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장 18-25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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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옆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너의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어” 사랑하는 청년 열어분, 여러분의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저는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처음 영화를 봤을 때와 모든 스토리와 결말을 알고 난 뒤에 다시 그 영화의 장면 장면을 볼 때 전달되는 느낌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영화를 볼 때는 결말을 예상할 수도 없고 막상 코앞에 있는 일도 예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주인공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조마조마합니다. 갑자기 일이 꼬입니다. 믿었던 사람이 배신합니다. 계획했던 일이 다 무너집니다. 그러면 막 속으로 생각합니다.
“설마 여기서 끝나는 거 아니야?” “이거 망한 거 아니야?” “이거 전개 너무한거 아니야?”
결말을 모르고서 영화를 볼 때, 우리는 그 장면 장면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보게 되고, 그 하나하나의 우리는 충격을 받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볼 때는 다릅니다.이미 결말을 알고 있고 이 스토리가 대충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다 알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당장 최악의 순간을 지나고 있어도 이상하게 첫 번째 볼 때만큼 불안하지 않습니다. 왜그렇습니까? 우리는 그 다음 장면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 사람이 울고 있지만 조금 있으면 웃게 된다는 것을 압니다. 지금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지만 결국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지금 이 장면만 놓고 보면 완전히 망한 것 같은데, 우리는 결말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장면인데 다르게 보이는 겁니다. 결말을 알고 나니까 현재를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인생의 한 장면, 장면들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전체 스토리를 모른채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한치 앞에 어떤 일들일 펼쳐질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내가 눈으로 보고 있는 현실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갈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조금 힘들면 앞으로도 계속 힘들 것 같고, 오늘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내 인생 전체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지금 눈앞에 있는 한 장면을 가지고 너무 쉽게 내 인생의 결말을 판단해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 잘 믿으면 인생이 좀 편해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기도하면 문제도 조금 덜 생기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면 남들보다 인생이 조금은 잘 풀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이런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살아 보니까 그렇지가 않아요.
예수 믿는데 아픕니다. 예수 믿는데 실패합니다. 예수 믿는데 자녀 문제로 웁니다. 예수 믿는데 관계가 깨집니다. 예수 믿는데 아무리 기도해도 상황이 금방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이 올라옵니다.
“하나님, 저 믿잖아요. 그런데 왜 이렇습니까?”
오늘 바울은 그 질문에 상당히 낯선 대답을 합니다.
17절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자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상속자 이야기를 합니다. 영광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이야기가 나옵니까?
고난이 나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면 고난에서 면제되는 것을 생각하는데, 성경은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방식으로 고난을 통과한다고 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꼭 붙들었으면 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고난을 낭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1. 고난 가운데서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하십시오

17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여기서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함께.”
바울이 로마서에서 계속 설명하고 있는 복음의 중요한 진리 가운데 하나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 따로, 나 따로 보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여전히 넘어집니다. 여전히 부끄러운 모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의를 나의 의로 여기시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나의 생명으로 여기십니다.
이게 복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리스도와 연합했다는 것은 좋은 것만 함께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부활은 함께하고 싶은데 십자가는 싫다. 영광은 함께하고 싶은데 고난은 싫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와 함께 영광을 받을 사람은 그와 함께 고난의 길도 걷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고난을 “나는 예수님 때문에 고난받는 거야”라고 포장하면 안 됩니다.
어떤 고난은 내가 잘못해서 받습니다.
내가 지혜롭지 못하게 선택해서 생긴 아픔도 있습니다. 내 죄 때문에 관계가 무너진 것도 있습니다. 내 욕심 때문에 만들어 낸 문제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놓고 “주님을 위한 고난입니다” 그러면 곤란합니다.
성경이 특별히 말하는 고난은 그리스도 때문에 받는 고난입니다.
정직하게 살기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것, 용서하기 때문에 내가 낮아지는 것,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에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 세상의 방식을 따라가지 않기 때문에 치르는 대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조금 더 넓게 적용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고난을 만날 때에도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병원에 들어갔다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끊어집니까?
아닙니다.
사업이 어려워졌다고 연합이 끊어집니까?
아닙니다.
내 자녀 때문에 밤새 울었다고 하나님께서 “오늘은 네가 너무 힘드니까 잠깐 예수님 밖에 있어” 하십니까?
아닙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이렇게 질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 질문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이 고난 가운데서도 나는 누구인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입니다.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고난은 내 정체성을 바꾸지 못합니다.
실패가 내 정체성을 바꾸지 못하고, 질병이 내 정체성을 바꾸지 못하고, 사람의 평가가 내 정체성을 바꾸지 못합니다.
왜요?
내 정체성은 내 환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고난 가운데 있다면 문제만 바라보지 마십시오.
문제보다 먼저 여러분이 누구인지를 기억하십시오.

