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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1-11

설교 제목: 하나님 앞에서는 감출 수 없습니다
본문: 사도행전 5장 1–11절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는 성경에서 읽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사건입니다.
한 사람이 죽고, 세 시간 뒤에 그의 아내도 죽습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됩니다.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돈을 적게 드렸기 때문일까요?
땅을 판 돈을 일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초대교회에서는 재산을 모두 내놓아야 했던 것일까요?
본문을 자세히 읽어 보면 답은 분명합니다.
그것이 핵심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사도행전 5:4
이 한마디가 이 사건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아나니아에게는 그 땅을 팔지 않을 자유도 있었습니다.
팔았다 하더라도 그 돈을 얼마든지 가지고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돈의 일부를 남겨 놓은 것 자체가 죄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일부를 남겨 놓고도 전부를 바친 것처럼 행동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헌금에 관한 이야기이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1.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돈보다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등장합니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들은 땅을 팔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2절에 문제가 나타납니다.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그 아내도 알더라”**입니다.
남편 혼자 몰래 한 일이 아닙니다.
부부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습니다.
겉으로 보면 아주 훌륭한 행동입니다.
“저 부부가 자기 땅까지 팔아서 교회를 위해 헌금했구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겉모습을 보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결과를 봅니다.
얼마를 냈는지를 봅니다.
사람들은 헌금 봉투를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헌금 뒤에 있는 마음을 보십니다.
아나니아의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돈이 아니라 마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전부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의 자유였습니다.
그런데 전부 드린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습니다.
여기에 죄의 본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께 드린 사람처럼 보이는 것을 원했던 것입니다.
2. 죄는 때때로 행동보다 ‘보이고 싶은 모습’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나니아를 너무 쉽게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교회에서 저런 거짓말을 하지?”
그런데 조금만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보이고 싶은 모습이 있습니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습니다.
믿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습니다.
정직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습니다.
희생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습니다.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습니다.
문제는 실제 모습과 사람들이 보는 모습 사이에 차이가 생길 때 시작됩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그렇게 보이고 싶어집니다.
그러면 사람은 점점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시작합니다.
아나니아가 바로 그랬습니다.
돈을 감춘 것이 먼저가 아니라 자기의 진짜 모습을 감춘 것이 먼저였습니다.
그는 “나는 이 정도만 드렸다”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저 사람도 바나바처럼 헌신했구나.”
“저 사람도 자기 재산을 다 내놓았구나.”
그런 평가를 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칭찬을 얻으려고 하나님 앞에서 거짓을 선택하는 순간,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3. 베드로는 이것을 ‘성령을 속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아나니아에게 한 말은 매우 무겁습니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여기서 우리는 본문의 수준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아나니아는 단순히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그것을 성령을 속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4절에서는 더 무섭게 말합니다.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이것이 이 사건의 본질입니다.
아나니아는 베드로를 속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 앞에 거짓을 세운 것입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습니다.
교회 사람들도 속일 수 있습니다.
가족도 속일 수 있습니다.
친구도 속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감추고 있는 것을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도 아십니다.
사람에게는 웃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무너져 있는 것도 아십니다.
사람들에게는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떠나 있는 것도 아십니다.
우리가 사람 앞에서 만들어 놓은 모습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4.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까지 심판하셨을까요?
여기서 가장 어려운 질문이 나옵니다.
“거짓말 한 번 했다고 죽이는 것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우리에게는 그렇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사건을 단순한 개인의 실수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시기를 보아야 합니다.
이때는 교회가 막 시작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께서 임하셨고,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4장에 들어가면 믿는 사람들이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서로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필요한 사람을 돕기 위해 자기 재산을 팔기도 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도 밭을 팔아 그 돈을 사도들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등장합니다.
겉으로는 똑같아 보입니다.
바나바도 땅을 팔았습니다.
아나니아도 땅을 팔았습니다.
바나바도 돈을 가져왔습니다.
아나니아도 돈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겉모습 뒤에 있는 차이를 보셨습니다.
바나바는 실제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아나니아는 하나님께 드린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습니다.
초대교회가 시작되는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공동체 안에 아주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 교회에서는 외형적인 경건보다 진실함이 중요하다.”
이것이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이해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5.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은 돈이 아니라 위선이었습니다
다시 4절을 보겠습니다.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이 말씀을 놓치면 본문을 잘못 해석하게 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재산을 모두 바쳐야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말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네가 가지고 있을 때 네 것이 아니었느냐?”
“팔고 난 뒤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심판하셨습니까?
전부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전부 드리지 않았으면서 전부 드린 것처럼 거짓말했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를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없는 것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정직하게 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 저는 이것밖에 못합니다.”
“주님, 제 믿음이 아직 작습니다.”
“주님, 저는 이것을 내려놓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부족해도 됩니다.
하지만 거짓되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이 작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큰 사람인 척할 필요는 없습니다.
헌신이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헌신한 사람인 척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보다 거짓된 마음을 더 심각하게 보십니다.
6. 삽비라에게도 똑같은 기회가 있었습니다
세 시간이 지나 삽비라가 들어옵니다.
남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베드로가 묻습니다.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얼마나 중요한 질문입니까?
베드로가 그녀에게 기회를 줍니다.
“정말 이것이 전부냐?”
이때 삽비라가 말할 수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러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도 똑같이 거짓말합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말합니다.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봅니다.
삽비라는 남편 때문에 무조건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녀 자신도 거짓에 참여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함께 계획했습니다.
함께 거짓된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각각의 책임을 물으셨습니다.
7. 죄는 혼자 끝나지 않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야기가 더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죄는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공동체로 퍼져갑니다.
