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은 나라(단4:2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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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은 나라"
"내가 지은 나라"
다니엘 4:28-37
다니엘 4:28-37
도입
도입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은 하워드 휴즈(Howard Hughes)였습니다. 영화 제작자, 항공기 설계자, 억만장자 사업가. 그는 열아홉 살에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아, 할리우드 최고의 영화를 만들었고, 세계 신기록을 세우는 비행기를 직접 조종했고, 라스베이거스의 호텔과 카지노를 사들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살아있는 신화"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하워드 휴즈가 말년에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그는 인생의 마지막 이십여 년을, 호텔 꼭대기 층 어두운 방들을 옮겨 다니며 은둔생활을 했습니다. 햇빛을 피해 커튼을 치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씻지도 않았습니다. 1976년,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손톱과 머리카락, 수염은 몇 년째 다듬지 않아 길게 자란 채였고, 체중은 41kg까지 줄어 있었습니다. 시신을 확인한 이들이 지문으로 신원을 대조해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자유로웠던 사람이, 결국 가장 고립되고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한 인간이 정상의 자리에서 그렇게까지 무너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런데 놀랍게도, 이보다 약2,500년 전에, 훨씬 더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한 왕에게 아주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왕의 이야기는 하워드 휴즈의 이야기와 결정적으로 다른 결말을 맺습니다.
연결어
연결어
바벨론 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웅장한 도시를 건설했고, 세계 최강의 제국을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궁궐에서 쫓겨나 짐승처럼 들에서 지내게 됩니다. 머리카락은 독수리 털처럼, 손톱은 새 발톱처럼 자라난 채로 말입니다. 이 왕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리고 이 왕의 이야기는 왜 파멸이 아니라, 회복과 찬양으로 끝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겠습니다.
성경 속으로 (해석)
성경 속으로 (해석)
본문은 느부갓네살 왕이 직접 자기 입으로 고백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28절, "이 모든 일이 나 느부갓네살 왕에게 임하였느니라."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29절과 30절을 보십시오. "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새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여기서 열두 달이라는 시간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사실 이 장면 바로 앞에서, 왕은 이미 다니엘을 통해 하나님의 경고를 받았습니다. 큰 나무가 찍혀 넘어지는 꿈, 그리고 그 해석 — "왕이 스스로 낮추지 않으면 왕권을 잃게 될 것"이라는 경고였습니다. 그런데 왕은 그 경고를 받고도 열두 달 동안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열두 달이 지난 그 날, 궁궐 지붕을 거닐며 자기가 세운 도시를 내려다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큰 바벨론은 내가 건설했다. 내 능력과 권세로, 내 위엄의 영광을 위해서."
실제로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바벨론의 벽돌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나 느부갓네살, 바벨론의 왕은… 지었다." 이것은 상상 속 대사가 아닙니다. 이 왕이 실제로 남긴 말버릇을 성경 저자가 정확히 포착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십시오. 바벨론을 그렇게 웅장하게 세울 수 있는 지혜와 능력, 그 모든 자원과 시간, 그것을 왕에게 처음부터 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왕은 하나님이 맡기신 것을 자기 것이라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31절입니다. "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지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33절, 그 말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
세계 최강 제국의 황제가, 스스로를 짐승이라 여기며 들판을 헤매는 존재로 전락한 것입니다. 왜 하필 짐승입니까? 성경은 처음부터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다고 말합니다(창세기 1:26-28). 다스림은 인간에게 주어진 고귀한 특권입니다. 그런데 그 다스림의 권세를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 것으로 삼으려 할 때, 인간은 오히려 인간 이하로 떨어집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왕좌는, 결국 짐승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하나님은 이 왕의 몸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본문의 흐름을 잘 보셔야 합니다. 32절 후반부를 다시 보십시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목적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하나님의 목적은 단지 이 왕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목적은 "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34절에서 놀라운 전환이 일어납니다.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니 내 총명이 다시 돌아온지라." 사실 원문을 보면 흥미로운 것이, 이 장 전체에서 왕이 짐승처럼 지내는 동안에는 성경이 왕을 3인칭으로, 그러니까 남 이야기하듯 "그가, 그를" 이라고 서술합니다. 그런데 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는 바로 그 순간부터, 본문은 다시 "나, 나 느부갓네살이"라는 1인칭으로 돌아옵니다. 하늘을 우러러보기 전까지 그는 자기 입으로 말할 자격조차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우러러보는 순간, 비로소 그는 다시 "나"라고 말할 수 있는 인격을 되찾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야말로, 참된 사람다움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이 문장 하나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의 입에서 나온 첫 고백이 무엇입니까. 34-35절.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원히 사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그의 손을 대적할 자도 없고 이르되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물을 자도 없도다."
