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금요철야 히스기야의 기도
기도란 무엇인가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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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view히스기야의 기도 1)기도는 위혐의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펴치는 것입니다 2)기도는 현실보다 크신 홀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3)기도는 나의 안전을 넘어 하나님 영광 구하는것
Notes
Transcript
금요철야 히스기야 기도
금요철야 히스기야 기도
26년
*금요철야 9월 4일 8시 25분 찬양
⓵찬양과 경배시간 …
*금요철야 8월 28일 2 0시 25분 찬양
(여의도 생방송 찬양 함께 합니다.)
*** 정확히 8시 25분에 영상 봅니다 ….
5권 5강 영상 : 사도행전 1 =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https://youtu.be/ovYiJ_q0aMg?si=zHBauMfpct369wqb
⓶* 신앙고백 드립니다.
⓷*대표기도 - 담임목사
⓸제목 :: 51) 히스기야의 기도
⓹말씀봉독 :
열왕기하 19:14–19
“14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15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16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17 여호와여 앗수르 여러 왕이 과연 여러 민족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고 18 또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그들이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곧 나무와 돌 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19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열왕기하 19:35–37
“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36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37 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⓺설교
ㅇ설교후 ,,, 담임목사 노트북 연결 합니다,
표면의 문제는 산헤립의 편지와 앗수르 군대입니다. 그러나 더 깊은 문제는 눈에 보이는 권세가 하나님의 약속보다 크게 들릴 때 생기는 두려움과 불신입니다. 히스기야는 편지의 내용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편지가 차지하던 자리를 바꾸었습니다. 자기 가슴과 왕궁의 회의실에서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복음은 여기서 더 큰 반전을 보여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협하는 환경만 처리하신 분이 아니라, 우리를 정죄하던 죄의 증서를 십자가에 못 박으신 참된 구원자이십니다. 그분은 창조주요 만유의 주이시며, 은혜의 보좌로 가는 길을 여신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기도는 공포에 떠는 죄인이 문밖에서 외치는 소리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가 아버지께 나아가는 특권입니다.
14절 — 위협의 편지를 받아 읽고, 성전에 올라가, 여호와 앞에 펼칩니다.
15절 — 기도의 출발점은 상황 설명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지 고백하는 것입니다.
16절 — “들으소서·보소서·들으소서”라고 언약의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17–18절 — 앗수르의 파괴가 실제였음을 인정하면서도 우상의 무능을 분별합니다.
19절 —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간구가 “천하 만국이 알게 하소서”라는 목적으로 높아집니다.
20절 이후 — 하나님은 “네가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고 응답하십니다.
주전 701년경, 앗수르 왕 산헤립은 서방의 반란을 진압하며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을 무너뜨렸습니다. 앗수르의 왕실 기록은 유다의 여러 성을 정복하고 히스기야를 예루살렘 안에 가두었다고 자랑합니다.
산헤립의 위협은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성문 밖까지 온 세계 제국의 실제 압박이었습니다. 열왕기하 18장에 따르면 히스기야는 이미 은과 금을 바치고 성전 문의 금까지 벗겨 주었지만 위협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돈으로 평화를 샀으나 평화는 오지 않았습니다.
산헤립의 편지는 군사 통지문을 넘어 신학적 선전문입니다.
그 논리는 단순합니다. “다른 나라의 신들도 자기 나라를 구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여호와도 예루살렘을 구하지 못한다.” 산헤립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사람이 만든 우상과 같은 줄에 세웠습니다.
그러므로 이 싸움의 핵심은 앗수르와 유다의 국력 비교가 아니라, 산헤립의 말과 여호와의 말씀 중 누구의 말이 최종 현실을 규정하는가에 있습니다.
문맥의 반전 산헤립은 히스기야를 “새장 속의 새”처럼 가두었다고 생각했지만, 본문은 오히려 교만한 산헤립이 하나님의 주권 안에 갇혀 있음을 드러냅니다.
