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복음전해진 히브리서 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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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에 말하는 복음은 무엇일까?
히브리서에 말하는 복음은 무엇일까?
제목 : 히브리서가 말하는 복음 또는 복음이 전해진 히브리서
본문
히브리서 전체
중심본문: 히브리서 1:1–4, 4:14–16,
7:23–28, 9:11–14, 10:19–22
설교의 세 대지
복음전해진 히브리서
1)예수님은 선지자보다 뛰어나신 분
2) 예수님은 천사들보다 뛰어나신 분
3) 예수님은 제사장보다 뛰어나신 분
적용)
요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나는 누구의 말이나 어떤 기준을 가장 크게 듣고 있습니까?
최근 언제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 가장 어려웠습니까?
지금 내 마음에서 예수님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문제나 의지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왜 그 문제·사람·조건을 쉽게 놓지 못하고 의지하게 됩니까?
죄를 짓거나 실패한 뒤 나는 보통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합니까?
가정·관계·직장·교회 가운데 지금 은혜의 보좌 앞으로 부르시는 삶의 영역은 어딥니까?
Ⅰ. 설교 설계도
1. 히브리서 전체의 중심 흐름
히브리서는 단순히 “예수님이 훌륭한 분이다”라고 말하는 책이 아닙니다.
히브리서는 계속해서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나신 분이시다.”
왜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을 그렇게 반복해서 강조합니까?
당시 성도들이 고난과 박해 속에서 신앙을 포기하고 다시 옛 체계로 돌아가려는 유혹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면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문제는 단순히 교회를 떠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떠난다는 것은 더 좋은 것을 버리고 그림자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완성을 버리고 예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실체를 버리고 모형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계속
“더 좋은 것 중심에 (예수)”””을 말합니다.
더 좋은 것 구원 (6:9)
더 좋은 소망 (7:19)
더 좋은 언약의 보증(7:22)
더 좋은 아름다운 직분(8:6)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8:6)
더 좋은 일의 대제사장(9:11)
더 좋은 약속 (9:11)
더 좋은 크고 온전한 장막(9:11)
더 좋은 제물 (9:23)
더 좋은 부활 (11:35)
더 좋은 본향 (11:40)
그리고 그 모든 “더 좋은 것”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2. 설교 명제
히브리서가 전하는 복음은 ….모든 것 , 하늘 땅 , 보이는 세게와 보이지 않은 ㅡㅡ우주적으로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최종적인 말씀과 완전한 구원과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주셨다는 소식입니다.
오늘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한 문장
복음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조금 더 주셨다는 소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뛰어나신 예수님 자신을 주셨다는 소식입니다.
(베스트 중에 베스트,…. 학점 트리폴 A+++) 이만큼 , ,왜? 팔 벌려 , 하늘만큼 땅만큼
서론 — 히브리서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에게는 언제나 비교의 대상이 있습니다.
무엇이 더 좋은가?
누가 더 강한가?
어디가 더 안전한가?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가?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어려움이 찾아오면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비교가 시작됩니다.
“예수님만 믿어도 정말 괜찮을까?”
“돈이 조금 더 있어야 안전하지 않을까?”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내 경험과 능력을 붙들어야 하지 않을까?”
입술로는 예수님을 믿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끊임없이 예수님과 다른 것들을 비교합니다.
여기에 인간의 비극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버리지는 않지만 예수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 옆에 돈을 붙이고,
예수님 옆에 사람을 붙이고,
예수님 옆에 성공을 붙이고,
예수님 옆에 건강을 붙이고,
예수님 옆에 자신의 경험을 붙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히브리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아느냐?”
**요즘 새벽 말씀 예수 그는 누구인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정확하게 알면 무엇을 붙들어야 할지가 결정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우리 앞에 세우면서 세상의 모든 것과 비교합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립니다.
예수님보다 뛰어난 분은 없습니다.
(주 예수 보다 귀한 것 귀한 분 ,, 없네,,, 도달 하는 신앙 믿음 정체성 ,,흔들림 없는
) 일시적 ,,
ex) 아들 군대 휴가 나와, 아버지 쟁기질 돕는데 쟁기가 아버지와 달라 삐뚤 빠뚤 구불 구불 고랑 엉망 ,,왜 그럴까? 목표 흔들려서,,,
시골,,목표 흔들린,, 소 플라타 나무,, ,,송아지에 흔들님 쟁기질 할때 송아지 풀 뜯어 먹어 흔들림,, 그러나 큰 우직스런 플나타 나무 우람한 나무 흔들림 없이 뒤 돌아 보니 쟁기질 잘 하게 되 아들 군대 이야기,,
오늘 우리는 그중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히브리서 흔들림 없는 그 정체성 복음 무엇이 그 복음일까요??
