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되고 싶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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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왕이 되고 싶은 나무
[서론]
최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바로 ‘오딧세이’입니다.
그 영화를 보면 왕 오디세우스가 전쟁을 떠난 뒤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습니다.
왕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자 왕비와 결혼하려는 수많은 구혼자들이 왕궁으로 몰려듭니다.
그들은 왕비와 결혼만하면 왕이 될거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격이 없는 사람들뿐입니다.
왕이 되려는 욕망은 단지 영화에서만 나오는게 아닙니다.
우리들 역시 세상에서 왕이 되려는 감춰둔 욕망이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서로 자기 말대로만 하려고 합니다.
회사에서도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우리는 은근히 누군가의 위에 올라서서 자기 생각과 뜻대로 통제하려고 합니다.
성경을 보면 이런 욕망은 에덴동산에 있던 아담부터 시작됩니다.
뱀이 아담과 하와에게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한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자꾸만 내가 주인이 되어 내 삶과 타인의 삶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왕이 되시는 나라이지 내가 왕이 되는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가 서로 왕이 되려 할수록 가정과 공동체는 깨어지고, 세상은 더욱 황폐해질 뿐입니다.
그럼 우리는 이 끝없는 왕이 되고 싶은 욕망을 어떻게 다스릴수 있을까요?
[본론]
오늘 말씀은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 사람들의 지지와 후원으로 왕이 된후 일어난 일입니다.
그는 왕이 되기 위해 자신의 형제들 70명을 한 바위위에서 몰살시켰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살아남은 사람이 딱 한명 있었습니다.
바로 기드온의 막내 아들 요담입니다.
요담은 숨어있다가 어느날 그리심산에 올라가 세겜 사람들을 향해 외칩니다.
그리심산은 원래 축복을 선포하던 산입니다.
그런데 요담은 바로 그 축복의 산에서 세겜사람들이 선택한 왕이 결국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선언합니다.
그러면서 아주 특별한 이야기 하나를 들려줍니다.
바로 나무들의 우화입니다.
나무들이 자신들의 왕을 세우려 합니다.
그래서 올리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에게 차례대로 찾아가 왕이 되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세 종류의 나무는 모두 거절합니다.
왕이 되면 더 높아지고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질수 있는데 왜 거절한 것일까요?
우리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거절할수 있을까요?
세 종류의 나무가 왕이 되기를 거절한 이유는 그들의 열매때문입니다.
올리브 나무는 풍성한 올리브 기름을 생산합니다.
무화과 나무는 맛있는 무화과 과일을 맺습니다.
포도나무는 귀한 포도주를 생산합니다.
이 나무들은 이미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 되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열매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가시나무에게 왕이 되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가시나무는 기다렸다는 듯이 수락합니다.
그려면서 나무들에게 자신의 그늘 아래로 피해 숨으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을 뿜어 레바논의 백향목을 살라버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장면은 굉장한 아이러니가 담겨 있습니다.
먼저 가시나무는 그늘을 만들수 없는 나무입니다.
가시나무 아래에서 어떻게 다른 나무들을 보호해줄수 있을까요?
또한 불질러버리겠다는 레바논의 백향목은 나무들중에서도 특히 크고 웅장한 나무입니다.
그런데 보잘것없는 가시나무가 백향목을 태워버리겠다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한마디로 자격도 없으면서 허세를 부리며 나무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요담이 말한 가시나무는 누구일까요?
바로 왕이 된 아비멜렉입니다.
9장 1-6절을 보면 그가 어떻게 세겜의 왕이 되었는지 나옵니다.
그는 왕이 되려고 자신의 어머니 고향인 세겜 사람들의 지역감정을 이용합니다.
마치 정치인들이 충청의 아들이다, 강원도의 사위다며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아비멜렉은 세겜사람들이 바알을 숭배하며 걷은 돈을 자신의 정치자금으로 사용합니다.
이 돈으로 깡패들을 사서 형제들을 제거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켜 자신이 왕의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결국 요담의 우화는 아비멜렉과 그를 뽑은 세겜 사람들에 대한 풍자입니다.
그럼 이 우화에서 세 종류의 나무와 가시나무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세 종류의 나무는 왕이 되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열매 맺는 것입니다.
반면 가시나무는 다릅니다.