첫째, “여호와 앞에”(리프네 아도나이)가 14절과 15절에 연속하여 나타납니다. 편지도 여호와 앞에 놓이고, 기도자도 여호와 앞에 섭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정보를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문제와 기도자가 함께 하나님의 임재 아래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둘째, “홀로 하나님”(레바데카)이 15절과 19절에서 기도의 처음과 끝을 감쌉니다. 시작의 신앙고백이 마지막의 선교적 목적이 됩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하나님은 홀로 주권자이십니다”로 시작하여 “모든 나라가 주만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게 하소서”로 끝납니다.
셋째, “천하 만국”이 15절과 19절에 반복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지방신이 아니라 모든 나라의 창조주이십니다. 따라서 구원은 유다만 편안하게 만드는 사적 사건이 아니라, 열방 앞에 참 하나님을 드러내는 계시적 사건입니다.
넷째, 14절에는 “받고–읽고–올라가–펴 놓고”라는 네 동사가 빠르게 이어집니다. 믿음은 편지를 읽지 않는 무지가 아닙니다. 정확히 읽은 뒤, 그 문서의 해석권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행동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편지 한 장이 사람의 밤을 빼앗을 때가 있습니다. 병원의 검사 결과, 은행의 독촉장, 법원의 통지서, 회사의 해고 통보, 자녀에게서 온 다급한 문자, 사역을 흔드는 예상하지 못한 보고서가 그렇습니다. 종이는 얇지만 그 안에 적힌 몇 줄은 마음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예를 들어 한 성도가 늦은 밤 식탁 위에 병원 검사 결과지를 펼쳐 놓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가족들은 이미 잠들었지만 그분은 같은 문장을 읽고 또 읽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최악의 장면까지 마음속에서 미리 살아 냅니다. 종이는 식탁 위에 있지만, 사실 그 편지는 가슴속에 박혀 있습니다. 이것이 염려의 방식입니다. 염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문제를 반복하여 묵상하게 합니다.
히스기야도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개인적인 악성 문자가 아니었습니다. 당대의 초강대국 앗수르 왕 산헤립이 보낸 항복 요구서였습니다. 이미 유다의 여러 성읍이 무너졌고,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산헤립은 “다른 나라의 신들이 그 나라를 구하지 못했듯이, 네 하나님도 너를 구하지 못한다”고 조롱했습니다. 편지는 군사적 위협이었고, 동시에 믿음을 향한 공격이었습니다
.
히스기야는 현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미 앗수르에게 막대한 조공을 바쳤고, 성전의 금까지 떼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돈은 위협을 끝내지 못했습니다. 외교도 완전한 안전을 보장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자원이 끝나는 자리에서 히스기야는 비로소 가장 중요한 행동을 합니다. 그는 성전에 올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단순히 “급할 때 기도하면 문제가 풀린다”는 성공 공식을 주지 않습니다. 더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위기의 순간에 누가 우리의 현실을 해석합니까? 산헤립의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눈에 보이는 세력입니까, 보이지 않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입니까? 나의 안전과 체면입니까,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입니까?
설교 명제 기도는 위협을 부정하는 기술이 아니라, 위협을 하나님 앞에 펼치고, 홀로 하나님이신 주를 바라보며, 구원을 통해 그분의 이름이 알려지기를 구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1)기도는 위혐의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펴치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19:14 “14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14절에는 네 개의 동사가 이어집니다. 히스기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읽었습니다.” 그다음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여호와 앞에 “펴 놓았습니다.”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그는 편지를 찢어 버리지 않았습니다.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자기 암시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현실을 충분히 읽은 뒤, 현실을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우리는 흔히 믿음을 현실을 보지 않는 낙관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현실을 정확히 보되, 현실이 마지막 말을 하도록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말을 읽었지만, 산헤립에게 해석의 최종 권한을 주지 않았습니다.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펼쳤다는 것은 “하나님, 이 문제의 최종 해석자는 산헤립이 아니라 주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한 행동입니다.
히브리어 “바이이프레세후”는 “그것을 펼쳐 놓았다”는 뜻입니다. 접어 둔 것을 활짝 열어 보이듯, 감춘 것이 없게 내어놓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은 편지의 내용을 모르셔서 보실 필요가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펼치는 순간, 편지보다 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기도자의 마음이 은폐와 독백에서 임재와 대화로 옮겨집니다.