구약 레위기 있다면 신약엔 히브리서 가 구약 레위기 서 같은 말씀에 복음이 진 복음잇다,,
1)예수님은 선지자보다 뛰어나신 분
히브리서는 놀랍게도 창조 이야기나 인간의 죄 이야기부터 시작하지 않습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히브리서 1:1–2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2절의 흐름은 분명합니다.
옛적에는 하나님께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는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과거의 선지자들을 부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사야도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예레미야도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선지자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보내신 귀한 종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차이가 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가리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우리에게 나타내셨습니다.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통해 아버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 대지의 핵심 성경 5곳
① 히브리서 1:1–2
과거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지만 마지막에는 예수님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② 히브리서 1:3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며 그 본체의 형상이십니다.
③ 히브리서 2:3
이 큰 구원은 처음에 예수님을 통하여 확증 선포되었습니다.
④ 히브리서 3:1–6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충성된 종이었지만 예수님은 그 집을 다스리는 아들이십니다.
⑤ 히브리서 12:25
하늘로부터 말씀하시는 분 예수님을 거역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유사구절
신명기 18:15 —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오리라는 약속
신명기 18:15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마태복음 17:5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
마태복음 17:4–5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요한복음 1:18 — 아들이 하나님을 나타내셨음
요한복음 1:18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한복음 14:9 — 예수님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음
요한복음 14:9 “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 약속된 선지자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으라는 선언
사도행전 3:22–23
“22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23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성경 구약 모든 말씀이 누구를 가리켜요 ,모형론, 그림자 ,뿌리 ,,열매 예수
누가복음 24:44–45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선지자는 말씀을 전했지만 예수님은 말씀의 완성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에서 복음의 첫 번째 위대함을 발견합니다.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 올라간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심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신앙입니다.
죄인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자기 힘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의 이성이 아무리 뛰어나도 하나님께 도달할 수 없습니다.
철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하나님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먼저 자신을 알려 주셔야 합니다.
이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시는 마지막에 어디에 도달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에게 도달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관한 많은 정보 중 하나를 알려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떠나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겠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우리의 진짜 문제는 말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책이 있습니다.
휴대전화에도 있습니다.
설교도 넘쳐납니다.
유튜브를 열면 수많은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믿음은 약합니까?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말씀을 하나님의 최종적인 권위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씀보다 자신의 감정을 더 신뢰합니다.
말씀보다 경험을 더 신뢰합니다.
말씀보다 사람의 이야기를 더 신뢰합니다.
성경은 용서하라고 하는데 감정은 말합니다.
“나는 못 해.”
성경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데 현실은 말합니다.
“걱정해야 살아남아.”
성경은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는데 세상은 말합니다.
“돈부터 확보해야 안전하다.”
그래서 우리의 문제는 정보 부족이 아닙니다.
권위의 문제입니다.
누가 내 삶의 마지막 말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는 자기 자신이 선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습니까?
단순히 의지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원하면서도 그 말씀이 내가 원하는 내용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내 생각에 동의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는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이용합니다.
내 주장을 지지하는 구절만 찾고,
내 욕망에 맞는 약속만 붙잡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하나님께서 내 생각을 확인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내 생각이 교정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내가 하나님의 심판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아래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복음의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에게 멀리서 명령만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오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지 못하였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완전하게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죄는 이렇게 심각하다.”
동시에 말씀하십니다.
“나는 죄인을 이렇게까지 사랑한다.”
부활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죄와 죽음이 마지막 말이 아니다.”
구약 모든 것 성취 ,완전케 완전,, 완전 성취 목적 예수 예수
마태복음 5:17–18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적용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비밀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주신 아들의 말씀을 더 깊이 듣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이렇게 물으십시오.
“지금 내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큰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 무엇인가?”
돈입니까?
자녀입니까?
사람의 평가입니까?
과거의 상처입니까?
내 경험입니까?
그리고 다시 말씀 앞에 서십시오.
예수님은 선지자보다 뛰어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적용)
요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나는 누구의 말이나 어떤 기준을 가장 크게 듣고 있습니까?
최근 언제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 가장 어려웠습니까?
2) 예수님은 천사들보다 뛰어나신 분
히브리서 1장은 선지자와 아들을 비교한 다음 곧바로 천사와 아들을 비교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천사는 매우 영광스러운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영적 존재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분명하게 선을 긋습니다.
