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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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의 지평

본문: 창세기 45장 1-5절

찬송: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말씀의 문을 열며: 삶의 악보에 찾아온 불협화음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다 보면, 때로는 갑자기 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롭고 불편한 소리가 들릴 때가 있습니다. 음악에서는 이것을 불협화음이라고 부릅니다. 이 소리만 떼어서 들으면 악기가 잘못 조율되었거나 연주자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처럼 느껴집니다.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은 그 순간 눈살을 찌푸리며 연주가 망쳤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작곡가는 결코 실수로 그 어둡고 팽팽한 음을 넣지 않습니다. 바로 그 날카로운 긴장과 충돌이 지나간 직후, 이전에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가장 웅장하고 깊은 해결의 화음이 터져 나오도록 음악을 설계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 불협화음은 다음 순간에 펼쳐질 눈부신 아름다움을 완성하기 위한 거장의 정교한 계산이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불협화음이 불쑥 찾아오곤 합니다. 가장 가까웠던 사람에게 당한 배신, 억울하게 뒤집어쓴 누명, 한순간에 허물어진 건강, 아무리 애써도 풀리지 않는 경제적 수렁,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의 긴 방황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 고통의 마디를 통과할 때마다 가슴을 치며 부르짖습니다.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왜 내 삶의 악보에 이런 아프고 비참한 소리를 넣어두셨습니까?"
오늘 우리가 펼친 성경 말씀은 바로 그런 인생의 가장 어둡고 비참한 불협화음을 통과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그리고 그 고통의 소음 너머에서 작동하고 계시던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손길을 보여줍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우리의 막막한 시선이 열리고, 우리 삶을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눈부신 뜻을 발견하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상처보다 더 큰 은혜를 마주하기

오늘 본문의 주인공 요셉은 그 누구보다 깊은 인생의 상처를 끌어안고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형들의 질투 때문에 구덩이에 던져졌고, 낯선 이방 땅에 노예로 팔려 갔으며, 보디발의 집에서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깊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가 견뎌내야 했던 세월은 자그마치 십여 년이었습니다. 밤마다 감옥 바닥에 누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겠습니까? 얼마나 깊은 원망과 복수심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겠습니까?
마침내 요셉은 애굽에서 최고 통치자 바로 왕의 다음가는 높은 자리에 올랐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자신을 팔아넘긴 형들에게 단칼에 복수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력을 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흉년을 피하려 곡식을 구하러 온 형들이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바로 그 순간, 요셉의 마음속에서 참아왔던 감정이 격렬하게 터져 나옵니다.
본문 1절과 2절을 보면, 요셉은 자기 곁에 있던 모든 애굽 시종들을 밖으로 물러가게 한 뒤, 소리 내어 통곡하기 시작합니다. 그 울음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바로가 머물던 궁전 전체에 울려 퍼질 정도였습니다. 요셉은 권력자의 차가운 가면을 벗어 던지고 형들을 향해서 본문 3절에서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이렇게 라고 외쳤습니다.
이 말을 들은 형들은 너무나 무섭고 놀라서 입을 떼지조차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죽이려 했고 노예로 팔아버렸던 아우가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최고 권력자로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앞으로 당하게 될지 모르는 심판의 공포에 질려 얼어붙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복수의 칼을 뽑아 들지 않았습니다. 그 원망과 앙심의 성벽을 허물어뜨린 것은 요셉 자신의 뛰어난 인품이나 도덕적 결단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고난의 세월 동안 그를 버리지 않고 찾아와 주신 하나님의 따뜻한 은혜였습니다. 아무도 없는 외로운 감옥에서 그를 품어주시고, 그의 눈물을 닦아주셨던 하나님의 사랑이 요셉의 상처 입은 내면을 먼저 치유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역시 인생을 살아가며 타인이 남긴 깊은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갑니다. 가슴 깊은 상처억울함이라는 단단한 성벽 뒤에 자신을 가두어둔 채, 누군가를 향한 미움과 원망을 고스란히 끌어안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내 안의 힘으로는 그 원망을 지워낼 수 없습니다. 나를 먼저 찾아오셔서 허물과 상처를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앞에 서야 합니다. 나를 부둥켜안으시는 주님의 따뜻한 손길을 경험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오랫동안 나를 가두었던 상처의 감옥에서 벗어나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사람의 악함을 이기는 하나님의 약속

