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3장 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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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 앞에서의 양심과 공적 책임

본문: 로마서 13장 1-7절

찬송: 460장 뜻 없이 무릎 꿇는

명절에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끼리 가장 이야기하기 힘든 주제가 정치이다. 모처럼 정답게 둘러앉은 밥상이나 오랜 벗들과의 모임에서조차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순식간에 얼굴을 붉히고 갈라서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세상은 편을 가르고, 불안한 미래와 경제적 어려움 앞에서 수많은 이들이 마음에 깊은 상처와 분노를 품은 채 살아간다. "이 나라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불안과 탄식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무거운 현실이다. 세상의 권력을 향해 무조건 고개를 숙여야 하는지, 아니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조건 비난하고 등을 돌려야 하는지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자주 깊은 혼란에 빠진다.
오늘 본문이 기록될 당시 로마 제국의 통치자는 잔혹하기로 악명 높은 네로 황제였다. 성도들의 생명과 재산을 언제든 빼앗을 수 있는 서슬 퍼런 칼날 아래서 사도 바울은 놀라운 선언을 던진다.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롬 13:1). 이 말씀은 인간 통치자를 맹목적으로 떠받들거나 불의에 침묵하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세상의 그 어떤 막강한 권력자도 스스로 선 자가 아니라, 역사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잠시 머무는 유한한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선언이다. 인간 권력은 영원하지 않으며, 창조주께서 세상의 무질서를 막기 위해 잠시 맡겨두신 질서의 도구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정권에 영혼을 빼앗기거나 권력의 변화에 일희일비하며 절망할 이유가 없다. 세상의 무대 뒤편에서 온 역사를 친히 이끄시는 분은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세상에 통치자를 세우시고 질서를 허락하신 목적은 무엇인가? 본문은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롬 13:4)라고 분명히 밝힌다. 통치자가 쥐고 있는 공권력의 칼은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거나 정적을 억압하기 위한 사적인 흉기가 아니다. 사회적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억울한 자가 없도록 공평한 정의를 세우며, 공동체의 평화를 지켜내라고 하나님께서 쥐여주신 거룩한 방패이다. 만약 지도자가 이 엄중한 책임을 망각하고 탐욕에 눈이 멀어 불의를 행한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꾼의 자리를 스스로 내던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위정자들을 대할 때 가장 먼저 취해야 할 태도는 분노와 조롱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청지기가 되도록 무릎 꿇는 일이다.
이어서 성경은 세상 질서를 대하는 성도의 가장 깊은 내면적 동기를 가르쳐준다.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롬 13:5). 세상 사람들은 경찰의 단속이 두렵거나 벌금을 물지 않기 위해 마지못해 법의 눈치를 본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형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맑은 양심 때문에 세상의 질서를 존중하고 순응한다. 이 보이지 않는 양심은 삶의 가장 구체적인 자리에서 실천으로 증명된다.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롬 13:7). 남들이 보지 않아도 세금을 정직하게 내고, 작은 교통 법규와 공공질서를 성실히 지키는 일상은 사소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자가 세상 한복판에서 드리는 살아 있는 예배이자 진정한 섬김이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만 갇혀 세상의 고통을 외면하는 무책임한 구경꾼이 아니다. 그렇다고 세상의 정치적 진영 논리에 휘둘려 이웃과 형제를 향해 독설과 저주를 쏟아붓는 선동가도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이면서, 동시에 이 땅의 평화를 가꾸어가는 책임 있는 시민이다. 세상이 험악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할수록 우리의 눈길은 세상 권세가 아니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한 밥상에 둘러앉은 가족과 오랜 벗을 미워하고 단죄했던 우리의 메마른 마음을 먼저 회개해야 한다. 인간의 손으로 세운 정권이나 제도가 세상에 온전한 구원과 영원한 안식을 가져다줄 수 없다.
이른 새벽, 우리는 세상의 소란한 목소리에서 벗어나 거룩한 기도의 제단 앞에 섰다.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위정자가 교만과 권력욕을 내려놓고, 가난하고 억울한 약자들을 섬기는 선한 도구가 되도록 우리는 눈물로 중보해야 한다. 더불어 우리가 살아가는 가정과 직장에서 거짓과 불의를 멀리하고, 정직과 배려로 이웃을 감싸 안는 평화의 전달자가 되어야 한다. 성경은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딤전 2:2)고 권면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롬 13:1). 이 엄숙한 부르심 앞에서, 헛된 분노를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한 양심으로 오늘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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