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잔치

가창교회 중고등부 설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3 views
Notes
Transcript

본문의 문맥: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오늘 본문은 친구초청주일 초대장과 배너의 주제 말씀이다. 왜 이 본문을 선택했는지 설교를 통해 전달하고자 함.
오늘 설교의 내용을 두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슬라이드1) 1. 본문의 문맥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는 나를 돌아보는 시간. 본문의 문맥은 ‘구원 받는 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가르침인데, 이 말씀에 비추어서 나의 구원과 구원받은 자의 삶을 돌아보자. 2.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게 될 자’에 대해 한 가지를 더 알려준다. 말씀을 통해 친구초청주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나의 부르심에 대해 다시금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지자.
22 예수께서 여러 도시와 마을에 가셔서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셨다. 23 어떤 사람이 예수께 물었다. “주님(존칭), 구원받는 사람은 적습니까?” 24-25 (예수의 대답)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집주인(하나님)이 문을 닫아버리면 너희가 밖에서 두드리고 소리치고 졸라도 너희를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다.” 26 (사람들의 요구) “우리가 당신 앞에서 먹고 마시고, 당신도 길에서 우리를 가르치시지 않았습니까?” = 우리가 함께 지낸 세월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우리가 쫌 친하다고,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요? 27-28 (하나님의 대답) “나는 너희를 모른다.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썩 꺼져라! 아브라함-이삭-야곱-선지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있고,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인지할 때, 너희는 슬퍼하며 이를 갈 것이다.”
여기서 예수께서 구원받는 자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슬라이드2) 1) 그 수가 매우 적다. 누구든지 갈 수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이지만, 동시에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이 하나님 나라라는 의미 2)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 안에 있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주인과 같이 먹고 마시고, 심지어는 그 가르침을 귀로 들은 자도 하나님 나라에서 제외될 수 있다. ‘불의’하기 때문. ‘불의한 행위’가 구원의 척도가 된다면 그것은 행위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정말로 주인의 가르침을 잘 들었다면 불의를 미워하고 공의와 정의를 세우는 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이사야, 미가, 호세아, 아모스 등 구약의 선지자들이 가장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가? 쩨다카와 미슈파트를 지키는 것. 공의와 정의를 세우는 것.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살리는 것 그렇기에 지금 문 밖에 있는 자들은 스스로 억울하다고 느끼지만, 실제 그들은 무늬만 믿는 자이지 실제로는 믿음이 없는 자라는 의미 3) 너희의 믿음을 삶으로 드러내야 한다. 내 삶의 바운더리로 나의 눈을 돌렸을 때, 눈에 밟히는 자들이 있는가? 그들에게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자. 내 삶의 바운더리 안에 불의가 행해지고 있는 곳이 있는가? 그곳에 예수의 가치관을 삶으로 전하자. 전에 말했던 것처럼, 복음 전파는 우리의 삶이 뒷받침되어야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맥 안에서 오늘 본문, 친구초청주일의 주제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슬라이드3)

가늠할 수 없는

누가복음 13:29–30 NKRV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은 누구인가?(슬라이드4) 동서남북으로부터 온 자들 = 이방인들 주후 1세기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경멸하거나 배척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헬레니즘의 헤택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유대인 뿐이라고 생각했다.(슬라이드5)
남왕국 유대가 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에 의해 멸망 당하고, 70여 년의 포로생활 후에 스룹바벨이 성전을 재건(제2성전기). 이때부터 주후 70년 로마의 티투스에게 예루살렘성전이 파괴될 때까지를 제2성전기라고 부른다.
제2성전은 제1성전인 솔로몬 성전보다 규모와 화려함에서 보잘 것 없었다.(슬라이드6)
에스라 3:12 NKRV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그래서 수백 년이 지난 후, 유대 민족의 지지를 얻고 싶었던 주후 1세기 분봉왕 헤롯은 제2성전인 스룹바벨성전을 크고 화려하게 증축한다. 그래서 제2성전을 이때부터 스룹바벨 성전이 아니라 헤롯 성전으로 부르기도 한다.(슬라이드7) 이 증축한 성전의 특징 중 하나는 ‘이방인의 뜰’이라는 공간이 있었다는 것. 이전 성전에도 이방인들을 위한 기도의 처소가 있었을 수 있지만, ‘이방인의 뜰’이라는 오피셜한 네임은 아니었다(슬라이드8)
이방인의 뜰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1) 다양성의 존중: 어떤 이방인이든 이곳에 와서 성전을 구경하고, 랍비나 율법학자들에게 율법에 대해서 묻고 답을 듣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슬라이드9) 2) 배제와 차별: 그러나 이방인은 이 뜰에서 더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성전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하나님을 만나는 임재의 상징인 지성소. 이방인에게 성전을 맛보기로 보여주는 듯하지만, 결국은 두꺼운 벽으로 ‘우리는 너희와 달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함
예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으시다. 너희는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 하지만 그것이 너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너희가 배제와 차별의 대상으로 생각했던 이방인들이, 하나님 나라에 먼저 들어가는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부르심을 생각합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한 가지 부르심을 주셨습니다. “너는 복 그 자체가 되어서, 세상의 모든 민족이 너로 인해 창조주 하나님을 알게 되는 통로가 될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육신의 자손이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이 부르심을 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상속에 대해,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그 나라를 함께 다스리는 것에 대해, 오늘 본문 말씀처럼 1등이었으나 결국은 꼴찌가 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동일한 부르심을 주셨습니다. “너는 복 그 자체가 되어서, 나를 모르는 모든 사람들이, 너로 인해 창조주 하나님을 알게 되는 통로가 될 것이다.” 이 부르심 앞에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겉으로는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듯이 교회로 친구들을 데려올 수 있을 것입니다. 바베큐, 경품추첨, 선물,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질문에 적당히 대답해주는 것 등등. 이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죠? 그러나 여기서 멈추어버린다면, 헤롯 성전에 초청한 후에 정작 가장 중요한 지성소는 막아버리고 적당히 이방인의 뜰만 밟고 돌려보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슬라이드10)
우리의 부르심은 이방인의 뜰에 있는 예수를 모르는 친구들에게, 성전 뜰을 지나, 성소를 넘어, 지성소까지 가는 길을 열어주고 함께 그 길을 걸어가주는 것. 창조주시요 모든 민족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을, 마치 ‘자신들만의 소유물’인 것처럼 여겼던 유대인들이 예수께 호되게 질책당했던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만의’ 하나님이 아니다. 그 하나님은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기를 원하시고, 그들을 통해 예배 받기를 원하시고, 이를 위한 통로로 우리를 부르시고 선택하셨다.
친구초청주일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있는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다시 기억하며, 진심어린 초청의 말과, 마음 다한 환대로 이 시간을 준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