이 고백은 놀랍게도 선지자 이사야가 이미 선포했던 말씀과 정확히 겹칩니다. 이사야 40장은 "열방은 통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 물 같고, 하나님은 그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신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성경으로 자기를 해석합니다 — 바벨론의 황제가 무너져서 깨달은 그 하나님이, 바로 이사야가 이미 선포했던 그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36-37절, 왕은 온전히 회복됩니다. 총명과 위엄과 나라가 회복되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 큰 위엄"이 더해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고백. "이제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분명하고 선명한 메시지
분명하고 선명한 메시지
여기까지 본문을 따라오면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교만을 반드시 낮추십니다. 그러나 그 낮추심의 목적은 파멸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참된 왕이 누구신지 알고 그분께로 돌이켜 참된 사람다움을 회복하게 하시는 데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의 몰락은 형벌이었지만, 동시에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그냥 내버려 두셨다면, 그는 교만한 왕으로 살다가 교만한 채로 죽었을 것입니다. 하워드 휴즈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셨기에, 그를 낮추셨습니다.
적용
적용
결론 (복음)
결론 (복음)
참고
느부갓네살 2세(재위 BC 605-562)는 신바벨론 제국을 고대 세계 최고의 도성으로 탈바꿈시킨 대건축가였습니다. 주요 건축물은 이렇습니다.
이슈타르 문과 행렬로(Processional Way) — BC 575년경 완공. 높이 11.5m가 넘는 문으로, 파란 유약 벽돌에 황소(아다드 신)와 용(마르둑 신) 문양을 교대로 새겼습니다. 문에서 마르둑 신전까지 이어지는 행렬로는 길이가 반 마일이 넘고, 양쪽 벽 높이 15m에 사자상 120여 개가 늘어서 있었습니다. 오늘날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에 실제 복원되어 전시되어 있습니다.
에테메난키 지구라트 — "바벨탑" 전승과 연결되는 마르둑 신전 탑입니다. 원래 있던 구조물이 앗수르에 의해 파괴된 것을, 느부갓네살이 7층 규모로 재건했습니다. 훗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정복 후 재건을 명했으나 완성하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에사길라(Esagila) — 바벨론의 수호신 마르둑을 모신 대신전으로, 지구라트와 한 단지를 이루었습니다.
바벨론 성벽과 왕궁(남궁전·북궁전) — 도시 전체를 이중·삼중으로 둘러싼 방어 성벽, 그리고 왕이 거주한 남궁전을 새로 짓거나 대대적으로 확장했습니다. 다니엘 4:29의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새"라는 장면이 바로 이 궁전을 배경으로 합니다.
공중정원(전설) —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지만, 정작 바벨론 유적에서는 확실한 고고학적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실존 여부와 건설자가 느부갓네살인지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습니다(그리스 역사가들은 메디아 출신 왕비 아미티스를 위해 지었다고 전합니다).
관개 운하와 유프라테스 강 정비 —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과 여러 운하, 다리도 그의 치세에 정비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실제 발굴된 바벨론의 벽돌들에 "나 느부갓네살, 바벨론의 왕은… 지었다"는 문구가 반복적으로 새겨져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번 설교문 도입에서 다룬 다니엘 4:30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라는 왕의 자랑이, 실제 이 왕의 비문 어투를 그대로 반영한 사실적 묘사라는 걸 확인해주는 대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