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구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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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시험
첫번째 시험
오늘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이후에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이다보니까 저희가 이 시험에 대한 이야기는 아마 익숙하실 거예요. 특히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하나하나 다 말씀으로 답변하시는 내용을 통해서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먼저 첫번째 시험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돌로 떡이 되게 하라 라고 하는 시험인데요,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님께서 무려 40일이나 금식하신 이후에 매우 주리고 계신 시점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야? 야, 뭐하고 있어? 얼른 여기 돌들한테 명령해서 떡이 되게 해봐”라는 유혹을 마귀가 던지게 됩니다.
저도 최근에 다이어트를 시작해서 지금 한 15키로 정도를 감량했는데요, 사실 훨씬 더 빨리 뺄 수도 있었는데 막 눈앞에 치킨이 아른 거리고, 아이스크림이 어른 거리고 해서 못 참고 먹은 경우가 여러번 있었습니다. 특히 그렇게 배고픈 것도 아닌데 하도 건강한 음식만 먹다보니까 좀 건강하지 않은거, 불량식품이 막 먹고 싶을때가 그렇게 있더라구요. 그렇게 별로 배고프지도 않는저도 그랬는데, 예수님께서는 40일이나 금식하셨다고 하니 이 얼마나 큰 유혹일까요?
그런데 여러분, 사실 예수님에 대한 마귀의 시험은 단순히 굶주림에 대한 시험이 아닙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무조건 금식하셔야 한다는 내용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굳이 마귀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예수님께서는 언제든지 먹을 걸 드시려면 드실 수 있는 상태이신 거예요.
그럼 대체 왜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셨고, 또 왜 마귀는 먹을 것과 관련한 시험을 치르게 하는 걸까요? 먼저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모세를 떠오르게 하는 장면입니다. 특히 모세는 총 세 번이나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들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 사십 야를 산에 머물며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더니
첫째는 하나님의 첫번째 십계명을 받았을 때 시내산에서 40일 금식을 했구요,
그리고 내가 전과 같이 사십 주 사십 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려서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하게 하여 크게 죄를 지었음이라
시내산에서 내려왔더니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있어서 다시 모세가 백성들을 위해 중보기도 하면서 40일을 금식했구요,
내가 처음과 같이 사십 주 사십 야를 산에 머물렀고 그 때에도 여호와께서 내 말을 들으사 너를 참아 멸하지 아니하시고
마지막으로 모세가 화가 나서 십계명 돌판을 깨뜨리고 다시 돌판을 받았을 때 40일 금식을 했습니다. 이처럼 40일 금식이라고 하면 유대인들의 머릿속에는 바로 떠오르는 것이 모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가 40일 금식을 하고 계시는 예수님께 다가와서 돌들로 떡이 되게하라고 하는것은 다름 아닌 예수님더러 “제2의 모세”가 되라고 하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 아니 그럼 좋은거 아닌가요? 모세야 말로 정말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낸 지도자였잖아요. 게다가 당시에 유대인들은 바로 그 제2의 모세, 다시한번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킬 위대한 지도자, 메시아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메시아고, 그리스도시라면 마치 모세 때에 만나가 내렸던것 같이 정말로 돌들로 떡이 되게하는 기적을 만들면 되는거 아닌가요?
본문말씀 4절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말을 단번에 거절하시면서 사람이 떡으로 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대답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예수님의 사명은 지금 모세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유대인들이 기대하는, 제자들이 기대하는, 세상이 기대하는 것에 따라서 사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일들을 따라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실제로 제자들 역시 예수님이 마치 유대인들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킬 용사, 유대인들만의 메시아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당시의 메시아 상, 유대인들을 해방시키는 제2의 모세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초라하게 처형당하시는,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온 인류를 대신에 죄를 짊어지시고 구원하시는 제1의 예수님이 되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게 세상의 기대와 다를 때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신앙 생활을 하다보면 “아니 대체 그 예수를 왜 믿는거야?” “나랑 내 가족만 사랑하고 잘 먹고 잘 살면 되지, 하나님이란걸 왜 사랑하고 이웃을 내가 왜 사랑해야하는데?”라는 말을 들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많은 부분들이 그렇게 신앙생활과 충돌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굳이 믿지 않아도 착하게 사는 건 가능하기도 하구요.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입니다. 때로는 그것이 어느 사람이든 말할 수 있는 착하게 사는 것일 수도 있구요, 때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곳에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섬기기 위해서 들어가다가 “왜 저런 바보같은 짓을 하는거야?”라고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바라던 제2의 모세가 되기 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사셨던 것과 같이, 저희 또한 사람들이 말하는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고 또한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두번째 시험
두번째 시험
본문말씀으로 돌아와서요 5-6절 말씀을 보시면,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두번째 시험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내리라고 하는 시험입니다. 여기서 거룩한 성, 이라고 하는 것은 예루살렘 성을 관용적으로 표현한 것이구요, 그 성전 꼭대기라고 하니까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기서 마귀가 말하죠. “너가 하나님의 아들이야? 그럼 어디 한번 뛰어내려보지 그래? 성경에서도 말하잖아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고!” 하면서 말이죠.
