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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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엘 2:1-11
[도입] 1912년 4월 14일 밤, 타이타닉호에서 북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바다 위에 캘리포니안호라는 배 한 척이 얼음을 피해 멈춰 서 있었습니다. 자정이 넘은 시각, 캘리포니안호의 삼등항해사는 어두운 바다 저편에서 하얀 로켓 신호탄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즉시 선장 스탠리 로드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선장은 몇 차례 그 신호를 확인하고도 "아마 회사 신호나 축하 불꽃 정도일 것"이라 판단하고, 무선통신사를 깨워 확인해 보라는 지시조차 내리지 않은 채 다시 잠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 하얀 로켓은 사실, 침몰해 가는 타이타닉호가 쏘아 올린 절박한 조난 신호였습니다. 이후 영국과 미국의 공식 조사에서 이 사실이 낱낱이 드러났고, 캘리포니안호가 조금만 더 빨리 반응했다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으리라는 것이 오랫동안 역사가들의 결론이었습니다.
신호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신호를 "늘 있는 것" 정도로 여기고 넘겨버린 사람의 판단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요엘 2장 1절부터 11절도 신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아무 예고 없이 급습시키지 않으십니다. 먼저 나팔을 불게 하십니다. 문제는 언제나, 그 나팔 소리를 우리가 어떻게 듣느냐에 있습니다.
[본문 해석] 1절을 보십시오.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나팔, 히브리어로 쇼파르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전쟁의 위험과 임박한 재난을 알리던 경보 장치였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공습 사이렌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 나팔은 다른 곳이 아니라 시온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서 울립니다. 이 경고는 이방 나라를 향한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백성 자신을 향한 것입니다.
2절부터 본문은 다가오는 재앙을 묘사합니다.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 전무후무한 규모입니다. 그리고 4절부터 9절까지, 요엘은 이 재앙을 마치 정예 군대처럼 묘사합니다. "그의 모양은 말 같고 그 달리는 것은 기병 같으며... 강한 군사가 줄을 벌이고 싸우는 것 같으니." 이 군대는 대열을 이탈하지 않고, 서로 부딪치지도 않으며, 사람이 만든 그 어떤 무기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10절에 이르면 그 규모는 우주 전체로 확장됩니다.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그리고 이 본문의 절정,
1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군대 앞에서 소리를 지르시고 그의 진영은 심히 크고 그의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기가 핵심입니다. 이 압도적인 군대는 우연히 몰려온 재해가 아닙니다. 그것은 여호와 자신의 군대입니다. 그분이 친히 진두에서 명령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심판은 자연도, 우연도, 운명도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이 그 백성을 만나러 오시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본문은 마지막 질문으로 마무리됩니다.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 이 질문에는 본문 안에서 답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결코 이 날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핵심 메시지]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울리시는 경보음을 "늘 있는 소리"로 여기는 순간이, 우리가 가장 위험해지는 순간입니다. 캘리포니안호의 선장은 신호가 없어서 못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호를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나팔을 불고 계십니다. 문제는 언제나 우리가 그 소리에 무뎌져 있다는 것입니다.
[적용] 이 말씀을 오늘 우리 삶에 두 가지로 적용하고자 합니다.
첫째, 반복된다는 이유로 익숙해진 경보를 다시 진지하게 들어야 합니다.
얼마 전 대전의 한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열네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생존자들의 증언이 뼈아팠습니다. 화재 경보가 울렸을 때 직원들은 "평소 오작동이 잦았기에 처음엔 신경 쓰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몇 분의 망설임 사이 연기가 순식간에 번졌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창문으로 뛰어내려야 했습니다. 반복된 오작동이 사람들의 감각을 무디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하나님이 거듭 울리시는 경보가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똑같이 걸리는 그 부분, 반복해서 찔리는 양심, 계속 되풀이되는 관계의 문제. 우리는 이것들을 "늘 있는 일"로 치부하며 넘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경보가 무뎌진 자리에서 참사는 가장 조용히 시작됩니다.
[결론 — 복음] 본문은 무서운 질문으로 끝을 맺습니다.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 그러나 성경은 그 질문을 거기서 그냥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바로 다음 절, 요엘 2장 12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너희는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심판의 나팔을 부시는 그 손이, 곧바로 은혜의 초청장을 내미시는 그 손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결국 한 사람에게서 완성되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여호와의 날, 그 진노의 심판을 우리 대신 온몸으로 받아내신 분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스스로 물으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아무도 감당할 수 없다던 그 날의 무게를, 그분이 우리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듣는 경보는 절망의 사이렌이 아닙니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한 자들을 향해, 더 늦기 전에 깨어 돌아오라 부르시는 사랑의 나팔입니다. 오늘 이 새벽, 익숙해진 경보에 다시 마음을 기울이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