지도 보르는 사람들이 와서 그 재산을 픈
어 먹고 누워니다.
결국 인간이라는 것은 그병게 플잎 끝에 매달린 이습처럼 유한한 존재입니다. 결국 과스칼이 발령
던 것처럼 인간을 과괴하기 위해서 온 우주가 무장한 필요가 없습니다, 후하고 불면 날아가는 게 인간
존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제까지 밀쟁하번 사람이 오늘 사형 선고를 받고 숙음을 기다리고 가족
들은 장지물 알아보는 신세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제까지 벌쟁하던 사람이 오늘 사고가 나서 죽
.는 경우도 있습니다. 행부하던 가정이 알 수 없는 이유 때분에 게뜨리지면서 망가지면서 불행으로 쳐
들어가는 그런 것들은 우리에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결국은 위냐 하면 하나님을 믿는 사립
들은 어려움을 만나면서도 하나님의 이 은혜언약을 쪽 불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그분과 함께 동행
하는 힘으로 세상을 이기면서 실아가지만 하나님과의 이 언약을 깨뜨린 사람들은 하나님이 끝까지 구
원해 주시겠지만 그러나 결국 그의 삶은 불행한 짓입니다. 그래서 예수클 잘 못 믿는 사람은 예수컬
전혀 모르는 사람보다 더 불행한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게 전국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플 과피하는 데
서 오는 불행이라는 이야기인 짓입니다.
정리를 하면 건국 호세아를 풍해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매시지는 이스라엘의 타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불붙는 뼛속까지 타들어가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게 하시는 것이 이 호세아를 보낸 복적이었던 것처럼 오늘 이 호세아와는 달리 약 2700)년 후에 살
고 있는 여러분에게 그 마음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저를 여러분에게 설교자로 보내신 것은 똑같은 동
일 천상의 목적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극적인
상황이 무엇인가를 깨단고 우상숭배의 신전에 올라 그들처런 우상을 섭기고 그들처럼 성행위를 하지
는 않았지만 똑같은 방식으로 하나님 대신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 쾌락 좋아하기를 하나님의 율법보디
도 더 좋아하며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미래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돌이키는 것이 허
나님이 설교자률 보내시는 복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되떤 엄청난 고통을 쥐계 됩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로소 옛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II. 고난 받을 기도하라

그래서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을 찾게 된다는 이야기를 오늘 우리가 읽은 는
문 14절과 15절에서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A. 고난의 이유: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은 뭐냐면 고난의 이유입니다. 고난의 이유는 한마디로 애기하면 퍼입니다. 사
사기서를 공부하며 삼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스라엘에게 돌이킬 수 없었던 큰 두 가지 죄가 있었
다고 그랬습니다. 종교적으로 타락한 것과 도의적으로 부패한 짓, 이것이 전국 파탄에 이르면서 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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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기도의 분유 일 벽7 (A0073 수위오선
라엘 백성이 번방의 길로 향하여 치달아 갔던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의 시대에도 똑같이 종교적으로
하락하고 도덕적으로 부쾌한 처지가 되어서 인륜이 땅에 떨어지고 하나님의 위법이 모두 사람들에게
짓바혀서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과 세상 백성이 아무것도 구법이 되지 않을 정도까지 이르게 되었고
선지자의 목소리까지도 다 변질되어 버린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그 종교적인 타락과 도덕적인 부패는 어디서 온 것입니까? 그것을 하나의 뿌리에서
8세아는 찾습니다. 그것이 뷔냐 하면 '지식이 없융'입니다. 그래서 4장 6철이 호세아 전체의 요절이리
고도 말한 수 있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브로 방하는도다 네가 지식의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
려 네 계사장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요 .."(호 46) 이런 무시무시한 선언이 주어집니다. 그러면 여기
서 이야기하는 이 지식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게 '다트(과T)'라는 히브리어입니다. 그런데 동사가
야나(" @)"입 니다. 첫 번체 쓰인 곳이 "아담이 하와와 동침합에 가인을 남은지라" 한 떼 손 게 첫 번
제 쓰인 용례입니다. 그래서 영어의 노우(1mnow)라는 단어에 ' 성교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무슨 뜻이
나 하면 여기서 이야기허는 지식은 그냥 과학적이고 이지적인 지식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경험을 통해서 인격적으로 서로 알게 되는 그 지식입니다.
