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되지 않은 삶의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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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해결되지 않은 삶의 문제들
본문: 사사기 3장 1-6절
[서론]
우리 주변을 보면 모든 일이 참 잘 풀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정은 늘 화목해보이고, 직장생활도 막힘이 없습니다.
건강에도 큰 문제가 없고, 교회 생활도 늘 은혜로워 보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모를 기도제목 하나 없어 보입니다.
우리도 이런 삶을 은연중에 바라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잘 믿으면 내 삶의 문제도 하나씩 사라지고, 점점 평안해지지 않을까?”
은근히 이런 기대를 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의 삶의 자리는 어떻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을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직장이 안정되나 싶으면 가정에 문제가 생깁니다.
인간관계가 풀린다 싶으면 갑자기 건강에 적신호가 켜집니다.
간신히 한 문제가 해결되었다 싶으면 또다른 문제가 찾아옵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제목은 좀처럼 끊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열심히 믿는데 왜 내 삶은 여전히 버겁습니까?”
“왜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주시지 않으십니까?”
“왜 내 환경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면 하나님이 나를 광야에 내버려두신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시선을 보여줍니다.
[본론1]
오늘 우리가 읽은 사사기 3장은 사사기의 서막에 속합니다.
사사기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반복될 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앞서 여호수아서에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복전쟁을 치렀습니다.
놀라운 승리를 맛보았지만 정복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각 지파가 믿음으로 끝까지 싸워 몰아내야 할 민족들이 여전히 있었습니다.
바로 이 시점에 위대한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고 맙니다.
이제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새로운 세대가 등장합니다.
우리는 쉽게 이렇게 생각할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살아있을때 가나안 민족들을 모조리 쓸어버리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다음 세대는 아무런 피흘림도, 위험도 없이 안락하게 약속의 땅을 누렸을텐데…”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가나안 민족 일부는 여전히 그 땅에 남겨 두셨습니다.
왜 일까요?
이스라엘을 괴롭히시려고 하신 것일까요?
4절입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시험하셔서, 그들이 과연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 조상들에게 내리신 명령에 순종하는지 순종하지 않는지를 알아보시려고 이런 민족들을 남겨놓으신 것이다.”
하나님이 가나안 민족을 일부 남겨두신 첫번째 이유는 이스라엘의 순종을 시험하시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그럼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행동할지 몰라서 시험하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시험이란 하나님이 모르시는 어떤 정보를 얻기 위해 시험하신게 아닙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믿음과 순종이 삶의 현장에서 실재가 되도록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진정한 순종이란 아무런 어려움이나 저항이 없는 곳에서 이루어지는게 아닙니다.
가나안 민족의 문화와 가치관, 우상숭배가 판치는 한복판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가나안이 아닌 하나님을 따르겠습니다”라고 결단할때 비로소 순종의 진가가 드러나는 법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원래 하나님의 의도는 이스라엘이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민족을 완전히 몰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쉽게 타협했고, 순종에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들의 연약함과 실패마저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사용하신 것입니다.
남아있는 가나안 민족을 통해 이스라엘이 다시 한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실패를 은혜의 기회로 돌려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당장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직장생활이 갑자기 쉬워지는게 아닙니다.
여전히 불편한 사람이 있고, 경쟁도 있고, 유혹도 여전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해서 모든 갈등이 갑자기 사라지는게 아닙니다.
건강의 문제, 경제적인 어려움도 여전히 우리 곁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런 문제들을 단번에 없애주시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때때로 환경을 먼저 바꾸시기보다 우리를 바꾸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내 삶에 여전히 문제가 남아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문제 속에서 내가 누구를 의지하고 있는지 드러나게 하십니다.
평안할 때는 내가 하나님을 믿는지, 돈을 믿는지, 사람을 믿는지 잘 모를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찾아오면 내가 실제로 붙들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드러납니다.
물론 우리가 실패할때도 있습니다.
두려움때문에 잘못 선택할때도 있고, 유혹 앞에서 무너질때도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 실패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지 깨닫게 하시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험은 우리를 넘어뜨리고 망하게 하려는 덫이 아닙니다.
내 믿음이 어디에 서 있는지 직시하게 만듭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더 온전히 의지하고 신뢰하도록 빚어가시는 은혜의 기회입니다.
시험이라 쓰고 기회라고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려움을 만날때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하나님, 왜 이 문제를 없애주시지 않습니까?”라고 묻기보다,
“하나님, 이 상황 속에서 제가 어떻게 믿음으로 반응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시험은 우리의 믿음을 세우고,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할 복된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본론2]
하나님이 가나안 민족을 남겨두신 또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2절입니다.
“전에 전쟁을 겪어 본 일이 없는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들에게, 전쟁이 무엇인지 가르쳐 알게 하여주려고 그들을 남겨두신 것이다.”
