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장 11-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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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은혜의 뿌리에 빚진
제목: 은혜의 뿌리에 빚진
본문: 로마서 11장 11-24절
본문: 로마서 11장 11-24절
찬송: 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 28장 복의 근원 강림하사
우리는 날마다 끝없는 비교와 경쟁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능력을 증명하라 요구하고, 자신이 쏟은 노력과 성취의 결과로 사람의 가치를 매긴다. 이러한 능력주의적 사고방식에 익숙해지다 보면,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은연중에 남들과 나를 비교하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조금 더 오래 교회를 다녔다는 이유로, 직분을 맡았다는 이유로, 혹은 남들보다 기도를 더 많이 하고 헌신한다는 이유로 우쭐해지는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반대로 주변에서 삶의 풍파를 만나 흔들리거나 믿음이 연약해진 지체들을 바라볼 때는 안타까워하기보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밖에 하지 못할까' 하는 은밀한 우월감과 차가운 비판의 시선을 보내곤 한다.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심지어 거룩한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조차 남의 허물을 딛고 나의 의로움을 드러내려는 유혹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성경은 우리가 서 있는 모든 신앙의 자리가 결코 우리 자신의 실력이나 자격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고 엄중하게 선포한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우리 같은 이들이 어떻게 생명의 자리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역설적으로 설명한다. 성경은 "그들이 넘어지므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라고 증언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된 것은, 우리가 다른 이들보다 도덕적으로 깨끗하거나 더 지혜로워서가 결코 아니다.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아를 거절하고 넘어진 그 뼈아픈 역사의 빈자리 속에서,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향해 베푸신 신비로운 자비 덕분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누리는 구원은 우리의 잘남이 아니라 타인의 넘어짐과 실패 너머에서 찾아온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에서 멀어진 이웃이나 연약한 지체들을 보며 결코 손가락질하거나 우월감을 품을 수 없다. 나의 구원이 타인의 아픔을 통과하여 주어진 은혜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난을 멈추고 긍휼의 눈으로 이웃을 바라보게 된다.
더 나아가 성경은 우리의 본래 모습을 거친 야생의 돌감람나무에 비유한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무지 달콤하고 기름진 열매를 맺을 수 없었던 메마르고 거친 가지에 불과했다. 그런 볼품없는 가지가 아름다운 참감람나무에 붙어 생명을 얻게 된 것은 순전히 주인의 파격적인 선택과 손길 덕분이었다. 성경은 분명히 선언한다.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가지가 뿌리를 떠받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가지를 떠받치고 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며 맺는 모든 선한 열매와 사랑의 수고, 그리고 일터와 삶의 터전에서 거두는 모든 결실은 우리 자신의 뿌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은혜의 참된 뿌리로부터 매 순간 생명의 진액을 공급받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내 열심과 성과를 내세우는 순간, 우리는 영적인 오만이라는 무서운 덫에 걸려들게 된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우리를 향해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고 엄히 명령한다. 믿음은 나를 자랑하는 수단이 아니라, 오직 은혜의 샘에 나를 맡기는 겸손한 의탁이다. 이어지는 말씀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고 권면한다. 하나님은 자격 없는 우리를 끝없이 안아 주시는 한없는 사랑의 아버지이시지만, 동시에 교만과 불신앙으로 거만해진 가지를 아낌없이 잘라내시는 거룩하고 공의로우신 재판관이시다. 구원의 은혜는 우리가 멋대로 살아도 된다는 방종의 허가증이 아니다. 날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관계의 갈등 속에서 흔들릴 때마다, 우리는 내가 가진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다함없는 자비하심 안에 끝까지 머물러 있어야 한다. 내 힘으로 인생을 통제하려는 교만을 내려놓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세상의 풍파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평안을 맛보게 된다.
우리는 모두 은혜의 뿌리에 빚진 자들이다. 우리가 오늘 숨 쉬고, 일하고, 기도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거대한 생명의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내 안에서 솟아나는 비교 의식과 타인을 향한 판단을 십자가 앞에 모두 꺾어 버리자. 내가 거저 받은 그 풍성한 사랑의 진액을 기억하며, 가정과 일터에서 만나는 연약한 이웃들에게 너그러운 위로와 따뜻한 손길을 건네는 겸손한 은혜의 통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