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무너뜨린 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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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집을 무너뜨린 삼손
본문: 삿 16:28
(삿 16:28) 삼손이 주를 부르며 이르되, 오 주 하나님이여, 간구하옵나니 나를 기억하옵소서. 오 하나님이여 간구하옵나니 이번 한 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들이 내 두 눈을 뺀 것을 단번에 원수 갚게 하옵소서, 하고는 And Samson called unto the LORD, and said, O Lord GOD, remember me, I pray thee, and strengthen me, I pray thee, only this once, O God, that I may be at once avenged of the Philistines for my two eyes.
삼손의 이야기는 모든 인간의 시작처럼 그의 수태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아들이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말게 하라. 
죽은 시체에도 절대 가까이하지 말게 하라. 장례식에도 가지 마라.
그리고 그의 머리에 칼을 대지 말고 그냥 평생 내버려두라.
이 아이가 살아가는 내내, 자기 자신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며, 
하나님께 구별된 자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게 하라.” 
그래서 그들은 아이를 하나님께서 주신 원칙을 따라 양육했습니다.
부모의 기대만큼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은 삼손.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방인과의 결혼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삼손은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려고 내려갑니다. 
삼손은 들어가서는 안되는 포도원에 들어가고
만나서는 안될 블레셋 여인을 만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다음 장면에서 삼손이 사자를 죽이는 장면을 봅니다. 
나중에 삼손이 다시 그 길을 지나가다가
전에 죽였던 사자의 시체 안에 벌집이 생겨 있는 것을 보고
그 안에 손을 넣어 꿀을 퍼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죽은 시체에 손을 대서는 안 됐어요.
삼손은 가끔 잠깐씩 회개하고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기도 했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도 했습니다.
그 동기는 육적인 욕망이나 이기적인 목적이었습니다.
만지면 안 되는 나귀뼈를 이용해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기도 했습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이 사람은 올바른 일을 할 때조차도 내면은 왜곡되어 있었습니다.
삼손은 블레셋 여인의 설득에 넘어가 
자신이 하나님과 서약 관계에 있었고, 
머리가 잘리면 아무 힘도 쓸 수 없다고 말을 해 버립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머리를 그녀의 무릎에 얹고 잠들었습니다.
그녀는 그의 머리를 깎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사사기 16장에서 계속됩니다.
(삿 16:20) 그녀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을 덮치고 있느니라, 하매 그가 잠에서 깨며 말하기를, 내가 예전의 다른 때와 같이 나가서 내 몸을 흔들리라, 하였더라. 그는 주께서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And she said, The Philistines be upon thee, Samson. And he awoke out of his sleep, and said, I will go out as at other times before, and shake myself. And he wist not that the LORD was departed from him.
그를 보호하고 지켜주시던 하나님의 마지막 손길도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삿 16:21) ¶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들을 빼고 그를 가자로 데리고 내려가 놋 족쇄로 결박하니 그가 감옥 집에서 맷돌을 돌리니라. ¶ But the Philistines took him, and put out his eyes, and brought him down to Gaza, and bound him with fetters of brass; and he did grind in the prison house.
삼손에게 정말로 끔찍한 일 두 가지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눈이 멀고, 적들의 노예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는 짐승같은 존재가 되어 그저 맷돌을 돌리는 바퀴를 따라 
빙빙 돌고 있는 비참한 상태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서 알 수 있지만, 
이 상태가 된 것은 하나님이 만든 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도 삼손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건 삼손이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가볍게 여긴 결과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혹시 여러분 가운데 아직 구원받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여러분의 유일한 소망은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여러분이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먼저 가장 처음 주어진 희망부터 붙잡고
하나님을 탓하는 것과 다른 사람과 환경을 탕사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삼손은 자기가 이런 처지에 빠진 게 다 자기 책임이라는 걸 알아야 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삶의 시작이 굉장히 힘들었던 분들도 있고, 
지금 이순간 인생에서 끔찍한 일을 겪은 사람들도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을 그 어려움 속에서 건져내실 분은 하나님 뿐입니다. 
여러분에게 새로운 삶을 주실 분도 하나님 뿐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이런 죄의 노예가 된 건 저 사람 때문이야, 저 상황 때문이야”
이런 식으로 합리화하는 걸 멈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인생을 
의미 있게 바꾸실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삿 16:22) 그러나 그의 머리를 민 뒤에 그의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Howbeit the hair of his head began to grow again after he was shaven.
“그러나”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의 눈을 뽑고 끌고가서 놋줄에 묶고,
맷돌을 돌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수 없지만, 
삼손의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해서
어느 정도 자라게 된 것입니다. 
(삿 16:23) 그때에 블레셋 사람들의 귀족들이 함께 모여 자기들의 신 다곤에게 큰 희생물을 드리고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신이 우리의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주었다, 하였기 때문이더라. Then the lords of the Philistines gathered them together for to offer a great sacrifice unto Dagon their god, and to rejoice: for they said, Our god hath delivered Samson our enemy into our hand.
