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le 2:12-17
Notes
Transcript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백성을 모아 그 모임을 거룩하게 하고 장로들을 모으며 어린이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신방에서 나오게 하고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
[도입]
주후 390년, 로마 제국의 도시 데살로니가에서 폭동이 일어나 관리 한 사람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황제 테오도시우스는 진노하여 군대를 보내 도시를 응징했고, 그 결과 수천 명의 무고한 시민이 학살당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는 황제에게 편지를 보내, 그가 진정으로 회개하기 전까지는 성찬에 참여할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놀랍게도 황제는 이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황제의 자주색 예복과 왕관을 벗고, 평범한 참회자의 모습으로 여러 달 동안 교회에 나와 자신의 죄를 자복했습니다. 역사가들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그해 크리스마스가 되어서야 다시 성찬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절대 권력자가, 자신의 겉옷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 자신의 위신, 자신의 시간을 몇 달씩 내어놓고서야 비로소 인정받은 회개였습니다.
오늘 본문, 요엘 2장 12절부터 17절도 바로 이 질문을 다룹니다. 진짜 회개란 무엇인가?
[본문 해석]
지난 시간 우리는 요엘 2장 1절부터 11절에서, 인간이 결코 감당할 수 없는 여호와의 날에 대한 묘사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단락은 "당할 자가 누구이랴"라는 답 없는 질문으로 끝났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2절은 바로 그 절망의 자리에서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심판이 이미 결정된 것처럼 보이던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그러나 아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3절, 본문의 핵심이 나옵니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옷을 찢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에서 극심한 슬픔을 표현하는 공인된 관습이었습니다. 아무도 그 행위 자체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라고. 겉으로 드러나는 슬픔의 몸짓이 아니라, 존재의 방향을 바꾸는 진짜 통회를 원하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명령에는 근거가 있습니다. 13절 후반을 보십시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이것은 출애굽기 34장,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친히 자신을 계시하신 바로 그 말씀입니다. 요엘은 회개를 요구하기에 앞서, 우리가 돌아갈 그 대상이 어떤 분이신지를 먼저 상기시킵니다. 우리가 마음을 찢어야 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돌아갈 그분이 은혜로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15절과 16절은 이 회개가 결코 개인적이고 사적인 일로 끝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장로들을 모으며 어린이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신방에서 나오게 하고." 결혼 첫 주간은 당시 모든 공적 의무로부터 면제되던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예외조차 이 회개의 부름 앞에서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나이도, 신분도, 인생의 가장 기쁜 순간조차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17절, 제사장들의 기도로 본문은 마무리됩니다.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이 기도의 논리를 주목하십시오. 이스라엘의 회복을 구하는 근거는 이스라엘 자신의 안녕이 아닙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백성을 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판단하게 된다는 사실, 바로 그것입니다.
[핵심 메시지]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찢어진 옷이 아니라 찢어진 마음입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인정받은 것은 그가 교회에 나왔기 때문이 아니라, 몇 달에 걸쳐 자신의 자리와 위신을 내어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회개가 겉옷을 찢는 몸짓인지, 마음을 찢는 진짜 통회인지를 정확히 아십니다.
[적용]
그러므로, 형식을 갖춘 사과와 마음을 찢은 회개를 구별해야 합니다. 눈물 없이 반복하는 회개 기도, 삶의 변화 없이 되풀이하는 결심.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찢은 것이 옷인지, 마음인지, 오늘 정직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결론 — 복음]
암브로시우스가 로마 황제에게 요구했던 것은 결국 요엘 2장 13절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라는 것.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과연 우리 힘으로 마음을 찢을 수 있습니까. 우리의 결심과 의지로 진짜 통회에 이를 수 있습니까.
예레미야 31장은 하나님이 친히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찢기신 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분의 몸이 찢기시고 그분의 살이 찢기심으로, 우리는 스스로 찢을 수 없던 마음을 하나님께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엘 2장 13절이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그 하나님,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인애가 크신 그 하나님은, 오늘도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