2. 현재의 고난보다 장차의 영광을 더 크게 보십시오

그리고 바울이 18절에서 놀라운 말을 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여러분, 바울이 현재의 고난이 별것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고난을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맞아 봤습니다. 갇혀 봤습니다. 배척당했습니다. 동족에게도 미움받고 이방인에게도 미움받았습니다.
그러니까 “고난쯤이야, 생각하기 나름이에요”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울도 아팠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고난보다 더 큰 것을 보았습니다.
무엇입니까?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
여기에 믿음의 싸움이 있습니다.
고난을 당하면 우리의 시야가 굉장히 좁아집니다.
아프면 아픈 것밖에 안 보입니다.
자녀에게 문제가 생기면 온 세상에 우리 아이 문제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돈 걱정밖에 안 보입니다.
고난에는 이상한 힘이 있습니다.
우리 눈앞의 고난을 화면 가득 확대해 버립니다.
그래서 다른 것이 보이지 않게 만듭니다.
그런데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없는 현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현실보다 더 큰 현실을 보는 것입니다.
현재의 고난도 현실입니다.
아프면 아픈 것입니다. 힘들면 힘든 것입니다. 눈물이 나면 우십시오.
억지로 “전 괜찮습니다” 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그것만 현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장차의 영광도 현실입니다.
부활도 현실이고, 하나님의 나라도 현실이고, 우리가 주님 앞에 서게 될 날도 현실이고,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날도 현실입니다.
다만 하나는 지금 보이고, 하나는 아직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래서 24절과 25절에서 바울이 소망을 이야기합니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소망은 지금 없는 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망은 아직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지금 보이는 고난보다 더 신뢰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오늘”에 너무 붙잡혀 있습니다.
오늘 일이 잘돼야 하고, 오늘 응답이 와야 하고, 오늘 해결되어야 하고, 오늘 기분이 좋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계속 우리의 눈을 “장차”로 돌립니다.
장차.
장차.
장차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
왜입니까?
장차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오늘을 견디기 때문입니다.
목적지를 아는 사람은 길이 조금 험하다고 여행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지금 인생의 한복판만 보고 여러분의 인생 전체를 판단하지 마십시오.
아직 하나님께서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오늘이 마지막 장이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이 지나고 있는 이 광야가 목적지가 아닙니다.
우리가 가는 목적지는 영광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눈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이 문제만 크게 보이는 제 눈을 열어 주십시오.”
“이 고난보다 더 큰 하나님의 약속을 보게 해 주십시오.”
“오늘보다 장차를 보게 해 주십시오.”
이 기도가 필요합니다.

3. 그러므로 고난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여기서 우리가 한 걸음 더 가야 합니다.
로마서 5장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말합니다.
참 이상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고난이 오면 소망이 없어질 것 같잖아요.
그런데 성경은 오히려 고난을 제대로 통과하면 소망이 더 선명해진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고난 가운데서 이전에는 몰랐던 하나님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평안할 때는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라는 말을 압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은 순간에 실제로 하나님께서 나를 붙잡고 계시는 것을 경험하면 그 말이 지식에서 고백으로 바뀝니다.
“아, 정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구나.”
“정말 이 말씀으로 사람이 사는구나.”
“내가 버티는 줄 알았는데 주님이 붙잡고 계셨구나.”
이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고난을 지나면서 믿음이 견고해집니다.
처음에는 말씀을 믿으려고 애썼는데,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때도 나를 버리지 않으셨구나.”
그 경험이 또 다른 고난을 만났을 때 소망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고난을 그냥 인생의 고생으로 끝내지 마십시오.
아깝습니다.
너무 아깝습니다.
그렇게 울고, 그렇게 힘들었고, 그렇게 긴 시간을 지나왔는데,
남는 것이 상처밖에 없다면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그때 정말 힘들었어.”
이것으로 끝내지 마십시오.
“그때 하나님을 이렇게 알게 되었어.”
여기까지 가야 합니다.
“그 일을 지나면서 내가 얼마나 약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어.”
“그 일을 지나면서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되었어.”
“그 일을 지나면서 기도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
“그 일을 지나면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조금 알게 되었어.”
“그 일을 지나면서 천국이 정말 소망이 되었어.”
여기까지 가야 합니다.
고난 자체가 우리를 성숙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을 겪고 더 완고해집니다.
더 냉소적이 됩니다.
하나님을 더 멀리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고난을 어떻게 통과하느냐입니다.
고난 속에서 말씀을 붙들고, 고난 속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확인하고, 고난 속에서 장차의 영광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의 고난을 낭비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지금 고난 가운데 계십니까?
그렇다면 제가 “힘내십시오. 다 잘될 겁니다”라고만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다 잘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것보다 훨씬 더 크고 확실한 약속을 줍니다.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고난 가운데 함께하십니다.
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께 우리의 기도를 조금 바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이 고난을 빨리 없애 주세요.”
물론 그렇게 기도하십시오.
예수님도 고통 가운데 아버지께 간구하셨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한 가지 기도를 더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이 고난을 낭비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 고난 속에서 주님을 알게 해 주십시오.”
“이 고난 속에서도 제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붙들게 해 주십시오.”
“지금 보이는 것보다 장차 보여 주실 영광을 더 크게 보게 해 주십시오.”
여러분,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 상황을 바꾸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상황 가운데 있는 우리를 바꾸실 수 있습니다.
고난을 두려워하기만 했던 사람이 고난 가운데서도 평안을 누리는 사람으로,
오늘밖에 보지 못했던 사람이 장차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만 묻던 사람이
“하나님, 이 일을 통하여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계십니까?”라고 묻는 사람으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그게 은혜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통과하는 방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현재가 전부가 아닙니다.
오늘의 눈물이 마지막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장차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견디십시오.
소망으로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언젠가 뒤를 돌아보며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그 길에서도 주님은 나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조차 나를 영광으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었습니다.”
그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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