사실 이 말하는 방식은요, 당시에 악인들, 그러니까 아마도 이방인들 중에서도 유대인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주로 쓰던 방식입니다. 지혜서 라고 불리는 기원전 50년경에 쓰여진 외경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for if the righteous man is God’s child, he will help him,
and will deliver him from the hand of his adversaries.
Let us test him with insult and torture,
so that we may find out how gentle he is,
and make trial of his forbearance.
의인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니, 하나님이 그를 도우며 또한 그의 적들의 손에서 그를 지키리로다.
그를 모욕과 고문으로 시험해보자.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가 얼마나 큰지 알고 또한 관용을 시험해보리라.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의인을 싫어하는 악인들은 “야, 하나님을 믿고 착하게 살면 하나님의 자녀라며? 하나님이 너희를 지켜주시는지 아닌지 어디 한번 괴롭혀볼까?”라고 시험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마귀가 시험하는 방식 역시 이와 아주 유사합니다.
여기에 예수님은 어떻게 답변하십니까? 본문말씀 7절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응대하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을 마시지 못해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모세가 반석을 쳐서 물이 나오게 했을 때를 회상하면서 한 신명기 말씀입니다. 마귀가 지금 예수님께 “과연 하나님이 계시면 네가 이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살 수 있겠네?”라고 하는 것에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시험하지 말라”라는 말씀으로 응대하고 계신 것이죠. 다른 말로 하면, “아무리 높은 곳에서 몰아세워지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곳에 여전히 하나님께서 계시다”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사실 이렇게 마귀처럼 아주 직접적으로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보라는 식의 시험은 경험하기 어렵지만, 하나님이 계신가 안계신가 우리를 시험하는 일들은 일상속에서도 많이 발생합니다. 가정에 어려움이 생긴다거나 병이 생긴다거나 등등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들이 마치 마귀가 높은 곳에서 예수님을 몰아세울때처럼 저희를 몰아세우는 경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때 저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그 어려움 가운데서도 여전히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구하고 또한 바라보는 것입니다. 저희를 시험들게 하는 것이 뿅!하고 해결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오히려 더 큰 시험이 닥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뛰어내리셨다면, 정말로 천사들이 와서 지켜주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크게 다치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나님꼐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과 같이, 지금 당장의 어려움과 시험을 바라보기보다, 그곳에서 여전히 저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구할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할렐루야!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구하며 또한 그것을 믿으며 어려움과 시험을 헤쳐나갈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세번째 시험
세번째 시험
본문말씀으로 돌아와서요 8-9절 말씀을 보시면,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세번째 시험에서는 마귀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으로 데려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지극히 높은 산이 어디일까요? 아마 저희가 알고 있는 가장 높은 산은 에베레스트 산일텐데, 예수님께서도 그 산 높은 곳에 가셨을까요? 아마 이 복음서를 쓴 사람은 에베레스트라는 곳이 있는지도 몰랐을 겁니다. 다만 여기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이라고 하는 표현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천하 만국은 어디일까요? 정말 이 지구 전체를 의미하는 걸까요?
예수님 당시에 천하 만국이라고 하면 유럽을 거의 장악하고 아시아와 아프리카까지 뻗어있던 로마 제국을 상상했을 것입니다. 로마야 말로 가장 큰 나라고 모든 나라를 지배했던 가장 높은 자리였기 때문이죠. 마귀에게 경배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고 하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로마를 정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제자들이, 그리고 유대인들이 메시아에게 바랬던 것이 유대인의 해방이었던 것과 비슷한 결에서 이젠 아예 로마 제국을 통째로 주겠다는 말이나 다름 없는 것이죠.
그래서 사실 저희가 읽을 때는 “아무리 천하 만국을 준다고 해도 그렇지 마귀한테 경배하겠어?”라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꿈이나 다름없던 독립과 해방을 이루는 것이고, 메시아가 나타나는 것이고, 유대인이 제국을 통치한다는 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것이나 다름이 없거든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천하 만국을 통치한다는 것은 다름하닌 하나님의 통치가 온 세상에 널리 퍼져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 없잖아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번에도 강하게 거절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말씀 10-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라고 외치시면서 오직 하나님 만들 경배하고 섬겨야 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냥 아주 원론적인 이야기, 사탄을 경배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정말 천하 만국을 손에 넣어서 하나님의 통치를 세상에 널리 알린다? 지금 잠깐 마귀에게 경배해서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을 경배하게 된다? 이것이 안된다는 겁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죠. 과정이 어떻든 간에 원하는 결과를 손에 넣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속담입니다. 대체로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는 맞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정말로 네비게이션이 좀 잘못 되거나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라는 마음이 있다면 조금은 마음의 위안도 되고, 굳이 화를 낼 필요도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결과만 중시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과정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결과를 낼 수가 있습니까? “에이, 이정도는 괜찮겠지. 나중에 결과로만 보여주면 되잖아?”하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물러가라! 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그렇게 과정을 타협해서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하신 것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그 모든 과정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먼 길을 돌아가더라도 그 과정 가운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잃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순종하시는 가운데 그 모든 과정에서도 순종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길 위에서 그 모든 과정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고, 시험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구하며, 삶의 모든 여정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순종으로 걸어나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