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나를 세우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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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함께 읽은 시편은 조금 낯설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나를 판단하소서”,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소서”라고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말 앞에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다윗은 오히려 그 심판을 자청하고 있기에, 우리에게 이 시편의 내용은 조금 낯설게 느껴집니다.
  이 시편의 배경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거짓 고소를 당한 사람이 자신의 무죄를 호소하는 기도로 보기도 하고,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 드리는 예식의 기도로 보기도 합니다. 어느 쪽으로 보든 분명한 것은, 다윗이 지금 부당한 고난 앞에 서 있으며, 그 고난 가운데서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새벽에 다윗의 기도를 따라가면서, 우리도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워보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절에서 다윗의 기도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그리고 곧장 이어서 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1절에서 “완전함”이라는 말은 자신이 죄가 전혀 없는 완벽한 상태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정직하고 흠 없이 살아가려 애쓰는 삶,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곧게 걸어가는 삶을 말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완벽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의지해 온 대상이 오직 하나님이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자신의 성실함을 고백하면서도 동시에 “나를 시험하시고 단련하소서”라고 구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알았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왔다고 해도, 여전히 자기 마음의 깊은 곳까지 다 알지는 못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가장 깊은 동기까지 살펴봐 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함은 완벽함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마음의 가장 은밀한 곳까지 들여다보시도록 자신을 활짝 열어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절에서 다윗이 이렇게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는 이유를 말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인자하심”은 히브리어로 ‘헤세드’, 곧 하나님이 언약 백성에게 베푸시는 변함없는 사랑과 신실하심을 뜻합니다. 다윗이 자신을 하나님의 시험대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것은 자기 확신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헤세드, 그 신실하심을 신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다윗은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구체적으로 고백합니다. 4절, 5절에서 다윗은 그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말합니다.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도 아니하리이다.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
  누군가와 함께 앉는다는 것은 단순히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나누며 교제한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쓰는 자들, 자신을 숨기고 속이는 자들, 악을 행하는 자들과 삶을 나누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시편 1편에서의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는 그 고백과 통하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만 말하지 않습니다. 6-8절에서는 그가 무엇을 사랑하고 선택했는지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제단에 두루 다니며. 감사의 소리를 들려 주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말하리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오니”
  악에서 떠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무엇을 멀리 하느냐와 동시에 무엇을 사랑하느냐, 무엇과 가까이 하느냐로 드러납니다. 다윗의 삶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사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늘 이런 선택의 자리가 있습니다. 어떤 자리에 앉을 것인가, 누구와 삶을 나눌 것인가, 무엇을 사랑하며 살 것인가. 그리스도인의 삶은 단지 죄를 피하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고 그분을 찬양하는 자리를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집을, 말씀을, 하나님과의 교제를 얼마나 사랑하고 사모하고 있는지 한 번 되돌아 보셔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자신의 성실함을 담대히 고백하던 시인이 9절과 10절에 이르러서는 전혀 다른 어조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그들의 손에 사악함이 있고 그들의 오른 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
  이는 다윗이 자신의 완전함을 자랑하다가 갑자기 두려움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왔다 해도, 결국 자신의 생명이 자기 손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앞서 자신을 시험해 달라던 그 정직함이, 여기서는 자신을 붙들어 달라는 간절한 매달림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11절에서 다윗은 다시 자신의 결단을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속량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속량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간구는 자신의 공로가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에 기대는 기도입니다. 이 시편이 처음부터 끝까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의로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헤세드, 그 변함없는 인자하심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12절에서 확신에 찬 고백으로 기도를 마무리합니다.
  “내 발이 평탄한 데에 섰사오니 무리 가운데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
  흔들리던 걸음이 이제 평탄한 곳에 굳게 섰습니다. 그는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모인 공동체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의 이 시를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사는 삶에 대한 결단입니다. 우리가 누구와 함께 앉을 것인지, 무엇을 사랑하며 살 것인지를 매일 새롭게 선택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우리의 구원과 생명은 우리 자신의 성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헤세드, 그 변함 없는 인자하심과 은혜에 달려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새벽, 우리도 다윗처럼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활짝 열어드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살펴주시도록, 우리가 누구와 함께 앉아 있는지, 무엇을 사랑하며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며, 나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여 평탄한 곳에 굳게 서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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