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장 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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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상과 분별 된 삶
제목: 세상과 분별 된 삶
본문: 로마서 12장 1-2절
본문: 로마서 12장 1-2절
찬송: 213장 나의 생명 드리니
찬송: 213장 나의 생명 드리니
매일 아침 식탁 위에 놓인 알록달록한 약봉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혈압약, 관절약, 당뇨약 봉투가 하나둘 늘어간다. 평생을 가족의 생계와 자녀의 뒷바라지, 그리고 일터와 교회를 위해 헌신하느라 성한 곳 하나 없이 닳아진 육신을 마주할 때, 우리 마음에는 문득 쓸쓸함과 무력감이 밀려온다. 세상 문화는 오직 젊음과 높은 생산성만을 찬양하며, 늙고 쇠약해진 육체는 그저 아끼고 숨겨야 할 부끄러운 짐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쇠약해진 현실을 결코 무가치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은 관념적인 영혼만을 바치라고 말하지 않고, 놀랍게도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롬 12:1)고 외친다. 하나님은 젊고 힘있는 몸만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다. 지난 반평생 주님의 은혜 안에서 눈물로 가정을 지키고, 기도의 무릎으로 닳아진 우리의 주름진 손과 피곤한 육신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쁘게 받으시는 보배로운 제물이다.
우리가 이처럼 온 삶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우리의 뛰어난 결단이나 공로가 아니다. 바로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롬 12:1)이다. 성경은 "그러므로"(롬 12:1)라는 단어로 새로운 삶의 문을 연다. 이 짧은 단어 속에는 우리 인생의 지난날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무런 자격 없는 죄인이었던 우리를 위해 하나뿐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숱하게 넘어지던 고비마다 용서하시며 다시 일으켜 세우신 그 압도적인 사랑이 바로 이 권면의 출발점이다. 나를 살리신 그 한없는 은혜의 빚을 생각한다면, 남은 생애를 온전히 주님께 내어드리는 삶은 억지스러운 의무나 희생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마땅한 예배"(롬 12:1)이다. 구약의 제물은 차가운 제단 위에서 피 흘려 죽어 사라졌지만, 오늘 우리는 숨 쉬는 매일의 일상 속에서 "살아 있는 제물"(롬 12:1)로 걸어가야 한다. 주일 하루 예배당 의자에 단정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는 참된 예배자가 될 수 없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약봉지를 뜯으며 살아가는 가정과 일터, 시장과 골목길에서 나의 시간과 손발을 거룩한 도구로 내어주는 삶이 진짜 예배이다.
그런 참된 예배자로 서기 위해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 12:2) 마땅하다. 세상은 나이가 들수록 손해 보지 말고 자기 자신과 배우자의 안락만 악착같이 챙기라고 끊임없이 부추긴다. 동창 모임에 나가면 자식 자랑과 아파트 평수, 연금의 크기가 모든 대화의 중심이 된다. 더 많이 쥐고 있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버림받을 것처럼 겁을 주는 세상의 불안을 이용한 체면 문화가 우리 영혼을 옥죄어 온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지나가 버릴 세속의 거푸집에 자신을 무비판적으로 끼워 맞추지 말아야 한다. "내가 살아봐서 다 안다"는 굳어진 고집과 익숙한 경험주의를 십자가 앞에 겸손히 깨뜨려야 한다. 사람의 타고난 결심과 의지만으로는 굳어진 옛사람의 습관을 바꿀 수 없다. 오직 위로부터 비추시는 은혜의 빛 앞에 생각을 온전히 내어드릴 때, 주님께서 우리의 굳은 내면을 부드럽고 새로운 존재로 빚어 가신다.
마음의 생각을 새롭게 빚어낸 성도가 마침내 도달해야 할 목적지는 바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롬 12:2)이다. 성경이 말하는 분별은 대장장이가 뜨거운 풀무불 속에서 순금의 불순물을 걸러내듯 치열하게 시험하고 검증하는 일이다. 우리는 삶의 중대한 기로에 설 때마다 내 유익의 계산기를 먼저 두드리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이웃의 영혼을 살리는 선한 뜻인가?"를 정직하게 물어야 한다. 자녀의 혼사와 독립 문제를 결정할 때 내 체면이나 세상의 눈높이를 맞추려 하지 않고, 그들이 참된 믿음의 사람으로 서도록 축복해야 한다. 남겨진 노후의 재정과 여유 시간을 오직 나만의 안락을 위해 꽁꽁 묶어두지 않고, 가난한 이웃과 선교의 자리를 위해 기쁨으로 흘려보내야 한다. 교회 안에서도 나이와 직분을 앞세워 대접받으려 하기보다, 젊은 세대와 상처 입은 지체들의 발을 씻어주는 겸손한 평화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뜻이다.
우리의 인생 후반전은 쓸쓸하게 무대 뒤로 물러나 체념하는 시간이 결코 아니다. 식탁 위에 쌓여가는 약봉지를 보며 한숨짓는 대신, 평생을 신실하게 인도하신 주님의 자비하심을 기억하며 다시 무릎을 꿇어야 한다. 세상의 낡은 계산기를 내려놓고, 날마다 말씀 앞에서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써 가장 온전한 주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주름진 손과 닳아진 관절, 그리고 남은 생애의 모든 호흡을 주님께 온전히 올려드릴 때, 우리의 삶은 가장 거룩하고 향기로운 제단이 될 것이다.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내어주시고, 십자가의 측량할 수 없는 긍휼로 저희를 의롭다 칭하여 주신 그 크신 자비하심에 무한한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간구하옵나니, 저희의 신앙이 주일 예배당의 문턱에만 머무는 메마른 형식주의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 마주하는 일터와 가정, 관계의 모든 현장에서 저희의 연약한 육신과 삶의 전 영역을 주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구별하여 바치는 합당한 예배자가 되게 하옵소서.
끊임없이 탐욕과 거짓과 자기 자랑을 강요하는 이 악한 세대의 흐름을 본받지 않게 하시고, 오직 진리의 성령 안에서 마음의 중심과 생각을 날마다 새롭게 하사, 어두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밝히 분별하여 순종하는 거룩한 주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를 영원한 산 제물로 삼아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