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앞의 독사(행 2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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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S) 구조된 멜리데 섬에서 일어난 일
Q) 구조된 멜리데 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A)
독사에게 물린 바울이 죽지 않아서 신으로 여겨졌다.
가장 높은 보블리오의 집에 사흘 동안 대접을 받으며, 병자들을 고쳤다.
쓸 것을 후하게 대접함으로 배에 실어 떠나게 되었다.
CMT) 구조된 멜리데 섬에서 독사에게 물린 바울이 죽지 않자 신으로 여김을 받았고, 그 섬에서 가장 높은 보블리오 집에서 3일 동안 대접 받으면서 많은 병지들을 고치고, 떠날 수 있도록 쓸 것이 가득한 배를 선물 받았다.
제목: 한 치 앞의 독사(행 28:1-10)
제목: 한 치 앞의 독사(행 28:1-10)
목표: 우리는 한 치 앞의 독사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독사 너머까지 보시며 우리의 인생을 이끌어 가시는 분이심을 발견한다.
[배경]
[배경]
멜리데 상륙 작전
멜리데 상륙 작전
폭풍으로 배가 난파되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물에 뜨는 것을 붙들고 눈 앞에 보이는 육지를 향했다.
배를 타고 있던 276명의 승객 전원이 멜리데(현재 몰타 공화국/피난처, 진흙) 섬에 이르렀다.
바울의 약속대로 누구의 머리카락도 상함이 없이 상륙했다(행 27:34). 기적이었다.
하지만, 기적을 누리기에 날은 너무 추웠고, 여전히 비가 왔다.
온 몸은 바닷물에 빠져 추위와 허기로 기진맥진한 상태였다.기적에 대한 감사가 생겨날 겨를도 없었다.
난파된 바다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기쁨이 싹을 틔우지도 못하고, 또 다른 불안과 공포에 짖눌렸다.
그 때였다.
사도행전 28:2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사도행전 28:2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원주민의 환대
원주민의 환대
멜리데 섬에 있던 원주민들이 특별한 동정을 베풀었다. 자신의 섬에 상륙한 사람들을 위해 모닥불을 피워 영접해 주었다.
추위와 두려움에 떨던 무리들은 원주민의 환대로 모닥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 마음과 몸을 녹였다.
사실, 이것은 엄청난 환대였다.
하나의 모닥불에 10명이 모였다고 치면, 30여개의 모닥불이 밝혀졌다는 뜻이 때문이다.
환대의 모닥불
환대의 모닥불
환대의 모닥불들이 아니었다면, 육지에 상륙했을지는 모르나 결국 그곳에서 모두 죽게 되었을꺼다.
상상만 해도 정말 끔찍하다. 모래 사장에서 얼어 죽어 주검이 된 300여명의 시체가 있다면 말이다.
환대의 모닥불까지 이어진 구원 약속
환대의 모닥불까지 이어진 구원 약속
바울은 하나님이 구원하여 머리카락 하나 잃을 사람이 없을것이라 약속했다(행 27:34).
그 약속이 무사히 육지에 상륙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환대의 모닥불까지 이어지게 하셨다.
시간에 종속된 인간으로서 우리는 내 눈 앞에 있는 상황만 인식한다.
그러다 보니, 육지에 상륙한 것에 감사할 수 있지만, 날이 춥고 비가 오는 상황에 눈과 생각이 고정되어 또 다시 불평하게 된다.
환대의 모닥불은 그런 속좁은 구원관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메시지인듯 하다.
이사야 55:8–9 (NKRV)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사야 55:8–9 (NKRV)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본론]
[본론]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은 환대의 모닥불 앞에서 신실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이 없었다. 그 때였다. 저 어디쯤 부지런히 움직히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사도행전 28:3a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사도행전 28:3a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역시! 바울이다. 그 당시 바울의 나이를 대략 55~60세 정도로 유추한다.
마크 A. 포웰, 현대인을 위한 신약개론: 역사적 문화적 신학적 읽기, trans 이승호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270쪽–271쪽.
난파된 배에서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챙겨 육지로 내어 보내었을 것이고,
바울 본인 역시 난파된 배의 파편에 수도 없이 부딪히고, 연신 바닷물을 마시며 겨우겨우 육지에 올랐다.
(바울이라고 물 위를 걸어서 오지는 않았을 테니깐)
고령의 몸으로 풍랑이 이는 바다를 뚫고 지나온 것만 해도 이만 저만한 일이 아닌데, 또 다시 몸을 일으키는 모습에 감탄만 나온다.
그럼, 남들처럼 앉아서 좀 쉬고 싶을만도한데, 바울은 피곤한 몸을 일으켜 모닥불을 지키기 위해 움직인다.
