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913 청년교회
Notes
Transcript
16 여호야김의 아들들은 그의 아들 여고냐, 그의 아들 시드기야요
17 사로잡혀 간 여고냐의 아들들은 그의 아들 스알디엘과
18 말기람과 브다야와 세낫살과 여가먀와 호사마와 느다뱌요
19 브다야의 아들들은 스룹바벨과 시므이요 스룹바벨의 아들은 므술람과 하나냐와 그의 매제 슬로밋과
20 또 하수바와 오헬과 베레갸와 하사댜와 유삽헤셋 다섯 사람이요
역대기의 마지막 장면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조서를 내리는 장면입니다.
바벨론에 끌려와 있던 유다 백성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성전을 지으라고 허락하는 조서입니다.
이 조서로 칠십 년 포로 생활이 끝났습니다.
역대기가 이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역대기가 포로 생활이 끝난 뒤에 쓰였다는 뜻입니다.
언제인지는 오늘 본문이 더 좁혀 줍니다. 3장 19절에 성전을 완공한 스룹바벨이 나오고, 그 뒤로 24절까지 대략 여섯 세대가 더 이어집니다.
스룹바벨이 성전을 완공한 것이 주전 516년이니 백 년이 훌쩍 넘습니다.
9장 2절은 포로에서 돌아와 "그들의 땅 안에 있는 성읍에 처음으로 거주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름을 적는데, 느헤미야 11장과 거의 같은 명단입니다.
그러니까 역대기를 처음 읽은 사람들은 성전을 막 지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성전을 짓고 나서 백 년 가까이 지난 사람들, 할아버지가 성전을 지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백 년이 어떤 시간이었는지 알아야 이 족보가 읽힙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가난했습니다. 예루살렘은 폐허였고, 돌아온 사람은 오만 명 남짓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학개와 스가랴를 보내서 성전을 지으라고 하셨고, 약속도 주셨습니다.
12 곧 평강의 씨앗을 얻을 것이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산물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니 내가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리라
흉년이 그치고 땅이 살아난다는 약속이었습니다.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래서 그들은 지었습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가진 것을 내놓아서 지었습니다.
그리고 완공하던 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첫 성전이 완공되던 날을 이렇게 적어 두었습니다.
역대하 7장 1절입니다.
1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그날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고, 하나님의 영광이 눈에 보였습니다. 백성은 그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성전에는 불이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법궤도 없었습니다. 성전은 지어졌는데 하나님이 오셨다는 표시가 없었습니다.
짓는 동안에도 학개는 그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땅도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36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는데 곧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사 그것의 열매를 먹고 그것의 아름다운 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에서 우리가 종이 되었나이다
그리고 역대기와 거의 같은 시대의 책인 말라기에 그 시대 사람들의 말이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14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약속도 바뀐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신 것이 아닌가, 우리는 버림받은 것이 아닌가. 이것이 역대기를 처음 읽은 사람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이 사람들 앞에 역대기 저자는 아홉 장짜리 족보를 내놓습니다.
족보는 아담에서 시작합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변두리에서 작은 속주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너희 이야기가 창조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1장은 아담에서 아브라함으로, 아브라함에서 이스라엘로 좁혀지고, 2장은 유다에서 다윗으로 좁혀지고, 3장은 다윗의 집안입니다. 온 인류의 역사가 좁혀지고 좁혀져서 다윗의 집에 모입니다.
다윗의 집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는 17장이 말해 줍니다.
14 내가 영원히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이것이 이스라엘이 붙들고 살아온 약속이었습니다. 그 약속을 하실 때 하나님은 조건을 붙이지 않으셨습니다. 상황이 괜찮으면 지키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영원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3장을 읽어 내려가면 그 약속이 무너지는 자리에 이릅니다.
10절부터 16절은 다윗의 뒤를 이은 유다의 왕들이고, 16절에 여고냐가 나옵니다.
여호야긴이라고도 불리는 왕입니다.
열여덟 살에 왕이 되어 석 달을 다스리고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유다 왕조는 사실상 여기서 끝났습니다.
여고냐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가 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빼어
고니야는 여고냐의 다른 이름입니다.
