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830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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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zekiel 48:15–22 NKRV
15 이 이만 오천 척 다음으로 너비 오천 척은 속된 땅으로 구분하여 성읍을 세우며 거주하는 곳과 전원을 삼되 성읍이 그 중앙에 있게 할지니 16 그 크기는 북쪽도 사천오백 척이요 남쪽도 사천오백 척이요 동쪽도 사천오백 척이요 서쪽도 사천오백 척이며 17 그 성읍의 들은 북쪽으로 이백오십 척이요 남쪽으로 이백오십 척이요 동쪽으로 이백오십 척이요 서쪽으로 이백오십 척이며 18 예물을 삼아 거룩히 구별할 땅과 연접하여 남아 있는 땅의 길이는 동쪽으로 만 척이요 서쪽으로 만 척이라 곧 예물을 삼아 거룩하게 구별할 땅과 연접하였으며 그 땅의 소산을 성읍에서 일하는 자의 양식을 삼을지라 19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 그 성읍에서 일하는 자는 그 땅을 경작할지니라 20 그런즉 예물로 드리는 땅의 합계는 길이도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도 이만 오천 척이라 너희가 거룩히 구별하여 드릴 땅은 성읍의 기지와 합하여 네모 반듯할 것이니라 21 거룩하게 구별할 땅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에 남은 땅은 군주에게 돌릴지니 곧 거룩하게 구별할 땅의 동쪽을 향한 그 경계선 앞 이만 오천 척과 서쪽을 향한 그 경계선 앞 이만 오천 척이라 다른 몫들과 연접한 땅이니 이것을 군주에게 돌릴 것이며 거룩하게 구별할 땅과 성전의 성소가 그 중앙에 있으리라 22 그런즉 군주에게 돌려 그에게 속할 땅은 레위 사람의 기업 좌우편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이며 유다 지경과 베냐민 지경 사이에 있을지니라
주전 573년, 바벨론 땅입니다. 에스겔은 제사장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섬기고 있어야 할 사람인데, 지금 그는 포로 수용지에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진 지 열네 해가 지났습니다. 성전은 불탔고 성벽은 헐렸습니다. 처음 몇 해는 곧 돌아갈 줄 알았습니다. 십사 년이 지나니 그런 기대가 사라졌습니다. 남은 생각은 하나뿐이었습니다. 우리는 버림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환상을 보이십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뜻밖입니다. 감동적인 약속이 아니라, 자를 들고 땅을 재는 장면입니다. 몇 척, 몇 척, 몇 척이 계속됩니다. 오늘 본문도 그 치수의 한 대목입니다.
땅을 잰다는 것은 그 땅의 임자가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이 자를 꺼내신 것입니다. 너희 몫이 여기 있다고, 내가 이미 재어 두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지루해 보이는 숫자들이 그들에게는 집문서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옛날 지도를 그대로 다시 그려 주지 않으십니다. 새로 그리십니다.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보면 그들이 왜 무너졌는지가 보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땅을 나누기 전에 한 덩어리를 따로 떼어 내십니다. 사방 이만 오천 척, 네모 반듯한 땅입니다. 이 땅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로 구별하십니다. 남는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떼어 놓고 나머지를 그 둘레에 배치하십니다.
에스겔의 왕실 척(53cm) 25,000척 = 13.25km
거룩한 구역 약5,310만평
제사장의 구역 2,124만평
레위인의 구역 2,124만평
성읍 및 기지 1,062만평
영종도 약 3,495만평
그 안에서 순서가 정해집니다. 성소를 품은 제사장의 땅이 있고, 그다음에 레위 사람의 땅이 있습니다. 그리고 15절이 시작됩니다. 남은 오천 척을 두고 하나님이 이 땅은 속된 땅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이 서운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속되다는 말은 더럽다는 뜻이 아닙니다. 구별해 놓지 않은 자리, 평범한 일상의 자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여기는 일상의 땅이라고 이름을 붙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상의 땅을 아주 자세히 챙기십니다. 성읍의 크기를 정하시고, 그 동쪽과 서쪽에 밭을 두십니다. 그 밭에서 나는 것이 무엇에 쓰이는지도 정해 주십니다. 성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양식이 됩니다.
