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두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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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과 형제들의 만남
요셉과 형제들의 만남
오늘 본문말씀은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자기 자신을 밝히는 장면입니다. 어찌보면 요셉 이야기 중에서 가장 클라이막스에 해당되는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이후에 7년간의 풍년 동안 비축해둔 곡물을 이제 7년간의 흉년동안 풀어서 나누어주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요셉이 자기 형제들을 만난 것이 이게 처음은 아니었어요. 창세기 42장부터 이어지는 내용을 떠올려보면, 먼저 야곱이 자기 자식들에게 흉년이 들었으니 곡식을 사러 애굽에 다녀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가장 막내인 베냐민을 제외한 다른 형제들이 애굽으로 가서 요셉을 만나게 되는데요 이 때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지만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이 형들을 보더니 대뜸 “너희는 이 애굽을 정탐하러온 정탐꾼들이다!”라고 몰아붙이면서 시므온을 인질로 붙잡고 베냐민을 마저 데려오라는 이상한 명령을 내립니다. 그 와중에 곡식 안에 가져왔던 돈들을 다 다시 넣어놨던 것은 덤이구요.
그걸 요셉의 형들이 야곱에게 다 이야기했는데 야곱은 처음에는 “안된다! 요셉도 사라지고 시므온도 잡히더니 이제는 베냐민 마저 빼앗아가려고 하느냐! 베냐민 마저 없어지면 나는 스올로 내려갈 것이다!”라고 아주 결사반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도 흉년과 기근이 심하니까 애굽에서 가져온 식량도 다 떨어지고 맙니다. 이 때 유다가 자기 자신을 희생해서 자기가 베냐민 대신에 인질이 되겠다고 이야기하면서 설득을 한 끝에 베냐민을 데리고 다시 애굽으로 향했습니다.
이번에 요셉은 형제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고 다시 곡식을 가득 채워서 돌려보내는데 이번에는 베냐민의 자루에 은잔을 넣어놓으라고 아랫사람들에게 명령합니다. 그리고는 자기 집 사람에게 그들을 쫒아가서 어찌 은잔을 훔쳤나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형제들은 “아니 저희가 돈도 다 가져와서 양식을 사지 않았습니까? 저희가 그런걸 훔쳤다면 그 사람은 종이 될 것입니다!”라고 했는데 아니나다를까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나온거예요. 이제 형제들이 다 애굽으로 다시 가서 요셉을 다시 만났는데 요셉 역시 “은잔을 훔쳐간자 베냐민만이 내 종이 되고 나머지는 돌아가라!”라고 이야기합니다.
바로 여기서 형제중에 유다라고 하는 자가 나서서 “이 베냐민이 없으면 우리 아버지가 스올에 내려갈 것입니다. 대신 저를 종으로 삼아주십시오!”라고 간청하는 장면이 바로 오늘 본문말씀의 시작 지점입니다.
요셉의 시험
요셉의 시험
요셉은 대체 왜 이런 일을 했을까요? 형제들을 돌려보내고 다시 오게끔 한다음에 꼭 그렇게 베냐민을 인질로 잡으려고 했을까요? 이 과정에서 형제들이 아주 벌벌 떨었던 것은 고사하고 자기 아버지인 야곱 마저 아주 간담이 서늘하게 됐을 텐데요. 혹여나 자기 형제들에게 복수를 했다고 하기에는 자기 형제들 뿐만 아니라 자기 아버지마저 정신을 아주 혼미하게 두들겨패는 이런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왜그랬을까요?
사실 요셉이 형제들에게 하는 것은 요셉이 베냐민으로 하여금 자신과 같은 처지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이 노예 상인들에게 팔리고 나서 형제들이 가축의 피를 적신 채색옷을 야곱에게 보여줬을 때 야곱이 이렇게 반응하는데요,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겠다는 표현을 씁니다. 여기서 스올이라고 하는 곳은 구약에서 주로 저승을 이야기할 때 쓰는 표현인데요, 다만 천국과 같은 곳은 아닙니다. 이사야서에서는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스올이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지는 곳이라고 표현하구요, 시편에서도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스올에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 원문의 표현으로는 하나님께 예배조차도 드릴 수 없는 곳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러니까 스올은 거의 지옥이나 다름 없는 곳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요셉의 죽음은 스올에 내려가는 것, 그러니까 지옥의 구덩이에 빠지는 것이나 다름이 없던 것입니다.
그러한 표현이 오늘 본문말씀에서도 똑같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본문말씀 44장 30-31절 말씀을 보시면요,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유다가 야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베냐민을 데리고 돌아가지 않으면 야곱이 스올에 내려가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요셉과 베냐민 모두 야곱으로 하여금 스올로 내려가게 할 만큼 소중한 자식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죠, 이전에 요셉의 때에 유다가 이것을 몰랐을까요? 아닙니다. 그 때에도 모든 형제들이 야곱이 요셉을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의 결과는 어땠습니까? 요셉으로 하여금 마치 스올과 같은 구덩이에 집어던졌구요, 끝내는 노예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아버리기까지 했습니다. 그게 잘못인줄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히 오늘 본문말씀에서 이야기하는 유다는 바로 그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유다야 말로 요셉을 팔아넘기는데에 솔선수범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동생을 죽여봐야 무엇하겠냐? 상인들에게 팔아버리고 손을 털어내자”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말씀에서 유다는 놀라운 말을 합니다. 본문말씀 33-34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어볼까요?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요셉을 상인들에게 팔아버렸던 유다가 이번에는 베냐민을 위해서 자기가 대신해서 팔리겠다고 이야기합니다. 동생을 버렸던 사람이 이번에는 동생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버릴 줄 아는 사람으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요셉의 울음
요셉의 울음
요셉이 바로 그 직후에 도저히 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시종들을 다 물린 이후에 막 울면서 형제들에게 말했죠. “형님들, 제가 바로 요셉입니다! 당신들이 애굽에 판 사람입니다! 그러나 부디 걱정하지 마세요. 형님들이 저를 이곳에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생명을 살리려고 저를 이곳에 보낸 것입니다!”하고 자신이 요셉인 것을 밝히게 됩니다.