다곤을 섬기는 사람들
블레셋 사람들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창조주가 아닌, 
전혀 다른 신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신 다곤에게 큰 희생물을 드리고 즐거워하였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은 참되신 하나님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우주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계셨지만,
그들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구속자 되신 하나님이 계셨지만,
그들은 여전히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여러분의 아내나 남편 그리고 가족
그리고 이웃을 교회로 오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월드컵 경기로 
가수 공연으로 기뻐하고 들떠있는데
여러분은 기쁨이 없는 모습으로 교회에 가자고 말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신이 우리의 원수인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주었다!”
삼손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가장 큰 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를 보세요.
그는 이제 블레셋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은 진짜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다곤(Dagon)이 진짜 신이라는 근거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믿음을 잃어가고 있다면,
여러분이 주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잃어버렸다면, 
즉시 하나님의 제단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당신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갈망을 잃어버렸다면,
그것을 회개하고, 가능한 한 빨리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잡으십시오.
왜냐하면 이 세상은 당신을 증거로 삼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삿 16:24) 또 백성들도 그를 보고 자기들의 신을 찬송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나라를 파괴하고 우리 중의 많은 사람을 죽인 우리의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넘겨주었다, 하였기 때문이더라. And when the people saw him, they praised their god: for they said, Our god hath delivered into our hands our enemy, and the destroyer of our country, which slew many of us.
그들은 삼손을 끌어내어 조롱하고 비웃으며 실컷 즐기려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감옥에서 삼손을 불러냈고, 
그들은 그를 두 기둥 사이에 세웠습니다.
정말 감사한 것은, 성경이 그 장면을 상세히 묘사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 세상은 그렇습니다.
당신을 죄로 묶고, 인생 밑바닥까지 끌고 내려간 다음에도, 
당신을 불쌍히 여기지 않습니다.
진짜 하나님을 버리고, 거짓 신을 섬기는 사람들 곁으로 간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삿 16:25)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그들이 이르되, 삼손을 불러 그가 우리를 위해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감옥 집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그가 그들을 위해 재주를 부리니라. 그들이 기둥들 사이에 그를 세우니 And it came to pass, when their hearts were merry, that they said, Call for Samson, that he may make us sport. And they called for Samson out of the prison house; and he made them sport: and they set him between the pillars. (삿 16:26) 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내가 이 집을 지탱하는 기둥들을 더듬어 찾아서 그것들에 기대도록 허락하라, 하니라. And Samson said unto the lad that held him by the hand, Suffer me that I may feel the pillars whereupon the house standeth, that I may lean upon them.
삼손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정확히 모르고,
누군가의 인도가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곳은 거대한 장소, 거대한 축제의 공간이었습니다.
소년은 그를 건물을 지탱하는 두 기둥 사이로 데리고 갑니다.
(삿 16:27) 이제 그 집에는 남자와 여자가 가득하였으며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귀족도 거기 있었고 지붕에도 삼천 명가량의 남자와 여자가 있었는데 그들이 삼손이 재주 부리는 것을 보더라. Now the house was full of men and women; and all the lords of the Philistines were there; and there were upon the roof about three thousand men and women, that beheld while Samson made sport.
(삿 16:28) 삼손이 주를 부르며 이르되, 오 주 하나님이여, 간구하옵나니 나를 기억하옵소서. 오 하나님이여 간구하옵나니 이번 한 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들이 내 두 눈을 뺀 것을 단번에 원수 갚게 하옵소서, 하고는 And Samson called unto the LORD, and said, O Lord GOD, remember me, I pray thee, and strengthen me, I pray thee, only this once, O God, that I may be at once avenged of the Philistines for my two eyes.
그때, 삼손이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가 여덟 살 때 아니면 스무 살때라도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했더라면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들릴라가 "당신의 힘이 어디서 나는 것이냐"고 물었을 때, 
그때라도 주님을 불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국 하나님의 이름을 조롱거리로 만들었습니다.
이미 자신의 신앙적 간증(증언)은 망가졌습니다.
이제 와서 주님을 부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은혜의 하나님
(삿 16:29) 그 집을 지탱하며 받쳐 주던 두 개의 중간 기둥을 하나는 왼손으로 다른 하나는 오른손으로 붙잡고 And Samson took hold of the two middle pillars upon which the house stood, and on which it was borne up, of the one with his right hand, and of the other with his left. (삿 16:30) 이르되, 나를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게 하소서, 하며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던 귀족들과 온 백성을 덮치니 이처럼 그가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 많았더라. And Samson said, Let me die with the Philistines. And he bowed himself with all his might; and the house fell upon the lords, and upon all the people that were therein. So the dead which he slew at his death were more than they which he slew in his life.
