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913 효신교회 중고등부 설교문(25과)

하나바이블 6과정 2학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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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혼자서 NO! 함께 YES!!

도입

여러분, 혹시 ‘주인공 증후군’이라는 말 들어본 적 있어요?
영어로는 Main Character Syndrome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하면 내가 꼭 영화 주인공인 것처럼 사는 거예요.
내 기분이 좋으면 좋은 하루고, 내 기분이 나쁘면 다 마음에 안 들고, 사람들도 다 내 기준에 맞춰줘야 할 것 같고, 내가 원하는 대로 풀려야 행복한 그런 마음이요.
요즘 SNS 보면 이런 말들 참 많이 보이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 “네 행복이 제일 중요해.” “남 눈치 보지 말고 너 자신을 위해 살아.”
근데 선생님이 오늘 여러분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내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 그 자체는 전혀 나쁜 게 아니에요.
하나님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정말 귀하게 여기세요.
여러분은 그냥 아무렇게나 태어난 사람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지으셨고,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이름을 부르신 사람들이에요.
근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돼요.
‘내가 소중하다’는 마음이 어느 순간 ‘나만 소중하다’는 마음으로 슬쩍 바뀔 때가 있거든요.
그때부터 내가 중요하니까 다른 사람은 좀 덜 중요해지고, 내가 힘드니까 다른 사람 힘든 건 잘 안 보이고, 내가 손해 보기 싫으니까 누굴 돕는 것도 귀찮아져요.
신앙도 은근히 그렇게 될 수 있어요.
“하나님, 이번 시험 잘 보게 해주세요.” “하나님, 제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게 해주세요.” “하나님, 저 힘들지 않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 자체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에요. 선생님도 그렇게 기도할 때 많아요.
근데 만약에 내 신앙이 계속 ‘하나님을 통해서 내가 원하는 걸 얻어내는 것’에만 머물러 있으면 어떨까요.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 것조차 나를 위한 도구가 돼버릴 수 있어요.
오늘 예수님이 들려주신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바로 이 문제를 우리한테 보여줘요.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 이거 하나만 마음에 담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중심에 내가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 사랑 안에서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C1. 신앙까지 나를 위한 도구로 만들지 말아요

오늘 본문에 강도 만나서 쓰러진 사람이 나와요.
그 옆으로 사람들이 지나가요.
먼저 제사장이 지나가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사람들한테 존경받는 사람이었을 거예요.
근데 쓰러진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가요.
레위인도 지나가요. 이 사람도 성전에서 하나님 섬기던 사람인데, 역시 그냥 지나가버려요.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알게 되는 게 있어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저절로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제사장도 레위인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지만,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게 남아있을 수 있었던 거죠.
당시에 그 사람들은 자기의 정결함,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지키는 걸 더 중요하게 여겼대요.
결국 고통받는 이웃보다 ‘나의 경건’, ‘나의 일’, ‘나의 유익’이 앞섰던 거예요.
이거 오늘 우리한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어떤 학생이 시험 앞두고 진짜 열심히 기도해요.
“하나님, 이번 시험 잘 보게 해주세요. 꼭 좋은 점수 받게 해주세요.”
시험이 끝났는데 생각보다 점수가 잘 나왔어요. 그럼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너무 기뻐해요.
근데 반대로 점수가 안 나왔어요. 그럼 “하나님, 왜 제 기도 안 들어주셨어요?” 하면서 서운해해요.
시험 앞두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거, 정말 좋은 일이에요.
근데 만약 내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오직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라면 어떨까요.
하나님이 좋은 걸 주시면 좋은 하나님이고, 안 주시면 나쁜 하나님이 되는 거예요.
그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게 아니라, 내 인생 목적 이루기 위한 도구로 쓰는 게 돼버려요.
여러분, 신앙은 그런 게 아니에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하나님이 나한테 필요한 걸 주시기 때문만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배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나도 내 삶을 주님께 드리는 거고요.
그래서 오늘 우리 자신한테 한번 물어봤으면 좋겠어요.
“나는 하나님을 정말 하나님으로 사랑하고 있나?”
“아니면 하나님을 통해서 내가 원하는 것만 얻으려고 하고 있나?”
하나 더 물어볼게요.
“나는 교회에서도 나만 생각하고 있진 않나?”
예배가 내 마음에 들면 나오고, 재밌으면 나오고, 원하는 게 있으면 함께하고, 조금 불편하거나 힘들면 뒤로 물러나는 건 아닌지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내가 뭘 얻을까’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쓰실까’를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C2. 나의 중심에서 내려와 너를 바라봐요