왜 우리는 기도하지 못합니까? 단순히 바빠서가 아닙니다. 기도하지 않는 행동 뒤에는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 욕망 뒤에는 실패하고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 두려움 뒤에는 “하나님이 정말 돌보실까, 하나님께 맡겨도 될까”라는 불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불신은 결국 통제권이라는 우상을 붙들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펴기보다 머릿속에 펴 놓습니다. 같은 문장을 백 번 읽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천 번 상상합니다. 사람들에게 계속 전화를 돌리고, 영향력 있는 누군가를 붙잡으려 합니다. 도움을 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안전을 확보하려는 순간, 수단은 우상이 됩니다.
여기서 이런 반론이 생길 수 있습니다. “기도하라는 말은 아무 계획도 세우지 말고 손 놓으라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히스기야는 성벽을 정비하고 물길을 준비했습니다. 성경의 기도는 책임을 버리는 핑계가 아닙니다. 기도는 행동을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주인을 바꾸는 것입니다. 내가 공포의 종으로 행동하지 않고, 하나님의 종으로 지혜롭게 순종하게 합니다.
논리적 반전 문제가 하나님께 알려지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그 문제를 하나님 없이 붙들고 있는 것이 더 깊은 문제입니다.
시편 94:9 “9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골로새서 2:14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히브리서 4:16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시편 62:8 “8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빌립보서 4:6–7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베드로전서 5:7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1. 오늘 나를 가장 두렵게 하는 “편지”의 이름을 한 문장으로 적으십시오. 건강, 자녀, 재정, 관계, 교회, 사역 중 무엇입니까?
2. 그 문장을 실제로 성경 옆에 놓고 “주님, 이것을 주님 앞에 펴 놓습니다”라고 소리 내어 기도하십시오.
3. 내가 통제하려고 반복하는 행동 한 가지를 멈추십시오. 같은 검색 반복, 같은 염려의 전화, 최악의 상상, 사람 조종하기를 끊으십시오.
4. 기도한 뒤 해야 할 순종 한 가지를 실행하십시오. 의사와 상담하고, 사과하고, 예산을 정리하고,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되 두려움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십시오.
적용 질문
1. 나는 지금 어떤 편지를 가슴에 품고 반복해서 읽고 있습니까?
2. 그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게 하는 내 안의 욕망·두려움·불신은 무엇입니까?
1)기도는 위혐의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펴치는 것입니다
2)기도는 현실보다 크신 홀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열왕기하 19:15 “15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열왕기하 19:17 “17 여호와여 앗수르 여러 왕이 과연 여러 민족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고”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여호와여 앗수르 여러 왕이 과연 여러 민족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고”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는 시각 ,,히스기야….
히스기야의 기도를 자세히 보면 처음부터 “산헤립을 없애 주십시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먼저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아부하여 응답을 얻어 내는 수사가 아닙니다. 위기 속에서 무너진 영혼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신앙고백입니다.
산헤립은 자신을 땅의 큰 왕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그룹들 위에 좌정하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요셰브 하케루빔”은 하나님이 언약의 보좌에 앉아 다스리시는 참 왕이심을 보여 줍니다.
산헤립에게는 군대와 전차와 정복한 도시가 있었지만, 여호와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피조물의 왕좌와 창조주의 보좌는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기도는 문제를 크게 설명하여 하나님을 움직이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바라봄으로 문제의 크기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입니다. 문제는 여전히 큽니다. 그러나 더 이상 무한하지 않습니다. 산헤립은 강합니다. 그러나 창조주가 아닙니다. 병은 두렵습니다. 그러나 주권자가 아닙니다. 돈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닙니다.