부부 사이에 지식이 없는 부부 관계가 있고 지식이 있는 부부 관계가 있습니다. 지식이 없는 부부
의 관계는 그냥 데면데면하고 삽니다. 그리고 내일 헤어진다고 헤도 눈물 한 방울 안 나고 보래 죽는
다면 신문지로 가리고 웃을 수 있는 관계가 지식이 없는 관계입니다. (신문지로 가리고 웃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새로 시집 같 수 있으니까 웃는 것입니다. 장가 같 수 있으니까 ( 웃는 것입니
다.) 그게 지식이 전혀 없는 부부 관계입니다.
그런데 지식이 있는 부부 관계는 어떤 것이냐면 이것입니다. 들이 서로 사커었습니다. 결혼하지 압
은 남녀가 서로 사랑이 깊어져 갔습니다. 6 7년을 교계를 했는데 대판 싸웠습니다. (자매가)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 인간하고는 일생을 같이 하면 안 되겠구나' 그리고 단교를 선언했습니다. 단절을 선언
하고 이제 우리 더 이상 만나지 말자하고 카톡이고 뭐고 다 지워버렸습니다.전화 오던 연락도 안 발
있습니다. '이제 찾아오지도 말아라' '이제 년 나와 나이다.' 그리고 받았던 선물을 갖다 평개쳐 버렸
습니다. 남자도 보니까 '이거 6년 동안 내가 속았네! '인간도 아니네' '저런 성질머리를 가진 여자하
고 살다가는 내가 일생 견짜 불행하게 살 거야' 자기도 다 지위버렸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선용윤 꽃
다 패대기를 쳐버렸습니다. 끝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납자가 한 이틀이 지났는데 궁금한 것입니다. '이 여자가 어평게 하고 있을가? 3일이 되
니까 보고 싶은 것입니다. 4일이 되니가 눈물이 니는 것입니다. 일주일이 되니까 미치는 같습니다. 그
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밥거리콜 나왔습니다. 터덜터덜 결있습니다. 터월터털 절었습니다. 자기도
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가서 무료율 품어도 용서 안 해줄 것 같습니다. 관제가 회복이 안 될 것 감습니
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보던 자매가 바로 잎 벤지에서 그리고 않아서 계속 울고 있는 것입니다.그
모르게 들이 저벽때마다 늘 만나던 어느 공원에 발절읍이 옮겨진 것입니다. 거기에 않는 순간 잠복 는
계 푸였입니까? 예어지려고 전심했는데 지식이 아식 안 없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이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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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기도의 분유 일 때7 00220731 주입오전)
이 허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그컬 어떻게 정의류 내렸느냐 하면 하나님의 백성다운 행위를 하면서 거확한 인격으로 살아가게 하
는 보들 삶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마유과 영혼 속에 있는 그 무엇 그리게 저는 정의를 한 것입니
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렸다는 것은 건국 하나님 자신을 버린 거하고 똑같은 것입니다.