천사는 종이고 예수님은 아들이십니다.
천사는 경배하는 존재이고 예수님은 경배를 받으시는 분입니다.
천사는 창조된 존재이고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천사는 보좌 앞에서 섬기지만 예수님은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이 대지의 핵심 성경 5곳
예수님께서는 천사보다 훨씬 뛰어나신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신 아들이십니다.
① 히브리서 1:4–5
“4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이 아들에게 경배하도록 말씀하십니다.
② 히브리서 1:6 “6 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
아들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시지만 천사들은 구원받을 자들을 섬기는 영입니다.
③ 히브리서 1:13–14
“13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느냐 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④ 히브리서 2:5–9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십니다.
히브리서 2:7–9 “7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8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⑤ 히브리서 2:14–18
예수님께서는 혈과 육을 취하시고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깨뜨리셨습니다.
히브리서 2:14–15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유사구절
하나님의 아들의 왕권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메시아
— 만물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됨
골로새서 1:15–17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빌립보서 2:9–11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모든 무릎이 예수님의 이름 앞에 꿇음
요한계시록 5:11–13 — 천군과 천사들이 어린양께 찬송과 경배를 올림
요한계시록 5:12–13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천사가 위대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을 작게 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천사가 악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천사는 하나님의 귀한 종입니다.
문제는 좋은 것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상의 본질이 있습니다.
우상은 반드시 나쁜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좋은 것이 최고의 것이 될 때 우상이 됩니다.
가족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가족을 더 사랑하면 가족이 우상이 됩니다.
돈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이 나를 안전하게 해 줄 것이라고 믿기 시작하면 돈이 우상이 됩니다.
건강은 귀합니다.
그러나 건강을 잃으면 인생 전체가 끝난 것처럼 생각한다면 건강이 주인이 된 것입니다.
목회도 귀합니다.
교회도 귀합니다.
직분도 귀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보다 앞선다면 그것조차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 보이는 것들을 붙잡습니까?
왜 사람을 그렇게 의지합니까?
왜 돈을 놓지 못합니까?
왜 성공에 그렇게 집착합니까?
표면적으로는 필요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더 깊이 내려가면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것이 없으면 나는 어떻게 하지?”
그리고 두려움보다 더 깊은 곳에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만으로 나를 지켜 주실 수 있을까?”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보다 작지만 눈에 보이는 것을 붙잡습니다.
이것이 죄의 뿌리입니다.
하나님보다 작은 것을 하나님보다 크게 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은 놀라운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왜 이런 엄중한 경고를 합니까?
천사를 통하여 주어진 말씀도 중요했다면 하나님의 아들을 통하여 주어진 구원은 얼마나 더 중요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등한히 여기다”라는 표현을 주목해야 합니다.
히브리서는 반드시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저주하는 사람만 경고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을 경고합니다.
신앙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예배 한 번을 가볍게 생각합니다.
말씀을 하루 이틀 미룹니다.
기도를 조금씩 놓칩니다.
그러다가 예수님 없이도 사는 것이 자연스러워집니다.
믿음을 버린다고 선언하지 않았는데 마음에서 그리스도의 무게가 사라집니다.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놀라운 반전을 보여 줍니다
천사보다 높으신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우리보다 낮아지셨습니다.
히브리서 2장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이 혈과 육을 함께 가지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복음의 경이로움이 있습니다.
높으신 분이 낮아지셨습니다.
영원하신 분이 시간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죽을 수 없는 생명의 주께서 죽을 육체를 입으셨습니다.
왜입니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멀리서 “힘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고통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배고픔을 경험하셨습니다.
배신당하셨습니다.
마침내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을 예수님께서 구원의 통로로 바꾸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반전입니다.
사탄이 승리했다고 생각했던 십자가가 사탄의 패배가 되었습니다.
죽음이 예수님을 삼킨 것처럼 보였지만 예수님의 부활이 죽음을 삼켰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가장 큰 위험은 세상이 강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작게 보는 것입니다.
문제가 커서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 앞에서 예수님을 작게 보았기 때문에 무너집니다.
다윗 앞에 골리앗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 앞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문제의 크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말합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평안하겠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말합니다.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문제보다 크신 그리스도를 알면 평안이 시작됩니다.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너무 크게 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입니까?
질병입니까?
경제 문제입니까?
자녀입니까?
노후입니까?
교회의 형편입니까?
그것들을 작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예수님이 훨씬 크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주에는 문제를 바라보며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이 문제도 크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보다 크지는 않다.”
