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없으므로(사사기 21: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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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왕이 없으므로 본문: 사사기 21:13-25
사사기 21:13–25 NKRV
13 온 회중이 림몬 바위에 있는 베냐민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어 평화를 공포하게 하였더니 14 그 때에 베냐민이 돌아온지라 이에 이스라엘 사람이 야베스 길르앗 여자들 중에서 살려 둔 여자들을 그들에게 주었으나 아직도 부족하므로 15 백성들이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쳤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한 지파가 빠지게 하셨음이었더라 16 회중의 장로들이 이르되 베냐민의 여인이 다 멸절되었으니 이제 그 남은 자들에게 어떻게 하여야 아내를 얻게 할까 하고 17 또 이르되 베냐민 중 도망하여 살아 남은 자에게 마땅히 기업이 있어야 하리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사라짐이 없으리라 18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못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맹세하여 이르기를 딸을 베냐민에게 아내로 주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하였음이로다 하니라 19 또 이르되 보라 벧엘 북쪽 르보나 남쪽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 길 동쪽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명절이 있도다 하고 20 베냐민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포도원에 숨어 21 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춤을 추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하나를 붙들어 가지고 자기의 아내로 삼아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 22 만일 그의 아버지나 형제가 와서 우리에게 시비하면 우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청하건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지니라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의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임이니라 하겠노라 하매 23 베냐민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춤추는 여자들 중에서 자기들의 숫자대로 붙들어 아내로 삼아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건축하고 거기에 거주하였더라 24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 곳에서 각기 자기의 지파,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갔으니 곧 각기 그 곳에서 나와서 자기의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1656년 겨울, 파리. 한 익명의 저자가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글을 연달아 발표하기 시작합니다. 훗날 이 편지를 쓴 사람이 수학자이자 신학자였던 블레즈 파스칼이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당시 일부 신학자들 사이에는 '개연론'이라는 논리가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행동이 옳은지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이렇게 해도 된다"고 말하는 학자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였습니다. 그 결과 살인도, 명예훼손도, 심지어 거짓 맹세도 교묘한 단서 하나만 붙이면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었습니다.
파스칼은 이 편지에서 이렇게 꼬집습니다. "사람들은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지 않는 방법을 발명해낸다." 규정은 지켰지만 마음은 하나님 앞에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놀랍게도, 오늘 우리가 읽을 사사기 마지막 단락에서도 똑같은 장면이 벌어집니다.
사사기 21장,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를 거의 전멸시킨 뒤, 뒤늦게 그들을 불쌍히 여겨 화평을 선언합니다. 야베스 길르앗에서 데려온 400명의 여인을 베냐민 생존자들에게 주지만, 여전히 200명이 부족합니다. 15절, 백성은 다시 베냐민 때문에 뉘우치며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지파 중에 틈을 내셨음이라." 하나님의 손이 이 재앙 뒤에 있음을 인정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나아가 묻지 않습니다. 대신 장로들이 모여 회의를 합니다.
18절, "우리가 우리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면 저주를 받으리라 맹세하였다."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무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앎이 회개로 이어지지 않고, 하나의 계략으로 이어집니다.
19절부터 그 계략이 펼쳐집니다. 실로에서 해마다 열리는 여호와의 절기가 있는데, 그때 처녀들이 나와 춤을 춘다는 것입니다. 장로들은 베냐민 남자들에게 이렇게 지시합니다. "포도원에 숨어 있다가, 처녀들이 춤추러 나오거든 각각 붙잡아 데려가라." 그리고 22절, 만약 처녀들의 아버지나 형제들이 항의하면 이렇게 말하라고 미리 각본까지 짜 줍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니 죄가 없다." 딸을 '준' 것이 아니라 딸이 '붙잡힌' 것이니, 서원을 어긴 게 아니라는 논리입니다.
이 얼마나 정교한 자기기만입니까. 하나님의 절기, 거룩한 예배의 자리를 매복의 장소로 만들고, 사람을 사냥감처럼 다루면서도, 서원의 문자 하나는 끝까지 지켰다고 자부합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절기를 신실하게 지키는 백성처럼 보였지만, 그 속에는 이웃을 사냥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파스칼이 300여 년 전 지적했던 바로 그 병, "죄를 짓지 않으면서 죄를 짓는 방법"이 이미 사사기 시대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25절, 사사기 전체를 마무리하는 문장이 나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 구절은 단지 이 사건 하나의 결론이 아닙니다. 사사기 17장부터 시작된 다섯 장 전체를, 나아가 사사기라는 책 전체를 마무리하는 저자의 마지막 진단입니다. 문제의 뿌리는 정치 제도의 공백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참된 왕으로 모시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모든 혼돈의 뿌리였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한 문장으로 이렇게 정리됩니다. "하나님이 왕이 아니면, 결국 내 눈에 옳은 것이 나의 법이 된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의 삶과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먼저, 우리 자녀들과 청소년들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 최근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딥페이크 성범죄로 검거된 10대 피의자 수가 2023년 91명에서 2025년 829명으로, 3년 사이 9배 가까이 급증했습니다.
실로의 장로들이 "우리가 준 것이 아니니 죄가 없다"고 했던 그 논리가, 오늘은 딥페이크 처럼, "내가 직접 만진 것이 아니니 죄가 없다"는 논리로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화면 뒤에 숨는다고 죄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죄는 손을 움직이기 전에, "이 정도는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그 순간 이미 시작됩니다.
두 번째로, 나의 판단을 교정해 주시는 말씀을 읽고 하루를 시작합시다.
실로 사건에서 이스라엘에게는 그들의 판단을 멈춰 세우고 "이것이 정말 옳으냐" 물어줄 왕이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그 자리를 알고리즘이 대신 차지하고 있습니다. 내가 옳다고 느끼는 것만 계속 보여주는 화면 앞에서, 우리는 점점 넓어지는 것 같지만 실은 점점 좁아진 "내 소견" 안에 갇힙니다. 나의 판단을 교정해 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정기적으로 나를 세우는 훈련이, 오늘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사사기는 참담한 결론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사기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참된 왕, 자기 소견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만 행하신 왕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내 뜻대로 하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의 처녀들처럼 붙잡히고 끌려가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십자가로 나아가 우리를 대신해 심판을 받으신 왕이십니다. 우리 안에는 여전히 "내가 준 것이 아니니 죄가 없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죄의 값을 이미 예수님이 치르셨습니다. 오늘 새벽, 내 소견을 최종 판단으로 삼던 자리에서 내려와, 우리의 참된 왕이신 예수님께 오늘 하루의 결정과 판단을 맡겨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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