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다릅니다(롬1: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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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도입]
20세기 영미 철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무신론자가 있었습니다. 앤터니 플루라는 영국 철학자입니다. 그는 50년 넘게 "신이 있다는 증거가 나타나기 전까지 무신론이 기본값"이라고 주장하며, 수많은 토론에서 신앙을 논리로 무너뜨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2004년, 여든이 넘은 이 노철학자가 세상을 놀라게 하는 선언을 합니다. "나는 이제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DNA의 정교한 설계와 우주의 질서를 정직하게 들여다볼수록, 그 배후에 지성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평생 하나님을 부인하던 사람조차, 창조 세계가 증언하는 증거 앞에서는 끝내 "핑계할 수 없었습니다."
[본문 해석]
오늘 본문이 바로 그 이야기를 합니다. 18절,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왜 진노입니까? 사람들이 "불의로 진리를 막기" 때문입니다. 여기 "막는다"는 말은 진리를 힘껏 내리눌러 가둔다는 뜻입니다. 몰라서가 아닙니다. 알면서 눌러 버린 것입니다. 19-20절이 말하듯,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우리 속에 분명히 보이고 만드신 만물에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환히 드러나 있어서, "핑계하지 못할" 지경인데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타락은 어디서 시작되었습니까? 놀랍게도 21절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인류가 무너진 첫 단추는 무신론이 아니었습니다. 노골적인 우상숭배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감사하지 않은 것 —이었습니다. 감사가 멈추자 곧바로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합니다.
22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그리고 23절, 마침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감사 하나가 무너지니, 결국 창조주의 자리에 피조물이 올라앉았습니다.
[핵심 메시지]
그래서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감사를 잃은 마음은 반드시 우상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지만, 감사를 회복한 마음은 창조주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감사를 오해하기 쉽습니다.
요즘 세상도 감사 운동을 하고, 긍정적으로 살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적 감사는 단순한 긍정적 사고가 아닙니다. 긍정적 사고는 "Yes, I CAN"을 말하지만, 성경적 감사는 믿음으로 "Yes, JESUS CAN"을 고백합니다. 긍정적 사고가 자신감은 줄 수 있어도, 없는 능력을 만들어 내지는 못합니다.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다"는 그 확신이야말로, 22절의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의 현대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긍정적 사고가 아니라,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 속에서 그 무한한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절대 감사』를 쓰신 황성주 박사는 자신이 원래 감사가 참 힘든 사람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의사였기에 늘 병만 보였고, 학자였기에 모든 일의 인과를 따져야 직성이 풀렸으며, 자기 기준과 자기 의로 많은 사역자와 교회를 비판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스스로 지혜 있다"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깊이 만난 후,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인생을 바라보니, 그 나라는 절대 은혜와 절대 감사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절대 감사 운동을 일으키며 교회와 병원과 학교, 여러 선교 단체를 세우는 놀라운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감사는 긍정적 사고가 아니라 창조적 사고입니다. 감사할 때 우리는 문제를 문제가 아니라 축복의 기회로 보게 됩니다."
[결론 — 복음]
열왕기하 4장에 보면, 엘리사가 기근으로 먹을 것이 부족할 때, 자기 사환에게 선지자 제자들을 위해 국을 끓이게 합니다. 한 사람이 들에 나가 들호박 덩굴에서 열매를 따서 국에 넣어 먹게 되는데, 사람들이 외칩니다. 국에 독이 있습니다… 이 때 엘리사가 아주 평범한 밀가루를 솥에 넣습니다. 그러자 독이 사라집니다. 이 밀가루가 감사가 아닐까요? 일상의 감사는 죽게 하는 것들을 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썩지 않을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것과 바꾸었을 때, 하나님의 아들은 그 영광을 스스로 내려놓으시고 썩어질 우리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18절의 그 진노, 우리가 받아야 할 진노를 십자가에서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복음의 능력을 믿고 감사할 때 우리의 어두웠던 눈이 다시 창조주의 눈으로 열려, 문제를 축복의 기회로 보는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비판과 정죄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로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