근데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사람이 등장해요. 사마리아 사람이에요.
그때 유대인이랑 사마리아인은 사이가 정말 안 좋았어요.
근데 이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을 봤어요. 성경이 그러죠, 그 사람이 “불쌍히 여겼다”고요.
이 ‘불쌍히 여겼다’는 말은 그냥 “아, 안됐네” 하고 지나가는 정도가 아니에요.
그 사람의 아픔을 자기 마음으로 그대로 느끼는 거예요.
그래서 사마리아인은 멈춰요.
상처를 돌봐주고, 자기 짐승에 태우고, 주막까지 데려가고, 자기 돈을 써요.
거기다 필요한 비용까지 다 책임지겠다고 해요.
이 사람은 자기 여행 일정도, 돈도, 안전도 다 계산하기보다 고통받는 사람한테 자기 자신을 내어준 거예요.
왜 그랬을까요. 자기가 세상의 중심에서 내려왔기 때문이에요.
자기 시간보다 저 사람 생명이 중요했고, 자기 돈보다 저 사람의 필요가 중요했고, 자기 편안함보다 저 사람을 살리는 게 중요했던 거예요.
예를 하나 더 들어볼게요.
쉬는 시간에 친한 친구가 갑자기 와서 “나 오늘 좀 힘들어” 그래요.
근데 여러분은 다른 친구들이랑 만나기로 한 상황이에요. 지금 얘기 들어주면 약속 시간도 늦고, 놀 시간도 줄어들어요.
그래서 그냥 “왜, 무슨 일인데” 한마디만 하고 빨리 자리 뜰 수도 있어요.
근데 어떤 친구는 그 자리에 앉아서 이렇게 말해요.
“괜찮아, 무슨 일인데. 나한테 얘기해도 돼.”
그리고 한참을 들어줘요. 특별한 해결책을 못 줄 수도 있어요.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뿐일 수도 있어요.
근데 그 친구한테는 그게 정말 큰 사랑이 될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 순간만큼은 ‘내 시간이 중요해’가 아니라 ‘네가 힘든 게 중요해’라고 선택한 거니까요.
이게 바로 오늘 사마리아인이 우리한테 보여준 모습이에요.
사랑은 마음속으로만 “저 친구 참 안됐네”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사랑은 나의 중심에서 한 걸음 내려와서 다른 사람의 자리로 가는 거예요.
우리는 이걸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어요.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어요. 우리를 위해 십자가 지실 이유가 없으셨어요.
근데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내어주셨어요.
우리가 먼저 예수님을 사랑해서 십자가를 지신 게 아니에요. 우리가 뭘 드렸기 때문도 아니에요.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어요. 이게 복음이에요.
그래서 십자가의 은혜를 정말 아는 사람은 “나만 잘되면 돼” 하고 살 수가 없어요.
내가 받은 사랑을 알기 때문에, 그 사랑을 다른 사람한테도 흘려보내게 돼요.
오늘 외울 말씀, 갈라디아서 6장 2절 같이 기억해볼까요.
갈라디아서 6:2 NKRV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우리한테 혼자서 다 짊어지라고 하지 않으세요.
서로의 짐을 지라고 하세요. 이게 그리스도인의 삶이에요.

C3. 우리는 혼자 떨어진 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예요

세상은 계속 우리한테 말해요.
“너 자신을 위해 살아.” “네가 제일 중요해.” “네 행복이 가장 중요해.”
근데 성경은 우리한테 조금 다르게 말해요.
“너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돼 있어요.
고린도전서 12장 26절 보면, 한 지체가 고통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함께 즐거워하는 공동체 얘기가 나와요.
고린도전서 12:26 NKRV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교회는 ‘각자 하나님 믿고 각자 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에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예요.
그래서 누가 아프면 함께 아파하고, 누가 힘들면 함께 짐을 지고, 누가 넘어지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거예요.
선생님은 우리 중고등부를 생각하면 이 말씀이 더 마음에 와닿아요.
지금 우리 중고등부에는 예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여섯 명의 친구들이 있어요.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근데 동시에 우리가 마음에 품고 기도해야 할 친구들도 있어요.
지금 예배 자리를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있는 네 명의 친구들이요.
그 친구들을 생각할 때 “왜 안 나오지” “왜 저렇게 됐지” “이제 안 오는 건가” 이렇게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친구들도 우리 친구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소중한 영혼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먼저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저 친구가 먼저 돌아오면 그때 사랑해줘야지”가 아니에요.
우리가 먼저 다가가는 거예요.
문자 한 통이면 충분해요.
“잘 지내?” “요즘 어떻게 지내?” “보고 싶다.” “이번 주에도 너 위해 기도하고 있어.”
이 정도 말이면 충분할 수 있어요. 뭔가를 강요하지 않아도 돼요. 교회 당장 나오라고 몰아붙이지 않아도 돼요.
그냥 “나는 너를 잊지 않았어”, 그 마음만 전해줘도 돼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으니까요.