믿기지 않겠지만, 그 수많은 죄와 잘못들에도 불구하고, 
눈이 멀고 수치심에 가득 찬 상태에서, 그가 하나님을 찾았을 때,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셨고, 응답하셨고, 그를 도우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이고 긍휼입니다.
'오래 참으심', '인자하심',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시는 방식입니다.
예수님께 베드로가 물은 적이 있습니다.
“주여, 어떤 사람이 나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용서를 구하면, 
제가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물론 용서해야지”라고 대답하시자, 베드로가 말합니다:
“그럼, 일곱 번이면 괜찮을까요?”
(아마도 베드로가 생각하기에 그것이 자신의 최대치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 까지라도 용서하라.”
하루에 490번 말입니다.
과거의 일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도,
20년, 30년, 40년, 50년 전의 일들을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 일들이 여전히 당신을 괴롭히고 있는 경우가 있을 겁니다. 
세상에는 당신이 과거에 했던 일들을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정중하게 사과하고, 
이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해도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삼손이 불태운 밭의 주인인 블레셋 농부가,
그에게 호의적으로 대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삼손이 전 장인의 집안 사람들을 죽인 것 때문에 
고통받았던 블레셋 가족들이, 그를 용서할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당나귀 턱뼈 하나로 아들들과 아버지들을 죽인 그 광기를 목격한 사람들은,
“삼손, 너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줄게”라고 말할 리 없습니다.
사실, 삼손의 인생 전체에서 그를 돕고자 했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두 기둥에 몸을 기대며 말합니다:
“하나님, 제발... 제발 저를 들으소서. 이번 단 한 번만이라도…”
“저는 그렇게 살았지만, 그렇게 죽고 싶진 않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하나님을 거역해왔던 삼손의 기도 소리를,
하나님은 들으셨습니다.
정말 놀라운 하나님이십니다.
자비롭고, 친절하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삼손이 한 모든 잘못을 변명하지도 않으셨고,
그의 죄를 정당화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모든 잘못을 성경에 하나하나 기록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 동일한 하나님은 그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그 모든 허물을 순간에 씻어주실 수 있습니다.
단지 당신이 겸손해져서 그분의 이름을 부르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그건 구약 이야기잖아요. 너무 무리한 해석 아냐?”
그럴 수도 있죠.
그러면 누가복음 23장으로 가봅시다.
평생 도둑질만 하며 살아온 한 범죄자가 십자가형에  끌려 나옵니다.
그와 함께 또 다른 죄수도 끌려나왔고, 
그들 사이에는 ‘예수님’이 못 박혀 계셨습니다.
그날 군중들은 이 장면을 단지 '구경거리'로 보고 있었습니다.
두 명의 평생 범죄자들이 십자가형으로 죽어가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죽어가면서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조롱하고, 욕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정말 비참한 삶의 방식이고, 더 비참한 죽음의 방식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바로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성경 누가복음 23장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눅 23:39) ¶ 매달린 범죄자 중의 하나는 그분을 욕하며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이거든 네 자신과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 And one of the malefactors which were hanged railed on him, saying, If thou be Christ, save thyself and us.
그 시대에, 로마 정부 같은 잔혹한 정권조차 
어떤 사람을 사형에 처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사람은 정말 말도 안 되게 타락한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죄인 하나가, 십자가에 달려 예수님을 욕합니다.
이 말은 곧, 
“예수, 당신은 내게 아무것도 해 준 적이 없고, 
지금도 아무것도 안 해주고 있어. 당신이 진짜라면 나 좀 살려봐!”
이건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기밖에 모르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이 그를 꾸짖습니다.
(눅 23:40) 다른 하나는 되받아서 그를 꾸짖으며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But the other answering rebuked him, saying, Dost not thou fear God, seeing thou art in the same condemnation?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린 곧 하나님 앞에 서야 해.”
그는 죽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정말로 “내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걸 두려워했습니다.
(눅 23: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합당한 보응을 받으니 참으로 공정하게 정죄를 받거니와 이 사람은 아무 잘못도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고 And we indeed justly; for we receive the due reward of our deeds: but this man hath done nothing amiss.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겁니다:
“나는 죽을 만한 죄를 지었고, 이 죽음은 당연하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앞에 서는 게 두렵다.”
왜 오늘날 구원받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을까요?
왜냐하면 많은 설교자들이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을 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강도는 평생을 감옥과 범죄 속에서 살았고,
지금은 십자가형이라는 가장 무거운 형벌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이 형벌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두렵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눅 23:42) 예수님께 이르되, 주여, 주께서 주의 왕국으로 들어오실 때에 나를 기억하옵소서, 하매 And he said unto Jesus, Lord, remember me when thou comest into thy kingdom.