새로운 세대는 앞선 세대가 경험했던 하나님의 구원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은 기억이 없습니다.
여리고성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너지는 장면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은 단지 부모세대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귀로만 들은 신앙은 가나안의 유혹 앞에 맥없이 무너질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 민족을 남겨두어 전쟁을 가르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군사전략이나 무기 다루는 법을 가르치신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싸우시는 여호와의 전쟁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전쟁은 군사의 수나 무기의 강함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전쟁에는 오직 믿음과 순종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합니다.
사사기 7장에 보면 기드온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 기드온에게 모인 이스라엘 군사는 3만 2천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군사들 대부분을 집으로 돌려보내십니다.
그리고 남긴 군사가 300명입니다.
최소 13만 5천명의 적군과 싸우려면 군사수를 늘려야지 줄여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반대로 줄이고 또 줄이신 것입니다.
300 대 13만 5천명
상식적으로는 절대 이길수 없습니다.
그런데 승리합니다.
여호와께서 직접 싸우시는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회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걷어차고야 말았습니다.
5-6절입니다.
그들은 가나안 민족들을 쫓아내기는 커녕 그들과 함께 섞여 살았습니다.
심지어 그들과 혼인하여 그들의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그들과 쉽게 타협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반응하고 순종하는 것이 힘드니까 쉬운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편안함의 대가는 컸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과 싸우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가나안에 흡수되어 가나안 민족처럼 살아가는 법만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사사기의 비극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싸워야할 대상은 세상 사람들 자체가 아닙니다.
그들이 우리의 가나안 민족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은밀히 들어온 세상의 가치관과 유혹들이 우리의 가나안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결국 돈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합니다.
성공해야만 삶이 가치있다고 생각합니다.
손해보지 않고 사는게 가장 똑똑하게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마음 속 생각들과 가치관들이 우리가 싸워야할 가나안들입니다.
이때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가나안의 가치관을 따라 살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순종하며 살지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영적 전쟁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할수 있습니다.
“하나님, 이 문제 좀 해결해주십시오.”
“이 사람 좀 만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이 어려움에서 빨리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물론 이렇게 기도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 문제를 즉시 없애주시기보다 그 문제를 통해 믿음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문제를 만났을때 한가지 질문을 더 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 상황을 없애주십시오”라고만 기도할게 아닙니다.
“하나님, 이 상황 속에서 제가 어떻게 믿음으로 싸우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물어야 합니다.
혹시 하나님이 그냥 다 해결해주시기를 바라며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그 분의 뜻을 간절히 찾은적이 있습니까?
두렵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의 한 걸음이라도 내디뎌 본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순종했을때 우리는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삶에서 직접 경험하게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이야기를 아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실재가 되고 내 것이 되는 것은 순종하는 순간입니다.
그때 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훈련은 우리의 믿음의 근육을 강하게 자라게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 삶에 남아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너무 두려워하지 맙시다.
그 자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방치하신 자리가 아닙니다.
귀로만 듣던 하나님, 머리로만 알던 하나님을 내 삶에서 직접 경험하는 복된 은혜의 자리입니다.
[결론]
우리는 서론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왜 내 삶의 문제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까?”
“왜 하나님은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주시지 않을까?”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을 근본적으로 바꾸라고 도전합니다.
물론 모든 문제가 하나님이 일부러 만들어 놓으신 시험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문제는 우리의 실수나 욕심 때문에 생기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구조적인 부조리 때문에 생기기도 합니다.
때로는 욥처럼 이유를 알수 없는 고난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 삶에 남아있는 그 어떤 문제도 결코 무의미하게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부조리한 현실마저도 주님의 섭리 안에서 다루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는 거룩한 기회로 바꾸십니다.
우리는 삶의 문제들 앞에서 대부분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문제 제발 없애주세요”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함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이 상황을 통해 제가 무엇을 배우길 원하십니까?”
“하나님, 이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믿음으로 반응하기를 원하십니까?”
솔직히 우리는 누구나 아무런 풍파도 없는 안락한 온실같은 인생을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 문제없는 온실 속에서 나태한 백성이 되길 원하지 않으십니다.
거친 비바람 속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싸워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우리를 빚어가길 원하십니다.
앞서 본 영상처럼 짙은 밤의 시간을 이겨낸 발칸반도의 장미가 가장 짙은 향기를 내는 법입니다.
물론 문제나 고난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겪게 된 문제 앞에서 우리의 반응만큼은 결정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둘러싼 거친 삶의 환경 앞에서 너무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시험은 우리를 넘어뜨려 망하게 하시려는 덫이 아닙니다.
나의 얄팍한 믿음의 민낯을 드러내서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근육을 단련시켜 마침내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게 하시려는 은혜의 기회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경험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