바로 이 장면, 유다가 자기 동생을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하려고 하는 찰나에 요셉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그냥 요셉이 가족을 만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을 팔았던 형들이 이제는 동생을 위해서 스스로를 팔 수 있을 만큼 그 죄에서 돌이키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한 모습을 봤기 때문에 그런겁니다.
사실 이전에도 요셉이 형들을 만났을 때 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울고 세수하고 다시 돌아온 적이 있었는데요,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그들 사이에 통역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듣는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 앞에서 결박하고
요셉이 애굽사람인줄 알고 자신들의 말을 못알아듣는다고 생각해서 형들이 서로 말하기를 “아이고 우리가 요셉을 팔아넘긴 일로 범죄해서 이런 일을 당했구나! 그 죗값이 우리에게 닥쳤구나!”하고 한탄하는 장면에서도 요셉이 울고 다시 돌아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장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가족을 만난 장면이 아니라 형들이 스스로 저지른 일에 대해서 깨닫고 돌이키는 장면에서만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애초에 형들끼리 “우리가 요셉에 대해서 죄를 지었다”라고 말할 때 스스로를 밝히면 될 것이지 굳이 베냐민을 데리고 와서 이런 일을 벌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창세기 42장에서 나온 형들의 이야기는요, 자신들의 죄를 알고, 그리고 그 죄 때문에 받게될 죄값에 대해서만 아는 장면입니다. 죄와 죄에대한 책임, 그리고 그에 대한 두려움 만이 나타나는 장면이었죠.
그런데 본문말씀에서 등장하는 유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단순히 죄가 있고, 그 죄에 따르는 형벌에 대한 두려움만 있지 않습니다. 그 죄를 뛰어넘어서, 자신의 잘못을 돌이키려고 하는 것. 즉 유다의 회개가 전면에 드러나는 장면이라는 것입니다. 요셉이 스스로를 밝히는 것은 유다의 회개 이후에서나 가능했던 일이라는 것입니다.
유다의 회개와 스올에서 생명으로의 구원
유다의 회개와 스올에서 생명으로의 구원
그리고 끝내 유다가 죄를 회개하고 자신의 잘못을 돌이켜 스스로를 종으로 내어줄 만큼 변했을 대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본문말씀 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셔서 야곱과 그의 자식들, 즉 요셉의 형제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일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냥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회개하고 돌이켰을 때 벌어진 일이 바로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 구원은 단순히 기근에서, 흉년에서 구원하는 것만 있지 않습니다. 본문말씀 9-10절 말씀을 보시면,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뢰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오사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이제 야곱에게 가서 “내게로 내려오소서”하고 전해달라는 말을 합니다. 여러분 이 때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세계 지도 같은게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지도를 보면 이스라엘보다 이집트가 밑에, 그러니까 조금더 남쪽에 위치해있다는 것을 저희는 알고 있지만 이 때 당시에는 그런 개념이 없었습니다. 근데 왜 요셉은 “내려오다”라는 말을 썼을까요?
앞서서 죄를 지었던 형제들에 의해서 벌어진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야곱이 스올에 내려가는 것, 마치 지옥과도 같은 곳에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유다의 회개 이후에는 요셉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것, 생명과 구원의 땅, 마치 천국과도 같은 곳을 내려가는 것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죄는 곧 사망과 어둠의 장소로 내려가게했지만, 회개는 생명과 구원의 장소로 내려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회개와 구원의 관계
회개와 구원의 관계
이처럼 오늘 본문말씀에서 등장하는 요셉과 형제들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히 가족의 재회나 그저 야곱의 집안에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요셉이 나타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저지른 죄와 그에 대한 회개, 그리고 그 회개를 통해서 죄와 사망에서 생명과 구원으로 옮겨지는 구원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이후에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면 하신 말씀도 이와 같습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것이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의 핵심입니다. 자기 형제를 팔아넘긴 죄를 지은 요셉의 형제들처럼 수많은 죄를 짓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이제는 예수님을 통해서 자기 죄를 깨닫고, 또한 단순히 죄를 깨닫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죄에서 돌이켜서 그 삶으로 나타나는 회개로 나아갈 때에 사망과 스올에서 생명과 구원의 장소인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님의 말씀이신 회개하라는 말씀을 듣고 믿는 자는 그렇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의 두드림
요셉의 두드림
이처럼 요셉이 형제들을 향해서 해왔던 것, 다시 돌려보내고 베냐민을 데려오게하고 은잔을 몰래 넣어서 보내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바로 그렇게 형제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희 믿는 자들의 사명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먼저는 요셉이 하나님 앞에서 가족의 생명을 구하는 것을 꿈꾸어서 구했고, 죄가 가득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찾았고, 죄에 빠진 형제들을 위해 두드린 것처럼, 저희 또한 우리의 이웃을 위해 구하고, 죄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찾고, 죄악에 빠진 이들을 생명으로 옮기기 위해 두드리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말씀 7-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할렐루야! 요셉의 형제들처럼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여 구원받는 역사를 일으키기 위해 날마다 하나님께 구하고 찾으며 또한 두드리며 나아갈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