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기는 침묵

사도행전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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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상을 이기는 침묵

본문: 사도행전 19장 23-29절

찬송: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말씀의 문을 열며

고대 에베소 유적지를 가보면, 산비탈을 깎아 만든 웅장한 로마식 야외극장이 지금도 보는 사람을 압도합니다. 무려 2만 5천 명의 관중이 한꺼번에 들어앉아 무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거대한 극장입니다. 그 옛날 에베소 사람들은 삶이 무료하거나 불안할 때마다 이 극장에 모여 화려한 연극을 감상했고, 검투사들의 피 흘리는 싸움을 지켜보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높은 곳에서 수만 명이 뿜어내는 거대한 함성과 열기는,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대단한 제국의 시민인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마취제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속에서, 그 거대한 야외극장은 문화와 예술을 즐기는 평화로운 공간이 아니라 광기와 폭력이 소용돌이치는 아수라장으로 돌변합니다. 은장색 데메드리오의 선동에 넘어간 군중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바울과 함께 길을 걷고 있던 평범한 두 사람, 마게도냐 출신의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낚아채 극장 한복판으로 내달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세상이라는 거대한 극장 한복판에서 살아갑니다. 저마다 자신의 목소리가 옳다고 소리를 지르고, 남을 깎아내려야만 내가 살아남는 거친 생존의 극장 속에서 성도들은 깊은 영적 피로를 느낍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 소란함의 실체가 무엇이며, 그 속에서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는 어떤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지를 우리를 깨우쳐 줍니다.

불안할수록 커지는 세상 함성

데메드리오의 선동을 들은 에베소 사람들은 분노에 휩싸여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28절을 보면 그들은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끝없이 외쳐댔습니다. 그들은 2만 5천 명이 들어가는 거대한 극장을 가득 메우고 이나 쉬지 않고 이 고함을 질러댔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 시간에도, 조용한 가운데 회중석에서 단 한두 사람만 큰 소리로 “아멘!” 하고 외쳐도 예배당 전체의 공기가 일순간에 바뀌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됩니다. 사람의 목소리에는 그만큼 주변 분위기를 단숨에 압도하고 흔들어놓는 강력한 전염력이 있습니다. 하물며 산비탈을 깎아 소리가 울려 퍼지도록 설계된 2만 5천 석의 거대한 극장에서, 수만 개의 목청이 일제히 살기를 띠고 고함을 내지를 때 그 현장의 공포와 위압감이 얼마나 흉흉했는지 상상이 안됩니다. 그 소리는 에베소 도시 전체를 집어삼킬 듯이 요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것은 참으로 기괴하고 어리석은 풍경입니다. 열왕기상 18장을 보면 이와 똑같이 기괴한 소동이 구약 갈멜산 위에서도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와 맞닥뜨렸던 바알과 아세라의 예언자들의 모습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아침부터 정오까지 제단 주위를 돌며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라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무런 응답이 없자 그들은 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심지어 칼과 창으로 자기 몸을 상하게 하여 피가 흐르기까지 광란의 춤을 추었습니다. 살아 있는 참신이라면 사람이 그렇게 소리를 질러줄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의 신은 살아 있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 목청을 높여주지 않으면 존재조차 증명할 수 없는 죽은 허상이었기에 그토록 처절하게 소리를 질러댔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에베소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만약 아데미 여신이 정말로 온 세상을 다스리는 위대한 신이라면, 사람들이 굳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두 시간 동안이나 “위대하다”고 소리를 질러줄 필요가 없습니다. 태양은 스스로 빛을 발하기에 아무도 태양을 향해 빛나라고 소리치지 않습니다. 바다가 광대하기에 아무도 바다를 향해 넓어지라고 시위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목이 쉬도록 고함을 지른 진짜 이유는, 아데미가 위대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신이 너무나 초라하고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 곧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는 명백한 진리 앞에서, 그들이 평생 의지해 온 은 신상은 맥없이 허물어졌습니다. 내 손으로 쥐고 있어야만 안심이 되던 밥그릇이 흔들리고,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안락한 미래가 위협받자, 인간의 영혼 깊은 곳에서 통제할 수 없는 두려움이 폭발한 것입니다. 인간은 불안할수록 군중 속에 숨고, 두려울수록 목소리를 높여 상대를 억누르려 합니다. 내 안의 진리가 빈곤할수록 겉으로 내세우는 목소리는 더 포악해지고, 내 손에 쥔 것이 허상일수록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물리적인 힘과 고함에 의존하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소리들은 언제나 위협적이고 거대해 보입니다. 돈이 없으면 당장이라도 낙오자가 될 것처럼 우리를 위협하고, 남들보다 더 높이 올라가지 않으면 인생 전체가 실패한 것처럼 우리들을 압박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지르는 그 모든 거대한 소음의 본질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간들이 토해내는 영혼 밑바닥에서 터져 나오는 두려움의 비명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한한 물질을 영원한 신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세상의 헛된 함성에 마음을 빼앗겨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시고 붙드심으로 큰 은혜와 용기를 매일 얻으기시기를 바랍니다.