인장반지는 왕이 문서에 도장을 찍을 때 쓰는 반지이고, 왕의 권한을 대신하는 물건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집을 그 반지처럼 손가락에 끼고 계셨는데, 그것을 빼어 던지겠다고 하셨습니다.
3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이 사람이 자식이 없겠고 그의 평생 동안 형통하지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예레미야는 여고냐를 가리켜 자식이 없는 사람처럼 기록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여고냐에게 실제로 자식이 없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자손 가운데 다윗의 왕좌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왕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역대상 3장 17절에 이르면 뜻밖의 장면이 나옵니다. 여고냐의 이름 뒤에 ‘앗실’이라는 말이 붙습니다. 이 말은 포로, 사로잡힌 자라는 뜻입니다. 왕이었던 여고냐가 이제는 포로 된 사람으로 기록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뒤에 그의 자손들의 이름이 이어집니다. 하나가 아니라 일곱입니다.
여고냐는 왕위를 잃었습니다. 예레미야의 말씀대로 그의 자손 가운데 다윗의 왕좌에 앉아 유다를 다스리는 왕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 끝났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왕위는 사라졌지만 계보는 이어졌습니다. 포로가 된 왕의 이름 뒤에 다시 아들의 이름이 이어지고, 그 계보는 스룹바벨에게까지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말씀도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여고냐는 왕위를 잃었고, 유다는 나라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약속까지 폐기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왕이 있던 나라에서 왕이 없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성전도 무너졌고 백성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그들의 상황에 따라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왕은 사라졌지만 약속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왕위는 끊어진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께서 이어 가시는 계보는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9절에 스룹바벨이 나옵니다. 성전을 지은 사람이고, 원독자들의 할아버지들이 따랐던 지도자입니다.
23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인장입니다. 예레미야에서 빼어 던지겠다고 하신 그 인장반지를, 하나님은 여고냐의 손자를 두고 다시 끼우겠다고 하셨습니다.
반지를 던지신 것도 하나님이고 다시 집으신 것도 하나님인데, 그 사이에 바뀐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상황이었습니다.
스룹바벨이 지은 성전은 초라했고, 불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족보는 스룹바벨에서 끝나지 않고 20절부터 24절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왕이 하나도 없는데 왕의 족보가 계속 적힙니다.
이 족보의 마지막 이름들은 원독자들과 같은 시대를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이 족보가 하는 말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신 약속은 지금도 진행 중이고, 그 줄은 너희가 살고 있는 오늘까지 와 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지 않아도, 땅이 아직 살아나지 않아도, 페르시아의 종으로 살고 있어도, 약속은 그대로다.
역대기 저자는 이것을 책의 마지막 장에서 한 번 더 말합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진 것을 두고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고 적고, 바로 다음 절에서 고레스의 조서를 두고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라고 적습니다.
무너뜨리실 때도 말씀을 이루신 것이고, 돌려보내실 때도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저자에게 역사는 상황이 약속을 바꾸는 자리가 아니라, 약속이 상황을 뚫고 하나씩 이루어져 가는 자리였습니다.
여기서 정직하게 말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망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하신 말씀을 믿었습니다.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고, 하늘이 이슬을 내리며, 이전보다 더 큰 영광이 임할 것이라는 말씀을 붙들고 성전을 다시 지었습니다. 그런데 성전을 완성하고 난 뒤 그들이 바라본 현실은 기대했던 모습과 달랐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믿었는데도 눈앞의 현실은 그 말씀과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으신 것은 아닌지 생각하는 것은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정직한 반응이었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그런 마음을 나무라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이 지금은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멈춘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족보를 펼쳐 놓고 보니, 끊어진 것처럼 보였던 자리마다 그다음 이름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왕이 사라진 자리에도 이름이 이어졌습니다. 포로가 된 자리에도 이름이 이어졌습니다. 나라가 무너진 자리에도 이름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역대기 저자는 그 이어지는 줄의 끝에 지금의 이스라엘 백성이 서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지금 눈앞에 약속의 성취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지금 멈춘 것처럼 보이는 것은 하나님이 약속을 버리셨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 그 약속의 모든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족보는 그 사실을 보여줍니다.