[본론 짧은 연관]
[본론 짧은 연관]
바울의 이 모습은 굉장한 울림을 준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한 번더 돌아보게 된다.
피곤할 때 한 걸음 더, 힘들 때 한 호흡 더, 지칠 때 한 소망 더
피곤할 때 한 걸음 더, 힘들 때 한 호흡 더, 지칠 때 한 소망 더 해야 한다.
ex) 진짜 운동은 못하겠다 싶을 때 한번 더 수축시키는 순간이다.
진짜 신앙은 멈추고 싶은 걸음을 이 꽉 깨물고 디디는 선택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 할 수 없지만, 앞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미친척하고 걸어가는 과정이다.
[위기]
[위기]
다들, 바울을 위대한 헌신에 탐복했다. 더군다나 바울은 죄수였다.
죄수 입장에서 자신을 지키는 군인들이 죽는다면 더 좋아할 것 같은데, 오히려 그들까지 지키는 모습은 더 큰 울림을 주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들 생각했다.
“만약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저런 사람이 축복을 받아야 한다”라고 말이다.
276명의 난민과 원주민들이 존경의 눈빛으로 바울을 바로 보고 있었고, 바울이 축복된 인생을 살기를 기원했다. 그때였다.
앗 따거!
바울의 갑작스런 외침이 울려 퍼졌고, 모닥불 마을은 한 순간에 정적이 흘렀다.
사도행전 28:3b ...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독사에 물린 손
독사에 물린 손
모닥불을 부지런히 살리던 바울의 손을 독사가 물었다.
Q) 여러분은 바울의 손을 독사가 물었다는 이 본문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드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너무 화가났다.
- 난파난 배에 승선한 모든 사람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냈다.
- 모닥불 주변에 앉은 이들을 위해 피곤한 몸을 기꺼이 일으켜 섬겼다.
“그러면, 적어도 그 다음에는 바울에게 좀 좋을 일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이다.
“저렇게 열심히 살았으면, 이제 좀 괜찮은 날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 때문이다.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섬기던 바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나무 한 묶음 속에 있던 독사였다.
독사에 물린 바울을 보면서 멜리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도행전 28:4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사도행전 28:4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고대 헬라와 로마 문화에서는 죄인을 정의의 여신이 용서하지 않고 독사를 보내어 죽인다고 생각했으며,
바울이 바다에서는 도망쳤지만 신적 정의가 쉽게 포기되지 않기 때문에 네메시스 여신이 독사를 통해 바울을 벌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박용규, 성령의 복음, 성령의 복음 시리즈 (서울: 한국기독교사연구소, 2022), 1098쪽, 1100쪽.
: 멜리데 원주민들은 독사에 물린 바울이 공의의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여겼다.
한 마디로 하면 뭔가!
재수없다
재수없다
그들은 바울을 보고 지금 “정말 재수 없는 인생”으로 본 것이다.
[연관]
[연관]
Q) 여러분의 인생의 재수는?
Q) 여러분의 인생의 재수는?
하나님 뜻대로 순종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구하며 살았다.
속이지도, 숨기지도 않았다. 착실하게 때되면, 해야 할 일을 마땅히 감당하며 살았다.
그리스도인 답게 주변을 열심히 섬겼고, 사랑했고, 돌봤다.
아파하는 자와 함께 아파하고, 고통당하는 자와 함게 고통당했다.
말 그대로, 말씀대로 살았다.
완전히 그렇게 살았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 살았다. 착실하게, 착하게, 참하게...
Q) 왜 성도는 독사에 물리는가?
Q) 왜 성도는 독사에 물리는가?
그런데, 왜 맨날 성도가 독사에 물려야 하는가? 왜 풍랑도, 독사도 없으면 안 되는냔 말이다.
[공동체 연관]
[공동체 연관]
지난 주 데이스토리를 통해, 공동체 가운데 있는 기도제목을 들었다. 정말 화가나고 속상하고 막막하고 답답하다.
이제 그만 하실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온 힘을 다해 데이처치를 세워가는 목회자들에게 이제는 이모 저모의 축복을 부어 주시면 안 되는가 하는 마음이 든다.
자기 주도적 신앙을 형성해 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성도들의 삶에 신체, 정서, 사회, 영적인 풍성함이 넘쳐나면 안 되냔 말이다.
그래서, 교회가 엄청나게 성장하고, 건물도 세우고, 쉼플을 3-4개 만들어서,
우리 주변에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간증하며, 전하고 나눌 수 있도록 해 주셔야 되지 않겠느냔 거다.
기도했더니, 성도들의 병이 떠나가고, 가난에서 벗어나고, 멋진 성공을 이루게 되었다고 정말 한 번이라도 말하고 싶다.
