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장 17-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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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평화의 주도권
제목: 평화의 주도권
본문: 로마서 12장 17-21절
본문: 로마서 12장 17-21절
찬송: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찬송: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어렸을 적 아버지를 따라 낚시를 갔다가 굵직한 장어 한 마리를 낚은 적이 있다. 물 밖으로 끌려 나온 장어는 거칠게 몸부림치며 온몸으로 요동쳤고, 그 바람에 낚싯바늘과 낚싯줄이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엉켜버렸다. 눈앞에서 마음이 급하고 답답하다고 해서 양쪽 줄을 힘껏 잡아당기면 풀리기는커녕 매듭은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져 버린다. 결국 한참 동안 애를 써도 풀지 못하고, 멀쩡한 줄을 가위로 잘라내어 버려야만 한다. 우리의 삶과 인간관계도 이 엉킨 낚싯줄과 너무나 닮아 있다.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가까운 이웃과 가족에게 억울한 오해와 상처를 받는다. 그때 솟구쳐 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상대방과 똑같이 맞서 싸우며 보복의 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면, 관계의 매듭은 영영 풀리지 않는 바위가 된다. 누군가를 향해 복수의 칼을 품는 것은, 내가 독약을 마시면서 상대방이 쓰러지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행동과 같다. 미움과 보복심은 상대를 무너뜨리기 전에 내 영혼과 가정을 먼저 병들게 한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이 지긋지긋한 악의 순환 고리를 끊어내는 거룩한 지혜를 가르쳐준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롬 12:17). 상대방이 나에게 상처를 주고 거친 말을 쏟아냈다고 해서, 나 역시 똑같이 날 선 독설로 받아친다면 우리는 이미 상대방의 악에 사로잡힌 패배자다. 우리는 상대가 던진 돌멩이에 본능적으로 반응하여 다시 그 돌을 집어 던지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떻게 선으로 대답할 것인지를 깊이 생각하고 먼저 품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어서 본문은 이렇게 명령한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롬 12:18). 물론 바울은 인간의 완악함 때문에 평화가 일방적으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너희 편에서는" 화해의 손길을 먼저 내밀라고 권면한다. 상대가 먼저 사과해야 나도 풀겠다는 계산적인 태도를 내려놓아야 한다. 상대방의 반응에 휘둘리지 않고,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 바로 평화의 주도권을 쥔 영적 승리자다.
우리가 억울함을 딛고 분노를 내려놓을 수 있는 이유는 결코 힘이 없거나 비겁해서가 아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롬 12:19). 우리는 수많은 날 동안 마음속에 나만의 비밀스러운 재판정을 차려놓았다. 그리고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피고석에 앉혀둔 채 끊임없이 그를 정죄하고 마음의 형벌을 내리며 살았다. 그러나 내가 직접 복수의 망치를 들고 상대를 처벌하려 드는 순간, 우리는 피해자의 자리를 벗어나 하나님의 재판석을 가로채는 무서운 교만에 빠지게 된다. 온 세상을 가장 공정하게 판결하시는 하나님께 나의 모든 억울한 사연과 고소장을 그대로 올려드려야 한다. 주님의 의로운 다스림에 자리를 내어드릴 때, 비로소 우리의 가슴을 짓누르던 오랜 멍에가 벗겨지고 영혼의 참된 쉼과 자유가 찾아온다.
더 나아가 성경은 우리에게 단순히 소극적으로 참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사랑의 행동을 펼치라고 말씀한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롬 12:20). 누군가를 용서하고 품는 것은 막연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배고파하는 상대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고, 목말라하는 그에게 시원한 물을 건네는 아주 구체적인 섬김이다. 나를 아프게 했던 대상이 질병이나 사업의 실패로 궁지에 몰렸을 때, 쌤통이라고 비웃는 대신 슬그머니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다. 머리에 숯불을 얹는다는 말씀은 상대를 더 큰 지옥 불에 빠뜨리겠다는 엉큼한 복수가 아니다. 원수조차 따뜻하게 먹이고 품어주는 뜻밖의 자비 앞에서, 상대방의 단단했던 양심이 뜨거운 부끄러움을 느끼고 진심으로 뉘우치게 만드는 놀라운 회개의 불길이다.
결국 오늘의 결론은 명쾌하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 12:21). 악을 악으로 갚는 사람은 악을 이긴 것이 아니라 악에게 정복당한 자다. 어둠을 몰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더 큰 어둠이 아니라 밝은 빛이다. 우리가 아직 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원수로 살아가던 그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살을 찢고 피를 흘려 우리의 굶주림과 목마름을 채워주셨다. 그 십자가 사랑이 완악했던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 큰 사랑을 빚진 우리가 오늘 누구를 용서하지 못하겠는가. 오늘 이 새벽, 우리는 가슴속에 쥐고 있던 복수의 낚싯줄을 온전히 내려놓아야 한다. 엉킨 매듭을 분노로 끊어버리지 말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심판을 맡겨드려야 마땅하다. 나아가 나를 아프게 한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먼저 따뜻한 물 한 컵을 건네며, 삶의 자리에서 평화의 주도권을 쥐고 선으로 악을 정복하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