예수님은 천사들보다 뛰어나신 분입니다.
만물이 그분 아래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적용)
지금 내 마음에서 예수님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문제나 의지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왜 그 문제·사람·조건을 쉽게 놓지 못하고 의지하게 됩니까?
3) 예수님은 제사장보다 뛰어나신 분
이제 히브리서의 중심부로 들어갑니다.
히브리서 4장부터 10장까지 긴 부분이 무엇을 설명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완전한 대제사장이심을 설명합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함부로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죄에는 대가가 있습니다.
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물의 피가 필요했고 제사장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구약의 제사장들에게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림자 모형 입니다)
첫째, 제사장 자신도 죄인이었습니다.
둘째, 제사장은 죽었습니다.
셋째, 제사는 반복되어야 했습니다.
넷째, 짐승의 피는 인간의 죄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구약 제사는 더 완전한 제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분이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대지의 핵심 성경 5곳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므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① 히브리서 4:14–16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② 히브리서 7:23–25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계시므로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며 온전히 구원하십니다.
히브리서 7:24 “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③ 히브리서 9:11–14
그리스도께서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히브리서 9:11–14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④ 히브리서 9:24–28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단번에 드려 죄를 없게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9:24 “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히브리서 9:26 “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⑤ 히브리서 10:11–14, 19–22
구약의 제사는 반복되었으나 그리스도께서는 한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고 우리에게 하나님께 나아갈 새롭고 산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10:19–20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유사구절
—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는 고난받는 종
이사야 53:5–6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요한복음 1:29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우리의 대언자요 화목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
요한1서 2:1–2 “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제사장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죄인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가?
이 질문을 해결하지 않고 복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늘 사람들은 죄라는 말을 불편해합니다.
“사람에게는 약점이 있을 뿐이다.”
“환경이 나빴을 뿐이다.”
“상처받아서 그런 것이다.”
물론 환경도 중요하고 상처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더 깊이 들어갑니다.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환경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죄의 문제입니다.
죄는 단순히 나쁜 행동 몇 가지가 아닙니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책임을 묻습니다.
여기에 인간의 모순이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고 싶어 하면서 하나님의 복은 받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거절하면서 하나님의 보호는 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까?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좀 더 착하게 살면 되지 않을까?”
“기도를 많이 하면 되지 않을까?”
“교회 봉사를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지 않을까?”
그러나 만약 인간의 선행으로 죄를 씻을 수 있었다면 십자가는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살아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실 이유가 없었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 주며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 줍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제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가져오셨습니까?
자기 자신을 가져오셨습니다.
제사장이면서 동시에 제물이 되셨습니다.
구약 제사장은 다른 생명의 피를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셨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계속 서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왜 계속 서 있었습니까?
일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예수님께서 한 번의 제사를 드리신 후 앉으셨다고 강조합니다.
왜 앉으셨습니까?
속죄의 일이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아십니까?
우리는 실패할 때마다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시는 것은 아닐까?”
기도가 잘되지 않을 때,
믿음이 약해졌을 때,
같은 죄에 넘어졌을 때,
우리는 자기 모습을 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판단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나를 보라고 하지 않습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합니다.
우리의 구원의 안전성은 내가 예수님을 얼마나 단단하게 붙드느냐에 최종적으로 달려 있지 않습니다.
나를 붙들고 계시는 예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히브리서 7장은 예수님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십자가에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십니다.
우리는 죄를 지으면 하나님에게서 도망갑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랬습니다.
죄를 범한 후 숨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똑같습니다.
기도가 잘될 때는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었을 때는 자신 있게 기도합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 나면 하나님을 피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근거를 내 상태에서 찾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근거는 네가 오늘 얼마나 잘 살았느냐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이루셨느냐이다.
물론 이것은 죄를 가볍게 생각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죄를 가볍게 여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볍게 생각했던 그 죄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피 흘리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장은 놀라운 말을 합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
죄인에게 하나님 보좌는 원래 심판의 보좌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심판의 보좌가 은혜의 보좌가 되었습니까?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심판이 그분에게 쏟아졌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은혜가 열렸습니다.
예수님이 버림받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받아들여졌습니다.
예수님이 문밖에서 고난받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의 몸이 찢기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위대한 반전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히브리서의 복음은 단순히 “죄 사함 받고 천국 간다”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길을 열어 주셨다면 이제 그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장은 말합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복음의 목적은 단순히 우리를 지옥에서 건지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를 하나님께 데려가는 것입니다.
구원의 가장 큰 복은 문제 해결이 아닙니다.
