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 교회를 통해 배워야 할 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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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데살로니가 교회를 통해 배워야 할 점들
본문 : 살전 4:16-17
(살전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For the Lord himself shall descend from heaven with a shout, with the voice of the archangel, and with the trump of God: and the dead in Christ shall rise first:
(살전 4:17)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Then we which are alive and remain shall be caught up together with them in the clouds, to meet the Lord in the air: and so shall we ever be with the Lord.
주님이 다시 오실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게 될 것이고,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구름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자의 복된 소망(blessed hope)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곧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모든 문제, 저의 모든 문제,
온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책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로부터 칠 년 뒤에 그분께서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적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살전 1:9) 그들이 직접 우리에 관하여 보여 주되 우리가 어떤 식으로 너희에게 들어갔는지 또 너희가 어떻게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For they themselves shew of us what manner of entering in we had unto you, and how ye turned to God from idols to serve the living and true God;
(살전 1:10)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그분의 아들께서 하늘로부터 오실 것을 기다리는지 보여 주나니 이분은 곧 다가올 진노로부터 우리를 건져 내신 예수님이시니라.
And to wait for his Son from heaven, whom he raised from the dead, even Jesus, which delivered us from the wrath to come.
데살로니가에 있는 믿는 성도들은 적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재림의 때를 보여주는 표적을 찾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구원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반복해서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재림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중요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통해 배워야 할 점들
고난 속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신앙의 본이됨)
데살로니가 교회는 박해와 반대가 극심한 한가운데서 세워졌습니다.
그 지역 사회는 복음의 메시지에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그 지역 사회는 그들의 도시에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지난 2000년 동안 복음에 우호적이지 않은 많은 도시에
교회를 세워주셨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박해 한 가운데서도 번창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신실했기 때문입니다.
(살전 1:6) 또 너희는 많은 고난 속에서 성령님의 기쁨과 더불어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따르는 자가 되었으니
And ye became followers of us, and of the Lord, having received the word in much affliction, with joy of the Holy Ghost:
“고난 속에서 … 말씀을 받아”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기억하십니까?(마13:18-23)
여러 종류의 씨가 땅에 뿌려지게 됩니다.
가시나무들 사이에 씨를 받은 자가 있고 돌밭 속에 씨를 받은 자가 있습니다.
돌밭 속에 씨를 받은 자는뿌리가 없어서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 곧 실족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는 데살로니가전서의 경우는 아닙니다.
씨가 뿌려졌고 말씀이 심겨졌습니다.
성도들이 마음에 말씀이 잘 심겨져 있어서 세상에서 핍박이 오고 있지만
그 말씀이 그들의 마음 속에 잘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살전 2:14) 형제들아,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따르는 자들이 되었나니 그들이 유대인들로부터 고난을 받은 것 같이 너희도 너희 지방 사람들로부터 비슷한 것들로 고난을 받았느니라.
For ye, brethren, became followers of the churches of God which in Judaea are in Christ Jesus: for ye also have suffered like things of your own countrymen, even as they have of the Jews:
지금도 우리는 사회로부터 박해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 박해가 닥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고민해 봐야 합니다.
(살전 3:3) 아무도 이런 고난들로 인해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런 고난들을 받도록 정해진 줄을 너희 자신이 아느니라.
That no man should be moved by these afflictions: for yourselves know that we are appointed thereunto.
(살전 3:4)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우리가 환난 당할 것을 참으로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되었고 너희가 그것을 아느니라.
For verily, when we were with you, we told you before that we should suffer tribulation; even as it came to pass, and ye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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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 1:6) 또 너희는 많은 고난 속에서 성령님의 기쁨과 더불어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따르는 자가 되었으니
And ye became followers of us, and of the Lord, having received the word in much affliction, with joy of the Holy Ghost:
여기 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갓난아기 같은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이들은 복음을 듣고 믿자마자 곧바로 고난 속으로 던져졌지만,
그들은 잘 해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그런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 닥치든, 성경은 여전히 진리이며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실 수 있습니다.
믿음의 행위,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
(살전 1:3)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눈앞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끊임없이 기억하기 때문이니
Remembering without ceasing your work of faith, and labour of love, and patience of hope in our Lord Jesus Christ, in the sight of God and our Father;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우리에 대해 그 세 가지(믿음의 행위,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살전 1:7) 그러므로 너희는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서 믿는 모든 자들에게 본이 되었느니라.