독사에 물린 데이
독사에 물린 데이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독사에 불려 버둥거리는 데이를 보니 그저 짠한 마음이 들 뿐이다.
[해결]
[해결]
멜리데 원주민은 그 뱀이 치명적 독을 지다는 것과, 바울이 얼마 지나지 않아 죽게 될 것을 알았다.
바울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들의 예측과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난다.
사도행전 28:5–6 (NKRV)
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6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사도행전 28:5–6 (NKRV)
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6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이런 독사에게 물리면 수분 내에 호흡 곤란이 찾아오고, 몸 전체가 마비되면서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목숨을 잃게 된다.
그런데, 바울은 뱀을 불에 떨어 버렸고, 조금도 상함이 없었다.
난민에서 죄인, 그리고 신으로
난민에서 죄인, 그리고 신으로
멜리데 사람들의 눈에 비친 바울은 세 번 얼굴을 바꾸었다.
처음엔 폭풍 가운데서 겨우 목숨을 건진 난민이었다.
그러나 그의 손에 독사가 매달리는 순간, 그들은 이 사람이 필경 살인자이며
바다에서는 살아났으나 정의가 그냥 두지 않는 죄인이라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가 붓지도, 쓰러지지도 않자 — 그들은 말을 바꾸어 그를 신이라 하였다.
난민에서 귀빈으로
난민에서 귀빈으로
이 사건 이후, 난민 276명은 멜리데 최고의 부자인 보블리오의 토지에서 3일동안 귀빈 대접을 받았다.
사도행전 28:7 (NKRV)
7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사도행전 28:7 (NKRV)
7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우리는 인생에서 왜 그렇게 독사가 등장하는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있다면 독사가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우리가 진짜 모르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다
우리가 진짜 모르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진짜 모르는 것은,
독사의 등장이 아니라, 우리 인생 전체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시편 121: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시편 121: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성경은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인생을 돌보시는 분이라 설명한다.
하나님이 나무 한 묶음 속에 있는 독사 한 마리를 모르실리가 없다.
독사에 물리면 어떤 일이 일어는지 모르시는 분이 아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
한 치 앞의 인생도 모르면서, 인생 전체를 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내 앞에 있는 문제만 해도 코가 석자나 된다. 그런데, 무슨 인생 전체를 통찰하는 것 처럼 거드럼을 피우는지 간혹 이해가 안된다.
믿음: 한 치 앞의 인생을 내어 맡기는 것
믿음: 한 치 앞의 인생을 내어 맡기는 것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이기에, 인생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그 믿음이 한 치 앞을 볼 수 있게 되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한 치 앞을 볼 수 없어도, 그 너머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믿음이 없다면, 믿음이 연약하지면, 앞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내가 모르는 한 치 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버둥치다가 결국 난파된 바다 밑으로 가라 앉게 된다.
만약?
만약?
성도는 “만약”에 붙드려 사는 자들이 아니다.
만약, 난파 당하지 않았다면
만약, 독사에 물리지 않았다면
만약, 내가 거기에 가지 않았다면/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저렇게 하지 않아다면 이라고 생각하며 꼬꼬무가 된다.
우리는 독사에 물리는 순간 “하나님의 계획이 틀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본문을 끝까지 읽어보니 독사는 하나님의 계획을 틀어버린 사건이 아니었다.
독사 너머에 보블리오가 있었고,
보블리오 너머에 아픈 아버지가 있었고,
그 너머에 병든 멜리데 사람들이 있었고,
그 너머에 다시 로마가 있었다.
한 치 앞의 독사, 그 너머
한 치 앞의 독사, 그 너머
결국, 성도는 한 치 앞의 독사를 보는 자들이 아니라, 그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는 자들이다.
독사에 물렸을 그 순간에도, 여전히 앞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해야 한다.
독사를 불에 툭 털어내고 일어나 다음 스텝으로 이동하자는 거다.
결국, 독사에 물렸지만, 오히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바울을 통해 수백명의 난민 공동체가 풍성히 먹고 마시게 되었다.
독사에 물렸지만, 오히려 죽지 않고 살아 나는 성도를 통해 그 주변의 사람들이 풍성히 먹고 마시는 축복이 있게 된다.
우리의 삶이 그렇다는 것을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축원한다.
[결론]
[결론]
우리의 눈은 한 치 앞의 독사에게 머문다. 독사가 물어서 아픈 통증, 나타나는 증상, 상황, 환경만 본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은 한 치 그 밖을 보신다.
하나님의 눈은 역사를 주관하시고,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며, 계획하시고, 이끄신다.
우리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인생을 보아야 한다.
나와 너와 우리의 인생을 말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여전히 선하시며, 놀라우시며, 엄청나다.
찬양- 하나님은 너를 만드신 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