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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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여호사밧 왕 열여덟째 해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열두 해 동안 다스리니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의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그의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주상을 없이하였음이라
그러나 그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
그 때에 여호람 왕이 사마리아에서 나가 온 이스라엘을 둘러보고
또 가서 유다의 왕 여호사밧에게 사신을 보내 이르되 모압 왕이 나를 배반하였으니 당신은 나와 함께 가서 모압을 치시겠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올라가리이다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하는지라
여호람이 이르되 우리가 어느 길로 올라가리이까 하니 그가 대답하되 에돔 광야 길로니이다 하니라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과 에돔 왕이 가더니 길을 둘러 간 지 칠 일에 군사와 따라가는 가축을 먹일 물이 없는지라
이스라엘 왕이 이르되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는도다 하니
여호사밧이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하는지라 이스라엘 왕의 신하들 중의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여호사밧이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있도다 하는지라 이에 이스라엘 왕과 여호사밧과 에돔 왕이 그에게로 내려가니라
1800년대 영국 브리스톨. 조지 뮬러가 운영하던 고아원에서 어느 날 아침, 식탁은 다 차려졌지만 그 위에 놓을 빵도 우유도 하나도 없었습니다. 굶주린 아이들 삼백여 명이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창고는 완전히 비어 있었습니다. 뮬러는 아이들에게 자리에 그대로 앉으라 하고는, 아직 아무것도 없는 그 식탁 앞에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에게 오늘 먹을 것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도가 끝나자마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동네 빵집 주인이었습니다. 그는 한밤중에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아 새벽 두 시부터 빵을 구웠는데, 그 빵을 고아원에 가져다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우유 마차 한 대가 고아원 앞에서 바퀴가 고장 나 멈춰 섰습니다. 마부는 신선한 우유가 상하기 전에 차라리 아이들에게 나눠 주는 것이 낫겠다며 우유를 모두 내려놓았습니다.
뮬러는 훗날 이 일을 일기에 담담히 기록했습니다. 위기가 닥치기 전, 그는 이미 하나님께 묻고 의지해 온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열왕기하 3장 1절부터 12절은 조지 뮬러와는 정반대의 태도로 위기를 맞은 왕들의 이야기입니다. 물이 없는 광야 한복판에서, 어떤 왕은 하나님을 원망했고, 어떤 왕은 그제서야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본문 해석]
1절부터 3절, 여호람이 이스라엘 왕으로 즉위합니다. 성경은 그를 두고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의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라고 평가합니다. 그는 아버지 아합이 세운 바알의 주상을 없앴습니다. 얼핏 개혁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3절은 곧바로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러나 저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단과 벧엘에 세워진 금송아지, 그것은 그대로 두었다는 것입니다. 왜 하필 그것만 남겼을까요. 그 금송아지는 여로보암이,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순례하다가 다윗 왕조로 마음을 돌이킬까 두려워 정치적으로 계산해 만든 우상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바알은 제거해도 나라에 손해가 없는 우상이었고, 금송아지는 제거하면 국가 체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우상이었습니다. 여호람의 개혁은, 대가 없이 치울 수 있는 것만 치운 개혁이었습니다.
4절과 5절은 이 사건의 배경을 알려줍니다. 모압 왕 메사는 해마다 어마어마한 조공, 새끼 양과 숫양의 털 각각 십만 마리 분량을 이스라엘에 바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합이 죽자 메사는 반역합니다. 실제로 1868년 발견된 모압 비석에는 이 사건이 모압 쪽 시각으로 고스란히 새겨져 있어,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이 실제 있었던 역사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6절부터 8절, 여호람은 군대를 모으고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여호사밧은 이렇게 답합니다. "내가 올라가리이다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그런데 이 말,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입니다. 열왕기상 22장, 아합이 길르앗 라못을 치자고 했을 때 여호사밧이 했던 바로 그 대답입니다. 그리고 그때 여호사밧은 곧바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청하건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 보소서."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 한 마디가 빠져 있습니다. 여호사밧과 여호람은 곧바로 8절에서 어느 길로 갈지 작전 회의로 넘어갑니다. 익숙한 신앙의 언어는 반복되었지만, 정작 그 신앙의 핵심 행동은 생략된 것입니다. 사실 여호사밧에게는 이런 동맹의 대가를 이미 경험한 전력이 있었습니다. 역대하 19장에서 그는 아합을 도운 일로 선견자 예후에게 책망을 받았고, 역대하 20장에서는 아하시야와 함께한 무역선 사업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파선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또다시, 묻지 않고 먼저 움직입니다.