형통도 아닙니다.
건강도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입니다.
적용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을 피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죄 때문에 돌아오십시오.
실패했기 때문에 돌아오십시오.
기도를 못했기 때문에 돌아오십시오.
상처받았기 때문에 돌아오십시오.
믿음이 약해졌기 때문에 돌아오십시오.
여러분이 잘해서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때문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반복되는 죄와 타협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피가 값싼 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 이렇게 자신에게 물으십시오.
“내가 하나님께 숨기고 있는 죄는 무엇인가?”
“내가 붙들고 회개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내가 다시 시작해야 할 기도는 무엇인가?”
“내가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결론 — 히브리서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예수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히브리서 전체를 한눈에 바라보면 결국 한 분이 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선지자들이 수없이 등장했지만 그들이 기다린 분은 예수님이었습니다.
천사들이 영광스럽지만 그들이 경배하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제사장들이 수없이 제사를 드렸지만 그 모든 제사를 완성하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적용)
죄를 짓거나 실패한 뒤 나는 보통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합니까?
가정·관계·직장·교회 가운데 지금 은혜의 보좌 앞으로 부르시는 삶의 영역은 어딥니까?
복음전해진 히브리서
1)예수님은 선지자보다 뛰어나신 분
2) 예수님은 천사들보다 뛰어나신 분
3) 예수님은 제사장보다 뛰어나신 분
1) 예수님은 선지자보다 뛰어나신 분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최종적인 계시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2) 예수님은 천사들보다 뛰어나신 분입니다.
천사는 종이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만물을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높이십시오.
3) 예수님은 제사장보다 뛰어나신 분입니다.
제사장은 반복해서 제사를 드렸지만 예수님은 자기 몸을 단번에 드려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히브리서의 마지막 질문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이렇게 뛰어나신 분이라면 우리는 왜 자꾸 뒤로 돌아가려고 합니까?
환경이 힘들기 때문입니까?
사람에게 상처받았기 때문입니까?
기도 응답이 늦기 때문입니까?
히브리서 기자라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예수를 바라보라.”
히브리서 12장 2절의 중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위기는 문제가 많아질 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선이 예수님에게서 벗어날 때 시작됩니다.
베드로가 물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파도가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폭풍이 없어야 믿는 사람이 아니라,
폭풍 속에서도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올라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 우리에게 내려오셨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이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우리가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사장이 되시고 동시에 제물이 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 데려가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우리의 결심보다 먼저 하나님의 행동을 말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전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을 하셨는가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본 사람이 순종하기 시작합니다.
은혜가 먼저입니다.
그 다음이 정체성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순종입니다.
오늘 우리의 결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신앙이 지쳐 있습니까?
예수님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에게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배가 습관이 되었습니까?
기도가 의무가 되었습니까?
말씀에 감격이 사라졌습니까?
세상 문제가 예수님보다 크게 보입니까?
그렇다면 더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기 전에 다시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선지자들이 바라보았던 그분,
천사들이 경배하는 그분,
제사장들의 모든 제사를 완성하신 그분,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부활하셔서 죽음을 이기시고,
하늘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히브리서가 말하는 복음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보다 더 좋은 분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떠나지 마십시오.
그분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분을 높이십시오.
그분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끝까지 믿음으로 달려가십시오.
마지막에 회중과 함께 선포할 세 문장
첫째, 예수님보다 더 확실한 말씀은 없습니다.
둘째, 예수님보다 더 높으신 분은 없습니다.
셋째, 예수님보다 더 완전한 구원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면 충분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을 붙드십시오.
그분이 우리의 복음이십니다.
아멘.
선지자보다 뛰어나심 → 누구의 말씀을 들을 것인가
천사보다 뛰어나심 → 누구를 가장 높이고 의지할 것인가
제사장보다 뛰어나심 →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갈 것인가
복음전해진 히브리서
1)예수님은 선지자보다 뛰어나신 분
2) 예수님은 천사들보다 뛰어나신 분
3) 예수님은 제사장보다 뛰어나신 분
적용)
요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나는 누구의 말이나 어떤 기준을 가장 크게 듣고 있습니까?
최근 언제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 가장 어려웠습니까?
지금 내 마음에서 예수님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문제나 의지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왜 그 문제·사람·조건을 쉽게 놓지 못하고 의지하게 됩니까?
죄를 짓거나 실패한 뒤 나는 보통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합니까?
가정·관계·직장·교회 가운데 지금 은혜의 보좌 앞으로 부르시는 삶의 영역은 어딥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