만약 당신의 성경에서 ‘주여’(Lord)라는 단어가 빠져 있다면,
당장 진짜 성경으로 바꾸시길 바랍니다.
그는 예수님을 ‘주’로 인정하며, 그분의 왕국이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요청했습니다:
“주님, 주님이 왕으로 오실 때 저를 기억해 주세요.”
그는 또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다. 내가 유죄지, 예수님은 무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다. 그분은 주님이시다.”
그는 또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이 십자가에서 죽으실지라도,
이것이 결코 그분의 끝이 아니다.
그분은 다스릴 왕국을 가지고 계신다.”
이 강도는 예수님의 죽음, 장사됨, 부활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직 죽기 전이었지만, 그 복음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10:13)
솔직히 말해,
그가 지은 죄가 너무 심각해서 사형을 받을 정도라면,
아무도 그를 용서하라고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이며,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요,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이 사람은 침례를 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십일조를 낼 수도 없었습니다.
교회에 가입할 수도 없었습니다.
선한 일을 하나도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곧 죽기 직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주의 왕국에 임하실 때 저를 기억하소서.”
(눅 23:43)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And Jesus said unto him, Verily I say unto thee, To day shalt thou be with me in paradise.
삼손은 인생의 마지막 날에 이르러, 
육신적이고 비참했던 4장 분량의 인생을 살아온 후에도,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강도는 범죄와 폭력, 타락의 삶을 살다가도 
단 한 오후 만에 낙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구원하십니다!” 
우리는 단순히 “예수님이 당신을 더 나은 삶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모든 문제를 (당장)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말합니다:
“예수님은 구원하신다.”
왜냐하면,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았든지,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을 어떻게 낭비했든지 간에,
그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라도 당신이 겸손히 주님을 부르면,
그분은 기꺼이 당신을 구원하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 중 혹시
“그냥 지금처럼 살다가, 죽기 직전에 주님을 부르면 되겠네.”
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삼손은 자기가 죽을 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축제 잔치에 있던 블레셋 사람 3,000명은
자신들이 그날 죽을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생각보다 죽음은 훨씬 더 갑작스럽고, 
훨씬 더 심각하게 올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오늘, 바로 지금 주님을 부른다면,
단 하루 만에 주님은 그 모든 것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
이미 잘못된 관계에 들어섰다면.
여러분은 어쩌면 삼손처럼 이미 블레셋 소년이나 소녀와 어울려 
잘못된 관계를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가지 말아야 할 포도밭까지 가봤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멈추고, 주님을 부르기만 하면,
당신의 남은 인생을 완전히 바꾸실 수 있습니다.
삼손은 마지막 날에 했던 일을,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든 할 수 있었습니다.
시력을 잃을 필요도, 죄수로 묶일 필요도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늦지 않게 빠져 나올 수 있습니다. 
당신이 무엇에 빠져 있든, 
스스로 빠져나올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가능하십니다.
얼마나 멀리 잘못된 길로 갔는지 상관없습니다.
만일 돌아가는 방법을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저 주님을 부르십시오.
욥기 14장을 펴보세요.
(욥 14:7) 나무에게 소망이 있나니 그것은 베일지라도 다시 움이 돋아 그것의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For there is hope of a tree, if it be cut down, that it will sprout again, and that the tender branch thereof will not cease.
(욥 14:8) 그것의 뿌리가 땅 속에서 오래되고 그것의 줄기가 흙 속에서 죽을지라도
Though the root thereof wax old in the earth, and the stock thereof die in the ground;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 눈에는 끝나 보일지라도, 나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
(욥 14:9) 물 냄새에 싹을 내고 초목처럼 가지들을 낼 것이로되 Yet through the scent of water it will bud, and bring forth boughs like a plant.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상황이 다 끝난 것처럼 보이는구나.”
지나가는 사람마다 그렇게 말합니다. "이제 다 끝난 것 같네."
이 땅을 사는 사람마다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환영합니다! 저 쓸모없는 오래된 그루터기는 뽑아 버리세요."
그러나 하나님은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그 뿌리 중 하나라도, 땅 아래로 살짝 스며든 물기와 접촉만 할 수 있다면,
나는 그 전부를 다시 살려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삼손이 마지막 순간에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들으셨고,
강도도 마지막 순간에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들으셨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망치며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이 많으셔서 
죽음 속에서도 생명을 피워내고 싶어 하십니다.
할렐루야! 그분은 정말 놀라우신 분입니다.
삼손이 얼마나 엉망으로 살았든 간에,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룬 일이 그가 평생 동안 한 일보다 더 크다.”
당신이 지금 남아 있는 그 시간을 예수님께 드린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전체보다 더 큰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과거가 당신의 미래를 빼앗도록 놔두지 마세요.
오늘, 주님의 이름을 부르세요.
그리고 그분께서 당신에게 새로운 삶을 주시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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