부부가 살다가 이제 싸용도 하고 그러지 않습니까2? 그런데 전 법로 안 합니다. 여러분은 자주 하실 것
입니다. 씨음도 허는데 때린 수가 없는 것입니다. 대반 4우고 발도 안 하고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래도 이 사람 없이 못 산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어노 순간에 결정적인 사진을 만납니다. 그래
서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의 관계에 도달하면서 진짜 못 돌이킬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 우
리 뭐라고 합니까? '이제 보는 정나비가 뚝 면어졌어' 그턴 때 그 징나비가 지식에 가까운 짓입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 가십니까? 설명한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이 내 안에 있고 내가 그 사람 안에 있어서
갈등허면서도 결국은 서로를 포기한 수 없게 만드는 그 무엇, 그것이 지식의 정체라고 보시면 되는 것
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가장 사랑받는 삶은 뒤냐 하면 그 지식이 중진되는 삶입니다. 그게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경협적인 지식이 내 안에서 진접 더 견고해셔서 이스라엘이 우상을 분 때 그러
니까 어떤 여자가 그 지식이 한 남자에 대해서 아주 넘쳐서 자기 남편을 사랑하게 될때 그 여자에게
는 세상에 남자는 없습니다. 그냥 남편 한 사람과 은 인류가 존재하는 짓입니다. 그계 순결한 상태일
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외에 다른 백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내 백성이라고 부르시는 것입
니다. 그런 마음이 점점 커지는 것이 하나님이 윈하시는 신앙생활입니다. 그걸 우리말로 성화라고도
팔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오래 믿어도 변화가 없습니다. 간격도 없고 마치 교회는 나오는데 헤어져야 할 부부가 애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처럼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종교 생활입
니다. 결국 무엇입니까?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애듯한 정나비가 없는 것입니다. 언제 하나님하고 혜어
겨도 눈물 나지 않는 관계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합니까? 끊임없이 외간남자들에게 눈길을 주면서
어디 멋있는 사랍이 있나 하고 이스라엘이 있을 매 진짜 멀끔한 난자 하나가 딱 나타났는데 바알입니
다. 폭 빠진 것입니다. 그래서 난편이 벌어다 준거 다 갔다가 바알에게 바치면서 몸도 바치고 물질도
바치고 모든 걸 바치면서 삽니다. 하나님께 해야 할 그 일을 바일에게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동안에
언약 관계는 산산이 파괴가 되고 이스라엘은 끊임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
는 것입니다.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이 지식이 없는 것, 그 지식을 버린 것이 모든 죄의 궁극적인 원인입니다. 내가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습니까? 1년 전에 여러분을 한번 떠올려보십시오 정상적이면 여러
분이 1년 전에 있는 여러분을 가르처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야 되는 것입니다. '네가 그렇게 방황하며
살고 있구나! '그런데 사실은 이런 거란다.' '신앙은 이런 거고 인생은 이런 거란다.' '너도 이제 철 품
어보면 안다.' 그런데 그게 전혀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중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개인기도의 분유 업 매7 (2020731 수원오선
빌 해도 형식적입니다. 그러니까 진심에 1와 닿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최가 결국 : 떠나질 않으니까 하
나님은 모세의 언악유 따라서 좋입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난을 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이 얼마나 지엄한지를 깨단게 하셔서 결국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불순종하고 언
약을 께뜨리면 결코 이 세상에서 행복할 '수 :없었고 쓰디쓴 '붙을 먹고, 양식 대신 모래클 퍼먹어야 하고
기류진 고기 대신 이 세상에서 나붓잎을 찍어야 되는 비참한 궁립을 면한 수 없다는 것율 보여주는
것입니다. 방자가 타국에 가서 살았던 것처럼 크병게 살 수비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
레서 결국 최뮤 버리고 하나님음 사랑하며 살 에 가장 큰 이익음 보는 당사자는 하나님이 아니리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해시는 집은 날마다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을 사
칭하는 것입니다.
(찬양)
내 생애 가장 귀한 것
주 아는 것
죄를 버리고 주님을 알아가는 사람들이 되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 고난의 해결: 은혜

마지막으로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그 고난을 해결하시는가? 그게 바로 하나님의 은혜에 답이 있
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하나님께 스스로 돌아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매일 경험해
는 것이지만 어떤 올바른 일을 하면서 살려고 결심을 하면 즉시 그것을 깨뜨리지 않을 수 없는 일들
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서, 우리 밖에 환경에서 (일어납니다.) 결국 뒤냐 하면 하나님의
은혜언약을 받아들이고 그 은해언약을 따라서 사는 그 자체가 하나님 율법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
라 은폐의 힘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립니다. 은혜 언약을 져버립니다. 그
래서 결국은 타락에 빠지고 부부와의 관계률깨뜨립니다.