시편 46:10 “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이사야 40:26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골로새서 1:16–17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7절은 매우 중요합니다. 히스기야는 “여호와여, 앗수르 여러 왕이 과연 여러 민족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였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과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옴남”은 “참으로, 사실입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는 앗수르의 파괴력을 축소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언어로 현실을 미화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두 종류의 오류에 빠집니다. 하나는 현실만 보고 하나님을 잊는 절망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현실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는 피상적 낙관주의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기도는 두 극단을 피합니다. “주님, 앗수르가 강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파괴한 신들은 참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나무와 돌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들과 같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현실을 인정하는 것은 불신앙이 아닙니다. 현실이 하나님의 주권보다 크다고 결론 내리는 것이 불신앙입니다. 눈물은 믿음의 반대가 아닙니다. 절망에 최종 권위를 주는 것이 믿음의 반대입니다. 우리는 암이라는 진단을 암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재정의 적자를 적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관계가 무너졌으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사실 뒤에 “그러므로 하나님도 하실 수 없다”는 산헤립의 결론을 붙이지 말아야 합니다.
18절은 열방의 신들이 왜 구원하지 못했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위기는 우상을 만듦과 동시에 우상을 폭로합니다. 평소에는 돈이 나를 지켜 줄 것 같고, 인맥이 길을 열어 줄 것 같고, 지위가 나를 안전하게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정적 위기 앞에서 사람이 만든 것의 한계가 드러납니다.
우리의 행동 뒤를 더 깊이 살펴봅시다. 불안하여 숫자를 계속 확인하는 행동 뒤에는 안전을 확정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그 욕망 뒤에는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 두려움 뒤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자원이 더 확실하다”는 불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불신이 돈, 사람, 지식, 건강, 직분을 구원자처럼 붙들게 합니다. 좋은 피조물을 궁극적 구원자로 만들 때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은 수단을 버리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의술을 감사히 사용하고, 재정을 성실히 관리하고, 사람의 조언을 경청해야 합니다. 그러나 의사도 창조주가 아니고, 통장도 보좌가 아니며, 영향력 있는 사람도 구주가 아닙니다. 수단을 사용하는 손은 부지런해야 하지만, 마음의 무릎은 하나님께만 꿇어야 합니다.
논리적 반전 믿음은 앗수르가 약하다고 우기는 것이 아닙니다. 앗수르가 아무리 강해도 피조물이며, 여호와만 창조주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1. 현재의 두려움을 사실대로 한 문장으로 고백하십시오. “주님, 과연 이 상황은 어렵습니다.” 믿음 좋은 척하지 마십시오.
2. 그 문장 뒤에 하나님의 진리 세 가지를 붙이십시오. “그러나 주님은 홀로 하나님이시며, 창조주이시며, 예수 안에서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3. 내가 구원자처럼 붙들고 있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하나를 분별하십시오. 돈, 관계, 지위, 건강, 계획 중 무엇입니까?
4. 수단은 성실히 사용하되 예배하지 마십시오. 최종 신뢰와 감사와 두려움은 하나님께만 드리십시오.
적용 질문
1. 나는 지금 현실을 부정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현실만 보고 하나님을 축소하고 있습니까?
2. 위기 때 내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무엇입니까?
1)기도는 위혐의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펴치는 것입니다
2)기도는 현실보다 크신 홀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3)기도는 나의 안전을 넘어 하나님 영광 구하는것
열왕기하 19:19 “19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열왕기하 19:35 “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19절에서 기도의 직접적인 요청은 놀랄 만큼 짧습니다.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히브리어 “호쉬에누 나”는 “청하오니 우리를 구해 주십시오”라는 절박한 간구입니다. 히스기야는 초연한 척하지 않습니다. 백성과 성읍의 실제 구원을 구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필요를 작게 여기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필요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모두 이기적인 것은 아닙니다. 병 낫기를 구하십시오. 자녀가 돌아오기를 구하십시오. 사업장의 문이 열리고 교회가 회복되며 관계가 치유되기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자녀의 작은 신음까지 들으십니다. 문제는 구원을 구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구원의 목적을 나의 편안함에서 끝내는 데 있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에는 목적을 나타내는 놀라운 문장이 이어집니다.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그는 “우리를 살려 주시면 우리가 편안하게 살겠습니다”라고 끝내지 않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셔서 모든 나라가 주님을 알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베예드우”는 “그들이 알게 하소서”라는 뜻입니다. 여기의 앎은 시험 답안에 정답을 적는 지식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역사 속에서 인정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앎입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개인의 생존에서 열방의 예배로 확장됩니다. 기도의 지평이 “나”에서 “천하 만국”으로 넓어집니다.
