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아가8장)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 view
Notes
Transcript

(새벽인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아가서의 마지막 장에 도착했습니다. 아가서는 한 편의 아름다운 사랑 노래입니다. 처음에는 서로를 향한 설렘이 있었고, 때로는 거리가 있었으며, 서로를 찾아 헤매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특별히 5장에서는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듯한 아픔을 겪었고, 6장에서는 다시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7장에 이르러 여인은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라고 고백합니다. 이제 자신이 사랑한다는 사실뿐 아니라,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8장에 이르면 아가서는 지금까지의 모든 사랑을 한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앞의 장들이 사랑의 여러 모습을 보여 주었다면, 마지막 장은 그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말해 줍니다. 기다리고, 잃어버리고, 다시 만나고, 서로에게 속해 있음을 확인하며 여기까지 온 사랑이 이제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사랑은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죽음만큼이나 강한 사랑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단순히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로만 묵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성경 전체의 빛 가운데 바라보면,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사랑을 받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붙잡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들입니다. 오늘 이 은혜가 우리의 마음과 삶에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6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당시의 도장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었습니다. 누구의 것인지, 누구에게 속했는지를 나타내는 중요한 표지였습니다. 그래서 여인이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어 달라”고 말하는 것은 “가끔 나를 기억해 달라”는 정도의 부탁이 아닙니다. “내가 당신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당신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도록 새겨 달라”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주님의 간절한 마음이 떠올려지지 않습니까? 바로 이사야 49장의 말씀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15절과 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아가서의 여인은 사랑하는 이에게 “나를 당신에게 새겨 주세요”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먼저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미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의 사랑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셨고, 우리가 주님을 붙들기 전에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붙드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잘했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형편이 괜찮을 때만 기억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손바닥에 새기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때로는 하나님께 잊혀진 것은 아닌가, 불안해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기도는 오래 했는데 아무 변화가 없고, 해결되기를 바랐던 문제는 그대로이며, 다른 사람들은 잘 풀리는 것 같은데 내 삶만 멈춰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혹시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신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느낌이 하나님의 사랑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다시 붙들어야 할, 그리고 우리 심령에, 영혼에 깊이 새겨야하는 하나님의 약속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아가서 전체의 절정과 같은 말씀이 이어집니다. 6절 후반부입니다.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왜 사랑을 죽음과 비교했을까요? 인간에게 죽음만큼 강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많은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기도 하고, 병과 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멈추게 됩니다. 권력이 있다고 피해 갈 수 없고, 돈이 많다고 비켜 갈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놀랍게도 사랑을 그 죽음과 나란히 세웁니다.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다.” 참된 사랑은 상황 하나 때문에 쉽게 사라지고 변하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끝까지 붙드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라는 말씀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서 질투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병적인 소유욕이나 상대방을 통제하려는 감정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랑의 배타성과 유일성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남녀간의 사랑 가운데 중요한 원칙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그 사랑을 타인과 공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의 아내, 나의 남편에게 주는 사랑을 타인과 함께 공유하겠다고 하는 순간, 그것은 사랑이 아닌 것이지요.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의 자리가 있습니다. 스올은 한 번 삼킨 것을 쉽게 놓아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다”는 것은 사랑하는 이를 향한 마음이 그만큼 강하고 쉽게 놓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사랑은 무관심과 반대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마음을 쓰고, 사랑하기 때문에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을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하나님께서 옹졸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아닌 것에 우리의 마음과 인생을 다 빼앗기며 살아가는 것을 무심하게 바라보지 않으십니다. 사랑하시기에 다시 부르시고, 돌이키시며, 때로는 우리의 길을 막으면서까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가 위험한 길로 가는데도 “네 인생이니 네 마음대로 살아라” 하고 내버려두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붙잡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때로 아프게 말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 사랑이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다”고 표현합니다. 이 사랑은 작은 불씨가 아닙니다. 쉽게 꺼질 수 없는 강렬한 사랑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7절은 말합니다.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불에 물을 부으면 꺼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의 불은 많은 물을 부어도 꺼지지 않습니다. 홍수가 밀려와도 삼키지 못합니다. 참된 사랑은 환경보다 강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많은 물이 밀려옵니다. 예상하지 못한 질병이 찾아오기도 하고, 관계의 아픔을 겪기도 하며, 경제적인 어려움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오래 기도했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면 우리는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어쩔 수 없나? 내 인생은 왜 그렇게 풀리지 않는가?” 이렇게 자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말씀은 분명합니다.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이성,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한 수많은 지식, 감정을 다 초월합니다. 로마서 8장에서 바울도 같은 질문을 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그리고 38절과 39절에서 결론을 내립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음을,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그 모든 것을 이기는 강력한 은혜의 양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성경 전체를 바라보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아가서는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다”고 노래합니다. 사랑과 죽음을 나란히 놓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죽음을 피해 가는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오히려 죽음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그러나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외칩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이 죽음을 통과했고, 결국 죽음을 이겼습니다. 그러므로 아가서의 표현은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다”이지만, 십자가와 부활을 바라보는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두려워하는 많은 것들을 끝까지 따라가 보면 결국 죽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병이 두려운 것도 그렇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두려운 것도 그렇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도 결국 우리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무조건 두려워하지 말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더 강한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죽음보다 강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내어 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고, 죽음도 그 사랑을 끝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어떤 형편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내 실패가 하나님의 사랑보다 크지 않습니다. 내 죄와 상처가 그 사랑보다 깊지 않습니다. 내 앞에 놓인 문제가 하나님의 사랑보다 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때로 주님을 놓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놓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잊을 때가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손바닥에 새긴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그런데 아가서는 이렇게 놀라운 사랑을 선언하고도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라고 마무리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13절과 14절을 보면 신랑은 말합니다. “너 동산에 거주하는 자야 친구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내가 듣게 하려무나.” 그리고 여인은 대답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 아가서의 마지막이 참 아름답습니다. 이들은 이미 서로 사랑합니다. 서로에게 속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인은 여전히 사랑하는 이를 기다립니다. “빨리 달려오십시오.” 사랑이 깊어졌다고 해서 사모함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이 깊어질수록 더욱 가까이 있고 싶어집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마지막도 아가서와 놀랍도록 닮은 고백으로 끝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7절은 말씀합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그리고 마지막 20절을 통해 성도들이 고백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가서에서는 신부가 “내 사랑하는 자야 빨리 달리라”고 고백했다면, 신약의 교회는, 그리고 오늘 우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백해야 합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나님의 사랑을 정말 맛본 사람은 주님을 부담스러운 분으로 기다리지 않습니다. 두려움으로만 기다리지 않습니다. 보고 싶은 분으로 기다립니다. 신앙이 깊어진다는 것은 주님께 익숙해져 사모함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래 믿을수록 “주님을 더 알고 싶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더 듣고 싶습니다. 주님께 더 가까이 가고 싶습니다”라는 마음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새벽 우리가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아가서의 여인은 말합니다.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어 주십시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받기 위해 무엇인가를 증명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한 사랑입니다. 스올처럼 쉽게 놓지 않는 사랑이며, 불길같이 타오르고, 많은 물도 끌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우리는 마침내 고백합니다. “주님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 어떤 일이 우리 앞에 찾아오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기도가 늦어져도, 형편이 어려워져도, 내 마음이 흔들려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가지신 사랑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사람답게 오늘도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마음에 주님을 새기고, 우리의 삶과 행동에도 주님의 사랑이 나타나게 하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이미 저를 손바닥에 새겨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더 깊이 알게 하시고, 그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사람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사랑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그 죽음보다 강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오늘도 담대히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