그매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어떻게 돌아올 것인지를 세 가지로 발씀하십니다. 첫제가 "그들이 그 죄
클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설해
구하리라"(호 515) 첫째는 죄악을 뉘우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자기가 곤고한 실
을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왜 이렇게 곤고하게 살아가는지를 깊이 성찰하는데 그절 깨단게 해주
는 것이 하나님 팔씀의 빛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보두 죽어 있어도 이 귀가 있고 우리의 마음이 있으
면 산아있을 수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편 하나님 진리의 빛이 결국은 우리의 지성을 통해서 들어오기
때분에 결국 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보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팔씀데로만 살고 전혀 결길로 나가지
는다면 최고입니다. 그런데 그런 삼을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한 사람도 모세의 언약을 완벽하게 지킨 사람은 없습니다. 이걸 원래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
넘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에 매달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매달리게 하기 위해서 사
-15-
개인기도의 분유 염 때7 20731 _주인오전
랑허는 맥성인데도 모세 언약의 채찍을 통해서 종아리를 치시고 등락을 치심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으
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찬양)
때리시고 어루만겨 위로해 주시는
우리 주의 넓은 품으로 이서 돌아오오 어서
우리가 주님께로 뉘우치고 들아있율 때는 보두 회개의 경협이 있습니다. 그 회개 이비 우리 안에
하나님의 운혜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염없이 눈물이 납니다. 그리고 아무도 원방하고 싶
지 않고 오직 원망하고 싶었던 것은 하나님을 멀리 멀리 떠나고 음탕한 고발과 감이 주님과의 언약
관계를 배빈하고 외도에 빠졌던 나 자신4에는 비운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 사실은 아무리
.나를 미워해도 과거에 일어난 일을 고친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그 관계를 고치기 위해서 주님
께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그래서 생각 없이 한 달을 예배드리는 짓보다는 정신
을 바작 차리고 무슨 말씀을 하는지 한 번 예배드리는 사람이 주님을 더 빨리 만납니다. 나는 여러분
이 모두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최악을 깊이 뉘우처야 합니다. 그러면 기도의 문이 얼립니다. 발씀이 돌리기 시작합니다. 성경이 풀
처럼 달기 시작합니다. 한 번 호세아서를 읽었는데 다시 읽고 싶습니다. 더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
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을 감동시켜서 예전에는 고벤을 더러운 년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내가 더러운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하나님의 온해 없이 살 수 없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뼛속까지 타들어
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지금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비 내가 하나님을 멀리 떠나고 멀리 떠났을 그맥부
터 주님의 뼛속까지 타들어가는 사랑이 계속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내가 더 이상 하나님을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발걸음을 하나님계로 옮겨농계 되
는 것입니다. 아멘
두 번에는 주님의 얼굴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인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
시는 경우가 두 번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우리 인간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습니다. 여러분 지
난 일주일 동안 30센티 거리에서 어떤 사람의 얼굴을 10초 이상 본 적 있습니까? 있다면 여러분 이상
한 사람입니다. 없습니다. 아내하고 남편이 30초 이상 30m 거리에서 마주 본 적 있습니까? 없습니다.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면 대 면으로 딱 들여다보시는 경우가 막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게 뭐나면 너무 사랑하셔서 들여다보시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웹고 하
나님은 내 얼굴을 붙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30m 아니 10m 거리에서 두 눈을 마주 보아도 시간이
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사랑스러우니까 나는 그대의 눈 속에 빨려 들어가고 그대는 내 눈 속에 빨려
들어오면서 몸은 들이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 사랑하는 연인들이 서로의 얼굴을 처다보는 것입니
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그렇게 연인처럼 보고 싶어 하셨습니다.