그는 열매가 없는데 자리를 원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줄 것은 없는데 다른 사람 위에 서고 싶어 합니다.
자신이 높아지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희생시킵니다.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우리도 자꾸 왕이 되고 싶어합니다.
내가 내 뜻대로 살고 싶고, 내 말대로 사람들이 움직이길 원합니다.
내가 인정받고,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으시는 자리가 아니라 열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관심은 왕이 되는데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이미 왕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왕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 위에 왕이 되려고 애써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리에서 좋은 열매를 맺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럼 우리가 맺어야할 열매는 무엇일까요?
보통 열매를 우리의 재능이나 능력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얼마나 많은 성과를 냈냐,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냐,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냐를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열매란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자리에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일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섬기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사는 것입니다.
화해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내 가정은 내 존재로 인해 가족들이 더 사랑받고 있습니까?
내 직장은 내 존재로 인해 더 성장하고 건강해지고 있습니까?
내 교회에서는 내 존재로 인해 사람들이 위로와 격려를 얻고 있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살펴봐야할 열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한 분을 바라보게 됩니다.
예수님입니다.
아비멜렉은 사람을 죽여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죽으셨습니다.
아비멜렉은 자리를 얻기 위해 형제들을 희생시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아비멜렉은 사람들이 자기 아래로 들어오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 아래로 내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3-45절 입니다.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완전히 다른 왕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누가 더 높으냐, 누가 더 많이 가졌냐, 누가 더 영향력이 많냐?”가 아닙니다.
“누가 더 낮아지느냐, 누가 더 섬기느냐, 누가 좋은 열매를 맺느냐?”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큰 사람은 다른 사람 위에 올라선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낮추고 섬기고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자리를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열매를 통해 그 존재가치를 증명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열매란 결코 능력이나 성과가 아닙니다.
사랑, 섬김, 정직, 평화, 희생, 생명을 의미합니다.
그럼 이 우화의 결론은 어떻게 될까요?
20절입니다.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뿜어 나와서 세겜 성읍 사람들과 밀로의 집안을 살라 버릴 것이며, 세겜 성읍 사람들과 밀로의 집안에서도 불이 뿜어 나와서 아비멜렉을 살라 버릴 것입니다.
가시나무가 말했던 바로 그 불이 결국 현실이 됩니다.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은 처음에는 서로의 필요때문에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등을 돌립니다.
아비멜렉은 배신한 세겜을 공격하고 파괴합니다.
그러나 얼마후 아비멜렉은 한 무명의 여인이 던진 돌에 맞아 비참히 죽습니다.
이것이 스스로 높아지려고 왕이 되려고 한 자의 비참한 결말입니다.
잘못된 왕을 뽑은 사람들의 비참한 결말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네가지 종류의 나무를 보았습니다.
올리브 나무, 무화과 나무, 포도 나무, 그리고 가시나무입니다.
앞서 세 나무는 왕이 되는 것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열매를 맺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가시나무는 달랐습니다.
열매는 없지만 왕의 자리를 원했습니다.
다른 나무에게 줄 것은 없지만 다른 나무 위에 서고 싶어 합니다.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도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물어봐야 합니다.
“혹시 나도 가시나무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일상 속에서 왕이 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가정애서도 내 뜻대로 모든게 움직여야 하지는 않습니까?
직장에서도 내 의견이 받아들여져야만 하지는 않습니까?
내가 인정받지 못하면 속상하고, 다른 사람이 나보다 앞서가면 마음이 불편하진 않습니까?
바로 그 순간 우리 안의 가시나무가 고개를 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는 전혀 다른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높은 분이셨지만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섬김을 받을수 있는 분이셨지만 오히려 섬기셨습니다.
사람들을 희생시켜 자신의 왕좌를 지키신게 아니라,
자신을 희생하여 사람들을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높아지려는 사람들을 통해 드러나는 나라가 아닙니다.
낮아지고, 섬기며, 자기 자리에서 좋은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통해 세워지고, 드러나는 나라입니다.
한주간 내가 있어 우리 가족은 더 행복해지는지,
내가 있어 우리 직장은 더 나아지고 있는지,
내가 있어 내 이웃들은 위로받고 격려받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맺을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말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평생가도 그렇게 살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열매를 맺을수 있는지 알려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 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 분안에 우리가 머물러 있으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분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