갑작스런 요셉의 등장으로 형들이 두려움에 떨며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자, 요셉은 형들을 향해 부드럽게 손을 내밀며 다가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참으로 놀라운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본문 5절 상반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여기에 쓰인 '근심'과 '한탄'은 단순히 마음이 조금 편치 않은 상태를 말하지 않습니다. 뼈를 깎는 듯한 고통, 자책감과 분노가 가슴 속에서 불타오르는 참담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스스로를 향한 죄책감과 괴로움에 짓눌리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말이 가능합니까? 요셉이 형들이 저지른 악행을 무마해주거나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처럼 덮어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형들이 저지른 행위는 분명히 악한 죄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인간의 악함과 실패보다 더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위대한 진리가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세상이 아무리 악한 음모로 우리를 해하려 할지라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약속과 부르심은 결코 취소되거나 포기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성경 전체는 우리에게 거듭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선물)와 부르심에는 결코 후회함이나 번복이 없습니다(롬 11:29).
세상은 나를 흔들 수 있고, 사람이 나를 속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그 모든 비열함과 악함조차도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 거룩한 재료로 바꾸어 버리시는 분입니다. 사도 바울이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은 절망의 순간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보았듯이, 요셉 역시 형들의 악행 뒤에서 작동하고 계신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보았습니다.
우리 삶에 찾아온 아픈 상처를 그저 "왜 나에게 저 사람이 그런 짓을 했을까?"라는 인간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면, 우리 가슴에는 분노와 자책만 남게 됩니다. 그러나 시선을 높여 하나님의 위대한 지평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저 사람이 나를 넘어뜨리려 했으나,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 당신의 신실한 약속을 이루어가시는구나!"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과거의 쇠사슬에서 벗어나 소망의 미래로 걸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고난 속에 담긴 생명의 사명

이제 요셉은 오늘 본문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눈부신 신앙의 고백을 선포합니다. 오늘 우리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본문 5절 하반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한 문장에 요셉이 깨달은 인생의 모든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시기하여 노예로 팔아버렸지만, 그 사건의 참된 주권자는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팔아넘겼지만', 하나님은 그를 수많은 사람들을 살려낼 통로로 '너그럽게 먼저 보내신' 것이었습니다.
요셉이 겪어야 했던 십여 년의 외로운 노예 생활과 감옥의 비하는 무의미한 세월의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장차 닥쳐올 참혹한 대기근 속에서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를 생명의 구원자로 먼저 준비시키신 거룩한 과정이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의 삶을 보십시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세상은 주님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에게 배신당하셨고, 무고하게 십자가에 매달려 온갖 수치와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십자가는 가장 비참한 실패요 파경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수치스러운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인류 전체의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내는 최고의 구원 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잃어버린 한 사람의 생명을 찾고 살려내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신 가장 간절한 이유라고 말입니다. 고난은 결코 우리를 망가뜨리기 위해 찾아오지 않습니다. 고난은 우리를 생명을 살리는 거룩한 도구로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깊은 훈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나고 있는 그 어둡고 외로운 터널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증거가 아닙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눈물과 고통의 시간을 지난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그 아픈 경험을 통해, 장차 우리와 똑같은 슬픔을 겪는 누군가를 따뜻하게 품어주고 살려내는 생명의 통로로 우리의 삶을 세우고자 하심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 한 사람의 잘됨을 넘어, 나를 통해 내 가족을 살리고, 내 이웃을 살리며,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소망을 전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깊은 경륜이 그 고통의 이면에 숨겨져 있습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하나님의 높고 깊은 지평을 향해 다가가십시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의 악보에 갑자기 날카로운 불협화음이 울려 퍼질 때, 눈앞의 소음에 갇혀 절망하지 마십시오. 좁고 얕은 나의 생각과 감정의 지평을 내려놓고, 우리 삶을 선하게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크고 높으신 지평을 바라보십시오.
형들의 배신과 감옥의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은 단 한 순간도 요셉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모든 고통의 조각들을 모아 생명을 구원하는 위대한 작품을 완성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오늘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고난에는 거룩한 뜻이 있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은 결코 번복되지 않으며, 우리의 눈물은 반드시 다른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거룩한 샘물이 될 것입니다.
이 믿음을 붙들고 오늘 여러분의 삶의 자리로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나를 넘어뜨리려 했던 세상의 아픔을 향해 용서와 사랑의 손을 내밀고, 나를 먼 곳으로 먼저 보내어 생명을 살리시는 에 기쁨으로 동참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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