한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다른 사람이 그것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위선을 시작하면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면 그 기준이 공동체 전체로 내려갈 수 있습니다.
특히 교회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완벽해서 거룩한 곳이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거룩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외부의 공격만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진실함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거룩해 보이는데 하나님 앞에서는 거짓된 모습.
그것이 교회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8.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두려움’을 주셨습니다
11절은 매우 중요합니다.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성경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만 기록하고 끝내지 않습니다.
교회가 두려워했다는 것을 기록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겉모습만 보시는 분이 아니구나.”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 앞에서는 진실해야 하는구나.”
이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단순히 공포에 떠는 것과 다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크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 삶이 하나님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에 필요한 것도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의 눈은 두려워하면서 하나님의 눈은 의식하지 않는다면 신앙은 외형만 남게 됩니다.
9. 오늘 우리에게도 아나니아의 모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기 전에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는 혹시 이런 모습이 없습니까?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나와 하나님 앞의 내가 다르지는 않습니까?
사람들 앞에서는 믿음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하나님을 전혀 찾지 않는 것은 아닙니까?
사람들 앞에서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마음속에서는 미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람들에게는 겸손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가득하지 않습니까?
교회에서는 “하나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실제 삶에서는 내 뜻만 붙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아나니아를 보면서
“저런 나쁜 사람이 어떻게 교회에 들어왔을까?”
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혹시 내 안에도 하나님 앞에서 감추고 싶은 부분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0. 하나님 앞에서는 부족함보다 정직함이 중요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숨길 수 있습니까?
숨길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가장 현명한 태도는 무엇입니까?
솔직해지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주님, 저는 아직 욕심이 많습니다.”
“주님, 저는 사람의 인정을 너무 좋아합니다.”
“주님, 용서한다고 말하지만 아직 마음이 어렵습니다.”
“주님,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 두렵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성경의 위대한 신앙인들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와 연약함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죄를 지었을 때 숨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 앞에 죄를 인정했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가 없는 사람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문제는 약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는 약하면서도 강한 척하는 것입니다.
죄가 있으면서도 없는 척하는 것입니다.
넘어졌으면서도 넘어지지 않은 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것이 위험합니다.
1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에게 ‘가면을 벗으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야기를 복음과 연결해야 합니다.
이 사건만 보면 무섭습니다.
“하나님께 거짓말하면 죽는다.”
그런데 성경 전체를 보면 더 깊은 복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거짓과 죄를 아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좋은 사람처럼 보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가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근거는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
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
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우리에게 가면을 쓰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면을 벗으라고 합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이것을 내려놓으십시오.
“나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것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12. 아나니아 사건은 ‘헌금 많이 하라’는 설교가 아닙니다
이 본문을 헌금에만 적용하면 너무 좁습니다.
물론 우리의 돈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질문은 돈보다 훨씬 큽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가?”
이것이 질문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는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는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교회에서 하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신앙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외형만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사람들이 보는 저와 하나님께서 보시는 제가 다르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입니다.
13.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진실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초대교회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죄를 드러내시고 교회를 정결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 교회에도 중요한 교훈입니다.
교회 안에는 연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넘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상처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죄가 있느냐 없느냐만이 아닙니다.
죄를 인정하느냐 감추느냐가 중요합니다.
잘못했지만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사람은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숨기고 거짓된 모습을 유지하려 하면 점점 하나님에게서 멀어집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서로에게 완벽함을 요구하기보다 진실함을 가르쳐야 합니다.
“나는 괜찮습니다.”
라고 말하는 교회보다,
“나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14.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은 ‘전부’가 아니라 ‘진실함’입니다
이것을 다시 강조하고 싶습니다.
아나니아가 돈의 일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직접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무조건 다 내놓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진실한 마음입니다.
내가 드릴 수 있다면 기쁨으로 드리십시오.
드리기 어렵다면 하나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리십시오.
섬길 수 있다면 섬기십시오.
힘들다면 힘들다고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믿음이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믿음이 흔들린다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위대한 모습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진실한 모습을 원하십니다.
15. 마지막으로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읽고 우리는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정죄하는 데서 끝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주셨다면 질문은 이것입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냐?”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모습과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는 모습이 같습니까?
사람들에게는 믿음이 좋아 보이는데 실제로는 하나님과 멀어져 있지는 않습니까?
사람들에게는 헌신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인정받기 위해 봉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람들에게는 괜찮다고 말하면서 하나님 앞에서는 무너져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감출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숨기지 말고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이것이 저의 모습입니다.”
그때 복음이 시작됩니다.
결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삽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거짓말하면 하나님께서 죽이신다.”
라는 이야기로 끝내서는 안 됩니다.
이 사건의 중심에는 더 깊은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 거짓된 경건이 자리 잡는 것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겉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사람은 우리가 얼마나 드렸는지를 봅니다.
하나님은 왜 드렸는지를 보십니다.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신앙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께 전부 드린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완벽하게 보이려고 애쓰기보다 하나님 앞에 정직해야 합니다.
넘어졌다면 넘어졌다고 말하고,
죄를 지었다면 죄를 인정하고,
믿음이 약하면 약하다고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면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는 감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동시에 은혜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하나님께서 이미 아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가면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 앞에서 의로운 사람인 척하는 대신,
그리스도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으로 하나님 앞에 서십시오.
그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사람들이 보는 너의 모습과 하나님께서 보시는 너의 모습은 같은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 모두가 정직하게 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가 이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신앙을 주옵소서.
사람의 칭찬을 얻기 위해 거짓된 경건을 만들지 않게 하시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연약하면 연약한 대로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성령 앞에서 정직하게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겉모습보다 우리의 중심을 새롭게 하옵소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 앞에서 교회가 두려워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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