대신 짐을 진 무명의 동역자

광기에 사로잡힌 군중들은 사도 바울을 잡으려 했으나 만나지 못하자, 바울의 동행이었던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완력으로 낚아채 극장 안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깊은 묵상에 잠기게 됩니다. 가이오는 누구이며 아리스다고는 누구입니까? 그들은 에베소 광장에서 군중들을 향해 담대하게 설교를 쏟아냈던 주역들이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도 가이오나 아리스다고가 바울처럼 놀라운 기적을 행했다거나 유명한 저술을 남겼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들은 고향 마게도냐를 떠나, 하나님 나라를 위해 묵묵히 짐을 짊어지고 바울의 곁에서 먼지 나는 길을 함께 걸어가던 신실한 길동무들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분노한 군중들의 흉포한 손길이 가장 먼저 덮친 사람은 위대한 설교자 바울이 아니라, 곁에 서 있던 가이오와 아리스다고였습니다. 2만 5천 명의 살기등등한 군중들이 내려다보는 야외극장의 차가운 무대 한복판에, 이 두 사람이 아무런 방어막도 없이 던져졌습니다. 바울이 소식을 듣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극장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제자들과 지방 관원들이 바울을 극구 말렸습니다(행 19:30-31). 바울마저 들어갔다면 피비린내 나는 군중의 잔혹한 뭇매를 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는 영문도 모른 채, 바울이 전한 복음 때문에 받아야 할 세상의 모든 조롱과 증오와 위협을 자기들의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냈습니다. 말로 진리를 외치는 일도 귀하지만, 진리 때문에 닥쳐오는 고난의 현장에 묵묵히 남아 대신 붙들려주는 일은 더욱 숭고합니다. 아리스다고는 훗날 바울이 죄수의 몸이 되어 로마로 압송될 때에도 배 밑창에서 그 고통을 함께 겪었고, 결국 바울과 함께 로마의 차가운 지하 감옥에 갇히는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참된 신앙의 능력은 세상의 화려한 조명을 받는 무대 위에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복음 때문에 겪어야 하는 불편함과 손해를 묵묵히 감당해 내는 신실한 동역자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전진합니다. 내가 유명해지지 않아도 좋습니다. 사람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믿음의 형제자매 곁에서 묵묵히 기도의 손을 보태고, 고통받는 이웃의 짐을 함께 짊어지는 ‘가이오와 아리스다고’의 삶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보시는 참된 제자의 모습입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극장의 소음을 이기는 평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천 년 전 에베소의 웅장한 야외극장을 뒤흔들었던 2만 5천 명의 아우성과 “크다 아데미여”를 외치던 광란의 함성은 역사의 뒤안길로 허망하게 사라졌습니다. 세상의 모든 거대한 자랑과 소음은 흙먼지로 끝날 뿐입니다. 그러나 그 살벌한 극장 한복판에서, 떨리는 가슴을 부여안고 주님을 바라보며 복음의 자리를 지켜냈던 가이오와 아리스다고의 신실한 믿음은 영원한 생명책에 또렷하게 기록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우리는 다시 세상이라는 거친 극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손에 쥐기 위해 오늘도 소리를 지르고, 남의 밥그릇을 빼앗기 위해 완력을 휘두르며 살아갑니다. 그러한 세상의 광기 어린 함성에 주눅 들거나 동화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던 빌라도의 법정과 골고다 언덕의 그 거대한 광기 앞에서, 맞서 고함치지 않으시고 그리고 그 거룩한 침묵과 자기 비움의 사랑으로 세상의 모든 죄와 죽음의 권세를 무너뜨리셨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럽고 요란해도, 우리는 묵묵히 주님의 손을 잡고 십자가의 평화를 선택해야 합니다. 큰 소리로 나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고, 내게 맡겨진 가정과 일터에서 연약한 지체들의 짐을 함께 져주는 신실한 동반자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됩시다. 세상 극장의 헛된 박수갈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하늘의 참된 위로와 평안이 오늘 밤 우리 모두의 심령에 충만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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