So that ye were ensamples to all that believe in Macedonia and Achaia.
이들은 구원받은지 몇 십년이 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바울과 함께 서 너 주를 보낸 것이 전부였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모범적인 기독교인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구원받은지 얼마 안되어서 주변 지역 사람들의 본보기가 됩니다.
(살전 1:8) 주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나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 울려 퍼졌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너희의 믿음이 모든 곳에 널리 퍼졌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노라.
For from you sounded out the word of the Lord not only in Macedonia and Achaia, but also in every place your faith to God-ward is spread abroad; so that we need not to speak any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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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 3:6) 그러나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를 떠나 우리에게로 와서 너희의 믿음과 사랑의 좋은 소식과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기억하여 우리가 너희를 보고자 하는 것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는 소식을 우리에게 가져왔으니
But now when Timotheus came from you unto us, and brought us good tidings of your faith and charity, and that ye have good remembrance of us always, desiring greatly to see us, as we also to se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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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 3:8) 너희가 주 안에서 굳게 서면 이제 우리가 사느니라.
For now we live, if ye stand fast in the Lord.
자 이 모든 것은 다 같이 연결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들은 고난 중에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구원을 받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다른 도시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그들은 굳게 서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범적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서신서에서 이들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것을 계속해서 기억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고난 가운데 번창할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그런 고난과 반대를 견뎌내고 번창 할 수 있었을까요?
성도들이 그들의 마음과 생각과 눈을 세상의 것에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소망을 위에 있는 것들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대신에 구원자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이 우리가 머물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붙들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의 시민이고, 우리는 나그네가 아니라 순례자라고 불립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세상의 일들에 얽매여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세상적인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보이는 이 세상 너머의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 뒤의 영원한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관심은 그분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지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과의 싸움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혼을 얻기 위한 싸움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의 싸움을 피하고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 싸움의 의미를 잘못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을 둘러싼 정치나 정부와의 싸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 정부가 그들에게 행한 일에 대해서 저항하거나
입장문을 밝힌 장면을 찾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 보이는 세상 너머 저 멀리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위에 있는 것들에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뿌리를 내리려고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복된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복된 소망이 주는 빛에 이끌려 살았던 것입니다.
도둑같이 임하는 주의 날
(살전 5:1) 그러나 형제들아, 그 때와 그 시기에 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But of the times and the seasons, brethren, ye have no need that I write unto you.
(살전 5:2) 주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이르는 줄을 너희 자신이 완전히 아느니라.
For yourselves know perfectly that the day of the Lord so cometh as a thief in the night.
바울은 그 때와 시기에 관해서는 전혀 알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그런지 사도행전 1장 6절에서 주님은 그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신의 권능에 두셨다고 하셨습니다.
오직 아버지 외에 그 어느 누구도
이 날과 때와 시기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둑이 언제 오는지 아십니까?
누구도 자신이 올거라는 생각하지 않을때 오는 것입니다.
도둑이 찾아 갔는데 집주인이 그것을 알고 있다면
그 도둑은 도독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시기와 시점에 대해 알려고 하는 노력을 멈추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우리와 상관없습니다.
(살전 5:8) 그러나 낮에 속한 우리는 정신을 차려 믿음과 사랑의 흉갑을 입고 구원의 소망을 투구로 쓰자.
But let us, who are of the day, be sober, putting on the breastplate of faith and love; and for an helmet, the hope of salvation.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성경 말씀에 비치어서 올바로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님이 언제 올지 알게 되었다면,
여러분의 구원이 지금보다 더 구원받은 상태가 될까요?
(살전 5:9)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노에 이르도록 정하지 아니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도록 정하셨느니라.
For God hath not appointed us to wrath, but to obtain salvation by our Lord Jesus Christ,
이 구절은 우리 몸의 구속(redemption of our bodies)을 말합니다.
내가 이 죽음의 몸에서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복된 소망입니다.
“우리를 진노에 이르도록 정하지 아니하시고”
지금 이구절은 하나님의 진노가 이 땅에 퍼푸어지는 일이 있겠지만,
그 하나님의 진노는 구원받은 성도들과는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휴거는 환난시기 보다 앞서서 일어나게 됩니다.
교회는 다니엘의 칠십 이레 혹은 야곱의 고난의 때와 상관이 없습니다.