우리 기도를 점검해 봅시다. “주님, 건강하게 해 주세요. 그래서 제가 다시 편안해지게 해 주세요.” “주님, 사업을 살려 주세요. 그래서 내 체면을 회복하게 해 주세요.” “주님, 교회를 부흥시켜 주세요. 그래서 내가 인정받게 해 주세요.”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기 쉽습니다. 이것이 경건한 언어 속에 숨은 자기중심성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기도는 “그래서” 뒤를 바꿉니다. “주님, 나를 고쳐 주셔서 고난 중에도 신실하신 주님을 가족이 보게 하소서. 사업장을 회복시켜 주셔서 정직과 나눔을 통해 복음의 향기를 나타내게 하소서. 우리 교회를 부흥시켜 주셔서 잃어버린 영혼이 예수께 돌아오고 다음 세대가 주님을 알게 하소서.” 구원은 나에게 오지만 영광은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시편 67:2 “2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요한복음 17:1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사도행전 4:12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빌립보서 2:10–11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논리적 반전 하나님은 내 영광을 위해 동원되는 수단이 아니십니다. 내가 구원받는 목적은 내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자신과 예루살렘을 살려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내어 맡기셨고, 십자가에서 자신을 구원하지 않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세상은 “자기를 구원하라”고 조롱했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기에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그 이름 자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는 유일한 구주이십니다. “예수”는 히브리어 이름 예슈아의 헬라어 형태로,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을 품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은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해석합니다. 히스기야가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을 간구했다면, 예수님은 죄의 형벌과 죽음의 권세에서 우리를 근본적으로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마침내 하늘과 땅과 땅 아래의 모든 무릎이 예수의 이름에 꿇고 모든 입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열왕기하 19장 19절의 “천하 만국이 알게 하소서”라는 열망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해지고 모든 입이 주를 시인하는 데서 궁극적으로 성취됩니다.
오늘의 실제적 적용
1. 지금 드리는 간구를 “주님, …해 주십시오. 그래서…”라는 문장으로 완성해 보십시오.
2. “그래서” 뒤에 나의 체면·편안·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 복음, 이웃 사랑, 다음 세대, 선교를 적으십시오.
3. 응답을 받기 전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선택할 한 가지 순종을 정하십시오. 정직, 용서, 나눔, 전도, 섬김 중 오늘 시작할 것은 무엇입니까?
4. 가정과 교회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우리 가정을 살리셔서 이웃이 예수를 알게 하시고, 호수교회를 부흥시켜 파주와 열방이 주를 알게 하소서.”
적용 질문
1. 내 기도의 “그래서” 뒤에는 나의 영광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까?
2. 하나님의 응답을 통해 내 가정·교회·이웃이 예수님을 알도록 내가 감당할 순종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받은 편지는 서로 다릅니다. 어떤 분은 건강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어떤 분은 자녀의 편지를, 재정의 편지를, 관계의 편지를, 사역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앞에 놓인 질문은 같습니다. 그 편지를 누구 앞에 펼쳐 놓겠습니까?
인간의 절망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미래를 통제할 수 없고,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우리를 끝까지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더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그룹들 위에 좌정하신 왕이시며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보십니다.
그리고 복음은 가장 깊은 소망을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정죄하던 증서를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모든 권세 위에 계십니다. 그분의 피로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갑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는 길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밤 편지를 가슴에 품고 돌아가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 펴 놓으십시오. 현실을 부정하지 말되 현실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나를 살려 주세요”에서 멈추지 말고 “나를 살리셔서 모든 사람이 주님을 알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편지를 가슴에 품지 말고 하나님 앞에 펴 놓으십시오.
현실은 과연 큽니다. 그러나 여호와만 홀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소서. 그래서 천하 만국이 주를 알게 하소서.
이제 가능하면 종이나 휴대전화 메모에 지금 가장 두려운 문제를 한 문장으로 적으십시오. 그것을 손에 들고 하나님
앞에 펴 놓는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1. 주님, 제가 가슴에 품고 반복해서 읽던 두려움의 편지를 주님 앞에 펴 놓습니다. 숨김없이 토하게 하소서.
