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장 3-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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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의 거울 앞에 선 청지기
제목: 복음의 거울 앞에 선 청지기
본문: 로마서 12장 3-8절
본문: 로마서 12장 3-8절
찬송: 323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찬송: 323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우리는 땀 흘려 일하고 나면 마땅한 대가를 바란다. 사울 왕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말렉과의 거친 전쟁에서 승리한 뒤, 가장 좋은 양과 소를 몰래 남겨두었다. 사무엘 선지자가 책망하자 그는 하나님께 드릴 제물이었다고 그럴듯하게 둘러댔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목숨 걸고 피 흘려 싸웠으니 이 정도 보상은 당연하다는 생각이었다. 나아가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대신 갈멜에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삼상 15:12)를 세웠다. 자신이 스스로를 작게 여길 그때(삼상 15:17)에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내가 이만큼 수고했으니 이 정도는 누려야 한다는 보상 심리와 욕망에 눈이 멀고 말았다.
사울의 이 병든 마음은 오늘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 우리는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조금만 땀을 흘리고 나면 속으로 남몰래 영적 계산기를 두드린다. 내가 가족을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데 나를 몰라주는가 섭섭해하고, 내가 교회에서 얼마나 오랜 세월 헌신했는데 내 공로를 알아주지 않는가 토라진다. 내 수고가 삶의 기준이 되는 순간, 우리는 내가 최고라는 교만에 빠지거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며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로 깎아내리는 깊은 절망과 자기 비하에 떨어진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사람 사이의 갈등도 바로 여기에서 싹튼다.
이때 성경은 우리의 어두운 마음에 번개처럼 경고한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내 업적에 취해 어깨에 힘을 주는 교만도, 남과 비교하며 서운함에 주저앉는 낙심도 모두 영적으로 술에 취한 혼미한 상태이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 앞에 내세울 선한 것이 하나도 없던 전적 파산자였다. 갚을 수 없는 거대한 빚을 지고 죽어가던 우리를, 하나님은 아들의 생명을 바쳐 아무런 값없이 살려내셨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주인의 것을 맡아 섬기는 겸손한 청지기이다.
더불어 우리는 홀로 살아가는 외로운 영웅이 아니다. 성경은 교회를 사람의 몸에 빗대어 선포한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 12:4-5). 사람의 몸에서 눈과 귀, 손과 발이 각자 다른 모양과 역할을 지니듯,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서로 다른 재능과 자리를 나누어 주셨다. 나와 다른 모습은 시기하고 경쟁할 대상이 아니라 서로를 온전하게 받쳐주는 아름다운 조화이다. 우리 가운데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반대로 필요 없는 쓸모없는 존재도 전혀 없다. 우리는 서로에게 단단하게 묶여 연결된 한 몸이므로, 이웃의 눈물은 곧 나의 아픔이고 이웃의 웃음은 곧 나의 기쁨이 된다.
이처럼 귀한 선물을 거저 받았다면, 이제 우리는 어떤 태도로 일상을 살아가야 하겠는가. 성경은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행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남을 돕고 나눌 때는 내 이름을 드러내거나 보답을 바라지 않는 성실하고 순전한 마음(롬 12:8)으로 해야 한다. 남을 이끄는 자리에 설 때는 권세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땀 흘리는 부지런함으로 섬겨야 한다(롬 12:8). 힘겨운 이웃의 눈물을 닦아줄 때는 마지못해 하는 의무감이나 위에서 내려다보는 동정이 아니라, 활짝 웃는 얼굴과 참된 즐거움(롬 12:8)으로 품어야 한다. 섬김의 자리는 내 공로를 뽐내는 무대가 아니라, 사랑의 빚을 기쁨으로 갚아나가는 은혜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마음속에 은밀하게 세워둔 사울의 갈멜 기념비를 완전히 깨뜨려야 한다. 내가 이만큼 베풀었으니 상대방도 머리를 숙여야 한다는 영적 계산기를 당장 부수어 버려야 한다. 사울이 전리품에 목을 맸던 까닭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스스로를 부풀렸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눈을 떠 거울 앞에 설 때, 세상의 시선이나 남과의 비교에 휘둘리지 말자. 대신 십자가 사랑의 맑은 거울 앞에서 조용히 고백하자. “나는 하나님 앞에 내세울 공로가 전혀 없던 죄인이었으나, 측량할 수 없는 은혜로 다시 살아난 주님의 청지기입니다.” 이 고백이 우리 삶의 중심에 설 때, 섭섭함은 사라지고 기쁨이 차오른다.
오늘 하루 우리에게 주어진 건강과 일터, 시간과 물질은 영원한 내 소유가 아니라 잠시 맡겨진 은혜의 선물이다. 주변에 홀로 외로워하는 지체나 낙심한 이웃이 있는가. 보답을 바라지 말고 먼저 다가가 따뜻한 격려의 손길을 내밀자. 가정에서 궂은일을 도맡고, 일터에서 묵묵히 정직을 지키며, 교회에서 보이지 않게 무릎 꿇는 그 작은 자리가 가장 빛나는 자리이다. 우리가 대가를 바라지 않고 기쁨과 성실로 서로를 섬길 때, 우리 안의 어두운 갈등은 물러가고 생명의 평화가 꽃피게 된다. 내 기념비를 허물고 맑은 영혼으로 이웃을 섬기는 복되고 충성스러운 청지기의 걸음을 힘차게 내딛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