적용

오늘 말씀 정리해볼게요.
개인주의는 우리한테 계속 말해요. “너만 생각해.”
근데 복음은 우리한테 말해요. “너는 혼자가 아니다.”
개인주의는 “네가 손해 보면 안 돼”라고 말해요.
근데 십자가는 “예수님이 너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다”고 말해요.
개인주의는 “내가 중심이야”라고 말해요.
근데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중심이시다”라고 말해요.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 시선도 조금씩 달라져야 해요.
나만 보던 눈이 다른 사람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내가 힘든 것만 생각하던 마음이 친구의 힘든 모습도 볼 수 있어야 해요.
내가 받는 것만 생각하던 신앙이, 내가 무엇을 나눌 수 있을지 생각하는 신앙으로 자라가야 해요.
이번 한 주, 이거 한번 실천해봤으면 좋겠어요.
내 눈에 보이지 않던 이웃 한 사람을 찾아보는 거예요.
학교에서 혼자 있는 친구일 수도 있고, 우리 반에서 별로 관심받지 못하는 친구일 수도 있고, 평소에 내가 별로 신경 안 쓰던 친구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우리 중고등부에서는 특별히 지금 예배 자리를 잃어버린 친구들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여섯 명이 우리끼리만 친하고 좋은 공동체가 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 명이라도 더 품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그 친구들의 구원자가 될 수는 없어요. 그 친구를 변화시키는 분도 우리가 아니에요. 그건 오직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에요.
근데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그 친구한테 사랑을 보여주실 수는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한번 손을 내밀어봐요.
사마리아 사람이 길에 쓰러진 사람한테 다가갔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리에서 한 걸음 다가가봐요.
이번 한 주, 이 말 기억합시다.
“혼자서 No! 함께 Yes!”
나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의 짐을 지는 사람.
내가 중심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이웃을 바라보는 사람.
그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 여섯 명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합심기도

기도로 나아가겠습니다
이제 말씀 붙들고 같이 기도할게요.
오늘 말씀 들으면서 우리 안에도 ‘나만 생각했던 마음’ 있었다는 거,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내려놓았으면 좋겠어요.
“하나님, 내가 내 삶의 중심에 서려고 했습니다.
내가 편한 것만 생각했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조차도 나의 필요를 채우는 분처럼 생각했습니다.”
이 마음을 하나님께 내려놓읍시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나를 먼저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 기억합시다.
“주님, 내가 받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해주세요.
내 주변의 친구를 돌아보게 해주세요.
내가 먼저 손 내밀게 해주세요.
서로의 짐을 지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특별히 지금 예배 자리를 잃어버리고 있는 친구들을 하나님께 맡겨드립시다.
우리가 그 친구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그 마음을 만져주시고 다시 예배의 자리로 불러주시도록 기도합시다.
그리고 우리 여섯 명이 좋은 친구들끼리만 모이는 공동체가 아니라,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고 품을 수 있는 공동체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선생님이 먼저 기도 제목을 짧게 말씀드릴 테니까,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할게요.
“주님, 나 중심의 마음을 내려놓고 예수님 중심으로 살게 해주세요.”
“주님, 서로의 짐을 지며 사랑하게 해주세요.”
“주님, 예배의 자리를 잃어버린 우리 친구들을 다시 품어주세요.”
이 제목들 가지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우리 가운데 역사하여 주옵소서.

마침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불러주시고 귀한 말씀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돌아보게 하시고,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보여주신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의 이웃을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는 때때로 내가 편한 것만 생각하고, 내가 원하는 것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는 무관심할 때가 많았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우리의 필요를 채우는 수단처럼 생각했던 모습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이러한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의 마음과 시선의 중심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세워주옵소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처럼 서로의 짐을 지며 살아가게 하시고, 우리 주변의 어려운 친구들을 외면하지 않게 하시며, 작은 것이라도 먼저 사랑을 실천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하나님께 정성껏 드린 예물도 받아주시고, 드려진 손길마다 복을 더하여 주시며, 이 예물이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귀하게 사용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 늘 기도하며 묵묵히 사랑으로 섬겨주시는 선생님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선생님들의 수고와 눈물과 기도를 아시는 주님께서 힘과 위로를 더하여 주시고, 우리 아이들을 사랑으로 잘 섬길 수 있도록 날마다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하나님 아버지, 지금 예배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있는 우리 네 명의 친구들을 주님 손에 올려드립니다.
주님께서 그 아이들을 누구보다 잘 아시고 사랑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그들의 마음과 형편을 주님께서 친히 살펴주시고, 그 마음을 붙들어주시며, 다시 예배의 기쁨을 회복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도 그들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주시고, 정죄하거나 부담을 주기보다 사랑으로 기다리고 기도하며 먼저 손 내밀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 중고등부의 여섯 명의 아이들을 특별히 붙들어주옵소서.
이 아이들이 교회 안에서만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답게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이번 한 주 동안 나의 편안함만 생각하지 않고 친구의 어려움을 돌아보게 하시고, 서로의 짐을 지며, 작은 사랑이라도 실천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삶의 중심이 내가 아니라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가 되게 하시고, 우리가 받은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의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우리의 구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상으로 오늘 주일예배를 마치겠습니다.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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