성경은 구원받은, 거듭난 신약의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남아서 그 진노를 경험할 일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고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을 다시 집어보면 이렇습니다.
- 2절: 주의 날이 오고 있습니다.
- 3절: 그것은 멸망의 날입니다.
- 4절: 그것은 어둠의 날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 해당되지 않는 또 한 그룹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살전 5:8) 그러나 낮에 속한 우리는 정신을 차려 믿음과 사랑의 흉갑을 입고 구원의 소망을 투구로 쓰자.
But let us, who are of the day, be sober, putting on the breastplate of faith and love; and for an helmet, the hope of salvation.
우리의 소망은 주님의 날에 멸망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는 날이 된다는 것입니다.
(살전 5:9)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노에 이르도록 정하지 아니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도록 정하셨느니라.
For God hath not appointed us to wrath, but to obtain salvation by our Lord Jesus Christ,
구원받은 우리에게 주님의 재림은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라
구원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 11절에서 이 약속과 소망을 바탕으로 이렇게 하라고 합니다.
(살전 5:11) 그러므로 너희가 지금 하고 있는 것 같이 너희끼리 함께 위로하고 서로를 세우라.
Wherefore comfort yourselves together, and edify one another, even as also ye do.
우리가 지금 언급한 복된 소망에 근거해서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를 세워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휴거는 위로가 되는 소망입니다.
제가 여쭤보겠습니다. 어느 것이 더 위로가 됩니까?
다니엘의 칠십 이레 속으로 들어가서,
죽기 전에 그 21가지 환난 심판 중 일부를 경험할 것이라는 생각과
(당신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적그리스도의 등장 이전에 이 땅에서 사라진다는 것 중에
어는 것이 더 위로가 되십니까?
여러분이 성경 말씀에 접근한 방식이
여러분의 마음에 위로와 희망이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잘못 접근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 따르면
휴거는 다니엘의 70째주 이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살전 2:13) 이런 까닭에 우리가 또한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를 드림은 너희가 우리에게서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그것을 사람들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그 말씀이 또한 믿는 너희 안에서 효력 있게 일하느니라.
For this cause also thank we God without ceasing, because, when ye received the word of God which ye heard of us, ye received it not as the word of men, but as it is in truth, the word of God, which effectually worketh also in you that believe.
복된 소망에 대한 교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효과를 나타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할 일을 미루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내일 오실 수 있다는 것을 정말로 믿는다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모든 일을 미루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혼들을 구하려고 애쓰고,
교회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지옥이 있다는 것과, 오늘 죽을 수 있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이 사실을 믿고 있다면,
그 일이 오늘이라도 일어날 수 있음을 믿고 있다면,
그분 앞에 나타날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분주히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 전파에 분주해야 하는 이유
(살전 2: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환희의 관(冠)이 무엇이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 앞에 있을 바로 너희가 아니냐?
For what is our hope, or joy, or crown of rejoicing? are not even ye in the presence of our Lord Jesus Christ at his coming?
(살전 2: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For ye are our glory and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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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 4:17)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Then we which are alive and remain shall be caught up together with them in the clouds, to meet the Lord in the air: and so shall we ever be with the Lord.
우리는 복음 전파에 분주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수고로 구원을 얻게 된 사람들이
우리에게 환희의 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오시고 난 후에 우리는 모두 주님 앞에서 영원히 함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복음을 전해준 것에 대해 감사할 것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것에 대해 매우 감사할 것이고,
나 또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던 것에 대해 매우 감사할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무관심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데
더 담대할 수 있도록 해줄 것입니다.
언젠가 그분이 다시 오시는날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
우리가 복음을 전하며 수고한 일들일 것입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오실 때 많은 사람이
그분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런 상황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된 소망은 우리의 증인된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살전 3:12)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에게 행하는 것 같이 너희가 서로에게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많이 베풀고 넘치도록 베풀게 하시기를 원하노니
And the Lord make you to increase and abound in love one toward another, and toward all men, even as we do toward you: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교회에 나가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교회에 나가는 것 또한 축복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와우~~ 이게 가능할까요?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 경건한 것일 겁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쉽게 좌절하게 됩니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서 쉽게 화를 내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이 더욱 커지고 풍성해지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내면의 거룩함이 겉으로 드러나야
(살전 3:12)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에게 행하는 것 같이 너희가 서로에게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많이 베풀고 넘치도록 베풀게 하시기를 원하노니
And the Lord make you to increase and abound in love one toward another, and toward all men, even as we do toward you:
(살전 3:13) 이것은 그분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에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 앞에서 너희 마음을 거룩함 속에서 흠잡을 것이 없게 굳건히 세우시게 하려 함이라.