2. 주님, 통제하려는 욕망과 실패의 두려움과 주님을 의심한 불신을 회개합니다. 사람이 만든 우상을 내려놓게 하소서.
3. 그룹들 위에 좌정하시며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크게 보게 하소서. 현실을 인정하되 현실에 무릎 꿇지 않게 하소서.
4.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를 정죄하던 죄의 증서가 제거되었음을 믿습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하소서.
5. 우리의 질병, 자녀, 재정, 관계, 사업장, 사역을 산헤립의 손에서 구원하듯 건져 주소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푸소서.
6. 응답의 목적이 나의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되게 하소서. 우리 가정과 교회와 지역과 열방이 예수를 알게 하소서.
7. 여의도순복음호수교회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잃어버린 영혼과 다음 세대와 선교지를 살리는 복음의 통로로 사용하소서.
“그룹들 위에 좌정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며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오늘 우리 손에 들린 두려움의 편지를 주님 앞에 펴 놓습니다.
우리의 귀에 산헤립의 소리보다 주의 말씀이 크게 들리게 하시고,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현실보다 크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우리를 거스르던 죄의 증서를 십자가에 못 박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갑니다. 질병과 재정과 자녀와 관계와 사역의 위기에서 우리를 건져 주옵소서. 그러나 우리의 편안함에서 기도가 끝나지 않게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가정과 교회와 파주와 열방이 주 여호와만 홀로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옵소서. 모든 권세 위에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히스기야의 기도
1)기도는 위혐의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펴치는 것입니다
2)기도는 현실보다 크신 홀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3)기도는 나의 안전을 넘어 하나님 영광 구하는것
26년
*금요철야 9월 4일 8시 25분 찬양
⓵찬양과 경배시간 …
*금요철야 8월 28일 2 0시 25분 찬양
(여의도 생방송 찬양 함께 합니다.)
*** 정확히 8시 25분에 영상 봅니다 ….
5권 5강 영상 : 사도행전 1 =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https://youtu.be/ovYiJ_q0aMg?si=zHBauMfpct369wqb
⓶* 신앙고백 드립니다.
⓷*대표기도 - 담임목사
⓸제목 :: 51) 히스기야의 기도
⓹말씀봉독 :
열왕기하 19:14–19
“14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15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16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17 여호와여 앗수르 여러 왕이 과연 여러 민족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고 18 또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그들이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곧 나무와 돌 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19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열왕기하 19:35–37
“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36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37 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⓺설교
ㅇ설교후 ,,, 담임목사 노트북 연결 합니다,
⓻ 기도전 첫번 째 찬송
복음성가 …
충만- 무명이어도 공허하지 않은 것은
-회개말씀 기도 -(나라민족 교우 호수 교회위해)
마태복음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기도 중 자막 화면(나라민족 교우, 호수교회 위해)
**찬양….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행복)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바디메오,죽은 나사로, 거친바도가)
*손을 높이 들고 주를 찬양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서
**해 뜨는데 부터
기도 중 자막화면 (자기가족, 사업,성령충만과 개인기도 위해)
예레미야 33:3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에베소서 5:18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기도후 찬양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⑪ 신유축복기도 …헌금기도…..담임목사
⑬신유기도 ..헌금 ..축복기도 후 .. 축도나 ..주 기도문으로 금요철야 마칩니다.
예수 보다 더 좋은 친구 없네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충만- 무명이어도 공허하지 않은 것은
* 은혜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할수 있다 하면된다 해보자
내일일은 난 몰라요
어두워진 세상길을
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우물가에 여인처럼 난 구했네
성도들아 이시간은 은혜 받을 기회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함이 없네
하나님은 실수 하지 않으신다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자 …(주만바라볼지라)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행복)
나는 주를 섬기는 것에 후회가 없습니다
헌금송입니다~ 어머니의 기도..///손경민 29곡?
https://youtu.be/N3yaNT6kzrQ?si=BkQFD5myAS8k1gZW
율동곡
*오늘 집을 나서기전 기도 했나요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바디메오,죽은 나사로, 거친바도가)
*손을 높이 들고 주를 찬양
*위대하고 강하신 주님
**해 뜨는데 부터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