(지양)
-16-
개이기도의 분유 때7 (120731 수위오선
주님의 총축하리 내 입술 주류 찬양
나의 눈 보기 위하네 주님 얼굴
(찬양)
주님의 음성 듣기를
주님을 반져보기를
전신으로 원합니다 주여
너무 사랑스럽게도 여러분에게도 이런 심정이있을 매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는 하나님 이외에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나의 눈 주님율 보기를 원하고 그리고 주님의 눈이 내 얼클에 허물기
률 원하나이다.' 이런 때가 있었습니다. 그건 위냐 하면 하나님을 진심으로 그 얼굴을 구하는 맥입니
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인간의 얼굴을 뚫어지게 계속 바라보시는 김우가 한번 더 있습니다. 악인을
과년시키기 직전에 보시는 것입니다.
여러볶은 지금 주님을 대면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것은 한없는 달콤한 교재의 대면입니까2 하나
님이 경고하시는 심판 직전의 대면입니까?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기품은 말복 중에서 척고의 복입
니다. 그래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불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얼굴
음 어디서 봅니까? 기도 속에서 내 기도를 들으시는 것 같을 매 우리는 그분의 얼굴을 불니다. 말씀
속에서 내게만 설교하시는 것 같을 때 우리는 주님의 얼굴을 불니다. 그 모든 말씀을 듣고 내 마음이
감동을 받아서 주 앞에 회개의 눈물을 훈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 앞에 서 있는 것을 느끼는 것입
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면전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웃으시
는 얼굴 앞에서 그분을 웹지만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 거역하고 우상 숭배와 간음의 죄에 북지고 세상
책락율 사랑하면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뵈윤 뿐 하나님의 얼굴과 마주하지 않는 곳은 아무테
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다는 고백을 가졌다면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그분과의
교제를 누리며 살아야 된지률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바로 덧속까지 타들어가는 사랑으
로 여러분을 찾으시는 분이니 여러분이 주의 얼굴을 구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마지막으로 하는 일이 간설허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 .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호 515 1) 하나님 자신율 찾고 또 찾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
지바으로 나타난 형태가 기도입니다. 하나님 너무 사랑하면 마지막 나타나는 형태가 감사의 기도입니
다. 고난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마지박 그 모습이 하나님 앞에 눈물로 매달리는 .젓입너
다. 죄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있고 난 후 그 마지막 열매는 하나님 일에 간절히 부르짓는 것입니다
견국 이것은 생각으로 우리가 아이를 잉태한 후 마지비에는 기도를 통해서 이 아이를 분만하는 것처
럼 우리의 죄를 쏟아네기도 하고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시공간 속에서 표현하기도 하는 것
입니다.

III. 적용과 결론

그러므로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너무 사방하십니다. 어명게 보면
그것은 하나님에게 운평적인 사랑입니다. 렸속까지 타들어가는 사랑이고 결코 여러분이 어떠한 처지에
있는지 차마 하나님이 여러분의 손의 놓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이 적발 사랑이
은 어버니 아비지라면 자식이 최류 짓고 교도소에 갔어도 면회 가지 않겠습니까? 면회 가서 수의를
입고 있는 수염이 더부록한 자식유 보면서 가슈이 비어질 듯이 잘 살 매 못지않은 더 에점한 사랑이
여러분 속에서 솟아나오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바로 그턴 사랑으로 여러분을 부르시는 하나님입나
다. 아무리 멀리멀리 하나님유 떠나도 하나님은 손해 분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을 떠
나면 여러분은 하나님 없는 삼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삼을 살 때 결국 어던 인생이 된 것인기
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품음 통해서 우리에게 그림처럼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지박
원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치금토 여러분유 고봉 가운데 있는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최를 뉘우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만 하면 다시 들아오겠다고 발씀하십니다. 여러분이 고난을 받
을 매 하나님율 간간히 찾는 다면 다시 만나게 원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있날보다도 더 뛰어난 사방이
변함없이 하나님계 받으써 여러분의 인생의 명남하게 산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에로 들아오십시오
이것이 호세아서가 여러분에게 주는 매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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