To the end he may stablish your hearts unblameable in holiness before God, even our Father, at the coming of our Lord Jesus Christ with all his saints.
성경은 내 마음에 더 많은 사랑을 가질수록
내 마음을 거룩함으로 세우는데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거룩함 속에서 흠잡을 것이 없게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룩함이란 여러분의 겉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함이란 여러분의 내면을 말하는 것이지만
이제 그 내면이 겉으로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이 거룩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설 것을 잊지 마십시오
(살전 3:13) 이것은 그분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에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 앞에서 너희 마음을 거룩함 속에서 흠잡을 것이 없게 굳건히 세우시게 하려 함이라.
To the end he may stablish your hearts unblameable in holiness before God, even our Father, at the coming of our Lord Jesus Christ with all his saints.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게 된다면
믿는 성도들에게 그 다음으로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게 되는 일입니다.
그 심판대에서 우리의 행위는 어떤 종류의 행위였는지 판가름 날 것입니다.
어떤 것은 금, 은, 보석처럼 통과할 것이고,
어떤 것은 나무, 건초, 지푸라기처럼 모두 타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 전체를 통틀어, 주님의 재림에 대한 이 소망은
우리의 삶을 순결하게하는데 영향을 미치도록 되어 있습니다.
(요일 3:3) 그분 안에서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분께서 순결하신 것 같이 자기를 순결하게 하느니라.
And every man that hath this hope in him purifieth himself, even as he is pure.
우리에게 의의 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딤후 4:8)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관(冠)이 예비되어 있나니 주 곧 의로우신 심판자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시리라.
Henceforth there is laid up for me a crown of righteousness, which the Lord, the righteous judge, shall give me at that day: and not to me only, but unto all them also that love his appearing.
그들은 의의 면류관을 얻습니다.
왜 의의 면류관을 받습니까?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적이고 육체적인 상태로 살다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이 다시 오신다는 것은
우리 마음을 거룩하게 세우는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서로 위로하고 세워주라
4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우리에게 위로를 가져다주는 소망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삶에서 직면하는 어떤 슬픔, 문제, 시련도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살전 5:11) 그러므로 너희가 지금 하고 있는 것 같이 너희끼리 함께 위로하고 서로를 세우라.
Wherefore comfort yourselves together, and edify one another, even as also ye do.
(살전 5: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감독하며 너희에게 훈계하는 자들을 알고
And we beseech you, brethren, to know them which labour among you, and are over you in the Lord, and admonish you;
(살전 5:13) 그들의 일로 인하여 사랑 안에서 그들을 매우 귀중히 여기라. 또 너희끼리 화목하게 지내라.
And to esteem them very highly in love for their work's sake. and be at peace among yourselves.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우리의 복된 소망에서
서로의 관계에 대한 구절들로 넘어갑니다.
9절에서
“우리는 진노에 이르도록 정해지지 않았고 구원을 얻도록 정해졌다”
는 말씀에서,
11절로 넘어오면서
“그러므로 서로 위로하라”는 전환이 보이십니까?
만일 우리가 서로 함께 있지 않다면,
이 말씀들로 서로 위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분은 12절에서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고 감독하고 훈계하는 자들을 귀중히 여기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14절에서 제멋대로 행하는 자들에게 경고하고
마음이 약한 자들을 위로하며 연약한 자들을 붙들어 주고
모든 사람에게 인내하라.
이것은 신약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입니다.
복된 소망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서로 묶어주는 방식이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오심이 가까워질수록,
성경은 우리가 서로를 더욱 필요로 한다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점점 우리를 필요로 합니다.
세상은 점점 악해져 가고 있고,
그들은 더욱 교회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는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소망에 대한 설렘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증인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일에 열심을 내지 않습니다.
세상을 향한 사랑을 갖는 일에 열정이 부족합니다.
거룩함에 대한 헌신을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휴거에 대한 믿음을 다시 환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사실에 대해 다시 흥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 신앙의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주님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분주하게 움직이도록
동기를 부여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데살로니가 교회에 주신 이 교훈은
우리의 삶에도 매우 실제적이고 적용되야 할 가르침 입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