9절과 10절, 그 대가가 나타납니다. 에돔 광야로 둘러 칠 일을 행군한 세 나라 군대는, 물이 완전히 끊긴 광야 한복판에 서게 됩니다. 군사도 가축도 마실 물이 없습니다. 그 순간 여호람이 내뱉은 말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는도다." 그는 이 위기의 원인을 단 한 번도 자신의 결정 — 하나님께 묻지 않고 동맹부터 맺은 그 결정 — 에서 찾지 않습니다. 곧바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쪽으로 신학을 만들어 버립니다. 신학자 필립 라이켄은 이 장면을 두고, 어중간한 믿음을 가진 사람일수록 위기 앞에서 두려움으로 반응하기 쉽다고, 자신이 하나님 편에 서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 자기편이라 확신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11절과 12절, 반전이 일어납니다. 여호사밧이 마침내 묻습니다.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늦었습니다. 원정을 떠나기 전에 물었어야 할 질문입니다. 그러나 늦었어도, 그는 묻습니다. 신하 중 한 사람이 대답합니다.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손에 물을 붓던 자"라는 표현은 스승을 곁에서 섬기던 개인 수종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엘리사가 오늘 이 위기 앞에 설 자격은, 스스로 내세운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엘리야를 신실하게 섬긴 데서 이미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여호사밧은 그 이름을 듣고 이렇게 확신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있도다." 그가 마침내 붙든 것은 군사력도, 세 나라 동맹도 아니었습니다. 말씀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핵심 메시지]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사람과는 동맹을 맺어도, 하나님께는 반드시 먼저 물어야 합니다. 여호람은 대가 없는 것만 개혁하고, 대가가 따르는 물음은 끝내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습니다. 여호사밧은 계획을 다 세운 뒤에야, 위기가 닥친 뒤에야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순서가 틀렸습니다. 하나님께 묻는 것은 계획이 막힌 다음에 꺼내는 비상 수단이 아니라, 계획을 세우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첫걸음입니다.
지난 8월 남부지방은 역대급 가뭄을 만나, 경남 지역 저수율이 평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33.3%까지 떨어졌습니다. 울산의 저수지 하나는 저수율이 3.4%까지 말랐습니다. 정부는 물탱크차 이백 대와 소방인력 사백 명을 투입해 긴급 급수에 나섰고, 어느 마을 주민은 물을 담을 수 있는 그릇마다 물을 채우는 것이 하루 일과가 되었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위기 앞에서 기술적인 대응은 마땅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본문 속 두 왕은, 같은 물 없는 광야에서 정반대로 반응했습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을 원망하며 절망했고, 한 사람은 늦게라도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오늘 정말 목마른 자리에 설 때, 우리는 어느 쪽입니까.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위기가 오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그분께 묻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까.
[결론]
우리는 위기 때마다 급히 선지자를 수소문할 필요가 없습니다. 히브리서 4장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어 주셔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더 이상 물어야 할 사람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그분은 우리를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주셨고, 그 결과 우리는 언제라도, 계획을 세우기 전이든 위기 한복판이든, 곧바로 하나님께 나아가 물을 수 있는 자리를 얻었습니다. 여호람처럼 대가 없는 것만 정리하며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여호사밧처럼 위기가 닥쳐서야 뒤늦게 그분을 찾지도 마십시오. 오늘, 이 광야 같은 삶의 자리에서, 계획하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언제나 거기 계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