약속은 멈춘 것이 아닙니다. 아직 다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도 자신의 약속을 이어 가고 계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며 헌신했지만, 기대했던 결과를 보지 못한 경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 같아서 최선을 다했는데, 막상 시간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신 것은 아닌지, 내가 무엇인가 잘못해서 약속이 취소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생각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역대상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기록된 책입니다.
약속이 살아 있는지 확인하려면 오늘 내 눈앞에 있는 것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어 오신 전체를 보아야 합니다.
여고냐의 시대에 있던 사람은 다윗의 집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다음에 올 스룹바벨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 시간에도 다음 이름을 이어 가고 계셨습니다.
상황이 가장 어두웠던 그때에도 하나님의 약속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다음 걸음을 이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족보는 24절에서 멈추었지만, 하나님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1장 12절에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대상 3장의 이름이 다시 이어지고, 그 계보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이어집니다.
다윗에게 주신 영원한 왕위의 약속은 스룹바벨에게서 완성된 것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사람들이 기대한 때와 모습은 달랐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확실한지는 지금 내 눈앞에 약속의 내용이 보이느냐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누가 그 약속을 하셨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을 지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족보를 보니 하나님은 그 시간에도 한 번도 손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여고냐 다음에 스알디엘이 있었고, 스룹바벨이 있었고, 또 다음 이름들이 이어졌습니다.
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보이지 않는다고 약속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약속을 향해 일하고 계십니다.
역대기 저자가 원독자들에게 요구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너희가 그 약속의 줄에 서 있는 이스라엘이라면, 영광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족보는 단순히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너희가 누구인지 기억하고, 그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지금 그 줄의 어디쯤에 서 있는지 모릅니다. 여고냐의 자리일 수도 있고, 스룹바벨의 자리일 수도 있습니다. 이름만 기록되고 아무 설명도 없는 사람의 자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자리에 있든 한 가지는 같습니다. 그 줄은 아담에서 시작되어 그리스도에게까지 이어졌고, 하나님은 그 줄을 한 번도 놓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약속하신 하나님이 변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상황과 환경이 어떠하든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할 일은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믿고 다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약속에서 중요한 것은 약속의 내용이 아니라 약속의 주체다.
어떤 약속이냐보다 누가 약속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안타깝게도 약속의 주체보다 약속의 내용에 마음을 빼앗기곤 한다.
큰 몫 챙기게 해준다는 약속에 사로잡혀 속여 먹으려는 자들의 실체를 못 본다.
대박의 환상에 사로잡혀 모든 손해를 고객에게 고스란히 떠넘길 카지노나 복권 사업의 정밀한 구조를 생각하지 못한다.
성경은 우리를 사로잡는 것들을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요약한다.
성경이 이것들을 강조해서 경계하는 이유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약속하는 그것들이 우리 눈을 멀게 할 정도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약속의 주체가 누군가? 세상이다.
에덴에서 선악과를 보게 하고, 그것을 탐스럽게 여기게 하는 육체의 정욕과 보암직하게 하는 안목의 정욕, 그리고 하나님처럼 되려는 욕망을 갖게 하는 이생의 자랑으로 무너뜨리려 한 사탄이 약속의 주체이다.
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8:9-13
메시지 성경
내가 예언자들을 통해 하는 말에 귀 기울이는 너희여, 이 말의 의미를 분명히 알고 굳게 붙들어라. 만군의 하나님의 성전이 다시 세워졌다. 성전이 재건되는 중이다. 우리는 어려운 시기를 지났다. 전에 너희는 쥐꼬리만 한 돈을 벌기 위해 일했고, 그것도 운이 좋아야 손에 쥘 수 있었다. 거리가 위험해, 늘 경계하며 다녀야 했다. 내가 세상을 전쟁터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변했다. 이제 나는 살아남은 자들 편에 설 것이다.
파종과 수확이 다시 시작되고, 포도나무들이 포도열매를 맺을 것이다.
동산에 초목이 우거지고, 이슬과 비로 모든 것이 푸르러질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 전부를 그 이상을 얻을 것이다. 너희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들아, 지금까지는 너희가 저주받은 백성 취급을 받았지만, 이제 내가 너희를 구원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복받은 백성이 될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지금 일하고 있음을 굳게 믿어라.
10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