성전 설계도를 보여 주시던 하나님이 지금 일하는 사람들의 밥상까지 계산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을 성전 안과 성전 밖으로 나누어 한쪽만 돌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다만 그 둘을 섞지도 않으십니다. 일상은 소중한 자리이지만 성소는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무너진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 구별을 잃은 것이었습니다. 22장에서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않았다고 꾸짖으셨습니다. 거룩한 것을 함부로 다루고 결국에는 우상까지 성전 뜰로 끌고 들어왔습니다. 새 지도에서는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땅의 모양 자체를 그렇게 만들어 두셨습니다.
19절은 짧지만 담긴 것이 큽니다. 그 밭을 경작하는 사람이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서 나옵니다. 옛 예루살렘은 다윗의 성이었습니다. 왕조의 도시였고 힘 있는 사람들의 도시였습니다. 새 성읍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지파의 소유도 아닙니다. 모두가 함께 일하고 함께 먹습니다. 그 밭이 있는 이유는 누군가의 창고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밥그릇을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21절과 22절에서는 군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에스겔은 이 사람을 왕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계속 군주라고 부릅니다. 왕이라는 말을 일부러 피한 것입니다.
그 군주에게도 하나님이 땅을 주십니다. 거룩히 구별한 땅과 성읍의 좌우편입니다. 그런데 그 땅에는 분명한 울타리가 있습니다. 유다 지경과 베냐민 지경 사이라고 못을 박아 두셨습니다.
왜 지도자의 땅을 미리 정해 주셨을까요. 45장이 그 이유를 말해 줍니다. 다시는 백성을 압제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46장은 더 분명합니다. 군주는 백성의 기업을 빼앗지 못합니다. 힘 있는 자가 이웃의 밭을 삼키던 일이 다시 없도록, 하나님이 먼저 지도자의 몫을 정하고 그 둘레에 선을 그으셨습니다. 넉넉히 주시되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Ezekiel 22:27–30 NKRV
27 그 가운데에 그 고관들은 음식물을 삼키는 이리 같아서 불의한 이익을 얻으려고 피를 흘려 영혼을 멸하거늘 28 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며 거짓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하였으며 29 이 땅 백성은 포악하고 강탈을 일삼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고 나그네를 부당하게 학대하였으므로 30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군주의 땅은 성소를 좌우에서 감싸지만 그 안을 포함하지는 않습니다. 성소는 그의 땅 가운데 있으나 그의 것이 아닙니다. 성소 곁에 사는 사람이지 성소를 관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것이 옛날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예전에는 왕궁과 성전이 같은 언덕에 나란히 붙어 있었습니다. 43장에서 하나님이 그 일을 지적하십니다. 왕들이 자기 문지방을 하나님의 문지방 곁에 두었다고 하십니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하나님과 나란히 앉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성전은 왕의 부속 건물처럼 되었습니다. 새 지도에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포로들은 이 그림 앞에서 두 가지를 들었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 자리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십사 년째 아무 소식이 없어도 우리는 지워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른 하나는 돌아가서 예전처럼 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너진 것은 하나님이 약하셔서가 아니었습니다. 중심에 있어야 할 것을 옆으로 밀어 두고, 옆에 있어야 할 것을 중심에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배치가 도달하는 곳이 48장 마지막 절입니다.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부르십니다. 여호와께서 거기 계신다는 뜻입니다. 떠나셨던 분이 돌아와 머무십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성전의 이름이 아니라 성읍의 이름입니다. 사람들이 살고 일하고 밥을 먹는 평범한 자리에 하나님이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것도 같습니다.
우리 삶에도 지도가 있습니다. 시간이 어디에 쓰이고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가 그 지도입니다. 그 한가운데 무엇이 있는지에 따라 나머지가 다 정해집니다. 중심이 제자리에 있으면 공부도 일도 관계도 저마다 제 자리를 찾습니다. 중심이 어긋나면 아무리 열심히 쌓아 올려도 언젠가 다시 무너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평범한 자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밭과 양식까지 재어 두신 분이십니다. 다만 그 자리를 성소로 착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일상은 소중하지만 중심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자리가 있다면 그 둘레의 선도 함께 받은 것입니다. 어디까지가 내 몫인지를 아는 사람이 그 자리를 오래 지킵니다.
하나님의 회복은 잃은 것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무너진 이유를 고쳐서 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복은 자로 재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무엇이 중심이고 무엇이 그 곁인지를 다시 정하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그 일이 우리 안에서 일어날 때, 우리가 사는 그 자리의 이름도 여호와삼마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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