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시편과 함께 걷는 인생길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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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한 주를 보냈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 담임목사로 사역을 시작한 때가 2022년입니다. 담임목사로서 첫 번째 주일예배 설교를 2022년 8월 28일에 했습니다.
그때 제가 무슨 본문으로 설교했는지 기억하십니까?
시편 23편이었습니다.
토랜스 선한목자교회에 부임하여 첫 설교를 하면서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루지 않을 수는 없었지요.
그런데 4년이 지난 오늘, 정확히 8월의 마지막 주일에 다시 시편 23편을 설교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오늘 시편 23편을 꼭 맞춰 설교해야겠다고 계획한 것은 아닙니다. 시편 시리즈 설교를 시작했고, 그 순서를 따라오다 보니 오늘 시편 23편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단순한 우연으로만 지나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난 4년을 돌아보게 하시고, 처음의 마음을 다시 생각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적인 인도하심처럼 느껴졌습니다.
4년 전 저는 이 자리에서 선한 목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된 선한 목자이시라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인간은 완전히 선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완전히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는 충만함이 있습니다. 풍성함이 있고, 영광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얻기 위해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의 충만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그것을 하나님의 인애와 은혜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는 것도 결국 그 사랑을 다시 깨닫고 누린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무엇을 잘해서 얻어낸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베풀어 주신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목사는 목자의 직분을 위임받았을 뿐입니다.
목사가 선한 목자는 아닙니다. 목사도 죄인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목자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4년 전 저는 여러분 앞에서 이런 목사가 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말씀을 풍성히 공급하기 원합니다.
영적으로 상처받고 무너진 성도를 돌보기 원합니다.
우리 앞에 닥치는 세상의 공격에 말씀으로 맞서 양의 무리를 지키기 원합니다.
그런데 지난 4년을 돌아보면서 저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정말 그렇게 목회했는가?
한 영혼을 사랑했는가?
말씀을 충실하게 공급했는가?
상처받은 성도를 잘 돌보았는가?
교회를 말씀으로 잘 지켜왔는가?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제가 그날 설교했던 다짐에 합당하게 목회해 왔습니까?
저는 오늘 그 다짐을 다시 새롭게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 한 가지를 더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여러분의 선한 목자가 되는 것이 목회의 최종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의 역할은 여러분을 진정한 선한 목자에게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제가 예수님을 닮은 목자가 되어 여러분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닙니다.
목회의 궁극적인 목표는 여러분이 저를 잘 따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잘 따르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입술에서 이 고백이 나오도록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저는 좋은 목회란 성도들이 목사를 더 의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목사가 없어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고백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여러분을 돌보고 섬기는 일을 포기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계속해서 여러분을 사랑하고, 말씀으로 먹이고, 어려울 때 함께하며, 예수님을 닮은 목자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모든 섬김의 목적은 결국 하나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고백하는 것보다 저를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설교를 잘한다고 칭찬하셔도, 아무리 성경을 잘 가르친다고 말씀하셔도, 아무리 목사로서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셔도, 저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여러분의 입술에서 이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반대로 아무리 저와 친밀하게 지내고, 저와 웃으며 대화하고, 좋은 관계를 맺고 있더라도 여러분의 입술에서 그 고백이 없다면 저는 마음이 아플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고백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면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부족함이 없다”는 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 말은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갖게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 인생에 고통이나 상실이나 눈물이 없어진다는 뜻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바로 뒤에서 다윗이 이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목자가 있다고 해서 골짜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목자가 있다고 해서 원수가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5절에는 오히려 “내 원수의 목전에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말씀은 내 환경에 아무 결핍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나를 향한 목자의 돌보심에 부족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함께 따라하기)
내 인생에 어려움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눈물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로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골짜기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원수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호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2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목자는 양에게 필요한 것을 압니다.
양이 언제 먹어야 하는지 압니다.
언제 쉬어야 하는지 압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압니다.
그리고 3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우리가 길을 잘 찾아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목자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알아서 인생을 계획하는 것도 아닙니다.
목자가 우리를 먹이시고, 쉬게 하시고, 다시 일으키시고, 바른 길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양에게 필요한 것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고백은 바로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다 알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은 아신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아신다.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만날지 몰라도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
그래서 우리는 평안할 수 있습니다.
눈을 감고 시편 23편을 떠올려 보십시오.
푸른 풀밭이 있습니다.
쉴 만한 물가가 있습니다.
양들이 평안히 누워 있습니다.
얼마나 평온한 풍경입니까?
사방이 콘크리트 벽에 둘러싸여 잠시 숨 돌릴 틈도 없이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는 아주 다른 모습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걱정하면서 살아갑니다.
자녀 문제를 걱정합니다.
건강을 걱정합니다.
경제적인 문제를 걱정합니다.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마음 아파합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불안해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시편 23편의 풍경은 현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 거친 현실 속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평안은 좋은 길만 걷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길에서도 선한 목자가 나와 함께 계심을 믿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긍정적 사고가 아닙니다.
“잘될 거야.”
“좋은 일이 생길 거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원하는 일이 이루어질 거야.”
그런 자기 암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평안에는 분명한 대상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나 자신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이 좋아질 것을 무조건 믿는 것도 아닙니다.
나의 목자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긍정할 수 있습니다.
상황이 언제나 긍정적이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안할 수 있습니다.
앞길이 언제나 평탄해서가 아닙니다.
목자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다윗은 4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여기에서 시편 23편의 믿음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다윗은 골짜기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강하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긍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그리스도인의 평안은 환경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옵니다.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평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평안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목자는 때로 우리를 막으십니다.
우리가 가고 싶은 길을 가지 못하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때로 우리를 돌이키십니다.
때로는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그 지팡이와 막대기조차 결국 우리를 살리기 위한 목자의 도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목자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순종할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어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길이어도,
나의 목자는 선하시며 나보다 더 좋은 길을 알고 계신다는 믿음으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결국 시편 23편은 우리가 원하는 목가적인 삶을 만들어 달라고 하나님께 요구하는 시가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달라는 기도도 아닙니다.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시는 하나님,
푸른 풀밭에서도 나를 인도하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나와 함께하시고,
원수의 목전에서도 나를 보호하시며,

“결국 나를 하나님의 집까지 인도하시는 그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시입니다.”

그리고 시편은 이렇게 끝납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다윗은 앞으로 자신의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다음 달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1년 뒤, 10년 뒤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믿음은 모든 미래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를 아는 것입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얼마나 잘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때로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때로 길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 낙심하고 주저앉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우리를 놓치지 않습니다.
선한 목자는 자신의 양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를 여호와의 집까지 데리고 가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4년 전 저는 이 자리에서 어떤 목사가 되고 싶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고,
말씀을 공급하고,
상처받은 성도를 돌보고,
양의 무리를 지키는 목사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저는 그 다짐을 다시 새롭게 합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오늘 한 가지를 더 분명하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제가 어떤 목사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누구를 목자로 고백하며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진정한 목자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진정한 목자는 오직 한 분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여러분이 저를 잘 따르는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잘 따르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여러분의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 고백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푸른 풀밭에서도 이 고백을 하십시오.
쉴 만한 물가에서도 이 고백을 하십시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이 고백을 하십시오.
원수의 목전에서도 이 고백을 하십시오.
그리고 우리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이 고백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 목자께서 우리를 먹이시고,
쉬게 하시고,
다시 일으키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시며,
골짜기에서 함께하시고,
마침내 영원한 아버지의 집까지 우리를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 선한 목자를 믿고 따라가며, 그분 안에서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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